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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최태선 교촌 F&B(주) 경북북부지사장

“나를 사랑하는 만큼 도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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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33호 이우인⁄ 2009.08.31 18:21:18

불우한 환경 속에서 여자로서, 또한 아내와 어머니의 신분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자신의 고난과 성공 스토리를 책으로 펴낸 최태선(45) 교촌 F&B(주) 경북북부지사장. 최 지사장은 1965년 6월 8일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용호리에서 늦둥이로 태어났다. 당시 최 지사장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이는 각각 51세와 41세. 그러나 최 지사장이 태어난 5년 뒤, 어머니는 몇 년 동안 병마와 싸우며 시름시름 앓던 끝에 45세 지금의 지사장과 같은 나이에 5살짜리 늦둥이 딸을 남겨두고 눈을 감는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의 외로움과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늘 나만 왜 이렇게 불행할까, 나와 비슷한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위안이라도 될텐데…. 하루하루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됐어요.” 죽음을 동경할 만큼 어린 시절이 힘들었다는 최 지사장. 경제 능력이 없던 50대 아버지와의 친척집 더부살이는 어린 나이에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큰 상처가 됐다. 당시 그의 소원은 “어서 빨리 어른이 됐으면”이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어른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그런 고민을 하며 5살짜리 어린 소녀의 자아의식은 강고해졌다. 중학교는 3살 터울 언니가 벌어준 학비로 간신히 졸업했지만, 고등학교 입학은 좌절됐다. 언니에게 더 이상 신세를 질 수 없었던 최 지사장은 17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18살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방송통신고등학교는 학생이 혼자 라디오를 들으면서 공부하는 학교였다. 지금의 교육방송과 같은 개념이다. “말이 고등학교지 궁금한 점을 물어볼 선생님도 없고 제대로 공부할 여건은 전혀 안 됐어요. 하지만, ‘훗날에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야. 지금을 회상하면서 웃을 날이 올 거야’라는 희망을 품고 버틸 수 있었습니다.”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들어간 2년제 김천전문대학을 그는 22살에 졸업했다. 당시 그의 생각은 이랬다. “언젠가 이 전문대 졸업장이 요긴하게 쓰일 날이 올 것이다.” 이와 같은 그의 믿음은 10여 년 뒤에 그대로 실현된다. 전문대학을 졸업한 그는 24살 되던 해에 형부의 소개로 만난 남자와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결혼은 그에게 삶의 돌파구가 아닌 짐이었다. 외로움은 덜었지만,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 한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자신에게 부여되는 삶의 역할이 갑자기 많아진 것. 또한, 미래에 대한 꿈이 남들보다 컸던 사람으로서 이 모든 짐을 희생정신으로만 받아들이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26세가 되던 해에는 삶의 전부였던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 그에게는 삶이 고통과 충격의 연속이었다. 생계수단으로 시작한 보험영업은 고되기만 했다. 심한 모욕을 당할 때도 부지기수였고, 만삭의 몸으로 영업할 때는 스스로도 위축됐다. 그러나, 그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지금은 당신들에게 굽신대고 있지만, 나중에는 당신들이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위치에 올라 있을 테니까”라는 믿음이 그를 당당하게 만들었다. 성실성을 인정받은 그는 대한생명의 교육담당이 된 후 다시 학구열을 불태운다. 37살에 아이 둘을 둔 엄마로 서원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41살에는 충북대 경영대학원 석사(MBA) 과정을 졸업했다. 그리고 45살에는 청주대학교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는데 성공했다. 40대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따겠다는 목표를 이룬 셈이다. 이 와중에도 그의 업무는 계속됐다. 대한생명의 사원교육 담당, 교촌치킨 가경점의 CEO, 대한생명 청원영업소 소장, 그리고 지금의 교촌 F&B(주) 경북북부지사장이 되기까지 그의 인생은 늘 최고의 속도로 달리지 않으면 낙오되고 마는 100m 육상경기와 닮았다.

“항상 준비하는 자에겐 언젠가 기회가 온다는 사실을 살면서 확인했어요. 제 삶은 끊임없는 도전 그 자체였죠.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자신을 혹사하고 채찍질하고 실천하면서 뒤돌아볼 겨를 없이 내달리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남들보다 빨리 인생의 성공을 이룬 최 지사장. 그는 올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교촌치킨의 신화 최태선의 아름다운 변화>(야누스 펴냄)를 펴냈다. 자신의 성공 스토리가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이처럼 어려운 환경에서도 여성의 본보기로 성공을 이룬 최태선 지사장과 사옥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자수성가한 인물답게 인터뷰 내내 표정과 목소리, 동작 등에서 강한 힘이 뿜어져 나왔다. 다음은 일문일답. 책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워낙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 살다 보니 이렇게 살아온 이야기를 나중에 책으로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저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다른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었는데, 제가 어렵게 살아온 사실을 잘 아는 석사 동기들이 책을 써보라고 조언해 이렇게 용기를 내었습니다. 글을 쓸 시간은 있었습니까? 1년 정도 집필 기간이 필요했어요. 당시에는 교촌치킨의 가맹점을 관리하면서 낮에는 일하고 새벽 3시에 일어나 5~6시까지 두세 시간씩 매일 글을 썼어요. 이야기를 정리할 때가 되어서는 밤에도 집중적으로 시간을 내서 썼구요. 대한생명에 다닐 때부터 나중에 고생담을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기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평소 월급봉투와 활동일지 등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죠. 책 내용의 반 정도는 제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일들이랍니다. 시작은 남보다 늦었지만, 성공은 남보다 빠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위치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기분이 남다를 것 같군요. 정말 암담하고 또 암담했죠. 깜깜하고 긴 터널을 혼자서 빠져나온 기분입니다. 제 과거는 칼로 뼈를 도려내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정말 힘들었어요. 일하면서 공부하느라 남들처럼 놀아본 적도 없으니 말이죠. 지금은 “해냈다. 최태선, 너답다!”란 기분이 들구요. 저는 저 자신을 믿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못 해도 저는 할 수 있다는 각오를 늘 갖고 있었는데, 정말 생각대로 된 것 같아요. 그렇다면, 지금은 경제적ㆍ시간적 여유가 생겼나요? 이를테면, 자녀들과 함께 할 시간이 많이 생겼다든가…. 과거에 비해 여유는 많이 생겼지만, 아이들과 놀러 갈 시간은 여전히 없습니다. 아이들이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 강아지를 데리고 동네를 한 바퀴 돌거나 뒷산에 오르거나 둘 중 하나죠(웃음). 휴가는 보낸 적이 있나요? 아뇨. 여름휴가조차 보내본 적이 없습니다. 그 시간에 공부를 하거나 책을 쓰거나 개인적인 일에 몰두하곤 했죠. 왜냐하면, 오늘 하루를 쉬면 후유증이 생기고, 더 편해지고 싶고, 남들 따라 놀고 싶어지거든요. 저는 남들이 놀 때 일해야 하고, 남들이 일할 때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일 중독 같은데, 건강은 괜찮습니까? 우리 육신은 어차피 죽으면 편안해지기 때문에 살아 있을 동안은 일을 해야 한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어요. 저 역시 살아 있는 동안은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힘들어도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이겨냈죠. 지금 이렇게 앉아 있는 것도 기분이 편하지 않습니다(웃음). 공부하는 엄마이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소홀한 점이 없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자녀들이 엄마를 원망하진 않나요? 어떨 때는 엄마가 자랑스럽고 좋다가도 다른 친구들의 엄마들처럼 잘해주지 못할 때는 불평불만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교육을 시키죠. “엄마는 어릴 때 어렵게 살아서 꿈을 이뤄야 하니 이해해다오. 지금까지 못 해준 건 나중에 잘해줄테니 참자”구요. 그러면 아이들도 이해해줍니다. 자녀들의 성적은 어떤가요? 공부는 잘합니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더군요. 공부하라고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도 말이죠.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실패할 때도 좌절할 때도 당연히 있다” 등의 조언은 간혹 해줍니다. 박사학위 취득까지 교육에 대한 열망이 대단한데, 그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함부로 살아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제 사전에 후회란 말은 없습니다. 과거를 돌아봐도 후회할 일이 없어요. 더 열심히 할 수 없을 정도로 제 몸을 혹사했으니까요. 죽는데 연습과 연장전은 없기 때문에 이왕이면 마무리를 좋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만큼 도전해야 합니다. 부정적이었던 과거의 마인드가 긍정적으로 바뀌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군요. 고통은 결혼 후 대한생명에 들어가서도 이어졌어요. 정말 바닥 인생이었죠. 언젠가는 사람 대접을 받자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런데, 교육담당자로 발령이 나던 32살 때부터 제 인생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공부에 도전을 하게 됐으니까요. 자신의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고통스러울 고(苦)자입니다. 계속해서 가치 있게 살려면 고통은 계속될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인물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아버지입니다. 제 아버지는 정말 특별한 아버지였습니다. 저에게 항상 바른 모습을 보여주고 바른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아버지라기보다는 친구 같은 느낌이 강했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하늘이 ‘핑’ 도는 것을 봤어요. 남편과 딸을 남겨놓고 아버지 옆에 묻히고 싶었죠. 묻히지 못해 지금도 원통합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어도 아버지 한 분만 있으면 마음이 따뜻하고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아버지는 저를 생각하는 마음이 다른 아버지들보다 특별했다고 생각해요. 아버지가 51살에 제가 태어났고, 제가 5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그 나이에 혼자 키우기가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인생의 롤 모델은 있었습니까? 롤 모델은 특별히 없었어요. 그저 방송에 나오는 강사들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습니다. 저도 방송에 나가 제 인생 이야기를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한테 동기부여가 되어주고 싶어요.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데, 향후 목표는 무엇입니까? <아침마당> 같은 방송 프로그램에 나가서 강의를 하는 일이죠. 현재는 대학교에 나가 강의를 하고 있는데, 정말 보람되고 해냈다는 삶의 성취감을 느껴요. 특히, 올해는 책도 두 번 내고, 출판기념회도 열고, 강의도 나가고, 박사학위도 땄기 때문에 성취감을 많이 느낍니다. 이제는 좀 더 넓은 곳에 나가서 많은 이들에게 제 삶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물론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방송에 나와 강의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도전할 수 있게끔 열정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의 젊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우리의 고통은 나이가 젊다고 돈이 많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생 계속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고통이 이어진다는 전제하에 살면 삶이 조금은 더 쉬워지지 않을까요? 또, 좋은 일 나쁜 일 힘든 일 가릴 것 없이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요. 적성 따지면서 재니까 안 되는 겁니다. 저라고 보험설계사 일을 하고 싶었을까요? 즉, 현실의 일을 열심히 해서 고난에서 벗어나란 뜻입니다. 최태선 지사장의 꿈은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신념을 전하는 일이다. 단 한 번도 마음먹은 일을 이루지 못한 적이 없다는 그는 이 꿈 역시 꼭 이루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최 지사장의 양 볼에 살짝 패인 보조개가 밝은 미래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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