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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우리 땅, 대마도도 우리 땅”

[인터뷰] 독도가수 정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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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9호 박성훈⁄ 2008.08.12 16:35:08

“안녕하세요. 정광태입니다.” 명함을 받아 보니 ‘독도명예군수 정광태’라고 똑똑히 새겨져 있었다. 뒷면에는 ‘본적: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20번지’라는 독도 주소와 함께 관련 정보가 나열돼 있었다. ‘독도는 우리 땅’의 주인공인 가수 정광태 씨는 사실 ‘정체’가 분명하지 못하다. 워낙 많은 직함을 가지고 있어서이다. 일단, 음반을 여러 장 발매한 중견급 가수, KBS ‘유머1번지’에 출연한 공채 개그맨 등이 그의 기본적인 직함이다. 하지만, 이 외에도 독도사랑회 고문, 울릉도·독도 홍보대사, 독도명예군수 등 수많은 직함들이 모두 그를 지칭하고 있다. 이 모든 직함들의 공통분모는 바로 ‘독도’이다. 명함에는 독도명예군수라고 쓰여 있어 “군수님”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독도는 우리 땅’ 때문인지 가수라는 직함이 제일 애착이 간다”며 웃었다. 그는 ‘독도명예군수’답게 ‘Do you know Dokdo the Korean territory(한국 영토 독도를 아십니까?)’라는 문구가 쓰인 면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정 씨는 일본과의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바빠진다. 각종 방송사와 신문사의 출연 및 인터뷰 요청이 쇄도함과 동시에 독도 관련 시민단체에서도 행사참석 요청이 연이어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날도 KBS의 한 아침 프로그램 생방송에 출연했다고 한다. ■ “우리는 조국 지켜 후손에게 물려줄 의무가 있다” “한반도 땅덩이에 정착한 민족이 있습니다. 그 민족의 선조는 광활한 만주벌판을 거친 숨결로 호령하던 당당한 기마민족이었습니다. 오늘 그런 민족이 주인된 도리를 다하지 못해 또 하나의 영토를 빼앗기려 하고 있습니다. 먼 훗날 후손들은 이렇게 얘기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부끄러운 선조를 가졌다고. 우리는 내가 태어난 조국을 잘 지키고 보존해서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정광태 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독도 영유권 수호의 필요성에 대해 먼저 입을 열었다. 독도 지킴이를 수행한 지 어느새 25년. 질기고도 질긴 정광태 씨와 독도의 인연은 실로 우연한 계기로 찾아왔다고 한다. 82년 당시 개그맨이었던 정 씨는 개그 프로그램 ‘유머1번지’에서 일본이 역사 교과서의 독도 관련 내용을 왜곡한 사건을 풍자하기 위해 임하룡·장두석·이상훈과 함께 ‘독도는 우리 땅’을 처음 불렀다. 그날이 그가 독도에 ‘코가 꿰인’ 날이다. “그날로 음반 제작자가 방송을 보고 음반을 내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갔는데, 제작자가 늦는 바람에 다들 바빠서 먼저 가고, 결국 나 혼자만 노래를 하게 됐죠. 내 인생은 노래 따라 흘러가는 것 같아요. 내가 ‘독도는 우리 땅’을 안 부르고 ‘옥경이’를 불렀으면 돈 많이 벌었을 텐데 말이죠.” ■ “독도 팔아 돈 벌었다” 욕설 듣기도 음반을 내고 84년 3월 처음 독도를 방문했을 때를 그는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라고 추억하고 있다. “해양경찰청의 초청으로 독도에 처음 갔는데, 당시에는 입도(入島) 허가를 받아야 하고 접안시설도 안돼 있던 때예요. 먼저 해양경찰선을 탔다가, 독도 주민이던 최종덕 할아버지의 목선으로 갈아타고 독도에 들어갔지요. 참고로, 동도에는 독도경비대가 있고, 서도에는 민간인이 살고 있었어요. 내가 도착했을 때 독도에서 예포를 쏴 환영해줬는데 그게 정말 고맙더라고요. 그 때 돌아오면서 ‘독도를 알리는 일에 내 몸 다할 때까지 해보자’고 다짐했는데, 벌써 25년이 흘렀네요.” 가수 정광태 씨는 ‘독도는 우리 땅’ 이후에도 ‘화랑 관창’ ‘힘내라 힘’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한국을 빛낸 백 명의 위인들’ 등 귀에 익은 건전가요들을 많이 불렀다. 모두 우리나라의 역사와 민족성과 관련된 곡들이다. “내가 부른 곡들은 거의 KBS 라디오 PD 출신 박인호 작곡가가 지은 곡이에요. ‘독도는 우리 땅’ 인연으로 다 그 분 노래만 불렀어요. 솔직히 먹고 살기는 힘든 노래들이죠.” 그래도 애국심을 고취하는 내용의 곡들 덕분에 초등학교·고등학교·대학교와 군 부대에서 강연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독도에 대한 자긍심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일이 내 역할인 것 같아요.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25년이 흘렀으니, 이제는 독도를 지키는 일이 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5년 간 독도 지킴이로 살면서 ‘독도를 팔아먹었다’는 둥 ‘친일파’라는 둥 욕설을 듣기도 하여 속상한 일도 많았지만, 정 씨는 독도를 알리는데 지대한 공이 있었다고 자부한다. 독도를 50여 회 방문하면서 헬기로도, 뗏목으로도 가봤지만, 2004년 28시간에 걸친 울릉도-독도 수영종단은 잊지 못할 순간 중 하나이다. 그는 “행사 참여자 45명과 함께 독도까지 헤엄쳐 가서 마침내 대형 태극기를 펼쳤다. 그때 흘린 눈물이 동해 바다를 채우고 있다”며 가슴 벅찬 감동을 떠올렸다. ■ “독도 영유권 주장, 제2의 대한민국 침략” 정 씨는 일본의 독도 도발을 얘기할 때에는 짐짓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한승수 국무총리가 독도를 방문했을 때 일본이 “유감스럽다”고 한 입장표명에 대해 “이건 마치 내가 우리 가족들이랑 우리 집 안방에 앉아 있는데 일본 사람들이 와서 ‘너 왜 남의 집에 들어와 있는 거야? 유감스럽다’고 억지를 부리는 상황이랑 똑같다”며 분노했다. 정 씨는 역사 교과서 왜곡과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독도 망언 등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독도 도발에 대해 역대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무대응이 최대의 방어이다’ ‘우리 땅인데 이러다 지치겠지’라고 생각한 지난 정부의 미온적 태도가 지금의 사태를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그는 “일본 사람들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데, 왜 우리는 우리 땅이라고 단호하게 얘기하지 못하는지 모르겠어요. 이건 대한민국에 대한 제2의 침략입니다”라면서 “명명백백한 자국의 영토를 떳떳하게 주장하지 않는 국민에게는 권리가 돌아오지 않는다”며 강하게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는지 변영태 전 외무장관의 일본 도발 관련 발언을 인용했다. “독도는 일제 침략의 최초의 희생물이었으며, 대한민국 해방과 함께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의 상징이다. 독도에 손을 댄 자는 한민족의 엄청난 저항을 각오하라. 독도는 단 몇 개의 바위덩이가 아니라, 대한민국 영해의 닻이다. 독도를 잃고서야 어찌 독립을 지킬 수 있겠는가? 일본이 독도를 침탈하려는 것은 대한민국의 재침략을 의미하는 것을 국민 여러분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 “대마도 얘기 나오면 미안하더라” 이 와중에서 기자가 대마도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정광태 씨는 “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난 너무 미안해지더라”며 머쓱해했다. “예전에 ‘대마도는 일본 땅’이라고 노래를 불렀잖아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책임을 지겠느냐며 핀잔을 주기도 해요. 그래서 2001년에는 ‘독도는 우리 땅’을 개사해서 다시 판을 냈죠. ‘하와이는 미국 땅, 대마도는 몰라도, 독도는 우리땅’이라고요. 그러다 2005년에는 김흥국 씨와 함께 부른 ‘독도로 날아간 호랑나비’에서는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고 확실히 했죠.” 그는 하루 빨리 우리나라의 국력이 강해져서 독도 영유권을 확실히 하고 대마도와 간도 등 우리의 옛 땅을 다 찾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전했다. “대마도도 원래 우리 땅이었으니 찾아와야지요. 독도박물관에 있는 큰 지도에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고 명백하게 써 있잖아요.나중에는 우리가 막강한 대한민국이 돼서 일본을 72년 동안 지배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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