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맥주가 올해도 ‘비어 마스터 클래스’를 마련했다. 이번엔 서울 강남 구스아일랜드 브루하우스에서다.
이 프로그램은 미디어를 대상으로 한 맥주 강좌로, 2013년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올해는 오비맥주 윤정훈 상무와 구스아일랜드 브루하우스 이창현 브루마스터가 마이크를 잡았다.
윤정훈 상무는 오비맥주의 대표 브랜드 ‘카스’와 맥주에 대해 알기 쉽게 얘기해줬고, 이창현 브루마스터는 본인이 개발한 여러 로컬(local) 크래프트 비어(수제맥주)를 소개했다.
여기선 어떤 로컬 크래프트 비어들이 테이블에 올랐고, 어떤 특징이 있으며, 함께한 페어링 메뉴는 무엇인지 시간순으로 알아본다.
먼저, 이창현 브루마스터를 소개한다. 오비맥주 양조기술연구소에 입사해 신제품 개발과 글로벌 맥주의 품질관리를 담당하다, 구스아일랜드 브루하우스가 오픈하며 이쪽으로 넘어왔다. 지금까지 110가지 넘는 맥주를 개발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열린 ‘월드비어컵(WBC)’에서 ‘프로방스 팜하우스(Provence Farmhouse)’로 국내 크래프트 비어 양조장 최초로 금메달을 수상한 ‘실력파’이기도 하다.
현재는 로컬 재료를 사용한 맥주 개발에 한창이다. 이번 클래스는 그중 다섯 가지를 골라 시음 형식으로 진행했다. 그 외 ‘발효 마니아’답게 “와인·막걸리 같은 주류뿐만 아니라 김치나 메주 등 온갖 발효 제품을 연구 중”이기도 하다.
‘불수감’ ‘동치미’ ‘팥빙수’… 놀라운 맥주 재료
테이스팅 샘플러 트레이에는 다섯 가지 맥주가 놓였다.
먼저, ‘라이프 이즈 비터스위트 사우어(Life is bittersweet sour)’다. 쌉싸래하면서도 달콤한 비터스위트, 게다가 신맛의 사우어(Sour)라니 대충 짐작이 간다. 이창현 브루마스터 역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쓴맛, 단맛, 신맛을 가지고 있는 맥주”라고 소개했다.
레몬꿀차나 레모네이드 같은 맥주를 만들고 싶어 도전했다는데, 그의 말처럼 상쾌한 기분도 잠시 느껴졌다. 재밌는 건 불수감(佛手柑)이라는 재료다. 한자 그대로 ‘부처의 손’처럼 생긴 과일이다. 영어 이름도 ‘부다스 핸드(Buddha’s hand)’다. 원래 일본과 중국에서 나는데, 최근 전남 여수에서 재배에 성공해 이렇게 맥주로까지 발전됐다. 알코올도수(ABV)는 3.5%. ‘카스 프레시’가 4.5%인 걸 생각하면 더 라이트(light)한 맥주다.
이에 맞춘 페어링 메뉴로는 ‘쉬림프 크로켓’을 준비했다. 향긋한 맥주가 튀김 맛을 조금 씻어주는 효과가 있어, 이 메뉴를 한 입 먹고 그다음 맥주를 마시면 좋다고 알려줬다.
다음은 국내산 ‘청수’ 포도품종으로 만든 ‘펑키 매직(Funky Magic)’이다. 청수는 농촌진흥청이 우리나라 기후와 토양에 적합한 한국형 화이트와인을 만들 목적으로 개발한 품종이다. 실제 이를 주재료로 국내산 와인을 만드는 곳도 여럿이다.
이창현 브루마스터는 이 맥주를 ‘탄산 침용(Carbonic Maceration) 기법’으로 양조했다고 설명했다. 좀 어려울 수 있는데, 숙성 용기에 껍질을 벗기지 않은 포도를 송이째 넣어 발효하는 방법이다. 밀폐된 공간에 탄산이 차 있는 상태에서 발효가 된다. 포도를 으깨지 않으니 다른 와인에 비해 타닌이 적고, 과일 향은 더 많이 머금는다. 프랑스에서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 자정에 출시하는 햇와인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에 이 기법이 사용된다. 참고로 이 와인은 ‘가메(Gamay)’라는 포도품종을 사용한다.
이창현 브루마스터는 “펑키 매직은 포도 껍질에 붙어있는 야생 효모만으로 발효시킨 내추럴 와인처럼 만든 맥주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이 맥주에는 ‘브리치즈 크리스티니’가 페어링 메뉴로 준비됐다. 브리치즈(Briecheese)는 화이트와인과 잘 어울린다. 해서, 펑키 매직을 내추럴 화이트와인으로 생각하고 마셔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 번째는 ‘다크 다크 구스(Dark Dark Goose)’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흑맥주다. 스타일로 표기하면 ‘다크 라거(lager)’. 현재 업장에서 판매하는 맥주이기도 하다. 다크 라거를 많이 만들진 않지만, 이곳을 찾는 고객들이 라거 맥주를 선호하는 데다, 그중에서도 다크 라거를 찾는 경우가 많아 기획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ABV가 3%로 비교적 낮은데, 그런 이유로 ‘빈 맛’이 좀 느껴질 수 있다. 이를 채우기 위해 유명 흑맥주처럼 질소 서빙을 했다는데, 이 때문인지 거품이 좀 더 부드럽고 바디감이 느껴졌다. 여기에 한라봉 재료를 사용해 상큼함까지 살렸다. 마치 한라봉 향을 가득 품은 다크 초콜릿을 마시는 느낌이다.
이 맥주는 ‘한라봉 브리스킷’과 함께했다. 브리스킷의 훈연 맛과 맥주의 구운 맥아 맛의 조화를 느껴보는 재미도 나쁘지 않다.
다음이 재밌다. 동치미를 사용했다. 스타일은 독일식 사우어 맥주 ‘고제(Gose)’다. 그래서 이름이 ‘동치미 고제’다. 우리나라는 발효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고 독일은 최고의 맥주 강국이다. 생각 끝에 우리나라의 발효 식품 중 대표격인 김치, 그중에서도 동치미와 독일 맥주를 대표하는 스타일 중 하나인 고제를 융합해 만들었다. 이창현 브루마스터는 이를 개발하는 데만 5년이 걸렸다고 했다.
페어링 메뉴는 따로 없다. 글라스에 가니시로 꽂아놓은 동치미 한 조각이 이를 대체하는데, ‘홀짝홀짝’에 ‘아삭아삭’이 더해지니 재밌고 신기할 따름이다.
어느덧 마지막이다. ‘팥빙수 브라운에일(Brown Ale)’인데, 이 역시 재밌는 기획이다. “진짜 팥빙수처럼 한 번 만들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사실, 2020년 한 번 내놓았고 반응도 나쁘지 않았지만, 당시 팬데믹 초기여서 인기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이창현 브루마스터는 “이 맥주에는 여섯 가지의 맥아를 사용했는데, 고소한 맛의 맥아 위에 팥의 달달하고 은은한 향미를 섬세하게 얹으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먼저 팥빙수를 한입 먹고 그다음에 맥주 한 모금을 마셔보길 권했다.
맥주 페어링은 주로 맥주가 주인공이지만 때에 따라 페어링 메뉴가 주인공인 경우도 있다. 팥빙수 브라운에일은 페어링 메뉴인 팥빙수가 사실 주인공이라고 봐야 한다.
1세대 크래프트 비어 ‘구스아일랜드’
재밌는 맥주다. 놀 듯 즐기듯 만든 맥주에 빨려든다. 이런 유쾌한 시도는 깨나 긍정적이다. 늘 그래왔듯이 훗날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소비자까지 즐거우면 더할 나위 없다. 이게 크래프트(craft)가 아니면 뭐가 크래프트일까.
마지막으로 구스아일랜드 브루하우스가 뭔지 궁금할까 싶어 간략히 정리하고 마무리한다. 맥주를 좋아하는 이라면 편의점에서 ‘구스아일랜드’ 한 캔 정도는 사 봤을 테다. 구스아일랜드는 크래프트 비어의 본산, 미국 시카고에서 시작됐다. 흔히 1세대 크래프트 비어로 알려져 있다. 가장 성공한 양조장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하는 브랜드로 유명한데,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맥주를 배럴(barrel)에 숙성시킨 브랜드다. 이에 본격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많은 양조장이 이 방식으로 양조한다.
1988년 첫 브루 펍(pub)을 시카고에 오픈했고, 1995년에는 대량 생산을 위한 대규모 양조장을 지었다. 우리나라에는 2016년 지금의 자리에 오픈하며 한국 시장 진출을 알렸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