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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자산배분①] 독일, 1600조원 투자 시대...16년 긴축 끝, 기회의 땅으로 급부상

부채 브레이크 해제, 인프라·국방·AI에 1600조원 투자… 유럽 경제 반등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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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예은⁄ 2025.07.08 16:31:48

17일(현지시간) 캐나다 앨버타주 캐내내스키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장에서 (왼쪽 첫번째)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G7 및 초청국 정상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메르츠 총리는 지난 5월 14일 베를린에서 취임 후 첫 의회 연설을 통해 “독일 연방방위군을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재래식 군대로 만들겠다”며, 군비 증강을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독일이 16년 만에 재정 긴축의 브레이크를 풀고 '독일판 마셜플랜'이라 불리는 전후 최대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가동한다. 헌법 개정을 통해 10년간 최대 1조 유로(약 1583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인프라와 국방 분야에 쏟아붓기로 한 것이다. 이는 만성적인 투자 부족에 시달리던 독일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완전한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으며,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고 있다.

 

“독일판 마셜플랜”… 유럽 경제의 새로운 동력
독일이 '빚의 족쇄'를 풀고 1조 유로를 투입하며 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독일 연립정부는 지난 3월 상원 표결을 통해 연간 신규 부채를 국내총생산(GDP)의 0.35%로 제한하던 '부채 브레이크(Schuldenbremse)' 규정을 우회하는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향후 12년간 5000억 유로 규모의 인프라 특별 기금을 조성하고, GDP 대비 국방비 지출 상한선도 사실상 폐지해 막대한 재정 투입의 길을 열었다. 이는 단순한 예산 편성을 넘어, 국가 운영의 근간이 되는 헌법(기본법)을 수정하여 재정 정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역사적 결정에 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마르쿠스 죄더 바이에른 주총리는 이번 투자를 "독일판 마셜플랜"에 비유했으며,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완전한 게임 체인저"라며 극찬했다. 골드만삭스는 독일의 2026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0%에서 1.5%로 상향 조정했고, 삼성증권은 이번 재정 확대로 독일의 연간 성장률이 향후 수년간 0.3%p에서 0.7%p까지 추가 상승할 것으로 분석했다. 유로존 전체 GDP의 약 30%를 차지하는 독일 경제의 부활은 유럽 대륙 전체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미칠 것이며, 국제금융센터는 유로존 GDP가 0.4%p 상승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물론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 상승과 국채 발행 증가에 따른 금리 상승 등 잠재적 부담도 존재한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재정 건전성의 모범 국가로 불리며 GDP 대비 부채 비율을 주요 선진국(평균 100% 상회)보다 훨씬 낮은 60% 수준으로 관리해 온 만큼, 재정 확대 여력은 충분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독일의 대규모 재정 투자는 특정 산업에 강력한 성장 모멘텀을 제공하며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전문가들은 특히 방산, 인프라(제조업), 소프트웨어(AI), 금융 등 네 분야를 핵심 수혜 섹터로 꼽고 있다.

 

독일 라인메탈사의 KF41 '링스' 보병전투장갑차. 사진=라인메탈사

'유럽의 안보는 유럽이'…부활하는 방산 강국 속 부상하는 라인메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의 잠재적 외교 정책 변화는 '유럽의 독자적 방위'라는 강력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는 독일의 국방비 증액으로 이어져 방산 기업에 직접적인 수혜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독일의 라인메탈 등 유럽 방산주가 최근 급등한 배경이기도 하다.

독일 최대 방위산업체 라인메탈(Rheinmetall)은 최근 유럽의 방위산업 시장에서 전례 없는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레오파르트 전차, 링스 장갑차, 탄약 및 방공 시스템 등을 주력으로 하는 이 회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며 유럽의 ‘군비 증강 시대’에 정면 대응하고 있다.

라인메탈은 2024년 실적 발표에서 역대 최대 매출인 97억 5100만 유로(약 14조 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2021년 대비 72% 증가한 수치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5억 9400만 유로에서 14억 7800만 유로로 2.5배 이상 뛰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라인메탈에 실질적 ‘호재’로 작용했다. 라인메탈의 수주 잔액은 2023년 말 기준 549억 유로에 달한다. 전년 대비 44% 급증한 규모다. CEO 아르민 파페르거는 “2024년 사실상 100억 유로 목표 매출에 근접했으며, 선적 지연이 없었다면 초과 달성도 가능했다”고 말했다.

라인메탈은 현재 점유율(20~25%)을 유지할 경우 2025~2030년 예상 매출을 3000억~4000억 유로로 전망하며, 폭발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유럽 각국이 국방비를 GDP의 2.5% 이상으로 확대할 경우의 보수적 시나리오에 기반한 평가다. 파페르거는 “독일에서 3% 국방비 비중이 현실화되면 EU 국방예산은 현재 6900억 유로에서 2030년엔 최대 1조 유로까지 확대될 것”이라 전망했다.

주목할 점은 자동차, 조선 등 전통 제조업 강국인 독일의 산업 구조다. 독일은 기술력을 갖춘 자동차 생산 라인을 방산용으로 전환하는 등 기존의 유휴 설비와 숙련된 기술 인력을 활용해 단기간에 생산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라인메탈 역시 폴크스바겐의 독일 공장을 인수해 방산 생산라인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는 독일 제조업 구조조정과 방산 확장을 동시에 노리는 전략이다. 이러한 전환은 단순한 예산 투입을 넘어, 독일 제조업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멘스, 유럽 제조업 반등의 바로미터
인프라 및 제조업 분야에서도 전통 제조업 강자의 귀환이 예상된다. 5000억 유로의 인프라 투자가 낙후되었던 독일의 도로, 철도, 에너지망을 현대화하며 건설 및 제조업 부문에 막대한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흐름의 중심에는 독일 기업 지멘스(Siemens)가 있다. 지멘스는 전력망과 빌딩 기술을 담당하는 '스마트 인프라' 사업부와 철도 솔루션을 제공하는 '모빌리티' 사업부를 통해 정부 투자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을 최적의 위치에 있다고 평가된다.

 

특히 최근 공정 자동화 수주의 회복이 가시화되면서 전체 가이던스에 대한 신뢰가 강화됐다. 김도현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멘스는 2025년 1분기 실적에서 자동화 부문 신규 수주가 전년 동기 대비 6% 성장하며 관련 사업 수주의 회복세를 뚜렷이 보여줬다"며, "지멘스가 전략적으로 집중하는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실질 성장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 향후 수익성 기반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 나아가, 전쟁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및 철도 인프라 재건 사업이 본격화될 경우 에너지, 철도, 전력 솔루션을 보유한 지멘스가 추가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 밖에도, 미국 경쟁사 대비 여전히 저평가 상태로 매력적인 밸류에이션을 갖춘 것과 안정적인 사업 모델에서 비롯되는 배당 수익률도 긍정적 요인으로 평가된다.

소프트웨어 및 AI 분야에서는 유럽의 희망 'SAP'이 디지털 전환을 이끌고 있다. 독일의 재정지출 확대가 단순한 경기부양을 넘어 산업 전반의 구조 전환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 흐름의 중심에 유럽 소프트웨어 산업의 자존심 SAP이 자리하고 있는 것. 전통적인 ERP(전사적 자원관리) 강자인 SAP은 클라우드 전환과 AI 확산이라는 두 개의 추세를 타고, 디지털 전환의 실질적 수혜 기업으로 부상 중이다.

삼성SDS가 국내 최초로 '라이즈 위드 SAP 프리미엄 서플라이어'로 선정됐다고 3일 밝혔다. 이준희 삼성SDS 사장(왼쪽)과 크리스티안 클라인 SAP 최고경영자가 전날 독일 SAP 본사에서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삼성SDS

‘AI+ERP’의 교차점에 선 SAP, 유럽 클라우드 확장의 중심으로
SAP은 미국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기업들과 달리 유럽 시장에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미국(94%)에 비해 현저히 낮은 유럽의 클라우드 채택률(45%)은 SAP에게 거대한 미개척 시장을 의미하며, 최근 유럽 내 '디지털 주권' 강화 움직임은 역내 대표 기업인 SAP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특히 AI 시대의 필수 조건인 클라우드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ERP(전사적자원관리) 시장의 절대 강자인 SAP은 단순한 ERP 기업을 넘어 AI 시대에 걸맞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클라우드 전환은 이제 기업의 선택이 아닌 필수다. 특히 생성형 AI와 같은 고도화된 기술을 활용하려면 대규모 연산 자원을 가진 클라우드 환경이 선행돼야 한다. 그동안 클라우드 전환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ERP 분야는 이제야 본격적인 전환기에 들어섰고, 이 점은 SAP에게 기회요인으로 평가된다.

 

핵심은 자체 AI 에이전트 ‘쥴(Joule)’과 ‘비즈니스 데이터 클라우드’다. 쥴은 SAP의 ERP, HR, 공급망 등 다양한 솔루션 전반에 내장되어, 자연어 기반의 업무 자동화와 인사이트 도출을 지원한다. SAP은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구글 클라우드, 아마존 AWS 등과의 협력을 통해 개방형 AI 환경을 구축하고 있으며, 고객 데이터와 LLM(대규모 언어모델)을 통합해 각 기업에 맞는 AI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와 함께 SAP 비즈니스 데이터 클라우드는 다양한 기업 시스템의 데이터를 통합해 AI 학습과 실행에 최적화된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삼성증권 이영진 연구원은 “전통 ERP 시장의 디지털 전환 지연이 AI 도입과 클라우드 전환의 후속 수요로 이어지며 SAP의 구조적 성장을 이끌고 있다”며 “높아진 밸류에이션도 실적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국면”이라고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금융 분야는 대규모 투자의 혈맥 역할을 하며 동반 성장이 기대된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인프라 및 방산 프로젝트는 막대한 자금 조달을 필요로 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독일 은행 및 금융 기관의 역할 확대로 이어진다. 정부가 보증하는 대규모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은 금융권에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수익원을 제공하며, 전반적인 경제 활성화는 기업 대출과 소비자 금융 수요를 함께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유럽 증시의 시가총액 상위권에 알리안츠(Allianz)와 같은 금융 대기업이 포진해 있을 만큼 기초 체력이 튼튼한 독일 금융주는, 이번 재정 확장의 숨은 수혜주로서 안정적인 성장이 기대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국내에 상장된 독일 DAX ETF는 7월 7일 기준 최근 6개월간 23.59%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동기간 미국 S&P 500 지수를 추종하는 Trust ETF(SPY, 5.29%)와 나스닥 100 지수를 추종하는 Invesco QQQ Trust ETF (QQQ, 7.13%)를 웃도는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해당 ETF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 중 시가총액, 유동성 기준 상위 40개 종목을 편입하며 SAP, 지멘스, 알리안츠, 도이치 텔레콤 등에 투자한다.


국내 유일 독일 DAX 지수 ETF를 운용하고 있는 키움투자자산운용의 김상미 상무는 “작년부터 유럽은 금리인하 등 준비된 환경 속에서 물가 안정과 정책 신뢰를 확보했다"며, "특히 독일은 '역사적 재정 정책 전환을 통한 정책 모멘텀·경기 바닥론·밸류 재평가’ 등이 맞물리며, 글로벌 투자 자금이 이동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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