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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흡수통일·북침 잠 못 이뤄”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회고록 출판기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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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1호 심원섭⁄ 2008.06.16 16:33:46

이명박 정부의 대북 외교 라인의 성적이 별로 좋지 않은 가운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대북 외교 라인으로 활동했던 인사들이 모처럼 총출동해 정치권의 관심을 끌었다.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캐피탈호텔에서 열린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의 회고록 ‘피스 메이커-남북관계와 북핵문제 20년’이라는 제목의 출판기념회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박재규·홍순영·정동영·이종석·이재정·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들과 이종찬·신건 전 국가정보원장, 황원탁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송민순 전 외교 장관, 김보현·서훈 전 국정원 3차장 등 양대 정권에서 활동했던 옛 대북 외교 라인이 모처럼 만에 총출동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이날 김대중 도서관에서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공동상임대표 김경호·양승동· 정일용)’가 주최한 특별강연을 마친 뒤 곧바로 이희호 여사와 함께 행사에 참석해 재임기간 자신을 보필했던 임 전 장관의 회고록 출판을 축하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인사말을 통해 “임동원 장관은 우리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통일에 대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임 장관은 우리의 통일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공동승리의 방향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무력통일도 안 되고 흡수통일도 안 되고 평화적 공동승리의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은 “임 장관은 이번 출판에 그치지 않고 남북관계 발전에 있어서 이론 면이나 행동 면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것”이라며 “임 장관에 대해서 우리 국민뿐 아니라 북한도 가지고 있는 존경심, 신뢰심 그리고 식견에 대한 믿음 때문에 앞으로도 기회가 온다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국민과 민족이 요청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DJ·박지원·정세현 등 옛 대북 라인 총출동 한편 이날 기념식에 ‘한반도공동체동일방안’의 입안자이자 총리를 역임한 이홍구 전 통일부 장관과 최영철 전 부총리 겸 통일부 장관을 비롯해 고위급회담 등에 참여했던 통일부 전직 관계자들도 자리에 참석해, 기본합의서 산파역을 맡았던 임 전 장관의 회고록 출판을 축하하기도 했다. 또한 김옥두·장성민 전 의원, 박지원· 박선숙 의원 등 동교동계로 분류되는 정치인들도 참석했으며, 정세균·이강래·천정배 통합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약 300여명의 인사들이 행사에 참석해 ‘햇볕 전도사’ 임동원 전 장관의 회고록 발간에 박수를 보냈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이명박 정부의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개인자격’으로 참석해 축사를 통해 “이번에 발간된 책은 임 전 장관만이 할 수 있는 남북화해협력사의 생생한 증언이고 역사적 기록”이라며 “남북관계와 통일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고 통일업무에 있어 훌륭한 교과서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하는 등 임 전 장관에 대한 존경을 표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도 축사를 통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입안자들이 이 책을 꼭 읽고 앞으로 만들어낼 대북정책에 참고해야 한다”며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완전히 수립되기 전에 이 책이 나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현 정부에 대해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당초 시내 중심가인 프레스센터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이날 저녁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대규모 촛불집회로 세종로 등 주변 교통이 경찰에 의해 통제되자 급하게 캐피탈호텔로 변경됐었다. 임 전 장관은 이번 회고록을 판매하여 얻은 수익금 전액을 조은문화재단을 통해 문화발전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회고록은 국제냉전이 종식된 지난 20년 간 남북관계와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스 키퍼’에서 ‘피스 메이커’로 부단히 활동해온 임 전 장관의 기록임과 동시에 한반도의 긴장해소를 위해 쉼 없이 노력해온 대한민국 정부의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남북 고위급회담의 전 과정에 참여한 유일한 남측 대표였던 임 전 장관이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그리고 ‘남북교류협력 부속 합의서’의 산파역을 수행하면서 탈냉전의 새로운 남북관계를 모색하고 협상한 과정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 대북정책 전개과정 상세 기록 또한 김대중 정부에서 햇볕정책을 수립하고, 미 클린턴 행정부와 정책공조를 통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한 과정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대통령 특사로서 북한 최고당국자와 만나 협의한 내용, ‘6.15남북공동선언’실천을 통해 전개되는 남북화해협력의 과정을 상세히 적고 있어, 앞으로 남북 교류의 지침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또한 북핵문제의 발단과 제네바 합의를 통한 해결과정, 그리고 미북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미 국무 장관의 평양방문을 전후한 한미 간의 긴밀한 협조내용도 담고 있다. 그리고 부시 대통령 초기 6년 간의 대북적대시정책이 남북관계에 미친 영향과 제2차 북핵위기의 전개과정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 회고록은 남북 화해협력의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데 있어서 국내외의 저항과 반발을 극복하기 위하여 얼마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야 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변화를 거부하는 북한과 국내외의 냉전적 수구보수세력의 저항과 방해책동에 단호하게 그리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한편,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과 고농축 우라늄 계획 의혹 등과 같은 미국 네오콘의 정보 과장·왜곡에 휘둘리지 않고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도 상세히 수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단순히 한 권의 책을 뛰어넘어 통일을 위한 바이블로 자리매김해도 손색이 없다고 학자들은 강조했다. 다음은 ‘피스 메이커-남북관계와 북핵문제 20년’에 게재된 주요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북한은 ‘흡수통일’과 ‘북침’의 공포에 시달리며… = 심화된 남북의 국력격차와 북한에 불리하게 전개되는 국제정세, 그리고 파탄지경의 경제로 인해 북한은 흡수통일과 북침의 공포증에 시달리며 생존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의 능력을 과대평가해 왔다. 물론 자살적 공격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겠지만, 과대평가는 더 큰 문제다. 김정일과 인터넷 = “나는 인터넷 야후를 통해 청와대, 국정원, 통일부 등 여러 사이트들을 자주 들어가 봅니다. 청와대 사이트에는 박정희 대통령을 포함한 역대 대통령에 관한 자료가 잘 정리돼 있습디다. 통일부의 ‘북한 올바로 알기’ 사이트도 아주 좋은 착상이에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말로 상대방을 ‘올바로’ 아는 겁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알아야 합니다. 나는 부대 방문을 할 때 지방에 묵으면서도 밤에는 인터넷을 통해 남쪽 TV 뉴스를 동영상으로 볼 수 있어서 참으로 편리하고 좋아요.” 김정일과 남한 대중문화(2002.4) = 김 위원장은 특히 남쪽의 영화와 TV 사극 드라마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얼마 전에 ‘공동경비구역’이라는 남쪽 영화를 봤는데, 대단히 잘 만든 영화예요. 인물설정도 잘 되었고. 젊은 군인들이 서로 적군이지만 같은 민족으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이념을 초월하여 서로 통할 수 있다는 걸 잘 묘사했습니다. 인간적인 반목이 아니라 체제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하도 잘 다루었길래 군 장성과 당 간부들에게 모두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영화는 우리 인민들이 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나 나는 공교롭게도 이 영화들을 보지 못해 김정일 위원장과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제일 먼저 ‘공동경비구역’의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다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김 위원장의 드라마 평이다. “남쪽의 텔레비 사극 ‘여인천하’를 봤는데, 아주 잘 된 작품이에요. 모두 다 보라고 권했습니다. ‘여인천하’가 매번 마지막 장면에 여자 주인공의 표정을 부각시키는 기법도 인상적입나다. 물론 40% 정도만 사실이고 나머지는 모두 꾸민 이야기겠지만, 한 쪽 분량이나 될까 말까한 역사기록을 가지고 그런 대작을 만들어내는 남쪽 작가들이 정말 아주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조 왕건’과 ‘명성황후’도 좋았는데, 사극은 역시 남쪽에서 대단히 잘 만들어요. 당 선전부장한테 남쪽 것에서 배우라고 지시한 바도 있습니다.” 부시, 북한을 “선제공격대상”에서 “침공 안한다”로 선회 = 2002년 2월의 서울 한미 정상회담은 부시 미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통해 북한정권을 ‘악의 축’으로 지정하고, ‘군사적 선제공격’으로 제거해야 할 ‘정권교체’의 대상으로 선포한지 한 달 만에 개최되었다. 정상회담에서 김 대통령은 미국이 ‘유일초강대국의 아량’을 갖고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대화할 것을 되풀이 권고했다.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증오심을 감추려 하지 않았고, “북한에 ‘자유의 바람’을 불어넣어 북한체제를 붕괴시켜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이에 김 대통령은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을 ‘악마의 제국(Evil Empire)’이라고 하면서도 대화를 통해 데탕트를 추진하여 공산체제의 변화와 냉전종식을 이룩한 것과 닉슨 대통령이 ‘전범자’라고 규탄하면서도 중국을 방문하여 관계개선과 개방 개혁의 변화를 유도해낸 예를 상기시키며 “친구와의 대화는 쉽고 싫은 사람과의 대화는 어려우나, 국가이익을 위해, 그리고 필요에 의해 대화해야 할 때는 해야 한다〃는 요지로 설득해 나갔다. 이에 부시 대통령은 “좋은 유추”라고 감동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는 레이건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파월 장관과 라이스 보좌관을 쳐다보며 “북한과의 대화문제는 이들과 의논해보겠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을 마친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침공하거나 공격할 의사가 없다”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방안을 모색하겠다” “북한 주민에 대한 식량지원을 계속하겠다” “햇볕정책을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대통령의 간곡하면서도 논리적인 설득이 주효한 것이다. 한 달 전에 선언한 이른바 부시 독트린을 뒤집는 것이어서 미국에서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대북송금 특검 =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여 제일 먼저 취한 조치는 현대의 대북송금 문제에 대한 특별검사 수사를 시작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퇴임을 10일 앞두고 “이 문제가 사법적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새로 집권한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킨 특검법을 김 대통령의 호소와 여당과 국무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였다. 언론들은 노 대통령의 특검법 공포 강행 배경을 여러 가지로 분석했다. “야당과의 상생관계 확립을 통한 협력정치 구현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분석하는가 하면, “정치적 식견이 부족한 순진한 발상”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영남지역 지지기반 확대를 노리면서 동교동계에 대한 정치적 타격을 겨냥한 것”이라든가, “김대중 정부와의 차별화를 부각시키려 한다”는 분석도 있었다. 나는 특검 조사에 적극 협조했다. 당시 현대는 대북송금을 위한 환전상의 편의 제공을 국정원에 요청해왔다. 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둔 긴박한 시점에서 “공개적이고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환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특별검찰부는 3개월 간의 수사 끝에 6월25일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특검은 “현대는 북한과 대북경제협력사업권을 얻은 대가로 4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하고, 정부는 대북지원 차원에서 현금 1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했으나, 1억 달러 마련에 어려움을 느껴 현대 측에 대신 지급해줄 것을 요청하여 현대가 4억5,000만 달러를 북측에 송금하였다”고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산업은행에 압력을 행사하여 불법대출을 하게 했고, 송금과정에 국정원이 환전 편의를 제공 한 것은 외환관련법 위반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개인적 이익을 추구한 것이 아니고 역사적 소명의식, 사회발전에 기여한 점 등을 고려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했으나 결국 우리는 모두 사면복권된다. 하지만 특검이 우리에게 남긴 상처는 대단히 깊었다. 민족문제와 남북관계에 대한 올바른 철학과 비전이 결여된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움으로써 남북관계를 경색케 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편 많은 난관을 극복하며 정주영 명예회장과 함께 대북경협사업을 추진해왔던 정몽헌 회장이 검찰조사 과정에서 갑작스레 의문의 자살을 하여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현대는 7대 경협사업에 대한 선투자자금을 지불하고도 사업추진의 의욕을 상실하게 되었고, 금강산 관광개발사업과 개성공단 건설사업을 제외한 다른 사업들은 아무런 진척도 보지 못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된 것이다. 국정원 불법감청사건 = 2005년 8월 5일 국정원장이 “국민의 정부에서도 극히 제한적인 불법감청이 있었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한다. 약 2주 전(7/21)에 보도된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 ‘미림팀’의 도청사건에 대한 내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엉뚱하게도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불법 통신감청이 있었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 직접 도청장치를 설치한 미림공작과 정부기관의 통신감청은 그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더구나 이 문제를 국정원에서 자체 조사하여 처리하려 하지 않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여 문제를 확대하고 공론화시켰다.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도 자청했다. 국가 정보기관이 개인적 비리가 아닌 업무상의 문제로 자기 직원들에 대하여 검찰 수사를 자청하는 일은 국가 정보기관 창설 이래 처음 있는 해괴한 일이고, 아마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세계 모든 나라의 정부기관들은 국가안보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통신감청을 실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의 불법행위가 발생한다면 우선 자체적으로 조사 처리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이를 공개하여 보호되어야 할 정보역량을 노출시키는 결과를 자초한 것은 정보기관장으로서 실로 어이없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나와 신건 원장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구속기소되어 한때 옥고를 치러야 했고, 2년 넘게 진행된 재판에서 재판부는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판결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재판부도 인정했듯이 나는 결코 불법감청을 지시한 바 없다. 그럴필요나 수요도 없었다. 오히려 이를 금지했다. 또한 나는 불법감청을 인지한 바도 없었고, 따라서 방관하거나 묵인한 바도 없었다. 내가 받아본 통신첩보보고서는 국가안보와 국제범죄 등과 관련된 합법적인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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