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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사채 쓰고 싶어서 쓰나” 서민금융 ‘돈맥경화’

2금융권 대출 뚝… 불법 사채시장에 내몰리는 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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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93호 성승제⁄ 2008.11.18 22:56:18

금융기관의 신용경색으로 대출 장벽이 높아지면서 신용등급이 낮은 금융 소비자들이 불법 사채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100%가 넘는 천문학적인 이자에 원금은커녕 이자도 갚기 힘든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극히 제한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일부 서민들은 불법 사채 사기에까지 노출돼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1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직장인 김모(남·36) 씨는 부모님 병원비와 생활자금 1500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A저축은행을 찾았다. 연봉 3000만 원에 신용등급도 8등급이어서 충분히 대출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 외로 1000만 원 이상은 힘들다는 답변을 들었다. 할 수 없이 나머지 돈을 구하기 위해 생활정보지에 나와 있는 무등록 대부업자에게 500만 원을 빌렸다. 선수수료 50만 원을 제하고 연 이자율이 600%를 넘지만, 한 달만 쓰면 갚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우선 신청을 했다.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대부업체에서 빌린 돈의 월 이자가 300만 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결국 회사도 그만두고 막노동과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돈을 모았지만, 이자 갚기에도 벅찼다. 김 씨는 “불법 사채가 이렇게까지 무서운 줄 몰랐다”면서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고 울먹였다. #2 서울에 거주하는 회사원 김모(35) 씨는 A신용카드사로부터 일시 결제한도를 400만 원에서 100만 원, 현금 서비스 한도를 15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줄인다는 통지를 받았다. 연체가 없고 신용도에도 변화가 없지만, 최근 사용실적이 없어 신용한도를 줄인다는 내용이었다. 은행권의 원화 유동성 경색은 금융당국의 감독기준 완화와 한국은행의 은행채 매입으로 풀릴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제2금융권의 자금경색은 점차 심화되고 있다. 신용카드사와 할부금융사 등 여신전문회사는 자금줄이 막혀 대출을 늘리기가 쉽지 않고, 저축은행도 고금리 예금을 통해 자금을 유치하고 있으나 유동성 확보를 위해 대출은 되레 줄이고 있다. 특히, 서민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는 금융 소외자들이 대거 사금융 시장으로 몰리면서 금융 당국에 피해사례를 신고하는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은행과 달리 수신 기능이 없는 할부금융사와 신용카드사들이 겪고 있는 ‘돈가뭄’은 심각한 수준이다. 신용시장 경색으로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자금조달처인 회사채와 기업어음(CP)·자산유동화증권(ABS) 등의 발행이 막힌데다 은행 차입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20여 개 할부금융사는 올해 7월에 6172억 원, 8월에 5910억 원, 9월에 7398억 원의 회사채를 발행했으나, 지난달에는 발행규모가 1450억 원으로 급감했다.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기관투자자들이 유동성 확보에 나서면서 할부금융채에 대한 수요가 뚝 끊어졌기 때문이다.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다 보니 자동차 할부와 신용대출·리스 등 할부금융사의 주요 영업이 크게 위축된 상태다. 할부금융사들은 잇따라 카드론 한도를 줄이고 있고, 자동차 할부영업도 축소하고 있다. 카드사는 그나마 채권발행이 가능하나, 금리가 8% 중반까지 뛰어올랐고 발행규모도 줄었다. 지난달 카드채 발행규모는 6400억 원으로, 전월 대비 25.6%나 감소했다. 이에 따라 신용카드사의 대출 기능도 약화되고 있다. 삼성카드의 작년 4분기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일반대출 등 금융사업 규모는 4조1000억 원으로 전분기 대비 9.3% 늘었지만, 올해 1분기와 2분기에는 각각 4.3%, 4.9% 증가에 그쳤고, 3분기에는 증가율이 2.7%로 뚝 떨어졌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은행채는 당국의 지원으로 어느 정도 소화가 될 것으로 보이나, 다른 금융채는 기관투자자들의 수요가 뚝 끊긴 상태”라며 “여신전문회사들의 유동성이 악화될수록 신규대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서민 금융기관인 저축은행은 8%대 고금리 예금으로 시중자금을 끌어 모으고 있으나, 대출은 오히려 줄이고 있다. 저축은행들의 10월 말 기준 총수신은 58조5000억 원으로 9월 말에 비해 1조3383억 원 늘었지만, 총여신은 54조3000억 원으로 같은 기간 6424억 원 증가하는데 그쳤다. 올해 3월부터 9월까지 저축은행으로의 자금유입 규모는 월 평균 5106억 원, 같은 기간 월평균 신규대출은 7230억 원으로, 수신규모에 비해 여신규모가 컸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자금시장 경색이 지속됨에 따라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한 반면, 신규 대출은 신중해지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 대형 대부업체도 신규대출 ‘뚝’ 문제는 2금융권 자금난이 심화되면서 서민들의 자금줄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대부업과 불법 사채시장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까지 신용등급을 관리해 2금융권에서 20%대 대출이 가능한 직장인들마저 2금융권의 자금난으로 어쩔 수 없이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리는 일도 속출하고 있다. 사실상, 신용등급 기준으로 1등급에서 5, 6등급까지는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5, 6등급에서 8등급까지는 이들 서민 금융회사를 주로 이용한다. 신용도가 9~10등급인 경우 대부분 제도권 금융회사를 이용할 수 없다. 그나마 불법 채권추심이 상대적으로 덜한 대형 대부업체도 자금조달이 막혀 신규대출 규모를 크게 줄인 상태다. 채권을 발행할 수 없는 대부업체는 저축은행이나 할부금융사에서 자금을 조달하는데, 이들이 최근 들어 대부업체에 대출을 해주지 않고 있다. 대부소비자금융협회에 따르면, 45개 중대형 대부업체의 월간 신규대출은 7월 1886억 원에서 8월 1627억 원, 9월 1105억 원으로 급감했다. 서민들이 생계형 급전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창구가 크게 위축됨에 따라 불법 사채 이용자가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운영하는 사금융피해상담센터에서 접수한 상담건수는 8월 253건에서 9월 321건, 10월 384건으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 중 고금리 피해 상담이 8월 35건(13.8%), 9월 46건(14.3%), 10월 59건(15.4%)으로 점차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월평균 250건 정도이던 사금융 피해 상담이 최근 급증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충분한 유동성 공급으로 은행과 서민 금융기관의 자금경색을 풀어 서민들의 대출 문턱이 낮아지게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영세업자들도 대출 막혀 죽을 맛 자영업자와 영세업자·농어업인 등은 더 심각하다. 2~3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근근이 사업을 해 나가고 있는 영세업자들은 고물가와 경제불황에 직원들 월급조차 제때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물품 구입과 직원 월급을 위해 은행 대출은 더욱 절실하다. 하지만, 신용등급도 낮고 은행에 내세울 만한 재무제표도 없어 사실상 1금융권에서 대출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이다. 여기에, 2금융권마저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면서, 사실상 대부업계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자영업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떨이’에 ‘대박 세일’ ‘점포정리 세일’까지 자영업자들의 눈물겨운 몸부림에도 경기불황 속에 폐업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누적 창업건수는 4만9349건인데 비해 휴·폐업건수는 18만1043건으로 4배 가까이 많다. 특히, 폐업건수가 지난해 동기와 비교해 3000여 건 늘었다. 종로에서 33㎡(10평) 규모의 주점을 하다 문을 닫은 김모(34) 씨는 “집에 들어갈 때마다 돌이 갓 지난 어린 딸과 아내 얼굴을 도저히 쳐다볼 수 없다”며 “아내 얼굴을 볼 면목이 없다. 신혼집 전세금을 빼 가게를 냈는데, 이렇게 사업을 접게 돼 뭐라 할 말이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자금이라도 제대로 돌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은행 창구에 대출신청을 하면 번번이 거부당해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울먹였다. 한편, 이에 대해 정부는 영세 자영업자와 농어업인·저소득층에 대한 재정적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언제 어떻게 지원이 되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정부는 우선, 영세 자영업자의 일시적 자금난 해소를 위한 긴급 경영안정 자금을 크게 늘려 지원 대상을 두 배(1만4000곳→2만9000곳)로 확대하고, 창업 지원·교육·컨설팅·전업(轉業) 자금도 지원한다. 또, 영세 자영업자를 포함한 소규모 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를 낮추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카드사별로 자체 운용 중인 원가산정 표준안을 더 정교하게 설계하고, 수수료가 합리적으로 결정되도록 하겠다는 의지다. 농어업인의 경영 부담을 덜기 위한 각종 정책자금도 확충된다. 농업종합자금은 1조3000억 원에서 1조8000억 원으로, 영농자금은 2조9000억 원에서 3조6000억 원으로, 영어자금은 1조6000억 원에서 1조9000억 원으로 각각 확대된다. 우량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은행의 해외채무 지급보증에 대한 정부와의 약정(MOU)을 근거로 은행들이 대출 만기를 연장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주택금융공사에 추가로 1000억 원을 출자해 주택담보대출의 금리를 내리도록 하고, 변동금리 대출을 고정금리로 전환하도록 유도한다. 장기 고정금리형 모기지론의 공급도 늘린다. 이 밖에, 기초생활보장수급 대상자 확대, 저소득층 긴급 복지·식량·의료 지원 확대, 저소득층 대학생을 위한 장학금·학자금 지원 확대 등도 추진한다. 은행업계의 한 전문가는 “저소득층 지원은 대부분 은행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시중은행들은 대부분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연일 하락하고 있고 건전성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며 “당장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언제, 얼마만큼 지원이 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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