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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벨트 해제와 녹색성장은 이율배반?

그린벨트·군사보호구역 대거 해제, 부동산 투기자본 몰릴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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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86호 박성훈⁄ 2008.09.30 15:59:59

정부는 공급위주의 부동산 정책을 고수하는 가운데 수도권 그린벨트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그린벨트 해제를 거론한 후 1주일 남짓 만에 발표된 내용이다. 국토해양부는 9월 19일 당정 간담회를 거쳐 중장기적으로 주택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고 서민용 주택의 공급을 확대다는 취지의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도심공급 활성화 및 보금자리주택 건설방안’을 발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당청 회동에서 “임기 중 무주택자를 없애겠다”며 서민용 주택공급 확대 의지를 강조했다. 이번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향후 10년 동안 500만 가구(수도권 300만 가구)를 건설해 현재 99.3%(수도권 94.6%, 1인가구 및 다가구 구분거처 반영)인 주택보급률을 2018년에는 107.1%(수도권 103.3%)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100㎢ 범위의 그린벨트가 해제된다. 이는 분당 신도시의 5배에 해당하는 넓이이다. 또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9월 24일 한국선진화포럼에서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해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서민용 주택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그린벨트는 다른 어떤 나라에도 없는 제도”라고 말했다. 또한, “집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린벨트가 ‘분노의 숲’”이라며, 그린벨트는 “후손이 걱정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규제완화, 부동산 가격 부추길 우려 부동산 시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도심 내 재개발·재건축 활성화, 그린벨트 해제라는 ‘호재’가 작용해 땅값이 크게 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땅값 상승이 주택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부동산 투기자본이 몰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제4정조위원회는 논평을 통해 “그린벨트 해제와 재개발·재건축 규제완화는 주택가격의 거품을 가져오고 주택투기를 불러올 요인이기 때문에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도 “토지 규제완화는 궁극적으로 부동산 가격을 낮출 수 있지만, 치밀하고 종합적인 보완대책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린벨트 난개발, 토지 투기는 불을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박승흡 대변인은 “국민의 주거안정이라는 정부의 목표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며 “인위적 경기부양으로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부동산 대란으로 이어져 경제 위기를 심화시키고, 정권의 위기로 나아가는 촉매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무주택 문제가 공급물량이 대량 확보된다고 해결된다는 순진한 접근은 이전 정권에서 이미 실패했다”며 “뜬구름 잡는 정책선전을 중지하고 공급위주의 주택정책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 여의도 72배의 군사구역 해제 이 같은 대규모 그린벨트를 해제한다는 발표 3일 만에, 2억1200만㎡의 군사보호구역을 해제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는 여의도의 72배에 달하고, 판교신도시(약 240만㎡)를 88개 건설할 수 있는 크기다. 판교에 총 2만9300호의 주택이 있는 사실로 미루어 약 260만 호를 지을 수 있는 면적이다. 약 775만명의 인구가 살 수 있는 새로운 신도시가 건설되는 셈이다. 환경정의시민연대 오성규 사무처장은 “땅투기가 횡행하고, 투기 목적으로 땅을 산 사람들은 다양한 방편으로 각종 개발사업을 추진하려 군불을 지필 것”이라며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개발이익이 발생하고, 땅투기꾼들이 대거 몰리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 토지제도는 투기에 가장 취약한 ‘용도지역·지구제’와 ‘건축자유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녹지를 택지로 용도변경할 수 있어, 부동산 비리가 벌어질 개연성이 높다. 오성규 사무처장은 “건축자유원칙을 채택하고 있으니 ‘내 땅 내 맘대로 개발한다’고 버티면 공공의 명분으로도 당해낼 재주가 없다”며 “이것이 바로 자유시장 질서에 땅을 무방비 상태로 내놓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번 개발로 훼손된 땅은 복원이 쉽지 않고, 복원한다 하더라도 값비싼 비용을 치러야 한다. 따라서 무분별한 토지 규제완화와 그에 따른 난개발은 후대에 그 부담을 떠넘기는 셈이라는 지적이다. ■ 그린벨트, 박정희 때 만들어져 김대중 때 해제 시작 우리나라의 그린벨트 정책은 한국전쟁 이후 폐허로 변한 국토와 60년대 산업화에 따른 도시팽창 등으로부터 녹지를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역대 정부는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각종 토지규제를 입법했고, 박정희 정부는 70년대에 그린벨트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고, 끝내 김대중 대통령 이후부터는 그린벨트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그린벨트 해제를 반대하는 사회여론으로 당시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물론, 환경평가를 거쳐 ‘풀 곳은 풀고, 묶을 곳은 묶는다’는 기준은 세웠으나, 환경평가 방법과 난개발 문제, 미해제지의 관리 등 난제들이 발생해 그린벨트 해제가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 수도권의 그린벨트는 수도권의 과밀과 집중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는 뇌관이라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참여정부에서는 그린벨트에 국민임대주택단지를 집중적으로 건설했고, 이번에는 그린벨트를 해제해 임대주택 등을 짓기로 한데까지 이른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수도권은 세계 제일의 과밀상태를 보이고 있다. 개발압력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이라는 제도를 통해 수도권의 과밀과 집중을 억제해 왔다. ■ “수도권은 살리고 지방은 죽이는 정책” 비판도 그런데, 그린벨트 해제에 이어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규제완화 포함) 현황을 보면, 경기도와 인천이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고, 서울 도심도 상당한 면적이 해제되었다. 지난해에 이미 미군부대가 떠나는 공여지에 대한 개발특별법이 마련되어 수도권 인근에는 많은 개발사업을 벌일 수 있는 여력을 갖고 있었다. 오성규 사무처장은 “이번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마저 수도권에 추가되면 수도권 과밀은 엄청난 속도로 심화될 것”이라며 “수도권 과밀·집중은 지방의 공동화·황폐화와 동전의 양면처럼 연결되어 있어, 결국 피해를 입는 쪽은 지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녹색성장’인가, 건설업 위한 ‘회색성장’인가 이명박 정부가 8월 15일 천명한 ‘저탄소 녹색성장’에서의 ‘녹색성장’은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환경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성장방식을 말한다. 하지만, 이번에 해제할 그린벨트는 ‘쓸모없고 훼손된’ 곳이라고 말하는 정부의 태도가 아이러니하다. 이명박 정부의 상수원 주변 공장입지 완화, 토지이용 규제완화, 농지 및 산지 규제완화, 골프장 규제완화 등의 정책이 녹지와 그린벨트를 쓸모 없는 땅으로 여기고 그 가치를 훼손할 것이라는 의구심이 불거진다. 또, ‘9·19 주택정책’에 대해, 미분양 주택을 외면한 채 공급만으로 주택시장이 안정될 수 없고 이명박 대통령이 주창한 ‘녹색성장’과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수도권 집값 상승으로 서민들의 고통이 심화되는 시점에서 투기 억제와 집값 안정을 통한 서민용 주택 확보는 절실하다. 하지만, 전국 주택시장은 2007년 말 아파트 미분양 20만 가구에 청약률 제로 등 ‘주택 과잉공급’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다. 그럼에도, 당시 건설교통부는 택지개발촉진법 시행령을 개정해 시행주체의 자격제한을 완화했다. 민간 건설업자들이 공공택지 사업개발권을 가질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준 것이다. 결과적으로, 서민을 위한다는 주택정책이 민간 주택 건설업체들의 공급특혜로 쏠릴 가능성이 커지게 된 것이다. 이번 ‘9·19 주택정책’ 역시 이 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는 지적이다. 녹색연합 오상훈 정책팀장은 “과잉수요 추정으로 도심고밀개발 등 수도권 과밀을 부추기고 대규모 그린벨트 해제를 기획하는 위험천만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녹지와 그린벨트를 ‘쓸모없는 땅’으로 보는 토건국가의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한 진정한 ‘저탄소 녹색성장’은 없다. ‘9·19 주택정책’은 수도권의 기득권을 연장하려는 속임수이며, 서민주택 안정을 명분으로 한 투기 조장이라는 지적이다. 부동산 시장 붕괴와 생태계 파괴, 과연 누가 이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언급한 후,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그린벨트 해제에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까지 제기됐다. ‘재개발·재건축’과 그린벨트·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는 서로 반대되는 정책이다. 오성규 사무처장은 “우리나라에 아직까지 주택과 공장 건설의 수요가 크게 남아 있다면 몰라도, 지방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면서 중견 건설업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고, 새만금 그 광활한 땅 70%를 산업용지로 쓴다면서 새로운 개발부지가 필요하다는 것은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제적으로도 유가급등과 미국 월스트리트의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경제 침체기에 들어서는 형국이다. 이는 시장 우위의 신자유주의의 종말이 조심스럽게 예견되는 시점이란 뜻이다. ‘기업 프렌들리’, 시장제일주의에서 벗어나, 성장 기조를 견지하면서 공급 물량이 아닌 투기 수요를 다스릴 시기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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