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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경태 통합민주당 의원

“MB, 핫 라인 열어 국민과 소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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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1호 박성훈⁄ 2008.06.16 16:36:34

96년 15대 총선 당시 한 선거공보물이 눈길을 모았다. 선거공보물에는 안경을 쓴 30대의 젊은 남자가 웃통을 벗은 채로 양손을 맞잡고 서 있었다. 하단에는 ‘감출 것 없는 정치, 거짓 없는 정치, 젊은 용기로 시작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보통 곱게 빗어 넘긴 머리에 말끔한 정장 차림의 프로필 사진이 들어가는 총선 포스터에 반라의 사진은 항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으나, 정작 포스터의 주인공은 당시 총선에서 낙선하고 말았다. 그는 통합민주당 조경태 의원이다. 조 의원이 2008년 들어 전국을 강타한 쇠고기 정국을 주름잡으며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조 의원은 지난 5월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 열린 쇠고기 청문회에 청문위원으로 참가해 정운천 장관과 협상 책임자들을 강도 높은 발언으로 문책하는 등 청문회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일약 ‘청문회 스타’로 발돋움했다. 조 의원은 17대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몇 차례 격한 모습을 보이는 등 언론에서 거친 이미지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그의 격한 모습은 때로는 호재를 부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있는 ‘양날의 검’과 같이 작용했다. 그는 2002년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의 인기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안동선 전 의원이 노 후보의 사퇴를 종용하자, 다소 흥분한 말투로 “나가려면 안 의원이 나가야 한다”고 소리쳤다. 그의 격한 발언은 지지율 하락으로 빈사지경에 있던 당시 노무현 후보를 위기에서 구했다. 그러나, 얼마 전 MBC 100분 토론에 출연했을 때에는 상대 토론자 측에 “내 말 끊지 마시라”며 격노하는 모습을 드러내 사회자의 자제요청을 받기도 했다. 차가운 논리가 난무하는 토론현장에서 감정을 드러낸 그의 모습은 급상승하던 그의 인기에 오히려 악재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매스컴에서 ‘투사’ 이미지로 비쳐지는 조경태 의원은 개인적인 자리에서는 부드럽고 상냥한 말투의 소유자였다. 다음은 일문일답.(문답에서 편의상 존칭어는 생략하기로 한다.) 최근 쇠고기 정국에서 민노당은 강기갑, 민주당은 조경태라고 할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다. 네티즌들이 ‘조포스’ ‘버럭경태’ ‘조거성’ 등의 별명을 붙여 부를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모았다. 최근의 인기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나? “우리 국민들이 원래 정치인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나. 그럼에도 나에 대한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줘서 감사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책임감도 느끼고 있다.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정치인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조 의원이 지난 쇠고기 청문회에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게 “그 좋은 쇠고기, 빚을 내서라도 사 주겠다”며 호통 치던 모습이 생각난다. 당시 청문회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과 정 장관에 대한 나름의 평가를 한다면 ? “솔직히 정운천 장관에 대해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그 분의 능력이나 자질은 충분히 인정한다. 다만 농림부 장관으로서 적합한 인물인지 의구심이 있을 뿐이다. 청문회 당시에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분 나름으로 기업형 농업을 이끌어온 데 대한 능력은 인정이 된다. 하지만 농민 모두를 감싸 안고 나아가야 할 주무장관으로서 농민들의 어려움과 아픔을 보듬어줘야 하는데, 기업의 논리로 대할 것 같다. 우리 농민들은 대부분 스스로 기업적인 영농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영세농민들이다. 그 집단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인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쇠고기 문제도 그렇다. 국민의 인식이 들끓고 있을 때 주무부처 장관으로서의 자세는 국민의 편에 서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을 것이다. 지난주 100분 토론에 참여하여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과 논쟁이 붙었다. 여당의 대변인까지 지낸 달변가를 상대하느라 어려운 점도 많았을 듯한데, 당시 토론에 임했던 마음가짐과 후일담을 듣고 싶다. “솔직히 말해서 많은 부담감을 가지고 출연했다. 출연 제의가 왔을 때도 응해야 하나, 거절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이 있었고, 그게 부담감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평화적인 촛불집회를 하는 시민들의 입장을 좀 더 대변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고 송구스러운 마음이 있다. 뉴라이트 임헌조 사무처장께서 국민들을 일방적으로 폭도로 매도하는 사진을 찍어왔다. 당시 그것을 보고 격앙돼 다소 얼굴을 붉히는 모습이 나왔던 것 같다. 스스로도 많이 참았지만, (임 사무처장의) 현실 인식이 왜곡되지 않았나 싶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어떻게 현실인식이 이렇게 차이 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촛불집회에 나온 분들의 목소리를 더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정치인 어록이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인데, 이번 방송출연으로 조 의원의 어록이 하나 더 늘었다. “제 말 끊지 마세요”라는 말이 네티즌 사이에서 회자된다. 한쪽에서는 ‘소신있다’는 긍정적 의견이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감정이 논리에 앞서 나갔다’는 혹평도 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소신파라고 생각하나? “사실은 상대쪽 패널들이 현실을 왜곡시키려고 하지 않았나? 집회 참여 시민들에게 배후세력이 있다는 둥, 평화적으로 촛불집회에 임하는 사람들을 폭력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 한편에서는 좀 더 심하게 얘기하고 싶을 정도로 끓어올랐다. 공영방송 녹화자리라서 자제는 했지만(웃음), 국민들 보기에 따라서는 감정이 너무 앞서나가는 모습으로 비쳐졌던 것 같다. 그게 더 아쉽다. 지역구인 부산에서 토론을 많이 해왔는데, 일반적인 정책토론을 할 때에는 내가 일방적으로 상대방의 말을 끊는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나는 말수가 적은 편이다. 국민들이 쇠고기 문제에 대해 민감하고 재협상을 여망하기 때문에 양보할 수 없었다. 열정으로 봐주셨으면 감사하겠다. 100분 토론의 주제가 이명박 정부 100일에 대한 국정 평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토론의 주제가 쇠고기 일변도로 흐른 면도 없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이명박 정부의 국정에 대해 촌평하자면? “전반적으로 봤을 때, 대통령께서 국민의 목소리를 잘 듣지 않는 게 국민에게 실망을 준 것으로 보인다. 쇠고기 문제만 해도 미국에게는 쉽게 져줬다. 그들(미국, 일본 등 외국)에게 많은 양보를 하고 있는데, 우리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자꾸 이기려고 하는지, 아쉬움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께서 대기업 총수들에게 핫라인을 개설해 놓았듯이, 국민들과의 핫라인을 개설할 것을 희망한다. 진정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라도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실패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고소영’, ‘S라인’ 등으로 대표되는 인사문제, 대운하 문제, 수도·공기업·의료보험의 민영화 등에다, 스스로 안정시키겠다고 내세운 MB 물가 52개 품목은 더 많이 올랐다. 물가상승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100일이 넘었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의 피부에 맞닿아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을 가르치려 하거나 자기 생각으로 설득하려하지 말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서울과 부산 등지의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것으로 안다. 지난주 기자회견에서도 딸을 가진 부모로서 경찰의 강경진압을 당한 국민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출한 것으로 기억한다. 눈물을 보이는 등 다소 감정적인 모습도 보였는데, 시위에 참여하는 국민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촛불집회가 열린 후 많은 시민이 연행됐다. 내가 각 경찰서를 방문하여 시위과정에서 연행된 시민들을 면회했다. 하루하루 다닐 때마다 연행되는 숫자와 진압 강도가 점점 세지더라. 처음에는 연행과정에서 경찰이 시민을 폭행하는 일이 많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하는 시민이 많아지고 있다. 연행 과정에서 손가락 살이 터져 방치된 시민을 보았다. 경찰 조사때도 손이 피범벅이 돼 있었을 텐데 의료 서비스도 전혀 없이 그대로 놔 둔 것이다. 경찰 책임자에게 다친 환자를 이렇게 방치하느냐고 항의하여 병원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비폭력 시위를 위해 전의경에게 다가가 ‘폭력을 쓰지 마세요’라고 말했는데도 끌려가 수모를 당하고 몰매를 맞고 연행된 시민도 있었다. 어떤 시민은 옷이 찢겨졌는데 온몸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심지어 한 시민은 지하도 계단에서 경찰과 마주서 있다가 경찰이 의도적으로 확 밀어 굴러 떨어진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살인미수다. 의도적인 게 아니었다고 변명하지만, 당한 시민의 입장에서는 폭력으로 느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굴러 떨어져 넘어진 상태에서 경찰이 폭력을 행사했고, 이를 말리던 사람들도 폭력을 당했다는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2008년도 대한민국에서 80년대 군사독재 당시의 일들이 반복돼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조 의원도 86년에 학생이었으므로 시위 경험이 많았을 텐데, 요즘 집회현장에서 벌어지는 모습들을 보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을 것 같다. “물론다. 하지만 당시와 지금의 시위문화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당시에는 경찰에게 돌을 던지고, 때로는 과격하게 화염병을 던지는 이도 있었고, 쇠 파이프를 든 학생도 있었다. 정말 전투하듯이 (시위를) 했고, 서로 많이 다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촛불집회는 말 그대로 순수한 평화 집회이자 시위이다. 여기에 경찰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폭력 진압을 하는 것을 보면 현 정권의 도덕성이 의심스럽다.” 민주노동당이 지난달부터 집회에 참여한 가운데, 민주당은 이달부터 장외집회에 들어가 뒤늦게 민의에 편승한다는 국민의 지적이 있음을 알 것이다. 그래서 처음 장외집회에 참여했을 때 국민이 다소 냉랭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고 들었다.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어땠나? “지금은 호의적으로 많이 변했다. 애초부터 의원들의 개별적인 집회참여가 있어 왔다. 나 개인적으로도 5월 26일, 27일 현장을 둘러보고 28일부터 집회에 참여해 왔다. 민주당의 이름을 들고 나가는 것이 시민들 보기에 좀 늦게 참여했다는 비판이 있음을 안다. 하지만 초기에 민주당이 제1야당의 입장으로 촛불집회에 참여했다면, 여당으로부터 정치세력 배후설과 쇠고기를 정치쟁점화한다는 공격을 많이 당했을 것이다. 지금은 한나라당 지지자들 위주로 이러한 비판이 있다. 우리도 가능하면 원내에서 쇠고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우리가 원외에서 투쟁을 하게 된 터닝포인트는 바로 장관고시 강행이다. 우리는 이전에 정부가 장관고시를 강행할 경우 장외투쟁을 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실천에 옮긴 것이다. 우리가 그 전까지 눈치를 보다가 장외투쟁에 나섰다는 주장은 오해다. 민주당은 쇠고기 재협상을 주장하는 정당이다. 여기에 한나라당과의 차이점이 있다고 본다.” 한나라당에서는 장외투쟁을 멈추고 국회로 돌아와 개원하자고 촉구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할 말이 있다면 국회에서 하라는 논리도 틀린 말은 아니다. 어떻게 생각하나? “한나라당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17대 국회에서 자신들이 위원장을 맡은 농림해양수산위원회조차 열어주지 않던 그들이다. 장관 해임안조차도 그들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야당에게 무조건 국회에서 논의하자는 억지는 앞뒤 논리에 맞지 않는다. 18대에서 과반수를 한나라당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원내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기는 쉽지 않다. 6·4 재보궐 선거 직전엔 재협상 촉구결의안을 받아들이겠다고 야당의 등원을 촉구해 놓고 정부는 재협상을 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국민 기만행위이다. 우리가 한도 끝도 없이 장외투쟁을 하는 것을 국민들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쇠고기 문제뿐 아니라 산적한 민생현안을 해결하려면 야당의 역할을 원내에서 해야 한다.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원내에 복귀해서 문제들을 해결했으면 하는 게 민주당의 바람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이슈가 국민들 사이에 최고의 관심사이다 보니, 정국이 쇠고기 문제에 편중된 면도 없지 않다. 앞으로 정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 부각시켜야 할 현안들에 대해 말해 달라. “이명박 정부의 기조는 성장 일변도이다. 우리 사회에 성장 일변도의 정책이 올바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맞춰 나가야 한다. 서민과 중산층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 1%의 특권층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 서민과 대다수의 중산층을 위한 정권이어야 한다. 국민의 필요를 좀 더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 공기업과 의료·수도 민영화, 서민 경제정책, 복지정책, 남북 관계, 독도 현안 등의 사안에 대해 신중하게 판단을 내려 정책을 펴 나갔으면 좋겠다.

그러한 견해는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코자 하는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대안과 함께 보태고 싶은 정책이 있다면? “우리는 유류세 인하를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정부는 세수가 준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우리는 18대 국회 상반기에 주력해 다룰 민생법안을 유류세 인하로 맞추고 있다. 또한, 서민들 주거복지 문제를 빼 놓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 우려했듯이 주택값이 오르고 있다. 서민들이 새 집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공기업인 주택공사과 토지공사의 공공 기능을 정상화시킬 필요가 있다. 서민층의 주거복지 문제를 심도있게 다뤄 나가야 한다.” 조 의원은 부산 사하구가 지역구이다. 한나라당의 표밭이자 영남권의 핵심인 PK 지역에서 민주당 깃발을 꽂은 의원은 최철국 의원과 조 의원이 유이하다. ‘외딴’ 지역에서 의정을 하는 소회가 남다를 텐데... “솔직히 외롭다(웃음). 한나라당 의원들이 지역구 관리하는 것보다 열 배, 스무 배 더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주민들이 인정해준다. 많이 힘들었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선택한 지역이고, 특히 사하구가 비교적 지원이 필요한 지역이다. 이 자리를 빌어 나를 다시 선택해 주신 주민들께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이분들에 대한 신뢰를 깨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역의 발전과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 밀알이 되겠다.” 조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 노 전 대통령과의 기억나는 애피소드와 함께, 현재까지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듣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은 현존하는 정치인 중에 자신의 철학과 신념이 가장 뚜렷한 정치인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정치개혁을 이뤄낸 대통령이다. 스스로 배울 점이 많다고 본다. 이 분이 지난 2002년에 대통령 후보가 되는 과정에서 많이 도와드렸다. ” 16대 대선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도운 것이 첫 만남이었나? “96년도에 첫 인연이 있었다. 나는 당시 15대 총선에서 부산에 출마했고, 노 전 대통령은 서울 종로에서 출마했다. 나도 노무현 전 대통령도 낙선했다. 그게 인연이 된 것이다. 당시 낙선자들끼리 매월 한 차례씩 가진 ‘일요회’라는 모임이 있었다. 일요일에 만났다고 해서 이름이 그렇다. 이는 과거 민주당의 지구당 위원장의 모임으로, 영남지역에서 낙선한 사람들끼리 소주 한 잔 하면서 현실과 정치에 대해서 얘기하던 모임이다. 여기서의 만남이 첫 인연이었고, 낙선 6년 만에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이 됐다. 6년이 짧다면 짧지만 야인생활은 참 길었다. 당시에는 희망이 없어 보였는데, 일관된 정치신념을 가지고 나아가면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었다. 노 전 대통령과 나는 어려운 시절 동병상련하던 정치적 동지였다. 혹자는 내가 노 전 대통령의 정책보좌역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평가이다. 어디까지나 대통령은 모임의 좌장격이었고, 우리들(조 의원과 타 지구당 위원장들)은 일원이었다. 이때 허심탄회하게 지역구 얘기도 하고 많은 정치적 원칙과 신념을 나누었다. 이번 총선을 마치고 한번 봉하마을에 다녀왔다. 인기가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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