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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윤봉길 의사 물병폭탄 투척’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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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8호 심원섭⁄ 2008.05.26 15:01:54

일제는 1931년 9·18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유린하고, 이어 이듬해인 1932년 1월28일 상해사변을 일으켜 중국 본토 침략을 시도하였다. 일제는 이런 속에서 위성국인 ‘만주국’을 세우며 그들의 천장절을 기하여 전승기념축전을 홍구공원에서 개최한다고 공표하였다. 매헌 윤봉길 의사는 이 천장절의 전승기념축전을 기하여 대망의 상해 홍구공원 의거를 결심하였다. 윤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거사의 목적은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 ‘선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고, 구체적 대상은 중국을 침략하는 장교를 도륙하려는 것이었다. 일제 장교를 몇 사람 처단한다고 하여 목전에서 한국독립의 목적을 바랄 수는 없을 것이나, 안으로는 일제 식민지 통치에 시달려 식어가는 한인의 민족의식과 독립운동을 고조시키려는 것이었으며, 밖으로는 국제 여론에 한국의 존유를 알게 하여 독립운동의 새 전기를 마련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조국독립운동의 새 전기를 마련하는 방안으로 중국을 침략하는 일제 장교의 처단을 택한 것은 당시 국내외 독립운동의 중추기관이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고차원적인 독립운동 방략의 일환이었다. 1930년대의 한국 독립운동은 중일전쟁을 일으키게 해야만 현실적으로 강력히 추진할 수 있었던 시점이었다. 그 이유는 국내에서 ‘문화정치’란 말로 위장한 일제의 식민지 동화정책이 10년간에 걸쳐 강행되어 국내 독립운동이 질식되어 가는 증상을 보였고, 국외에서도 만주사변을 고비로 서북간도를 비롯한 남북만주와 시베리아 연해주지방에서의 독립군을 주축으로 하는 항일운동이 종식되어가는 형세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안팎의 곤경을 극복하여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만주침략에 이어 중국 본토침략을 개시한 일제에 대하여 한·중 공동 항쟁의 방략을 찾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 상해사변을 일으켜 중국 본토침략을 기도하던 일제 침략군 수뇌들을 도륙하여 중·일간의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중국인의 항전의식을 높여 중일전쟁으로까지 몰고 가는 일이었다. 이와 같은 방략은 김구의 제안으로 임시정부의 국무회의에서 극비리에 심의 결정되었고, 윤 의사는 이를 전폭 찬동하여 살신구국의 고귀한 정신으로 이를 자담한 것이었다. 한인애국단이란 바로 이와 같은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조직된 임시정부의 별동 특무기관이었으며, 당시 국무원 재무장의 자격이지만 실질적으로 임시정부를 이끌던 김구가 애국단 단장이었던 것도 이런 극비의 전략이 담겼던 까닭이라 하겠다. 살신구국의 결심을 한 윤봉길 의사는 의거 3일 전인 1932년 4월 26일 한인애국단 단원 자격으로 김구 단장 입회하에 태극기 앞에서 의거 결행을 선서하고 최후의 준비를 서둘렀다. 그리하여 같은 달 27일과 28일에는 다시 홍구공원에 가서 현지를 면밀히 조사하여 거사의 만전을 도모하였다. 특히 28일에는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그곳에 머물면서 준비하는 축하식장의 팻말을 보고 도륙의 대상물인 일제 총사령관 시라가와 대장과 해군 함대사령관 노무라의 설 자리와 그 주위에 모일 군관민 침략자 수뇌들의 신상까지 파악하였다 윤 의사는 역사적 의거일인 1932년 4월 29일 일찍 동포 김해산(金海山)의 집에서 한인애국단 김구(金九) 단장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수통으로 위장된 폭탄 1개와 도시락으로 위장된 폭탄 1개를 김구 단장으로부터 받아 어깨에 메고 손에 들었다. ■한 사람 예외없이 의탄 맞아 사망, 부상 또한 윤 의사가 가진 새 시계를 김구 단장의 헌 것과 바꾸어 갖고, 의거 준비금으로 받은 돈을 사용하고 나머지를 김구 단장에게 돌려주었다. 그 후 김구 단장의 전송을 받으며 택시를 타고 홍구공원으로 갔다. 차에서 내려, 수통으로 위장된 것은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으로 걸고, 도시락으로 위장된 것은 오른손에 들고 홍구공원 정문을 들어서면서 중국인 문지기에게 일본인이라고 응대하며 통과하였다. 오전 7시 50분경 공원 안으로 들어가 미리 정해두었던 지점에 이르러 거사 투척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홍구공원 안은 상해거주 일본인이 1만명, 상해 침략 일본군 1만명, 그 밖에 각국 사절, 각계 초청자 등 합하면 2만이 넘는 인파가 운집 성황을 이루었다. 그들은 중앙의 높은 식단을 중심으로 하여 그 전면에 일본관민이 정연히 도열했으며, 그 앞에 일본 학생도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그 좌우에는 열병행사에도 참가할 일본 육해군의 군대가 정예무장을 갖추고 행렬을 짓고 있었다. 식단 뒷면에는 기마 헌병이 단 밑과 단상을 호위할 뿐 아니라, 그 뒤 수 미터의 간격을 두고 경비병력이 이중 삼중으로 삼엄하게 경계하고, 그 뒤에 일반군중이 운집해 있었다. 한 장 이상 높이의 널찍한 단상 위에는 도륙 표적물인 일제 침략군 사령관 시라카와(白川義則) 대장과 함대사령관 노무라(野村吉三郞) 중장이 중앙에 자리 잡았고, 그 좌우로 일제 제 9사단장 우에다(植田謙吉) 중장, 주중공사 시게미쓰(重光葵), 거류민단장 가와바다(河端貞次), 주중총영사 무라이(村井倉松), 민단간부 토모노(友野盛) 등 7명의 상해사변 원흉들이 천주(天誅)를 기다리며 착석해 있었다. 윤 의사는 미리 작정했던 후편 오른쪽 군중 속에 들어가 투척장소와 시간을 맞추어 의거의 최후 준비를 하였다. 오전 11시 20분경 그들 축하식의 제 1차 순서인 관병식(觀兵式)을 끝내고 이어 제 2차 순서인 축하식순(祝賀式順)으로 들어가 일본국가가 제창되어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드디어 역사적인 11시 50분경, 윤 의사는 도시락으로 된 폭탄을 땅에 내려놓고 어깨에 걸메고 있던 수통으로 위장된 폭탄의 덮개를 벗겨 가죽끈이 붙은 그대로 오른손에 쥐고 외손으로 안전핀을 빼면서 앞사람을 헤치고 2미터 가량 전진하여 17미터 내외 떨어진 중앙 단상 위로 힘껏 투척하였다. 그 폭탄이 그대로 노무라와 시게미쓰 면전에 명중하면서 폭발,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을 내고 식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천주 응징장으로 변하였다. 결국 상해침략의 원흉인 총사령관 육군대장 시라카와는 전신에 24개처의 탄편을 맞아 신음하다 5월 24일 사망하고, 해군 총사령관인 제3함대 사령관 해군중장 노무라는 실명하였으며, 제 9사단장 육군중장 우에다는 다리를 절단하였다. 또 주중공사 시게미쓰도 다리가 부러져 절뚝발이가 되었고, 거류민단장이며 상해사변의 민간 원흉인 카와바다는 창자가 끊어져 즉사하였다. 이 밖에도 단상에 있던 주중총영사 무라이와 민단간부 토모노도 각기 부상하며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의탄을 맞았다. 윤봉길 의사는 자폭하려 하였던지 땅에 두었던 도시락으로 위장된 나머지 폭탄을 가지러 되돌아와 막 주워 올리려 할 즈음, 부근 경비를 맡았던 일제군경에게 제지되고 군중과 그들로부터 즉석에서 포위, 집중구타당하여 혼도하고 말았다. 이 의거에 사용된 폭탄 2개는 김구 단장의 간청으로 중국 상해 병공창에서 기사 왕백수(王伯修)가 비밀리에 제조한 것으로, 병공창 병기주임이었던 김홍일(金弘壹) 장군의 주선으로 김구 단장을 거쳐 전달된 것이었다. 폭탄을 위장하기 위하여 1개는 물통형으로 만들어 알루미늄제 물통 속에 넣고 외부에 흰색 재크의 덮개를 씌우고 가죽끈을 붙여 어깨에 걸메도록 되어 있었다. 물통 입구 부분에 신관(信管)을 위치하게 하고 발화용의 삼근(麻細)을 부착시켰다. 다른 1개는 도시락형으로 만들어 알루미늄제 상자에 넣고 보자기로 싸서 신관 부분에 작은 구멍을 뚫어 여기서 발화용의 끈을 내놓았다. 도시락으로 위장된 폭탄의 구조는 용적이 길이 5치 4푼, 폭이 3치 4푼, 두께 1치 5푼이며 무게가 3.5킬로그램이었다. 폭약은 감박(監剝)·유황(다복약(茶複藥):삼초기(三哨基) 트롤)의 합성물이며, 약 270그램이 되었다. 점화장치는 먼저 마찰약 안에 있는 거형(鋸形)의 철편 일단에 삼끈을 달고 이것을 잡아당길 때는 철편의 이가 마찰약을 마찰하여 4초 내 발화케 하여 도화선에 점화, 다시 원연도화약(煖燃導火藥)을 거쳐 기폭제로 옮기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장치는 당시 중국 육군이 사용하던 것으로 독일 및 러시아식이라고 한다. (자료: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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