“세상을 바꾸는 기술은, 결국 사람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양자컴퓨터 선도기업 ‘아이온큐(IonQ)’의 공동창업자이자, 현재는 미국 듀크대에서 수석 과학기술 전략 고문으로 활동 중인 김정상 듀크대 전기컴퓨터공학과·물리학과 교수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한마디로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27일 최종현학술원(이사장 최태원 SK 회장)과 한국고등교육재단(이사장 최태원 SK 회장)이 공동 기획한 전문가 대담 시리즈 ‘프로페썰說’ 녹화 현장에서 김 교수는 “진짜 혁신은 기술 하나가 아니라, 기술이 만드는 생태계를 읽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양자정보과학, 나노기술,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과학자의 역할에 대해 묻는 질문에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과 사회를 향한 이해 없이는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며 “그래서 과학자에게는 통찰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대담은 ▲개인적 선택과 도전의 서사 ▲양자컴퓨터 산업과 공급망 이해 ▲AI 시대 교육의 방향성과 사회적 과제 등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김정상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벨 연구소 연구원, 듀크대 교수로 이어지는 길을 걸었다. 이후 동료였던 크리스토퍼 먼로 교수와 함께 양자컴퓨터 스타트업 아이온큐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2021년, 나스닥 상장에 성공한 양자컴퓨터 기업이 됐다.
김 교수는 대담에서 “결국 중요한 건, 어떤 기회를 만나느냐보다 그 기회를 어떻게 실행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자신의 선택이 대부분 우연과 타인의 권유에서 시작됐음을 회고했다. 그는 서울대 물리학과 진학도 고등학교 물리교사의 조언으로 결정했으며, 미국 유학 후 벨 연구소에 입사하게 된 것도 연구 발표 자리에서의 우연한 만남이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선택들이 그의 삶을 이끈 것은 단지 ‘운’이 아니라, 이후 선택을 ‘어떻게 실행했느냐’의 문제였다. 벨 연구소에서 기초과학을 산업 기술로 전환하는 경험을 하며 그는 “과학과 기술의 접점을 직접 체험하게 된 것이 이후 양자컴퓨터 창업으로 이어진 결정적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양자컴퓨터는 0과 1 사이의 중첩 상태를 계산에 활용하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컴퓨팅이다. 고전 컴퓨터가 한 번에 한 가지 연산만 수행하는 반면, 양자는 동시에 여러 연산을 처리할 수 있는 이론적 잠재력을 가진다. 하지만 일반 사용자에게 이 기술은 여전히 “양자 퇴사”, “양자 관계” 등 밈(meme)의 영역으로 소비되고 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과학은 때때로 ‘그렇다’는 전제 위에 출발하는 것”이라며 “양자역학 역시 실험이 증명한 자연의 모습일 뿐, 억지로 설명하려 하기보다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양자컴퓨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기술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실제로 미국 국방부, 공군연구소, 유럽의 양자연구 기관 등은 이미 아이온큐의 양자컴퓨터 시스템을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김 교수는 “AI가 수십 년 간의 침체기를 딛고 챗GPT라는 ‘킬러 앱’으로 전환점을 맞은 것처럼, 양자 역시 어느 날 갑자기 대중에게 다가올 수 있다”며 “전자계산기가 컴퓨터를 대중화시켰듯, 양자컴퓨터 역시 실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작지만 강한’ 애플리케이션이 촉매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양자컴퓨터는 개인이 소유하거나 책상 위에 둘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IBM, 아이온큐 같은 선도 기업들이 개발한 시스템은 클라우드 기반으로 서비스되고 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 또한 1960년대 메인프레임 시대와 다르지 않다”며, “지금은 가내수공업 수준의 양자컴퓨터가 향후 대량생산 체계로 전환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김 교수에 따르면 현재의 양자 기술은 마치 반도체 산업 초창기의 ‘인텔 전자계산기’와 같은 단계에 있다. 김 교수는 “대중화의 전환점은 곧 새로운 기업의 기회”라며, “양자컴퓨팅의 ‘애플’과 ‘엔비디아’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는 “GPU 시장의 90%를 장악한 엔비디아의 힘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툴과 라이브러리를 통한 유저 친화적 생태계에서 비롯됐다”며, “양자도 사용자가 코드를 몰라도 기능을 끌어다 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폭발적인 성장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2015년부터 10년 가까이 몸담았던 아이온큐를 떠나 다시 대학으로 돌아온 이유에 대해 “이제는 내가 진짜 의미 있는 일에 시간을 써야겠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창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 생태계를 새롭게 설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현재 김 교수는 듀크대에서 ‘수석 과학기술 전략 고문’이라는 독특한 타이틀로 활동 중이다. 특정 연구나 행정을 총괄하는 직책이 아닌, 기술 변화에 따른 대학 교육의 패러다임 자체를 재설계하는 역할이다.
그는 “지금처럼 빠르게 기술이 바뀌는 시대에는, 대학에서 가르친 지식이 학생이 졸업할 즈음엔 이미 무의미해질 수 있다”며 “전통적인 문제풀이 교육은 AI가 대체하고 있다. 인간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에 대해 대학은 본질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버드, 스탠퍼드 등 세계 유수 대학이 이미 교육의 방향을 지식전달에서 가치 판단, 리스크 관리, 사회적 책임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과거 벤처 창업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떠올리며 “AI 시대에는 전문 지식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방식, 판단력, 책임감이 더 중요하다”며 “기업에서는 이런 ‘비인지적 스킬’이 진짜 경쟁력이 되며, 그런 훈련을 대학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김 교수는 스탠퍼드대의 사례를 인용하며 “1950년대까지만 해도 무명의 지역대학에 불과했던 스탠퍼드는 창업과 산업 연계를 대담하게 장려하면서 ‘실리콘밸리’라는 생태계를 창조해냈다”며 “의대, 법대처럼 정해진 트랙을 따르기보다는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교육, 협업과 다양성을 키워주는 커리큘럼이 필요하고, 우리는 학생을 사회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만들 사람’을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청년 세대를 향한 조언도 이어졌다. 그는 “정형화된 성공 모델을 강요하면 할수록 학생들의 가능성은 줄어들고, 입시와 취업이라는 경쟁에만 몰두하는 동안 놓치는 기회 비용이 너무 크다”고 지적하며, “성공을 좁은 틀로 규정짓기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야말로 교육과 사회가 할 일이며, 젊은 세대가 ‘닭장’에 갇히지 않고,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성세대가 먼저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최근 미국 대학들에서도 재정 압박과 학과 폐지, 감원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연방정부 중심의 R&D(연구개발) 구조가 한계에 봉착하면서 민간과의 협업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대학은 이제 교육과 연구를 넘어 사회와 산업에 영향력 있는 가치를 만들어내야 하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 본인 역시 지금은 새로운 형태의 융합적 연구 플랫폼을 구상 중이며, 프라이빗 섹터와의 협력을 통해 실험적 모델을 설계하고 있다고 밝혔다.
끝으로 김 교수는 “양자기술은 아직 절대 다수가 도전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며, 한국도 전략적으로 선택하면 충분히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다”며, “누구보다도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응용해내는 한국 청년들의 가능성을 믿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프로페썰說은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의 철학을 바탕으로 설립된 최종현학술원과 한국고등교육재단이 기획한 전문가 대담 시리즈다. 정보 과잉과 전문가 범람의 시대 속에서, 진정한 전문가들이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한 질문을 던지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