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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5명 자살한다”

우리나라 아직도 ‘자살공화국’…‘자살은 사회문제’ 인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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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35호 박성훈⁄ 2009.09.15 16:50:25

우리나라가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최근 1년 새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배우 최진실·안재환 등 여러 유명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인터넷을 통해 여러 사람이 만나 함께 목숨을 끊는 집단자살도 대대적인 문제로 등장했다. 한국의 노인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왔다. 2003년 한 해 동안에는 국내에만 65세 이상 노인 276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연령대의 노인 10만 명 당 71명꼴이었다. 반면, 미국·호주는 10만 명당 10명 정도에 머물렀다. 세부적으로 보면, 65~74세에선 한국이 룩셈부르크와 함께 30개국 중 최고 수준(10만 명당 58명)이었고, 75세 이상(103명)에서도 가장 높았다. 아시아 국가와 비교해도 65세 이상 한국 노인의 자살률은 국제사회에 자살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일본(32명)의 두 배 이상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 45년 간 자살률은 세계적으로 60% 증가했고, 15∼44세 연령의 주요 사망원인 중 자살이 세 번째를 차지한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자살 사망자의 20배 이상이 자살을 시도한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수는 1만2858명에 이르렀다. 전체 사망원인 중 5.2%이다. 1992년만 해도 3533명이었던 자살자 수가 1998년에 8569명, 2005년부터는 1만2000명 선을 넘나들고 있다. 정부는 2005년 ‘자살예방 5개년 계획’을 수립해 2004년도의 10만 명당 자살사망률 22.8명을 2010년까지 18.2명으로 줄인다는 목표를 갖고 있지만, 자살률은 2007년 24.8명, 2008년도 26명으로 줄어들기는커녕 불어나고 있다. 자살은 한국인 사망원인 순위에서 암·뇌혈관질환·심장질환에 이어 4위이다. 해마다 30만 명 이상이 자살 시도자 자살 시도자는 해마다 30만 명이 넘는다. 한 해 자살 1만2000명이면 일주일에 한 번씩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하고, 한 해에 중소도시 인구가 자살로 사라진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에서 하루 100명 가까운 사람이 자살을 시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40분에 한 명꼴로 자살을 저지르고, 14분에 한 명씩 자살을 기도한다는 뜻이다. 2003년부터 자살자가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를 넘어서,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자살자가 많아진 시대가 됐다. 우리나라는 성장과 효율 지상주의를 외치면서 절대적 빈곤을 극복하고 국내총생산(GDP)을 늘려 선진국 대열에 올랐지만, 사회가 급속히 변화하는 과정에서 전통의 가치관이 붕괴되고 이혼과 별거 등으로 가족이 무너지면서 고립감과 열등감·불행감에 빠져드는 계층이 날로 넓어지고 있다. 특히 사회적 약자인 서민층과 노인층의 자살률이 높고,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보다 2배가 넘는다는 점도 이런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종교인구가 많고 각종 모임도 많지만, 외로움과 절망감의 소산인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이유는 뭘까? 자살연령대 남성 40대, 여성 80대 최다 9월 9일 보건복지가족부가 발표한 ‘우리나라 자살예방정책 수립에 있어서 고려사항’에 따르면, 자살 시도자의 연령 분포는 남성의 경우 40·50·60·30대 순인 반면, 여성은 80세 이상·20·30대 순이었다. 남성은 나이가 들수록 더 맞닥뜨리는 삶의 문제로, 여성은 아예 젊거나 아예 늙어 극단적인 선택 상황에 직면한다는 분석이다.

퇴원환자들과 병원 3곳의 응급실 상황을 표본조사해 자살 동기를 살펴본 결과, 가족과의 갈등이 절반 정도(퇴원환자의 42.5%, 응급실 표본조사의 46.5%)를 차지했다. 가족 중에서도 배우자와의 갈등이 22.9%로 가장 많았고 부모·자녀와의 갈등(10.6%), 연인과의 갈등(8.6%) 순이었다.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진 정신적인 문제는 전체 동기의 14.1%(우울증 10.1%)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신과 치료에 강한 거부감과 편견을 갖고 있어 이 같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응급실 내원 자살 시도자 중에 입원을 거부한 사람이 54%나 될 정도로 치료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어 통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명수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정신과 전문의)은 “우울증이 있는데도 ‘보험에 들지 못한다’, ‘취업이 안 된다’는 등의 편견 때문에 치료에 이르기까지 3년이나 걸리고, 그 중에서도 15% 정도만 6개월 이상 치료를 받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면서 “자살과 우울증은 비례관계에 있는 만큼 적극적인 조기 발견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3개월 내 재시도 가능성 높아 자살 시도 직후 3개월 안에 재시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의료진의 중론이다. 이 기간 동안 자살 시도자들에게 우울증 치료나 가족상담 등이 적극 필요하다는 뜻이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은 누군가 정서적으로 자신을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크게 위안을 받는다. 자살자 혹은 자살 시도자의 가족도 막대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외상성 신경증)를 갖기 때문에 가족상담도 꼭 필요한 치료과정이다. 우리 사회는 자살을 지나치게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지만, ▲높은 노인 자살률 ▲자살 사이트의 유행 ▲경기불황 ▲과도한 진학경쟁 등 사회·경제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자살 고위험군을 미리 파악해 정신보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자살예방협회 김희주 사무국장은 “외국의 자살심리 부검 결과를 보면,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자살이나 죽음에 대해 말하거나 ▲절망감에 빠져 있을 때 ▲불안해하고 잠을 못 잘 때 등을 자살 징후로 본다”고 말했다. 자살에 사용할 도구나 장소를 찾거나, 생각 없이 무모한 행동을 하고 위험한 활동에 탐닉할 때도 즉시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거나 자살예방기관에 도움을 구할 필요가 있다. ‘심리 부검’이란 정신과 의사 등이 자살자의 가족과 친지 등에 대한 심층면접을 통해 자살 원인을 규명하는 작업을 말한다. “주변에 따뜻한 관심과 예방교육 필요” 아무래도 배우자가 있는 사람보다는 홀몸인 사람의 자살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 이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요구된다. 이혼한 사람들의 자살률이 배우자가 있는 경우보다 4배 이상 높다는 것이다. 보건복지가족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자살 사망자 중 인구 10만 명당 이혼자의 자살률은 남성 142.2명, 여성 59.7명으로 결혼 상태인 남성(35.9명)과 여성(14.4명)보다 4배 이상 높았다. 이들 중 20~30대 이혼자의 자살률이 가장 높았다. 이들 젊은 층의 이혼 남성 자살은 10만 명당 89.5명, 여성은 96.1명으로 유배우자 14.3명, 12.1명과 큰 차이가 났다.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들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남성 142.8명, 여성 42.6명으로 배우자가 있는 경우의 그것보다 3-4배 많았다. 지자체 가운데에서는 강원도가 사망률 38.4명으로 가장 높고, 충남(35.4명), 충북(33.6명), 전북(30.4명) 순으로 나타났다. 서울은 21.6명으로 낮은 편이었다. 시군구 가운데는 전북 임실(76.1명), 강원 횡성(73.9명), 충북 괴산(68.1명), 경남 고성(66.1명) 등의 자살률이 높았다. 김희주 사무국장은 “자살자 10명 중 8명은 자살을 시도하기 전에 가족이나 친구 등에게 징후를 알리기 때문에 예방 노력만으로도 자살률을 낮출 수 있다”면서 “따뜻한 관심과 조기 교육, 고위험군에 대한 예방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살이 이처럼 심각한 사회문제임에도 사회적 관심은 여전히 요원하다.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사회 분위기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한 사람의 자살은 당사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가족을 포함한 평균 6명에게 육중한 죄책감을 안겨준다. 1만2000명이 자살하면 7만여 명이 후유증을 겪으며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 방해를 받는다는 것이다. 자살로 인한 직접비용과 간접비용이 매년 3조 원에 이른다는 조사도 있다. 하지만 국가 차원의 관련법이나 기구는 찾기 힘들다. 개인으로는 건강한 생사관 확립을 위한 기회가 드물고 인간관계망마저 빈약해 너무나 허무하게 극한 선택을 하고 만다. 우리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비극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진지하게 모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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