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구⁄ 2025.12.08 11:40:10
그들에겐 두 바퀴가 두 다리다. 그것만 다를 뿐 땀방울도, 거친 숨소리도, 농구공도, 올려다보는 농구 골대도, 모두 같다.
그들도 뛴다. 숨 가쁘게 뛴다. 가슴이 터져라 뛴다. 승리했을 땐 두 팔 벌려 환호성을 내지르고, 졌을 땐 고개 숙이며 아쉬워한다. 장애가 있어 휠체어를 탈 뿐, 경기 룰이나 포지션이나 승부 방식 모두 똑같다.
장애인휠체어농구단 ‘코웨이 블루휠스’가 올 한 해 그랜드슬램 달성이라는 아주 굵직한 성과를 냈다. 4월 ‘홀트전국휠체어농구대회’, 6월 ‘우정사업본부장배 전국휠체어농구대회’, 10월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모조리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10월 마지막 주엔 수개월 간 이어진 ‘KWBL 휠체어농구리그’ 정규리그마저 제패했다.
- 먼저 ‘KWBL 휠체어농구리그’ 정규리그 우승을 축하드립니다. 간단한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올해는 저와 선수들에게 잊기 어려운 한 해입니다. 창단 4년 차라는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홀트전국휠체어농구대회, 우정사업본부장배,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 이어 KWBL 휠체어농구리그 정규리그까지 모든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 모든 성과는 블루휠스 선수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준 덕분입니다. 무엇보다 힘든 훈련을 묵묵히 견뎌낸 선수들의 노력과 그 뒤에서 든든하게 팀을 받쳐준 코칭스태프와 운영진의 헌신이 하나로 모였기에 가능한 결과였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팀 모든 구성원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 KWBL 휠체어농구리그 정규시즌에서 ‘춘천 타이거즈’에 77대 78대로 경기를 내준 게 유일한 패배였죠?
“이 경기만 승리하면 전승 기록과 함께 정규리그 첫 우승을 확정 짓는 중요한 일전이었습니다. 경기 초반부터 한 점 차 승부가 이어졌고, 상대 역시 저희를 가장 잘 아는 팀이라 쉽지 않은 흐름이었죠. 3쿼터에는 14점 차까지 벌어졌지만, 4쿼터에서 우리 선수들의 저력이 빛났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점, 한 점 따라붙으며 경기 흐름을 뒤집을 기회를 만들었고,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어요.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여러모로 저에겐 올해 가장 강렬히 기억되는 경기입니다.”
- 타이거즈는 어떤 팀으로 기억하시나요.
“항상 강한 전력을 유지하는 팀이죠. 저희와는 정규리그 상위권을 다투는 강호입니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이 뛰어나고 조직력도 훌륭해 경기할 때마다 큰 자극이 됩니다. 블루휠스의 라이벌이자, 언제 만나도 쉽지 않은 가장 위협적인 상대라고 생각합니다.”
- 모두가 똑같은 땀방울을 흘렸고, 그런 만큼 값진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칭찬할 만한 선수가 있을까요. 이왕이면 수훈 선수보다 팀에 꾸준히 보탬이 되고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 선수를 예로 들면 좋겠습니다.
“농구는 혼자서 이길 수 있는 경기가 아닙니다. 개인 역량도 중요하지만, 팀워크와 분위기가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치죠. 그래서 저는 선수 개개인의 기록보다 팀이 흔들릴 때 중심을 잡아주는 선수를 늘 높게 평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팀의 최고참이자 정신적 지주인 김호용 선수를 꼽고 싶습니다. 올해로 30년간 선수 생활을 이어오고 있고, 만 53세 나이에도 여전히 코트를 누비며 현역으로 활약하는 휠체어농구의 레전드예요. 어떤 순간에는 감독인 저보다 더 침착하게 팀 분위기를 잡아줄 때도 있고요. 항상 묵묵히 팀을 안정시켜 주는 고마운 선수이고, 저에게도 큰 의지가 되는 존재입니다.”
- 블루휠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예를 들면 블루휠스만의 장점 같은.
“일단, 휠체어농구 실업팀 중에선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유일한 팀입니다. 기업 구단이라는 안정적인 기반 덕분에 선수들이 아무 걱정 없이 운동에만 집중하는 환경이 마련돼 있죠. 이는 경기력 향상에도 큰 힘이 되고 있어요. 또 다른 강점은 탄탄한 조직 구성입니다. 선수단을 비롯해 코치·스태프, 운영진 등 체계적인 조직이 완비돼 있죠. 임찬규 단장님이나 강희준 코치님, 김정섭 트레이너님 모두 평생 휠체어농구와 함께한 농구 전문가로,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체계적으로 만들어주고 있어요. 이런 안정된 조직력은 우리 팀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선수는 주전급을 비롯해 후보들까지 각기 포지션별 역량을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로우포인트 선수(장애등급이 높은 선수)들까지 득점력 갖추고 있어, 상대 팀이 특정 선수만 막아선 승부가 어려운 팀이죠.”
- 이번 정기리그 우승의 주요인을 간단히 짚어보면 좋겠습니다. 전 경기를 돌아봤을 때 어떤 점이 우승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고 보십니까.
“올해 모든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제 전술이나 어느 한 선수의 뛰어난 기량 때문이 아니라 팀 전체가 도와주고 부족한 부분을 잘 채워준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힘든 훈련을 묵묵히 견뎌낸 선수들의 성실함, 경기마다 상대를 분석하며 최선을 다해 준비해준 코칭스태프, 그리고 언제나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준 운영진의 지원.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올해 더욱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었고, 그 결과 우승이라는 값진 성과를 만들어냈다고 봅니다.”
- 올해 정말 쉼 없이 달려왔어요. 모두 똑같은 순간이고 값진 승리입니다. 그래도 어떤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나요.
“어떤 경기도 결코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한 경기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이번 시즌 유일한 1패를 안겨준 타이거즈와의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모두 쉽지 않은 경기라는 걸 알고 있었고, 전승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도 컸죠. 사실상 1위는 확정된 상황이었지만,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어떤 전략으로 경기를 끌고 갈지 고민이 많았던 경기이기도 해요. 결과는 아쉬웠어도 그만큼 선수들과 팀이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를 준 경기였습니다.”
- KWBL 휠체어농구리그 챔피언결정전은 자신 있나요?
“챔피언전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가장 중요한 경기입니다. 그런 만큼 선수들과 제가 마지막 결실을 얻고자 가장 집중하는 순간이기도 하죠. 항상 그래 왔듯 최선을 다해 도전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팀워크와 전술을 바탕으로 끝까지 흔들림 없이 준비해,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도록 정말 최선을 다할 겁니다.”
- 감독님 얘길 잠깐 해보죠. 어떤 계기로 블루휠스에 합류하셨나요.
“개인적으론 13년간 휠체어농구 선수로 뛰었어요. 이후 2년의 코치 생활을 거쳐 올해로 감독 6년 차를 맞고 있고요. 서울시청 팀에서 코치와 감독직을 수행하며 팀을 이끌었고, 블루휠스가 서울시청 팀을 승계하면서 자연스럽게 활동을 잇게 됐습니다. 익숙한 환경을 떠나 기업이 운영하는 실업팀으로 옮기는 일은, 사실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결정이에요. 하지만 함께 훈련해온 선수들의 바람이 컸고, 무엇보다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선수들과 함께 농구에 집중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서면서 블루휠스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선수들도 저도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하며 성장하게 됐어요.”
- 지도 스타일은 어떤가요. 카리스마형인지 부드러운 스타일인지. 또 경기 중엔 어떤 점을 선수들에게 강조하시나요.
“선수들이 저를 봤을 때 부드러운 스타일의 감독으로 느끼진 않을 겁니다. 저는 선수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꾸준한 훈련, 팀워크, 인성을 강조해요. 농구는 단체 스포츠여서 팀워크가 무너지면 경기력에 큰 영향을 끼치죠. 그래서 선수들이 서로 의지하고 존중하는 팀 분위기를 만드는 데 가장 신경을 씁니다. 개인적으론 팀원들 간 불화 없이 팀워크가 유지되면 단합력도 높아진다고 믿어요. 그런 이유로 경기에서의 전술만큼이나 팀 안에서 좋은 관계를 쌓는 게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 마지막으로 우문(愚問) 하나를 드립니다. 휠체어농구란 어떤 스포츠입니까.
“아직 생소한 분이 많죠. 하지만 경기를 한 번이라도 보면, 휠체어농구 특유의 역동성과 빠른 전개에 금세 매력을 느낍니다. 장애인스포츠라는 게 무색할 만큼 힘과 기술, 스피드가 느껴지는 흥미로운 종목입니다. 많은 분이 휠체어농구 종목에 관심을 갖고, 경기장에도 많이 찾아와 주시면 하는 바람입니다.”
인터뷰 기사를 넘기고 나서 며칠 후 블루휠스가 ‘KWBL 휠체어농구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정규리그 우승으로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한 블루휠스는 라이벌 타이거즈를 3차전에서 64대 62로 꺾고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끝맺음까지 완벽했다.
블루휠스에겐 그 어느 해보다 찬란했던 2025년이었다. 그 해가 지고 있다. 2026년에는 또 다른 태양이 뜬다. 블루휠스의 병오년(丙午年) 목표는 그랜드슬램 수를 하나 더 늘리는 일일 게 빤하다. 2026년의 블루휠스, ‘적토마 군단’이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