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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비준동의 표결까지 진보진영에게 주어진 천혜의 시간과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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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2호 ⁄ 2007.07.03 10:49:41

3월 말일과 4월 초하루 전국이 황사로 뒤덮인 날, 프로야구도 쉬어갔던 그 날 밤 광화문 시위대에 섞여 촛불을 들었다. 촛불과 좌절과 한숨과 그리고 시름들로 가득한 그 농민 시위대에서 수출과 수입이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지 말하는 것은, 무엇이 정말 문제인지 묻는 것은 사치스러운 변명에 불과할 뿐이었다. 광화문 앞에서 낙담에 고개 숙인 농민들의 가슴은 절망과 분노 그 자체였다 . 한미 FTA로 인하여 국가 경쟁력이 얼마나 증가되고, 수지가 얼마나 맞는지 따지는 것은 아직도 비정규직으로, 비교 열위에 놓여있는 농촌의 농민으로, 또 자영업의 경쟁에서 힘들여 버티고 있는 IMF실직자들에겐 증오의 수치일 뿐이다. 그랬다. 그들의 가슴과 말은 비록 과학적이지 못하나 다가올 절망의 깊이에 본능적으로 작용하는 생존의 몸짓이었다. “우리가 그 땅을 버리고 어디서 뭐하며 살라고…” “도대체 정부가 뭐 한 게 있다고 터전을 한 번에 경쟁이란 말로 죽일 수 있느냐” 이 사람들에게 그동안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에 물경 60조 이상이 농업에 지원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또 하나의 분노일 뿐이었다. 이 시위대의 얼어버린 가슴을 녹이고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보여 주어야 할 몫은 오로지 참여정부의 일이다. 한편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일컬어 “한미FTA로 인하여 결정적으로 진보와 갈라섰다”고 표현하는 동안 한편에서는 낭만적이고 교조적 진보라고 폄훼하기에 이른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사람들에서 애칭 어디어디 수구들은 제외하고 보자. 적어도 전여옥의 입 정도는 의견으로 보지 말자는 말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에서 우리는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정서적인 동질감이 그것이며, 위로와 연대가 그것이다. 택시 기사로 있으면서 참여연대 회원이고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던 허세욱 씨가 시위 중 분신을 하였다. 그 분신이 있은 후, 우리는 여기저기서 많은 논평과 한마디를 볼 수 있었다. 그 중 우리는 20여 년 전, 시인 김지하가 조선일보 칼럼에 기고했던 “죽음의 덫을 거두라”던 글을 떠올리게 하는 말들과 내용들을 보게 된다. ■ 냉소를 넘어 연대의 회복을 향하여 냉소다. 국민의 정부를 넘어 참여정부에 이르면서 기대했던 진보의 성과가 무디어지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칼을 겨누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날선 논쟁이나 끝장 토론이 아닌 냉소였다. 몸을 걸고 저항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냉소의 허무주의가 자칭 진보라는 지지자의 입에서 서슴없이 나오게 된 것이다. 뜬금없이(?)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를 재작년 말 쯤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그 답을 이번에 내놓았다. 그리곤 우리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이 한미FTA를 체결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안을 미국 정부와 마련하였다.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하여 선택을 묻는 것에는 경제적인 실익 이외에 무척 많은 질문을 함께 던지는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어쩌면 “한미 FTA를 체결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양자택일을 벗어나야 가능한 것 일 수 있다. 그 질문의 핵심은 바로 우리나라의 10년 후 모습을 그려보라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한미 FTA를 바라보는 것이 소위 진보의 시선이었으면 한다. 그래서 현재 우리의 모습과 어떤 미래를 우리는 과연 조망할 수 있고 어떤 고통을 가져야 하는지 나름 냉정하게 판단하고 고민하는 자리에서 출발했으면 한다. 그런 후라면 한미 FTA는 진정한 선택의 몫으로 남게 될 것이다. 소수자와 약자의 편에서 늘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이해를 존중하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진보의 가치이자 몫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요구되는 진보의 덕성은 그것에 머물지 않는다. 이제 진보는 단단한 수구의 저항을 방어적으로 받아내는 맷집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미래에 대한 현실적인 희망을 그려가는 것까지 요청되는 것이다. ■ 한미FTA 합의안은 미완의 타결일 뿐이다 결국 타결한 한미FTA 합의안은 미완의 타결이고 미증유의 소식일 뿐이다. 이 타결 안에는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우리가 있고 한편, 고무되는 우리가 있다. 이중 어떤 우리도 타인이 아니고 연대의 한 끝이다. 이들로부터 한미FTA를 바라보며 얻어내는 동의는 생존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한미FTA를 맞이하여 생기는 진정한 질곡은 비준의 동의로부터 나타나게 될 미증유의 결과가 아니라 바로 이 연대의 해체일 것이다. 한미FTA를 반대하든 찬성하든 놓치지 않아야 할 그 무엇은 바로 진보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강고한 연대의 유지다. 그러므로 모든 사안을 적과 아로 구분하고 질시하고 냉소하는 것 속에서 그 어떤 무엇을 성공할 수는 있겠으나 결국 연대의 분열 속에서 진보의 가치는 매몰될 것이다. 비준 동의 표결까지 꽤 많은 시간이 남았다. 그렇다면 비준에 대한 동의 여부는 국회 개시일까지 미루어두자. 이 기간, 어쩌면 이렇게 긴 기간 진보진영 전체가 대중 논쟁에 구체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시간은 일찌기 없었다. 그러므로 이 시간들을 참으로 소중하게 사용했으면 한다. 비준 여부와 관계없이 한미FTA라는 아젠다를 통하여 진보는 진영을 가다듬고 논의를 확대하여 대중과의 소통을 진지하게 해 나가야 한다. 어떤 답을 내어 놓을 것인지 그 역량을 계발하고 그 답안에 맞추어 비준여부를 선택하면 될 일이다. 결국 이 한미FTA 비준에 대한 치열한 논의를 통하여, 그 그림을 지웠다 다시 그려가는 무수한 반복 속에서 아직 살만한 세상을 위한 진보 진영의 희망을 읽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함태식 / 정치웹진 MOVEON21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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