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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운명과 한판 승부> 열네 번째 이야기

나와 이 세상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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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67호 편집팀⁄ 2010.04.26 15:23:02

글·김윤식 휘영청 달 밝은 음력 7월 보름, 석양의 낭떠러지에서는 ‘세상은 어떻게 생겨났고, 인간은 무엇인지’라는 화두의 담론이 갈수록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불과 1시간 전에 자신들이 스스로 목숨을 던지려 했다는 사실은 어느새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진 듯, 그저 공부에 열중하는 학생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거사님, 외람되지만 또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이 땅을 밟고 있는 ‘나’는 과연 누구이고, 인간이 한세상 산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요?” “허허! 그것 참……. 이 질문 역시 단 한마디도 꺼내기 어려운 숙연한 문제이기도 하면서, 어쩌면 참으로 할 말이 많은 기본적 이슈이기도 하지요. 다만, 이러한 화두를 가늠해볼 수 있는 철학적 접근 방법에 대해서는 가볍게 얘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바로 이런 겁니다. 이 철학적 접근 방법의 첫걸음은 먼저 궁극적으로 해답을 찾아야 할 ‘본질적 화두’를 정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슈가 마땅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사항을 전제로 하고, 그 전제된 내용을 근간으로 하여, 인생철학적 측면의 ‘나의 정체성과 존재적 위상’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두 가지 전제사항은 과연 무엇일까요? 하나는 인간의 정체 내지 본질에 대해 어떠한 가치인식을 갖느냐를 말합니다. 우리는 앞서 인간의 정체에 대해 16가지나 되는 다양한 주장을 들어봤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여러 인간의 정체를 자신의 가치판단과 비교하여, ‘자신의 본질과 의지’는 과연 어디에 해당되는지 깊게 성찰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인간이 한세상 살아가야 하는 그 인생에 대해 ‘자기 스스로 어떻게 규정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기 인생의 규정이라 함은 삶의 가치와 의미, 삶의 목적과 이유, 삶의 소망과 방향, 삶의 내용과 자세, 삶의 본질과 특성, 삶의 인식과 평가 등을 두루 감안한, 자신만이 추구하는 ‘삶의 결정체’가 과연 무엇이냐를 말하는 겁니다. 이렇게 볼 때, ‘나는 누구인가’라는 수수께끼는 내가 수용코자 하는 인간의 본질과 아울러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인생의 가치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눌촌 거사의 인생론 눌촌 거사는 인간 본질의 인식과 자기 인생의 규정을 토대로 인간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눌촌의 설명이 다소 어려운 듯 몇몇 사람들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거사님! ‘나의 정체’를 파악하고 정립하기 위해서는 인간 본질의 가치판단이나 자기 인생의 규정 외에도 혹 추가로 고찰해야 할 사항이 있지는 않을까요?” “물론입니다. 다만, 그 두 가지만 가지고도 ‘나의 정체’에 대해 적어도 80% 이상은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거사님! 우리가 저마다의 정체성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까닭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어떤 ‘깊은 인연’의 소산이라 들은 바가 있는데, 이는 과연 무엇을 말하는 건지요?” “흐음, 인연이라…….” 줄곧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진지한 자세를 견지하던 손무혁(孫武奕)이라는 사람이 인연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처음으로 질문을 해왔다. 인연이란 질문이 나오자, 잠시 달빛을 올려다보며 상념에 젖던 눌촌이 이내 강설에 나섰다. “우리가 세상과 인간의 인연(因緣)에 대해 얘기하려면, 우선 겁(劫)과 업(業)이라는 말을 떠올려야 하는데, 혹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겁이라 함은 주로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아주 특별한 시간의 단위입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가로와 세로 그리고 높이가 각각 100리(40km)가 되는 엄청나게 큰 바위가 있는데, 천상의 선녀가 100년에 한 번씩 내려와 그 바위 위에 앉아 쉬었다 가는 길에, 얇은 날개옷 자락에 스쳐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지는 시간을 1겁이라 하지요. 이러한 겁은 현대적 시간으로 따지면 약 ‘42억 2000만 년’ 정도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지구나이 45억 년과 아주 비슷하지요. 그런데 불가에서는 중생들의 인연을 이러한 겁이란 시간으로 해석하곤 합니다. 즉, 전생(前生)에서 몇 겁의 인연이 있었느냐에 따라 현생의 인연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동국(同國 : 같은 나라에 사는)의 인연은 1000겁이요, 동행(同行 : 같이 길을 가는)의 인연은 2000겁이요, 동숙(同宿 : 같은 숙소에서 잠을 자는)의 인연은 3000겁이요. 부부의 인연은 8000겁이요, 형제의 인연은 9000겁이요, 부모와 스승의 인연은 1만 겁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업이라 함은 범어(梵語 : 산스크리트)로 카르마(Karma)라고 하는데, 이는 흔히 조성(造成)·행위(行爲)·소작(所作) 등으로 번역되어 쓰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업은 ‘인과응보의 법칙’으로서 우리 인생을 규명하는 불교 철학의 일단이라 할 수 있지요. 즉, 업이란 현세상의 나의 삶의 모습은 전생에서 지은 선악에 의해 결정된 것이고, 이 세상에서 내가 영위하는 행위의 선악 정도에 따라 다음 세상에서 맞을 ‘삶의 형태와 질’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참고로, 업 중에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절대 짓지 말아야 할 ‘악업(惡業)’이 있는데, 이에 대해 잠시 얘기를 해보죠. 인간이 저지르는 악업에는 신업(身業)과 의업(意業) 그리고 구업(口業) 등 크게 3가지를 들 수가 있습니다. 우선, 몸으로 죄를 짓는 신업에는 살생·투도(偸盜)·사음(邪淫) 등이 있고, 마음으로 죄를 짓는 의업에는 탐욕·진에(瞋 : 성냄)·우치(愚癡 : 어리석음) 등이 있지요. 그리고 말로 죄를 짓는 구업에는 망어(妄語: 거짓말)·기어(綺語 : 교언영색으로 알랑거리는)·양설(兩舌 : 이간질)·악구(惡口 : 나쁜 말) 등이 있습니다. “인생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결국 업이란, 과거에 지은 어떤 행위가 기운으로 잠재되어 있다가,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무형의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을 살면서 착한 일, 좋은 일, 옳은 일만 하라는 준엄한 가르침이라 봐야지요. 이렇듯 불가에서는 ‘겁이란 시간’과 ‘업이란 인과응보’의 두 가지 요소의 상호작용에 의해 현세상의 우리 인연이 정해진다고 보고 있지요. 즉, 자신이 태어나는 시대와 나라와 자신이 만나게 되는 부모형제와 이웃, 그리고 자신의 삶의 형태와 질이 ‘겁과 업의 복합적 영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거사님, 그러면 결국 ‘나의 정체’를 결정하는 영향요소 중에 겁과 업에 의한 인연도 무시할 수는 없다는 뜻인지요?” “그렇지요. 인간이 다가갈 수 없는 지극히 초자연적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 본질의 가치판단과 자기 인생의 규정뿐만 아니라, 이러한 인연 역시 ‘나는 누구인가’를 결정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향요소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화두를 논하는 과정에 ‘인연’이란 이슈가 등장하여 한동안 시간이 흘러갔다. 잠시 틈이 생기자, 몇몇 사람들이 다시 이어질 담론의 방향에 대해 속닥거리고 있었다. 바로 ‘나의 정체’를 규명하는 핵심요소인 ‘자기인생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는 주제였다. “거사님,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자기 인생을 어떻게 규정할 건지가 중요하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혹시 정체성이 먼저 정립되어야 그에 수반되어 인생의 방향과 목표 그리고 구체적 내용이 그려지는 건 아닌지, 순서에 약간 혼동이 오는 것 같습니다.” “일견 틀린 얘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정체성이 됐든 자기 인생의 규정이 됐든, 선천적 내지 후천적으로 습득한 지성·이성·감성 등을 토대로 형성되는 ‘가치관과 덕성’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 확립과 자기 인생의 규정은 서로가 영향을 미치는 유기적 상호작용을 통해 점진적이고 복합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최종적으로는 자기 인생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고 나서야 보다 구체적이고 실증적이고 가시적인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기 정체성이 자리 잡게 되는 겁니다.” “거사님,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자기 인생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요?” “그 얘기를 다 하자면 이 밤을 꼬박 새워도 모자랄 겁니다. 다만, 바람직한 자기 인생을 디자인할 수 있는 기본구도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기로 하지요. 첫째, 태생적으로 주어진 자기 운명(태어난 시대·나라·부모·성별·외모·두뇌·성격·자질·재주 등)의 본질과 한계를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성찰하는 것입니다. 둘째, 자기 운명의 테두리 속에서 자신과 잘 어울리고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자기만의 꿈과 희망을 찾아 이상과 목표를 수립하는 것이죠. 셋째, 자신이 구상하는 삶의 틀 속에서 내면적 만족의 성취대상인 사명감과 소명의식, 이념과 신념, 인생의 가치와 멋 등을 자리매김시키는 것입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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