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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화랑]장순업, ‘자연의 코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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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27호 편집팀⁄ 2009.07.21 15:52:10

서성록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장순업의 작업실은 경기도 광주 곤지암에서 가까운 평화스런 도척면 산기슭에 자리를 잡았다. 작업실 뒤쪽으로 통유리로 된 대형 창문이 나 있는데, 큰 광주리처럼 산의 모습을 그 널찍한 품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속절없이 바뀌는 계절의 변화를 창문을 통해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자연과의 밀회를 즐기려는 심미안의 소유자 장순업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작업실 곁으로는 시냇물이 흐르고, 그 곁으로 조촐한 원두막을 세웠다. 그림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한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시간을 제외하곤, 작업실에서 전지도 하고 잔디도 다듬고, 예고 없이 집 근처로 찾아드는 두루미나 나비 등과 가까이 하면서 전원생활을 해간다고 한다. 곤지암에 들어온 지 20년이 지났으니 사실상 시골 사람이요, 이곳 주민이나 다름이 없다.

장순업은 자신의 회화를 ‘자연의 코러스’라고 소개한다. 바깥으로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숨은 그림 찾기’로 부른다 ―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동식물이 서식한다. 그림의 모티브로 등장하는 대상은 두루미·나비·물오리·벌·잠자리 등이다. 새와 곤충들이 그림에다 둥지를 틀고 있는 셈이다. 식물들도 떼거지로 모여 있다. 진달래·목련·수련·개나리·해바라기·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있다. 식물원에 와 있는지 아니면 동물원에 와 있는지 착각을 일으킨다. 그처럼 동식물의 이미지들이 그의 작품에 ‘착석’해 있다. 각종 생물들의 이미지들은 회색 빌딩 숲과 뿌연 스모그 속에서 고통받는 도시인들을 기쁘게 맞아준다. 또한 자연에서 일어나는 세세한 표정을 포착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온갖 군영(群英)의 꽃들은 자연의 미를 노래하는 교향악 같고, 지나가는 새들의 날갯짓에 파란 하늘이 술렁이며, 웅크린 숲은 햇살의 선명한 들이침으로 금빛의 환희로 바뀌고, 한적한 오솔길을 따라 드러누운 낙엽은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며 속삭인다. 작가는 시골 생활 가운데서 습득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노래하고 있었다.

그는 말랑말랑한 감각에다 화면을 능숙하게 다루는 조형 구사력까지 겸비한 화가이다. 붓놀림, 색깔 배합, 화면 구성에서 그의 뛰어남을 확인할 수 있다. 막힘없이 이어지는 선의 흐름과 색채는 마치 자동차가 고속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캔버스 위를 쏜살같이 달린다. 특히 무형의 캔버스에서 유형의 이미지를 뽑아내는 솜씨는 보는 재미를 더한다. 마치 어린이가 크레파스를 들어 도화지 위에 쓱쓱 문질러 뜻하지 않은 형태를 얻어내듯이, 작가는 붓을 잡으면 온갖 표정을 얻어내는 것이다. 머릿속에 스케치북을 짊어지고 다니는지, 붓만 잡으면 이미지를 쏙쏙 잘도 뽑아낸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타고난 솜씨를 자랑한다. 그림 자체가 속성상 ‘직관’에 크게 의존하므로 그의 경우는 ‘순간적인 판단’과 ‘감수성’이 유난히 강조된다. 아마 한동안 추상 작업을 한 것이 큰 도움을 주지 않았나 짐작된다. 왜냐하면, 그의 그림에서는 일반적인 구상 회화에서 발견되지 않는 점들이 찾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질료의 민감성 부분에서 그렇다. 화면을 마치 밭고랑 일구듯이 파내고, 씨를 뿌린 다음 덮고, 양분을 주고, 물을 먹이듯 소정의 결과에 이르기 위해 무수한 작업 공정 및 수법의 실험을 거치고 있다. 구체적으로 화면 질감을 내려고 모델링 컴파운드나 돌가루를 부착하고, 더 질박한 효과를 얻기 위해 황토를 바르거나 두꺼운 한지를 서너 겹씩 발라 올린 다음에 작업을 착수한다. 수법도 굉장히 다채롭다. 단순한 그리기를 넘어서, 스프레이로 물감을 뿌리고, 담벼락을 청소하듯이 나이프로 긁고 떼어내거나, 서양화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먹으로 발묵효과까지 시도한다. 서양화지만 수묵화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발묵과 관련이 있다. 어떤 작품은 판목을 이용해 캔버스에다 ‘탁본’ 수법으로 찍어낸 작품도 있다. 작가는 마치 ‘수법의 백과사전’인 것처럼 온갖 수법을 불러들여 화면을 다채롭게 꾸며간다. 다음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화면 구성이다. 화면 구성은 공간을 얼마나 잘 운영하는가에 따라 판가름된다. 보나르의 말이 이를 입증한다. 구성은 스테이지 위에 올려진 드라마와 같아서 주연과 조연이 있으며, 무게가 모이는 중심이 있고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주변부로 나뉘어져 있다. 이 둘의 관계를 맛깔스럽게 버무릴 줄 알 때에만 훌륭한 작품이 나온다. 흥미롭게도 장순업의 작업은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듯 구성에서 빼어남을 과시한다. 주연과 조연이 갈라지고, 무거움과 가벼움, 채움과 비움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비율과 크기, 공간 운영의 측면에서 그는 ‘달변가’ 혹은 ‘노련한 문장가’를 방불케 한다. 게다가 작가는 작품마다 구성을 다르게 연출한다.

그의 작업은 색과 선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루기 힘든 세선(細線)을 거뜬히 소화해내고 있다. 이런 선이 서예에서 유래되었는지 드로잉에서 유래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선 놀림이 유려할 뿐 아니라 율동적이라는 점이다. 사물의 형세를 포착하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화면에 율동감을 더하기 위한 것도 있다. 추상 회화처럼 선이 독자적인 의미를 갖지는 않지만, 선은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조형 인자로서 자리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폭이 500호가 되는, 춤사위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좌우에 각 인물들이 장구를 두드리며 흥겹게 춤을 추는 동작을 옮긴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주제는 ‘춤꾼의 이미지’에 있기보다는 ‘유희’나 ‘율동’에 더 가깝다. 그만큼 붓의 놀림이 강조되어 있다. 물론 화면에서 보이는 것은 색의 흐름이지 선은 아니다. 그러나 조금 멀리서 보면 색의 흐름이 아니라 하나의 선으로 틀 지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큰 평붓으로 단번에 내리그은 작품이다. 선의 흐름만으로 작품을 완성시킨 호쾌한 작품이다. 그런가 하면, 역시 500호 남짓 되는 연못을 소재로 한 작품은 순전히 먹물을 뿌려서 만든 작품이다. 오리 떼가 유유히 물 위에 노니는 장면을 담았다. 이때 역시 선적인 흐름이 화면 전체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화면 우측의 희미한 나무줄기나 좌측 상단의 수풀도 간략한 선으로 암시되어 있다. 그의 작품은 선이 강조되는 편이지만, 선 자체로 작품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선 곁에는 색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고, 색과 어울려서 한 점의 환상적인 그림이 탄생된다. 그의 선이 지닌 속성을 ‘무위한 자연성’(신항섭)으로 요약한 바 있다. 선을 대상을 묶어두는 용도로 두기보다, 자유롭게 풀어두고 미완성의 상태로 내버려둠으로서 선을 화면의 굴레에서 해방시켰다는 얘기다. 장순업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저버리지 않고 뚜벅뚜벅 자신의 회화세계를 걸어가고 있다.

장 순 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 현재 한남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 ·개인전 2005 제41회 개인전, 일본 미술세계(도쿄전자) 2003 제39회 유아트스페이스 초대 개인전 2000 제38회 개인전(예술의전당) 1998 제20회 개인전 (조선일보 미술관) 1995 제16회 개인전 (예술의전당, 서림화랑, 서울) 1994 제15회 스와송 시립미술관 초대 개인전 (파리, 프랑스) 1982 제10회 초대 개인전 (광채갤러리, 도쿄) 1975-79 제 7~8회 신세계 미술관 초대전 제 1~3회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개인전 ·단체전 2008 베이징 비엔날레-올림픽 기념(베이징) 2005 베이징 비엔날레 2004 뉴욕 아트페어전 초대전 2003 독일 현대미술 초대전 2002 일본 문화원 초대 개인전 2001 긴자 센타포드 갤러리 초대전(일본) 한국현대미술전, 21세기로 가는 한국미술(예술의전당) 2000 동북아 평화미술제(독일), 독일 현대미술전(독일) ·수상 국전 특선 4회, 제28회 국전 문화공보부 장관상(국전 추천, 초대작가) 제3회 한국미술대상전 특별상 MANIF 98 서울 국제아트페어 대상 수상 5.16 문화상 대한민국 미술대전, MBC 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역임 단원미술제, 안견미술대전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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