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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색 날개의 천사 ‘호스피스’

호스피스 병동 자원봉사 일일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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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80호 박성훈⁄ 2008.08.19 16:58:55

우리에게 친숙한 웰빙(well-being)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회가 발달하고 삶이 풍요로워짐에 따라, ‘더 건강하게, 더 의미 있게 살고 싶다’는 욕구를 가진 선진국 사람들이 이 같은 개념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제는 웰빙을 넘어 웰다잉(well-dying)의 개념이 등장했다. '아름다운 죽음, 준비된 죽음'을 뜻하는 ‘웰다잉’은 웰빙의 연장선상에서 ‘편안히 죽는다’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친 것이다. 각종 임종체험 클리닉과 죽음에 관한 강의·도서들이 각광을 받는 현상은 웰다잉이 이 시대의 화두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반증한다. 우리가 건강할 때에는 죽음 혹은 질병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냉철하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극도의 고통 속에서 사경을 헤매는 말기암 환자라면 죽음을 가볍게 생각할 수 있을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죽음을 삶의 일부로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끔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몇몇 종합병원과 사회복지시설에는 말기암 환자들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들이 있다. 이들은 항상 환자들 곁에서 의료 서비스뿐 아니라 정서적 치료, 유가족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심리적 케어 등을 감당한다. 따라서, 호스피스는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뿐 아니라 성직자·자원봉사자·사회사업가·영양사 등 환자에게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한 팀이 되어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은 서울 연희동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만나보았다. 호스피스 병동은 병세가 극심해 더 이상의 연명치료가 무의미해졌을 때, 임종에 이르기까지 고통을 경감시켜주기 위한 소극적 완화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 분주히 움직이는 자원봉사자들 병원 암센터 4층에 위치한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휴게실에는 오전 9시 40분이 되자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근무하기로 한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로 북적이기 시작한다. 이들은 환자들을 섬기겠다는 열정으로 모인 무보수 봉사자들이다. 봉사자들은 휴게실 벽장에서 봉사자용 하늘색 가운을 꺼내 입고 각자의 임무에 따라 준비물을 챙긴다. 호스피스 책임자들은 스케줄 표를 보고 봉사자들의 출석 여부를 확인하면서 필요한 사항을 차근차근 인지시켜준다. 근무는 일주일을 주기로 오전·오후 중 하루를 선택해 하도록 돼 있다. 기자가 휴게실에 들어서자, 봉사자들은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맞이해 주었다. 그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면서도 서로 “안녕하세요? 몸은 좀 어떠세요?”라는 인사로 안부를 물었다. 준비가 먼저 끝난 사람은 다른 봉사자를 위해 커피를 준비하는 여유도 잃지 않았다. 한 켠에서는 노인 봉사자 세 명이 모여 환자들을 위한 기도회를 하고 있었다. 봉사자들이 모두 건강한 것은 아니었다. 기자에게 “처음 뵙겠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웃음을 건넨 70대 가량의 한 봉사자는 현재 대장암을 앓는 중이라고 한다. 알고 보니, 그를 제외하고도 적지 않은 자원봉사자들이 지속적으로 체크와 치료를 받는 암 환자였다. 스스로 환자와 같은 병을 경험했기 때문에, 환자 및 가족들과 더 많은 공감을 할 수 있고 더 열심히 봉사하게 된다고 한다. ■ 긴급상황 발생! 10시가 되자, 방송에서 벨이 울리더니 간헐적으로 “코드 블루”라고 외치는 방송이 흘러 나왔다. 자원봉사자 문정순 씨(60. 서대문구 남가좌동)가 “심폐소생술”이라고 설명해준다. 그러더니 별안간 호스피스 팀장이 다급하게 목욕·세발 담당 자원봉사자를 호출한다. 대장암 환자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비상상황이 발생했다는 것. 봉사자들과 기자는 환자가 있는 병실로 뛰어갔다. 병실에 들어서자, 코를 찌르는 인분 냄새가 진동했다. 수술 후 왼쪽 복벽에 낸 장루에서 대변과 피가 쏟아진 것이다. 변이 밖으로 흐르지 않도록 장루 입구에 붙여 놓은 봉투가 뜯어진 모양이다. 상의만 걸친 채 기저귀를 찬 환자의 몸은 온통 대변과 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시트와 옷도 물론 더럽혀져 있었다.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병세가 위중한 환자는 고통과 공포로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주변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았다. ■ “말 못하면 표정으로 의사소통해야” 이날 목욕·세발 담당인 문정순 씨와 김진주 씨(49. 서대문구 북가좌1동)는 먼저 능숙한 솜씨로 환자의 몸에 묻은 오물을 씻겼다. 그러나 시트를 교체하고 옷을 갈아입히는 일이 대공사(?)였다. 환자의 몸은 온통 새까만 멍으로 얼룩져 있어, 몸에 작은 힘이 가해지기만 해도 고통을 호소했다. 누인 몸을 모로 세우는 일조차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자와 봉사자는 환자의 몸을 가까스로 들어올려 옷을 벗기고 시트를 갈았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환자는 아픔이 전해올 때마다 신음소리를 낼 뿐, 제대로 된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문 씨는 “환자의 표정만으로 얼마나 아픈지, 불편한지를 알아봐야 한다”며 어려움을 전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 사이 수습이 마무리되고, 문 씨와 김 씨는 물 없이도 세발이 가능한 특수 샴푸로 환자의 머리를 감기면서 ‘고유임무’를 마무리했다. 문 씨는 “이런 상황이 자주 발생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응급실에서는 이보다 더 심한 경우도 많다. 출혈이 심해 세숫대야로 피를 받아내기도 하고, 바닥이 피로 흥건해지기도 한다”고 애써 의연하게 말했다.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더 많아요” [인터뷰] 문정순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 자원봉사단 회장 ■ 호스피스 봉사는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올해로 7년째 접어드는군요. ■ 어떤 계기로 봉사를 하기로 결심했나요? 예전부터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마음에 두고 있었어요. 처음에는 중증장애인 시설에 다녔는데, 그곳에서 스스로 부족함을 많이 느껴 호스피스 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실은, 저희 어머니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셨어요. 둘째오빠는 위암으로 돌아가셨구요. 또, 처녀 시절에 대학부터 단짝친구가 둘이 있었어요. 항상 셋이 붙어 다녔는데, 친구 하나가 암으로 죽었어요. 다른 친구도 유방암 수술을 했구요. 옛날부터 이런 시설에서 봉사를 하고 싶었는데, 지금 친구들이 절 보면 결국 ‘제 길로 갔구나’라고 말하곤 해요. ■ 암이라면 예전에는 ‘죽을 병’이라고 여겼습니다만…. 오히려 암이랑 같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예전에는 암이라면 무조건 겁이 났는데, 여기에서 봉사자 교육을 받고 일도 하니까 이제는 ‘너랑 나랑 같이 살아야겠구나’하고 생각해요. 내 건강을 스스로 더 체크하게 되구요. TV의 건강 프로그램에서 종종 암 증상을 설명해주잖아요. 그럼 자가 체크를 해보고, 암으로 의심되면 검사를 받게 돼요. ■ 언제가 호스피스로서 가장 보람이 느껴집니까? 환자들의 기분 좋은 모습을 볼 때죠. 대화를 나누면서 내 얘기도 하고, 답답한 속내를 다 들어줄 때 환자들이 좋아하거든요. 환자들은 잠들 때 손만 잡고 있어도 굉장히 편안함을 느끼죠. 또, 전신 목욕을 시키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지만, 환자들은 기분이 좋아 웃을 때 저도 굉장히 보람 있고 행복합니다. 그래서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 호스피스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환자가 죽기 전까지 삶의 질을 높여주는 일이죠. 죽기 전까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주고, 가족 간에 불화가 있다면 풀어주는 일이에요. 또, 환자가 몸이 불편해 할 수 없는 일들을 도와주고, 가능하면 대신 해주기도 하구요. ■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못 잊는 환자가 한 분 있습니다. 가정으로 지원을 나가 만난 분인데, 제대로 거동을 못 할 뿐더러, 온몸이 부어 옷도 제대로 입을 수 없는 70 안쪽의 할머니였죠. 그분의 가족에게서 받은 충격이 잊혀지지 않아요. 원래 사람이 죽기 전에는 뱃속에 있는 배설물을 내보내고 죽잖아요. 그 분도 임종이 거의 임박해 깨끗이 치워 놓고 안아드리고 있는데, 남편과 아들이 들어왔어요. 그러더니, 아직 살아계신 분의 안전(眼前)에서 장례식장을 알아보고 있더라구요. 어디가 싸고 좋은지. 그때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어떻게 살아 있는 사람 앞에서 장례식장을 알아볼 수 있는지 납득이 가지 않더군요. 그 분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려요. ■ 자원봉사를 하며 겪는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자원봉사자들은 많아요. 돌볼 환자들도 많을 때에는 많다가도, 적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환자들이 호스피스라고 하면 저승사자인 줄 아는 경우가 많아요. 말기 환자를 돌보다 보니, 거부하는 분들도 있어요. 기독교 병원이라고, 미리 종교적으로 거부하는 환자들도 있구요. ■ 죽음을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일인데, 죽음에 대한 생각은 어떠세요? 사람들은 죽음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우리들은 지금도 죽음에 한 발자국씩 다가가고 있죠. 저는 학생들에게도 죽음에 대한 준비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본도 죽음 준비교육을 실시한다고 알고 있거든요. 항상 죽음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다면, 불의의 상황이 닥쳐와도 오히려 당황하지 않고 담담히 맞을 수 있잖아요.

■ “머리 자랐네요” “두피 마사지 시원해요” 다음 환자부터는 일이 그나마 ‘수월’해졌다. “머리 감으실 분 계세요”라며 여성환자들이 입실한 병실에 들어서자, 환자들은 문정순 씨와 이진주 씨를 보며 반가워했다. 봉사자들은 “머리가 어느새 많이 자랐네요” “어떻게 지내셨어요”라며 환자들의 안부를 물었다. 환자들 중에는 수술을 받아 거동이 불편한 사람도 있었고, 움직임이 자유로운 사람도 있었다. 문 씨와 김 씨는 그들의 형편에 맞게 세면기구를 조정해서 머리를 감기고 얼굴을 씻겼다. 그때마다 환자들은 “두피 마사지가 너무 시원하다” “잘해줘서 고맙다”며 감사하는 마음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그들은 머리를 감다가 봉사자의 옷에 튀는 비누거품에도 아주 미안해했고, 기자의 서툰 보조 실력(?) 탓에 시트와 환자복에 물이 튀어도 괜찮다며 오히려 격려하기도 했다. 문 씨와 김 씨는 “땀을 흘리며 일해도 환자들의 고맙단 인사에 힘이 난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 “아프면 짜증도 쉽게 나니 항상 배려해야” 몇몇 환자들은 머리카락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세발하는 과정에서 머리카락이 빠지자 속상해하는 모습이었다. 또한,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가 막 새로 나기 시작한 환자들도 머리카락 한 올에 예민해지긴 마찬가지였다. 문정순 씨는 “암 치료를 받다 보면 머리카락부터 빠지게 되니, 환자들이 민감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몸이 아프면 주변에서 조금만 건드려도 짜증이 나는 게 당연한 일”이라며 “환자들을 대할 때에는 항상 배려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수술을 받았다는 환자에게 어떤 수술이었는지 기자가 물었더니, 김진주 씨는 “호스피스 병실에는 환자가 어떤 수술을 받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며 나지막하게 주의를 준다. 환자를 배려한다는 취지에서다. 한 병실의 봉사를 마치고 잠시 쉬고 있으려니, 자원봉사자가 한 명 더 나타났다. 병동에서 이발봉사를 하는 윤혜숙 씨(53. 용산구 산천동)였다. 그는 용산 원효로 근처에서 미용실을 운영한다고 했다. 윤 씨는 “6명 정도 머리를 깎았는데 빨리 끝나서 왔다”며 “다른 봉사자들도 자신의 일이 먼저 끝나면 다른 팀의 일을 도와주러 간다”고 말했다. 윤 씨는 “내가 미용사라 환자들의 머리를 예쁘게 깎아주고 싶은데도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며 오히려 미안한 기색을 드러냈다. 팀에 인원이 늘자, 머리를 감기고, 세발 기구의 전원을 꽂았다 빼고, 샤워기를 들어주고, 사용한 방수천을 정리하는 등의 일들이 모두 자연스럽게 분담이 됐다. 이날 목욕·세발 팀은 환자 9명의 머리를 감기고 얼굴을 씻어주었다. ■ 바쁘고 힘들어도 봉사는 계속된다 오후 1시에 일이 끝나고 휴게실에 가니, 여기저기 흩어져 봉사를 하던 자원봉사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리고는 탁자에 둘러앉아 각자가 맡았던 일에 대해 환담을 나누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무개가 휴가라 이날 못 올 수도 있다더라” “아무개가 일 때문에 이날 못 온다더라”는 말도 섞여 있었다. 알고 보니, 이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직업을 따로 갖고 있었다. 김옥경 호스피스 팀장은 “호스피스 자원봉사자가 되려면 일정시간 전문교육을 수료해야 한다”며 “요즘에는 휴가철이다 보니 이따금씩 봉사자가 모자라 수급균형이 맞지 않을 때도 있다”고 고충을 전했다. 김 팀장은 “주부나 직장에서 은퇴한 분들이 많지만, 회사에 다니는 분들도 있다”며 “매주 하루 시간을 내는 일이 쉽지 않음에도 궂은 일을 마다 않는 호스피스 봉사자들을 보면 존경심이 앞선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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