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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에 올라 북치고 노래하며 외치는 ‘또 다른 희망’

동두천에서 제주까지 7개 도시 ‘희망 코리아’ 콘서트 여는 장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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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33호 박성훈⁄ 2009.08.31 18:20:18

“요즘 사람들을 보면 힘이 없어 보여요. 희망을 잃어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듭니다. 이제는 희망을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할 때가 됐어요. 희망은 별안간 성취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그 희망이 싹트는 것입니다.”(배은주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대표) 희망. 느낌은 좋다. 밝은 미래의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는 단어이다. 당장 힘들어도 내일의 행복을 기대하며 사는 게 현대인의 인생이다. 하지만 의미가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추상적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입에 올려 이제는 식상하게마저 느껴지는 단어이다. 그래서 희망이란 말은 때때로 위기를 맞은 세태 속에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입에서 나오는 진정성도 근거도 없는 낙관론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희망 고문’이란 말도 생겼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말이 장애인들이 사회를 향해 던진 메시지라고 한다면 어떻게 들리는가? KBS ‘장애인가요제’에서 입상한 장애인 예술인으로 구성된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이 전국 7개 도시 순회공연을 준비하고 있는데, 콘서트의 이름이 바로 ‘드림 콘서트-희망 코리아’이다. 대다수가 지체장애인인 이들은 8월 28일 오후 5시 경기도 동두천 시민회관 무대를 시작으로 경남 마산, 충북 충주, 서울, 대전, 제주, 경기 고양시 등 7개 도시를 차례대로 방문해 공연을 무료로 펼친다. 순회공연 준비를 총괄하는 배은주 대표는 “동두천에서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우리 단원과 관객 모두가 함께 어려움을 극복할 힘을 얻자는 취지에서 준비한 공연”이라며 “2002년 월드컵 당시처럼 코리아를 외쳤던 기운을 살리자는 의미에서 여러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공연 때만큼은 함께 어우러져 하나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휠체어 없이는 거동조차 못할 정도로 불편을 떠안고 사는 이들이 두 다리로 편안한 삶을 사는 일반인들에게 던지는 ‘희망’이란 단어는 자못 비장하게 들린다. “둥둥둥…얼쑤” 첫 지체장애인 난타팀 지난해 10월 ‘세상의 빛이 되는 노래’라는 옴니버스 음반을 발매한데 이어 ‘드림 콘서트’를 개최한 바 있는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은 이번 공연에서 지체장애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난타공연을 펼친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창단된 ‘빛드림 휠체어 난타팀’은 정유미(32·여·지체장애 1급), 임윤희(28·여·지체장애 1급), 이광현(46·지체장애 2급), 김현경(47·여·지체장애 2급) 김명희(45·여·지체장애 5급) 등 5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세 명이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 임윤희 씨는 대전에서 올라와 공연에 참여하고 있다. 사물놀이에 능한 이광현 씨는 인천에서 ‘이광현과 퍼포민트’란 동아리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1년 인천시 모범장애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김현경 씨는 현재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유명 풍물패 ‘잔치마당’의 나연임 씨로부터 사사한 이들이 선보일 난타는 전통 난타이다. 처음에는 잔잔한 리듬과 가락으로 시작돼 점점 격정적이고 박력 넘치는 북소리로 넘어가 절정으로 이어진다. 중간에 고수들의 옷이 바뀌는 퍼포먼스로 보는 재미도 더했다. 퓨전 난타에서 볼 수 있는 현란한 춤사위는 없지만, 심장을 울리는 듯한 북소리가 전통 가락과 어우러져 색다른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허리 아파도, 연습실에서 쫓겨나도 계속된 난타 연습 빛드림 휠체어 난타팀이 북을 가지고 무대에 서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공연에 착수하는 순간부터 갖가지 난관들이 예술단 앞을 가로막았다. 이렇다 할 연습실 한 칸 구하기 힘들었던 점은 그들이 겪은 큰 어려움 중 하나였다. 매주 목·금요일 저녁 5시만 되면 연습실에 모여 북을 쳐대니, 아무리 방음장치를 잘 해놓아도 북소리가 밖으로 새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주변에서 민원을 제기하는 통에 대실 값을 치르고도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난타팀을 받아준 곳은 서울 화곡동의 경향교회 교육관이었다. 건강상의 문제로 중도에 멤버를 교체해야 하는 아픔도 겪었다. 멤버들 모두가 난타는 처음인데다 장애인으로서 격한 동작들을 소화해내기에는 신체에 많은 무리가 따랐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은 상체 근육이 발달했지만, 난타의 필수인 허리 힘이 약하다. 무리하게 관절과 근육을 사용하다 보니 기어이 탈이 나고 만 것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팀원 3명이 열외하면서 지난 5월에는 오디션을 통해 새 단원 영입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는 처음부터 다시 팀워크를 짜야 함을 의미한다. 신입 단원도 난타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에 레슨을 다시 시작해야 함은 물론이었다. 공연이 3개월 가량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5개월을 준비한 공연을 처음부터 준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배은주 대표는 “공연 준비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애를 먹었다. 난타를 포기할지 갈등도 했지만, 이미 시작한 일이니 끝을 봐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북채도 잡아보지 못한 사람들을 북채를 잡게 해서 다시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현재 확정된 멤버는 최상의 호흡을 유지하고 있다. 연습 중에는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멤버가 추가 탈락할 위기에 빠질 뻔하기도 했다. 난타팀의 리더인 정유미 씨는 격렬한 동작으로 류머티스 관절염이 악화돼 병원 치료를 받게 된 것이다. 당시 의사는 “난타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권유했지만, 정 씨는 공연을 포기하지 않은 채 잠깐 휴식을 갖고 재기했다. 난타 가락이 쉽지 않아 외우는데 애를 먹기도 했다. 팀원은 연습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을 반복 시청하거나, 북을 집에 가져가서 연습을 하는 등 각자 방식대로 연습을 이어갔다. 여름 휴가도 반납한 채 말이다. 반복되는 연습을 강행한 결과 지금은 작품을 완성했다. 국내에 설 무대 없던 유학파 장애인 성악도 데뷔 전체 공연시간에서 난타가 차지하는 비중은 1/7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공연에서 난타와 별도로 눈여겨볼 부분이 바로 장애인 성악가 유현숙 씨의 크로스오버이다. 지체장애 2급인 유 씨는 이탈리아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체코와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공연 경험도 있는, 장애인 중에서는 흔치 않은 재원이다. 그런데도 국내에서는 이번 순회공연이 유 씨의 데뷔 무대이다. 사실, 지체장애인이 우리나라에서 성악을 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장애인을 세우고자 하는 무대가 없는 탓이다. 그래서 해외에서 열심히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할 곳이 없다는 점은 장애인 문화예술인에 대한 낮은 사회인식을 방증한다. 유 씨도 이 같은 장벽에 부딪혀 실의에 빠진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에 합류하면서 그에게 설 무대가 마련됐다. 크로스오버를 맡은 유 씨가 이번 공연에서 예술가의 날개를 달게 될지 주목된다. KBS 백승철 성우의 사회로 진행되는 이번 콘서트에는 성악가 최승원 씨가 특별 게스트로 출연한다. 또, ‘빛된 소리’ 중창단의 옴니버스 앨범 ‘세상의 빛이 되는 노래’ 수록곡과 함께 ‘한국체육대학교 특수학과’ 학생들의 랩과 댄스가 어우러진 퍼포먼스가 펼쳐질 예정이다. 배은주 대표는 “예술은 눈과 귀만 즐겁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마음에 감동을 줘야 한다. 감동이 없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 감동을 주는 예술단이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국을 순회하는 드림 콘서트에 와서 자리를 메워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만, 공연이 관객과 출연진 모두에게 평생 남을 만한 좋은 추억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토막 인터뷰] “장애인의 예술활동은 분명 차별받고 있어요”-배은주 대표

한국장애인문화예술단은 공연을 통해 장애인들의 문화예술 활동이 증진되고 보장되는 사회 분위기를 구현하고자 한다. 장애인 예술인도 비장애인 예술인과 같은 무대에서 실력으로 인정받고 박수받을 수 있는 풍토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KBS 장애인가요제 수상자이자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대표인 배은주 씨는 “문화예술은 차별하면 안 된다지만 장애인들의 예술활동은 분명 차별받고 있다”고 밝혔다. 배 씨는 “장애인 예술인을 교육시켜 배출하더라도 지원을 받기 힘들다. 장애인 문화예술을 위해 쓰여지는 기금이 있지만 사단법인이 아니면 받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는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해 도움이 되는 사업에 문화예술진흥기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 기금이 문화예술을 하는 장애인에게 가는 게 아니라, 사단법인이고 명목상의 가수 등만 갖추고 있으면 예술활동 없이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번 7개 도시 순회공연을 준비하는데에도 재정 문제는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다가왔다. 예술단은 이번 전국 순회공연을 준비하는데 한국문화예술진흥원으로부터 15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배 씨는 “1500만 원이면 콘서트 두 번 열면 다 쓸 돈이라, 7차례의 순회공연을 열기에는 불가능하다. 더구나 장애인들이 이동하며 하는 공연이라 비용이 더 많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결국 연습실 대관료나 강사 초빙, 식사비 등을 사비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배 대표는 장애인 대중문화예술인이 극소수라는 점을 특히 안타까워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장애인 연예인은 조덕배·강원래 씨가 전부이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이 연예인이 되기란 거의 땅바닥을 헤엄치고 가는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 씨는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인 만큼 수익을 위한 티켓 판매나 유료공연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 예술단 단원들은 새로운 분야를 맡아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했다. 배 씨는 “타악기 연주를 못해 본 사람을 타악기 연주자로 키워내는 과정”이라고 순회공연의 취지를 설명하면서 “연주할 수 없는 사람에게 연주하는 법을 알려줘서 악기 연주자로 거듭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아 성취와 더불어, 다른 장애인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정신, 어느 장르에도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다”며 “그래서 그 연주로 자부심을 가지고 무대에 설 수 있는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싶다”고 밝혔다. 배 씨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훌륭한 장애인 예술인을 육성하는 게 우리의 목적”이라며 “기본 능력과 자질을 보고 훈련시켜 중창단, 난타, 동화 애니메이션 콘서트 출연자를 양성할 계획이다. 사실 보통 기획사처럼 신인을 발굴해 예술인을 육성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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