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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 - 장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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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6호 편집팀⁄ 2008.12.10 17:29:18

‘그림은 사람이다.’ 이 말은 독창성을 강조한 화두(話頭)다. 김홍도(金弘道)의 그림에는 김홍도의 넋이 뛰놀고, 피카소의 그림에서는 피카소의 냄새가 난다는 뜻이다.

작품에는 개성이 있어야 한다는 주문이기도 하다. 예술을 평가하는 가장 높은 자리는 개성과 창의가 뭉뚱그려진 독창성이다. 하지만 독창성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수(守) ·파(破)·리(離)’의 정신에서 어렵게 피어나는 외로운 꽃이다. 스승에게 그림을 배울 때는 원칙을 지켜 스승을 따라야 하고, 공부가 어지간히 되면 스승의 그림자를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연휴에는 제 것을 만들어 본래의 태(胎) 자리를 떠나야 된다. 나만의 것을 창조해 냈을 때 비로소 독창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글을 잘 지으려면 ‘다독(多讀)·다작(多作)·다상량(多商量)’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남의 글을 많이 읽고, 많이 지어 보고, 많이 생각하라는 가르침이다. 그림이라고 다를 것 없다. 남의 그림을 많이 보고, 많이 그리고, 많이 생각하면 된다. 화가 장완(長完)은 가슴으로 그림을 그린다. 작가 중에는 기교만 내세워 손끝으로 그리는 사람, 지혜를 짜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앞세워 머리로 그리는 사람이 흔하다. 그런데 장완은 가슴으로 그림을 그린다. 인물이든 풍경이든 대상물을 정화하게 파악, 눈에 박힌 것을 머리로 생각하고 느낌으로 받아들여 심안(心眼)의 도가니에 넣고 혼융(混融)시킨다. 이렇게 가슴으로 정제해 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게다가 부지런하기까지 해 발이 부르트도록 현장을 찾아다녀 분위기를 읽어낸다. 제대로 보고, 분위기를 파악하고, 그 위에 자기 생각을 담아내는 작업은 말처럼 쉽지 않다. 장완이 이렇게 그림을 그리는 데는 나는 옛사람을 생각한다는 ‘아사고인(我思古人)’의 정신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옛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은 단순한 복고(復古)주의가 아니다. 옛사람이 가던 길을 알아서 오늘을 사는 화가로서 새로운 길을 찾겠다는 의지다. 예술에 있어 답습은 큰 의미가 없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력이야말로 자기 예술을 꽃피울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장완은 옛사람이 하던 선험(先驗)의 바탕 위에 새로운 길을 찾아내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현장성이 살아 있다. 인물이든 풍경이든 사진처럼 그대로는 아니다. 대상물을 정확히 파악하되 눈에 박힌 대로 그리지 않는다. 분위기를 염두에 두고 맛을 살려낸다.

그의 작업은 색과 선 속에서 눈으로 보이는 자연을 새로운 영(靈)의 마음으로 편곡하여 웅장한 심포니처럼 하모니를 이룬다. 예컨데, 제주도 성산 일출봉을 그릴 때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는다. 가슴에 와 닿은 느낌으로 변용해 그리고 있다. 색채도 마찬가지다. 푸른 바다도 때론 검게 그린다. 보기에 따라서는 바다의 색깔이 맑고 투명할 수도 있고, 푸를 수도 있고, 검게 보일 수도 있기에 장완의 색채에는 신기가 있다.

그를 가리켜 감각적인 색채를 만들어 쓰는 마술사라 한다면 나의 지나친 과장이 될까…. 장완의 작업에서 가장 주목해 볼 대목 역시 구상과 추상의 공존이다. 소재의 구상성을 생각의 추상성으로 녹여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인물이나 누드 그림에는 예외 없이 구상과 추상의 두 얼굴이 담겨 있다. 여성의 뒷모습을 그린 <생명시계>에는 등 위에 시계가 그려져 있고 첼로가 놓여 있다. 구상인데도 어딘지 모르게 추상의 맛이 난다. 여성의 앞모습을 그린 <에덴의 하와>도 날개 옷이 누드의 속성을 가리고 있다. 색채도 붉은 색, 푸른 색, 바닷물 속에 통과한 빛까지 묘사해 추상성을 강조한다. <물 위의 여자>도 인체를 몇 개의 색채로 나누어 그리고 추상성을 가미, 보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를 수 있게 유도하였다. <콩나물 시루>를 그린 작품도 분명 구상인데 ‘엄니의 마음’을 생각케 하는 추상적 사고를 던져준다.

필자는 1981년, 운보(雲甫) 김기창(金其昶) 화백과 함께 세계 스케치 여행을 할 때 파리에서 우연찮게 장완을 만났다. 그때 그의 손에는 스케치 북이 들려 있었다. 옷차림도 수수했다. 장완은 1978년 27회 국전에서 구무총리상을 받고 유럽에 미술 연수차 와 있었다. 그때만 해도 해외여행하기가 퍽 어려웠고, 신문에 곧잘 여행자의 사치가 지적되곤 하던 터여서 그의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내가 운보에게 “국전에서 연4회 특선, 추천작가가 된 사람”이라고 소개했더니 “자세 (태도)가 좋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던 일이 생각이 난다. 장완은 성실한 사람이다. 그의 모교(南星高)의 교훈이 ‘성(誠)·명(明)·행(行)’이어서 그런지 지금도 매사에 성실하고, 그림도 성실하다. 어느 구석 하나 소홀히 그리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대하면 작가를 잘 모르는 사람도 이내 ‘성실성’을 읽어낼 수 있다. 장완은 돈독한 크리스천이다. 청아한 교회 장로로 봉사하고 있다. <구원의 길>(200호) <예수 그리스도>(150호) <최후의 만찬> <잃어버린 양> 등 성화작업도 많이 했다. 2001년에는 <나사렛 예수>로 제 15회 기독교 미술상을 수상했다. 장완은 부인(조은순), 아들(장정민), 딸(장윤선)이 모두 그림을 그리는 미술가족을 이루고 있다. <글·이규일 (월간미술지 ‘아트인컬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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