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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을 ‘소통의 광장’으로

촛불집회, 인터넷 토론의 장에 대한 보수진영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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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2호 박성훈⁄ 2008.06.23 17:29:49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끊이지 않고 있다. 매일 적게는 3,000명, 많게는 몇십만 명에 이를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집회에 참여해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촛불집회의 절정을 이루었던 6월 10일 집회에는 전국적으로 1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곳곳에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그라들 것이라는 기존 예상과는 달리, 촛불집회는 5월 중반부터 지금까지 한 달여 동안 진행됐음에도 그 열기를 간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촛불집회에 반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게 불거지고 있다. 뉴라이트 전국연합이나 특수임무수행자 동지회 등과 같은 보수성향의 단체들도 거리로 나와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또한, 이 시대의 사회적 코드가 돼 버린 촛불집회와 쇠고기 파동을 비롯한 국정 현안을 놓고 온라인 토론을 벌이는 ‘아고라’ 문화를 두고 각계의 보수 논객들은 각자의 의견들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주장은 촛불집회가 시민 주도의 집회가 아니라 이명박 정권에 배치되는 정치세력이 주도하는 집회라는 것이다. 몇몇 보수 논객들은 집회와 인터넷 여론에 대한 강경발언으로 네티즌들의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조갑제 등 보수 저격수, 촛불집회 ‘정조준’ 진보진영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논객이 진중권 겸임교수라면, 보수계열의 공격수에는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가 있다. 조 전 대표는 보수의 선봉에 서서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조갑제 닷컴’에 칼럼을 게재해 촛불집회에 대한 날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 칼럼들 중에는 다소 원색적이라 표현될 정도로 신랄한 비판도 있다. 특히, 6월 15일에 올린 글에는 촛불집회에 청소년을 데리고 가는 것이 “청소년을 포르노 영화관이나 호스티스가 있는 술집으로 데려간 격”이라며 “광화문 지역을 야간에 청소년 통행금지 또는 제한구역으로 지정하고 교육부는 불법폭력 장소로 학생을 데리고 나오는 교사들을 엄중 처벌해야 한다”는 강경 주장을 폈다. 청소년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여한 부모와 교사에 대해 ‘어린이 영혼추행’을 하고 있다는 폄하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수많은 청소년들이 불법시위에 가담하여 범죄행위를 하고 있다"며 "국가와 국법을 상징하는 경찰관들에게 초·중·고교생들까지 욕설, 야유를 퍼부으며 법질서 파괴를 실습하고 있다”고 전했다. 집회장에 ‘19금 딱지’를 붙이는 조 전 대표의 발언의 근거는 집회환경이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위가 진행되고 있는 광화문 일대에서는 정치적 선동만이 아니라 거짓말, 욕설, 폭력과 음주, 행패가 난무한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서울시장은 광화문 지역을 야간에 ‘청소년 통행금지 (또는 제한)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교육부는 불법폭력 장소로 학생들을 데리고 나오는 교사들을 조사해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국지의 소설가 이문열 씨도 조 전 대표에 못지 않은 보수 논객이다. 이문열 씨가 대규모 촛불집회에 대해 발언한 것은 6월 11일. 역사소설 ‘초한지’ 완간을 기념하는 기자회견에서 그는 ‘위대하면서도 끔찍한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중의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당시 어렵게 입을 연 이 씨는 “되기 어려운 일을 되게 한 점에서는 위대하고, 또 정말 중요한 다른 문제에서도 이런 게 통하게 된다면 끔찍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 씨는 “이번 촛불집회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지만, 정권의 실수와 성급함이 더 컸기 때문에 (상황이) 고약하게 됐다”며 다소 부드러운 화법으로 견해를 폈다. 그러나 17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문열 씨는 촛불집회를 ‘내란’에 비유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 씨는 “예전부터 의병이란 것이 국가가 외적의 침입에 직면했을 때뿐만 아니라 내란에 처해 있을 때도 일어나는 것”이라며 “이제 (촛불집회에 대한) 사회적 반작용이 일어나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불장난을 오래 하다 보면 결국 불에 데게 된다. 너무 촛불 장난 오래 하는 것 같다”고 촛불집회를 강하게 비판했다. 보수진영에서 뛰어난 필력을 자랑하는 조선일보의 김대중 고문도 네티즌 구설의 중앙에 서 있다. 김 고문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대대적인 보이콧 현상이 일어나자 ‘촛불시위 vs 1인시위’라는 특별기고를 통해 조선일보에 광고를 올리는 회사를 압박하는 시민들을 비판했다. 김 고문은 ‘아고라’와 주부들 모임인 ‘82쿡’ 등의 사이트에서 조선일보에 게재된 광고 리스트를 올리고 불매운동을 촉구하는 행태와 조선일보 이정표들이 데모대에 의해 심하게 훼손되어 글씨가 뭉개지거나 스프레이가 뿌려져 있는 등의 폐해가 잇따르는데 대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할 거냐 말 거냐, 광우병 위험이 있느냐 없느냐, 30개월 이상 또는 미만의 월령 표시를 해야 하느냐 마느냐 등의 논의를 떠나서, 또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를 떠나서, 우리 사회는 지금 심각한 불신과 왜곡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유발언대에서 광우병 위험이 과장돼 있다고 한 대학생에게 비난이 쏟아진 데 대해 “1인 시위자에게 ‘딴 데 가서 하라’고 윽박지른 사람에게 ‘당신도 데모할 테면 딴 데 가서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16일에는 ‘'MB 일생일대의 결단’이라는 제하의 글에서 대통령이 국민의 뜻에 따르는 것을 ‘배신’이요 ‘수모’라고 표현하며 대통령직을 걸고 그 뜻을 거스르라고 제안했다. 김 고문은 “‘촛불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5년을 지리멸렬하게 가는 것은 대통령의 길이 아니다”라며 “하는 일마다 시청 광장에 모인 반대자들이 자신에게 이렇게 하라, 하지 마라 하며 ‘명령’하는 수모를 당하며 사는 것은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국민적 반대에 부딪힌 대운하 건설, 공기업 민영화, 친기업 정책 등의 정책에 대해서도 국민 여론에 휩쓸리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는 “실패자가 될 망정 배신자가 돼서는 안 된다”며 ‘포퓰리스트 대통령’보다는 ‘못난 대통령’으로 남을 것을 촉구했다. ■한나라당 촛불 관련 입만 열면 네티즌 ‘융단폭격’ 촛불집회에 대한 보수 정계의 발언도 눈여겨볼 만하다. 특기할 점은 개인적인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른 정치인은 대부분 한나라당 의원들이라는 점이다. 한나라당과 함께 보수를 표방하는 자유선진당은, 촛불집회에는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쇠고기 현안에 대해 재협상과 같은 부정적 여론에 함께하고 있는 만큼 원색적 표현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이회창 총재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한 달 이상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고, 분신이라는 불상사까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라며 집회와 관련해 부드러운 화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현 정부와 맥을 함께하고 있는 만큼 때때로 실언이 나오기도 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이 6월 3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경제5단체 주최 행사에서 촛불집회 참여자에 대한 사견을 털어놓았다. 이 발언으로 인해 네티즌들의 항의방문이 쏟아져 그의 인터넷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은 일시적으로 폐쇄되는 불상사를 겪기도 했다. 이상득 의원은 이날 “거리에 나와 불평을 하고, 호소를 하고 있는 촛불집회 참가자는 쇠고기만의 문제가 아니고 경제 전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아마 실직당하고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헤매는 젊은이들, 어려운 서민, 중소기업 대표 등 많은 분들이 쇠고기 이외의 문제를 가지고도 참가하지 않았느냐 하는 그런 두려운 마음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같은 당의 전여옥 의원은 서울 무교동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열린 보수단체 국가정상화추진위 출범식에 참석해 “지금 국민들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국민들은 전문가 얘기보다는 연예인의 얘기를 더 많이 믿는다. 또한, 권위 있는 단체의 말보다는 일부 주부협회에서 나오는 감성적인 이야기를 더 믿는다. 물론, 연예인이나 주부들의 얘기가 가치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협회나 전문가들의 권위가 그만큼 떨어졌다는 현실을 이야기해준다”며 최근의 시위 사태에 개탄과 우려를 표했다. 결론만 보면, 전 의원은 쇠고기 협상 과정에서 곤두박질친 전문가의 권위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들린다. 하지만, 각 언론은 그의 발언에서 “국민들이 연예인과 주부협회 말만 믿는다”는 부분을 대서특필했고, 네티즌들 역시 이 발언에 집중해 비난글을 올렸다. 전여옥 의원은 당 관련 현안이나 국내외 문제에 대해 발언해야 할 때라고 판단되면 거침없이 의견을 제시해 화제와 논란을 모은 바 있다. 전 의원은 대표적인 보수 성향의 인사이기도 하다. 6월 16일에는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당 홈페이지에 ‘천민 민주주의를 논함’이라는 제하의 글을 올렸다. 주 의원은 “고대 아테네도 법이 무시되고 포퓰리즘이 팽배하는 천민 민주주의가 판을 쳐 결국 멸망했다”며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법의 지배에 대한 도전은 끊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은 준법 의무를 우습게 여긴다. 좌파 정권 10년은 법이 조롱당하는 법 굴욕의 시기였고, 지금도 그 그늘은 우리 사회 전반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촛불시위가 시작과 달리 정치투쟁으로 변질되는 이유는, 아직도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좌파 386과, 그런 부모들에게 이끌리는 초·중·고생, 지난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에게 표를 던진 620만 명의 일부가 주도하는 ‘천민 민주주의’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주성영 의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익명성 뒤에 숨어 글을 쓰고 퍼 나르기를 하는 세력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법적 문제 발생시) 형사수사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며 “이름을 게재할 수 있도록 해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주 의원은 “촛불집회는 화염병이나 쇠 파이프 등 폭력적 도구가 동원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지만, 특정 목적을 가진 세력에 의해 법의 지배를 무시하는 반정부 투쟁 성격의 정치성을 띤 불법집회로 변질됐다”고 비판했다. ■서울광장, 폴리티즌(politizen, 정치적 시민) 위한 토론의 장으로 만들어야 지금까지 촛불집회 일변도의 진보진영의 목소리가 우세한 상황에서 보수진영의 의견만 따로 정리해 봤다. 정치권에서는 쇠고기 정국을 그리 길게 보지 않는 눈치다. 한 여권 핵심인사 측은 “쇠고기 정국도 막바지에 이른 듯하다. 화물연대 등 노동계의 파업으로 국면전환이 급속히 이루어진다”고 전했다. 야권에서도 민생 종합대책 마련을 위해 국회로 복귀해야 한다는 여권의 압박과 내부의 등원 목소리로 하루 속히 문제를 종결시키고 싶어한다. 집회 현장에도 시민들뿐만 아니라 화물연대와 건설기계 노조 등 노동단체의 참여가 점차 두드러지고 있다. 하지만, 촛불집회는 현재진행형이다. 광화문 집회현장에는 애초에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외친 ‘쇠고기 재협상’ 구호가 아직 건재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집회장에는 한반도 대운하, 공공부문 민영화 문제 등 정부 현안에 대한 구호와 토론이 서서히 끼어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정치적 토론의 장으로 변하는 느낌이다. 집회 참여 시민들이 환영하든 하지 않든, 뉴라이트 전국연합 등 보수 성향을 가진 시민들도 시청 앞 광장에 모여들어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쇠고기 재협상 관련 현안이 종결되면 시민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적 화두가 던져진다면 그들은 어김없이 시청 앞 광장으로, 혹은 아고라 광장으로 삼삼오오 모여들 것이다. 그 공간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민감한 주제를 놓고 내 생각과 의견을 전하기 위해 설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안한다. 시청 앞 광장의 명칭을 ‘서울광장’이 아닌 ‘소통의 광장’으로 개칭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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