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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는 KAL 858기 폭파의 진실

87년 당시 대통령 선거 활용 입증하는 안기부 문건 일부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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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2호 ⁄ 2007.07.03 10:44:42

1987년 11월 29일 115명의 승객을 태운 KAL 858기가 미얀마 해상에서 사라진지 사흘만인 12월 2일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로 추정되는 국가기관이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수립한 일명 ‘무지개공작’ 문건 사본이 4월 4일 인터넷매체 ‘통일뉴스’에 의해 최초로 공개됐다. 이 문서에는 KAL 858기 사건을 정치공작의 일환으로 ‘북괴의 테러 공작’으로 규정키로 한 점과 이 사건을 ‘일부 (대선)후보’들을 규탄하는 소재로 활용키로 한 점이 정부 문서를 통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으며, 이 사건을 남북대화 압박 카드로 사용하려고 했던 점도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국정원, ‘무지개공작’ 5쪽 중 2쪽 분량 부분 공개 이와 관련해, ‘대한 항공기 폭파사건 북괴 음모 폭로 공작(무지개 공작)’은 지난해 8월 1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국정원 발전위)’가 ‘KAL858기 폭파사건 조사결과 중간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그 실체가 알려졌으나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통일뉴스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원장 김만복, 이하 국정원)은 이 매체가 지난 3월 5일 행정정보공개를 청구한 ‘무지개공작’ 문건을 3월 13일자로 부분 공개 결정하고 이를 통보해왔다. 그러나 행정적 절차와 우편물 배달 과정에서 ‘정보 부분 공개 결정통지서’와 문건 사본은 4월 4일에야 도착했다고 통일뉴스 측은 밝혔다. 통일뉴스에 따르면, 국정원이 이번에 공개한 ‘대한 항공기 폭파사건 북괴음모 폭로 공작(무지개 공작)’은 모두 A4 용지 5쪽 분량이지만, 절반 이상이 공개대상에서 제외된 채 2쪽 정도의 분량만 공개돼 사실상 구체적인 내막을 파악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국정원은 “문건 내용 중 개인 실명 거론 부분, 당시 안기부 조직 관련 사항 등은 공공 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비공개대상정보) 제1항 제1호, 제2호 및 제6호에 의거 비공개(문건 1쪽 중간∼3쪽 중간, 5쪽)하오니 양지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대한 항공기 폭파사건 북괴음모 폭로 공작(무지개 공작)’ 사본은 1쪽에 <1.목적>이, 3쪽에 <다. 폭로 시기 및 방법>, 4쪽에 <라. 국내 홍보 방향>과 <마. 대북 홍보 방향>이 각각 기록돼 있으며, 나머지는 모두 여백으로 남겨져 있어 지나친 정보 공개 회피로 보인다고 통일뉴스는 지적하고 있다. 또 개인 필적으로 작성된 이 문건은 문서철에 묶인 흔적이 뚜렷이 보이며, 우측 하단에 ‘79325 0501’부터 ‘79325 0505’까지 쪽 별로 고유번호가 찍혀있다. ■목적은 ‘북괴 위축’과 ‘대선 사업 환경 유리하게 조성’ 문건에 따르면 무지개공작은 <1.목적>에서 <11.29 미얀마 상공에서 폭파 실종된 대한 항공 여객기 사건이 북괴의 테러 공작임을 폭로, 북괴 만행을 전 세계에 규탄하여 북괴를 위축시키고 국민들의 대북 경각심과 안보의식을 고취함으로써 가능한 대선사업 환경을 유리하게 조성>이라고 밝히고 있다고 통일뉴스는 전했다. 따라서, 이 같은 ‘무지개공작’의 목적은 110여명의 자국민이 실종된 사건을 집권세력이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려 했음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어 도덕적인 비난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사안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문건이 작성된 12월 2일은 사고로부터 불과 사흘만으로 ‘미얀마 상공에서 폭파’나 혹은 ‘북괴의 테러 공작’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던 상황이었던 점에 비추어 볼 때 향후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당시까지 정부는 사고 경위나 지점을 정확히 알지 못해 미얀마-태국 국경 밀림지역에 추락했을 것으로 추정해 이 지역에서 수색을 진행 중이었고 ‘북괴의 테러 공작’을 추정할 만한 확증은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12·16(대선일) 이전 중간결과 발표… 일부 후보들이 집권욕에 어두워’ 문건은 <다. 폭로 시기 및 방법>에서 <(1) 12.5경 외무부 장관 명의로 “북괴가 사건 배후에 개재 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조사진행사항 중간 발표, 국내외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도록 유도>, <(2) 12.5 이후 일본·바레인 및 아국 수사 상황과 북괴 반응에 따라 적절한 시기를 선택, 12.16 이전 수사 중간 결과 발표> 등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이 사건이 북한과 연관됐다는 확증이 확보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북괴 배후 추정설’을 발표해 대대적으로 보도하도록 유도한 것이 확인됨으로써 당시 실제로 언론보도가 이 같은 방향으로 이루어진 배경을 짐작케 하며, 87년 대통령 선거일인 12월 16일 이전에 수사 중간발표를 계획했음이 드러났다고 통일뉴스는 밝히고 있다. 실제로 당시 한국 정부는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87년 12월 15일 바레인 측으로부터 당시 하치야 마유미로 알려진 김현희의 신병을 인도해와, 선거 전날 밤 TV 뉴스와 선거 당일인 16일 아침 신문에 김현희가 압송돼 비행기 트랩을 내려서는 장면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라. 국내 홍보 방향>에서는 <(1) 금번 사건은 북괴가 아국의 대통령 선거 및 88 서울 올림픽 방해를 위해 자행한 사건으로 북괴가 또 다른 만행을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 폭로>라고 명시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3) 일부 후보들이 집권욕에 어두워 우리의 안보 현실을 망각, 위험한 통일론 전개 및 좌경 용공 분자들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음을 규탄>한다는 대목이 나와 당시 관련자들의 반응이 주목된다. 이는 대선을 목전에 두고 KAL 858기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했음을 정부 공식 문서를 통해 최초로 확인한 대목이며, 여기서 지목한 ‘일부 후보들’이라는 표현은 당시 평화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목한 대목이라는 것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통일뉴스에 따르면, <마. 대북 홍보 방향>에서는 <(3) 테러의 즉각적인 중지 및 남북 긴장 완화를 위한 남북대화 호응 등 북괴가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촉구>한다는 대목과 <(4) 탑승 희생자의 유가족을 포함한 국민 각계의 대북 규탄 집회, 성명 및 논설 등 수단 총 동원, 북괴 규탄 분위기 확산> 등이 적시돼 있다. 당시 정부가 이 사건을 남북 긴장완화를 위한 남북대화 압박 카드로 활용하려 했다는 사실은 이번 통일뉴스의 문건 공개를 통해 처음으로 알려진 사실이며, 문건에 명시된 바대로 탑승 희생자 유가족은 대북 규탄 궐기대회를 여러 차례 개최하기도 했다. ■법적 책임문제 제기 가능성,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에 영향 줄 수도 KAL858기 사건은 ‘KAL858기 사건 가족회(회장 차옥정)’와 ‘KAL 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위원장 김병상)’가 끊임없이 조작 의혹을 제기해 왔고, 이번의 ‘무지개공작’ 문건이 일부 공개됨에 따라 그 의혹이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가족회와 시민대책위는 11월 15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에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신청해둔 상황이지만, 아직 조사개시 결정은 내려지지 않은 상황이며, 국정원발전위는 지난해 8월 1일 중간 조사결과 발표 이후 아직까지 최종결과 발표를 미루고 있다. 또한 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 사건이 정치적으로 활용되었음이 명백히 드러나 대선 때마다 불거진 ‘북풍공작’의 실체가 처음으로 정부 문서를 통해 공식 확인됨으로써 앞으로 도덕적·법적 책임문제가 제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통일뉴스는 지적하고 있다. KAL 858기 사건은 미국이 1988년 1월 20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으며, 최근 6자회담에서 타결된 ‘2·13합의’에 의해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가 본격 거론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당시 88년 2월 16,17일 양일간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에서는 KAL 858기 사건의 책임소재가 북한에 있다는 결의안 채택이 추진됐지만, 안기부의 수사결과가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무산돼 국제적으로는 아직 이 사건이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지어진 바 없다. 4일 국정원 관계자는 ‘문건의 목차라도 알려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대해 “목차를 알려줄 경우 전체 내용을 유추할 수 있으므로 알려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고 통일뉴스는 전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이미 국정원발전위의 중간조사결과 발표로 문건 작성시점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 작성됐다”고만 답했다고 통일뉴스는 밝혔다. 특히, 문건의 상당부분이 지워진데 대해, 이 관계자는 “(지워진 부분이) 인명과 조직부서들이 쭉 나와 있어 모두 비공개로 하게 됐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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