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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판결 급증, 위기의 검찰

미네르바·정연주·조풍언·김현미·현재현·변양호 등 잇따라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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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35호 박성훈⁄ 2009.09.15 16:51:30

검찰의 수사력과 범죄 판단력에 균열이 가고 있다. 검찰은 8월 27일, 구본홍 전 YTN 사장 출근 저지, 사장실 점거 등 업무방해 혐의로 노종면 전국언론노동조합 YTN 지부장에 징역 2년, 현덕수 전 지부장과 조승호 기자에게 징역 1년 6개월, 임장혁 기자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닷새 후인 9월 1일 서울중앙지법(형사5단독 유영현 판사)은 노종면 지부장에 대한 1심 판결에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현덕수 전 지부장과 조승호 공정방송단장에게는 벌금 700만 원을, 임장혁 기자에게는 벌금 500만 원을 각각 선고했다. 검찰이 징역형을 구형한 사건이 법원에서, 그것도 1심 재판에서 벌금형으로 마무리된 사건이다. 정확한 경제 예측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 씨는 지난 4월 20일 구속된 지 100여 일 만에 석방됐다. 온라인상에서 허위 사실을 퍼뜨렸다는 혐의(전기통신기본법 위반)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덕분이다. 검찰은2008년 8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배임 혐의로 정연주 전 KBS 사장을 기소했다. 국세청과 세금반환 소송을 벌이던 한국방송이 1심에서 이겼음에도 2심에서 재판부의 조정에 응하는 바람에 법인세 및 부가가치세 2448억 원(1심 승소액 1764억 원과 이자 684억 원)을 포기하고 556억 원만 돌려받음으로써 회사에 1892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는 정연주 전 KBS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정연주 사장은 법원의 조정안을 충분히 검토하여 받아들였다”면서 “배임죄에 해당한다는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검찰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국민검찰’ 중수부 명성 옛말인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만 해도 그렇다. 한때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씨를 구속하고 불법 대선자금을 파고드는 당시 중수부의 모습은 ‘국민검찰’이라고 불릴 정도로 명성을 구가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대대적인 사정수사의 판결에서 무죄가 속출하고 있어 그 판단력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한보철강 인수 과정의 문제점을 국정감사에서 문책하는 대가로 1500만 원을 받았다는 혐의로 기소된 김현미 전 민주당 의원은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김 전 의원의 대학 동창인 문모 씨의 증언과 메모장을 토대로 수사를 진행했는데, 문 씨가 여러 번 진술이 엇갈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 씨가 2004년 8월 20일 김 전 의원에게 뇌물을 건넸다고 진술했지만, 김 전 의원이 그때 중국에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8월 24일에 돈을 건넸다고 말을 바꾼 것이다. 뇌물의 액수도 2000만 원에서 1500만 원으로 번복했다. 이에 재판부는 결국 “범죄 사실에 대한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에도 대검 중수부는 서아프리카 유전개발 사업에서 시추비 등을 과다 지급해 회사에 45억여 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김모 전 한국석유공사 해외개발본부장을 기소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당시 시추작업이 진행된 20개 광구 탐사사업 가운데 15곳에서 시추비가 증액돼 시추비용의 증가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한일합섬 재산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과 인사청탁 명목으로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강경호 전 코레일(옛 한국철도공사) 사장의 재판결과는 무죄였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변양호 전 재경부 국장의 뇌물수수 사건 등 대형 사건도 무죄로 판결된 바 있다. 재미동포 사업가 조풍언 씨에 대한 ‘대우 구명 로비’ 의혹 사건에서도 법원은 “김우중 전 회장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한국중부발전 대표인 정모 씨도 주식매매대금으로 주고받은 1억 원을 알선수재 액수에 포함시켜 해당 부분에 대해 무죄로 마무리됐다. 검찰이 한수양 전 포스코건설 사장이 공사 수주를 돕는 대가로 4만 달러를 받았다며 기소한 사건도 법원이 “부정한 청탁 대가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무죄선고가 나왔다. 인지사건 무죄율, 다른 사건의 5배

검찰이 기소한 전체 사건 중 1심 법원이 선고한 무죄율은 2003년 0.17%에서 2008년 0.29%로 꾸준히 증가해왔다. 2심의 무죄율도 2003년 0.7%, 2008년 1.81%로 증가했다. 2006년 0.47%에 불과하던 서울중앙지검의 1심 무죄율은 2007년 0.77%였다. 전국 법원의 2심 무죄선고율 역시 2006년 1.77%에서 2008년에는 2%를 넘어섰다. 전국 법원의 영장 기각률은 2004년 14.66%에서 올해 상반기 24.10%로 거의 10% 급상승했다. 검찰에서는 법원의 구속영장 심사가 지나치게 엄격해 수사를 어렵게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 하다. 물론, 법원이 피의자 인권 등을 중시하면서 영장심사를 까다롭게 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겠지만, 검찰이 범죄혐의를 미비하게 입증한 경우도 많아 검찰이 수사 초반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인지사건의 무죄율이 다른 사건의 5배에 이른다는 점은 검찰 수사력의 지적 대상이 될 만하다. 인지수사는 고소·고발 없이 검찰이 자체 첩보를 통해 수사하는 사건으로, 검찰 정보력을 가늠하는 잣대로 볼 수 있다. 검찰이 자체 정보수집보다는 고소·고발사건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기업 내부의 회계 부정이나 거액의 정치자금 수사 등에 대해 자체적으로 시작한 사례가 최근 수 년 간 전무할 정도이다. 검찰은 자체 첩보를 바탕으로 한 사건에 수사력을 집중 투입하는 경향이 있어, 이들 사건의 높은 무죄율은 검찰의 수사능력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검찰청의 내부자료에 따르면, 2004~2008년 5년 간 검찰의 인지사건 수사로 기소된 사람은 약식기소까지 모두 14만675명이다. 여기서 1430명이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같은 기간에 고소·고발이나 경찰로부터 넘겨진 사건의 무죄율은 0.21%(약식기소 포함 618만2677명 기소, 1만2833명 무죄)를 보이고 있어 큰 차이가 있다. 2004년 0.71%이던 인지사건 무죄율은 갈수록 높아져 2008년에는 1.57%로 2배 이상 올라갔다. 올해는 지난 4월까지 무죄율이 1.71%에 달했다. 약식기소를 제외한 정식재판 회부 사건만 따지면 무죄율은 3%를 넘는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인지수사율(건수기준)은 2006년 0.95%에서 2007년 0.76%, 2008년(1~8월) 0.68%로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해 구속영장 발부 사상 최저 2008년 검찰의 전체 입건자 대비 구속영장 청구율은 2.0%, 청구 대비 발부율은 75.7%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2007년에는 청구율이 2.3%, 청구 대비 발부율이 78.2%였다. 입건자 수 대비 구속인원도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2000년 4.4%였던 구속점유율(전체 입건자 대비 영장 발부 인원)은 2008년 1.5%까지 급감했다. 압수수색영장 발부 수는 2006년에 5만8678건이었다가, 2008년 들어 9만1454건으로 늘어났다. 누리꾼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 여파로 이메일 내역 조회 등에 쓰이는 ‘통신사실 자료요청’ 발부 건수도 2006년 5만8711건에서 2008년 6만8301건으로 늘었다. 올해 4월까지 압수수색 장 발부는 3만3886건, 통신사실 자료요청 발부는 2만5056건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15.6%, 14.1%씩 늘어난 모습이다. 검찰의 범죄혐의 소명 부족으로 영장이 기각된 것은 2006년 435건, 2007년 760건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한 영장담당 판사는 “불구속 재판 원칙을 무시한 채 무조건 잡아넣고 보자는 무리한 관행이 잘 고쳐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수사 여건의 악화를 이유로 들며 지난 1월 ▲미국식 ‘플리바기닝’ 제도 도입 ▲‘사법정의 방해죄’ 신설 ▲중요 참고인 출석의무제 등 수사 편의를 높이기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최근 피의자의 인권을 위한 장치가 강화되면서 수사력이 약화됐다”고 주장했다. 검찰 위상 재정립 시급 검찰 인지사건의 상당수는 특수부 등에서 수사하는 뇌물 등 비리사건으로, 무죄율이 높다는 것은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했거나 수사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법조계에선 “무리하게 기소하거나, 수사를 완벽하게 못 했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특수부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특수부 검사들이 실적 스트레스에 시달린 나머지 덜 익은 사건을 무리하게 기소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법조인도 “내사(內査) 과정에서 법 적용이 쉽지 않으면 과감하게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며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만 해도 여론에 떠밀려 무리하게 뛰어들었다가 검찰이 무죄선고를 자초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검의 한 간부는 “1990년대만 해도 이른바 ‘중요사건’ 수사에선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비율도 높았지만, 최근엔 법원이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검찰은 피고인이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는 경우까지 대비해서 혐의를 입증할 증거수집에 더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태훈 고려대 교수(법학)는 “검찰의 시각은 수사편의적인 발상”이라며 “검찰 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진 만큼 검찰 내부의 자성과 쇄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난 8월 20일 취임한 김준규 검찰총장이 검찰 수사방식을 개선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8월 29일 검찰 간부와 검사, 수사관들과 워크샵을 열어 “열심히 고생하며 수사하고도 국민으로부터 왜 욕을 먹는지 고민해야 한다”며 수사방식의 변화를 제안한 바 있다. 취임식 당시에는 “신사답게 페어플레이 정신, 명예, 배려”를 앞으로의 수사 패러다임으로 제시하며 취임 일성을 밝혔다. 8월 17일 인사청문회에서는 “평시에 중수부의 요원을 지정해 각 지검 특수부에 배치하고 검찰총장이 지휘할 사건이 생기면 예비군을 동원하겠다”며 중수부의 예비군식 운영 방안을 제시했다. 일부 언론에 의하면, 검찰에서 별건 수사(특정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 피의자를 다른 혐의로 구속하는 방식)를 폐지하고, 대형사건 수사는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추진하는 안이 흘러나오고 있어, 변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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