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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강국이 왜 레저보트에선 꼬래비인가요”

경기국제보트쇼 산파역 맡고, 보트산업 발전에 정열 태우는 신종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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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173-174호 양지윤⁄ 2010.06.16 09:30:50

“요트를 부자들의 놀이기구라는 색안경으로 보지 말고, 국내 부품·소재산업 육성의 동력으로 봐야 합니다.” 물에서는 수영하는 것도 싫어하지만, 배 얘기만 나오면 물가건 물 속이건 달려가는 사람이 있다. 바로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신종계 교수다. 그는 요즘, 6월 9일 경기도 전곡항에서 개막한 제3회 경기국제보트쇼와 코리아매치컵 세계요트대회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는 자신을 “요트를 살 돈도, 탈 시간도 없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요트를 만들어 수출하면 큰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요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라면 국내의 어느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한다. 경기도가 3년 전부터 보트쇼를 열면서 코리아매치컵을 유치한 데에는 그의 공이 컸다. 그는 김문수 도지사를 만나 요트산업을 육성하자고 제안했고, 함께 미국의 아메리칸컵 요트대회를 참관하기도 했다. “요트의 요자도 모르는 김 지사에게 요트 사업을 제안했지만, 사실 반대를 예상했지요. 그런데 김 지사는 흔쾌히 승낙해 나도 깜짝 놀랐어요.”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보트쇼에다 요트경주대회까지 열자는 그의 제안에 도민·도의회·도청 공무원이 모두 “뭔 뜬금없는 소리?”라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굴하지 않고 김 지사가 설득에 나섰고, 그래서 3년 전에 탄생한 것이 경기국제보트쇼와 코리아매치컵 세계요트대회다. 9일 열린 개막식을 보는 그의 감회는 남달랐다. 신 교수는 “3회를 맞는 요트쇼를 보면서 한국에서도 이제 기본적인 골격이 갖춰지고 있구나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보트쇼가 열린 경기도 화성시 전곡항은 서해안에서 태풍도 피해 가는 최적의 마리나 입지로, 김 도지사와 신 교수가 서해안을 샅샅이 뒤져 발견했다. 앞으로 전곡항은 국제적 해양레저 기지로 발전될 예정이며, 신 교수는 이 작업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선진국은 해양레저→마리나 시설→요트 만들기 순으로 발전했지만, 후발 주자인 우리는 그럴 시간 없어. 3가지 모두 동시 발전시켜야 해양레저산업 꽃피운다.” 국제보트기구인 ICOMIA의 2007년 자료에 따르면, 세계 해양레저산업의 연 매출 규모는 895억 달러로,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 해양레저 장비·서비스가 600억 달러로 전체 매출의 67%를, 길이 20피트 이상의 중대형 보트는 210억 달러로 23%를 차지한다. 20피트 미만의 소형 보트도 연간 60억 달러로 7%를 나타냈다. 조선·자동차·정보통신(IT) 기술이 뛰어난 한국은 해양레저 장비산업에서 짧은 시간 안에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신 교수의 분석이다. 그러나 현재의 국내 요트산업에 대해 그는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주5일 근무제, 경인아라뱃길 건설 등으로 요트 붐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아무 대책 없는 장밋빛 환상에 불과합니다.” 한국은 조선 강국이다.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상업용 대형 선박을 만드는 국내 업체는 현재 전국 1305개에 종사자만 10만 명이 넘지만, 레저보트 사업체는 20개에 종사자 184명이라는 초라한 규모다. 등록된 수상레저 기구는 7518대이고, 이 중 래프팅 고무보트가 50%를 차지하고 있으며, 등록된 요트 대수는 30척에 불과하다. 미국에 레저보트가 1570만 대나 있다는 사실을 참고한다면 정말 아이들 장난 같은 수준이 한국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요트산업 후발 주자인 한국이 수동적으로 가만히 있는데 시장이 늘어나지는 않습니다. 능동적인 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배를 사는 수요를 자극해야 하고,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경기도에 요트쇼와 요트시합을 유치하자는 것이었다. 한국은 2000년대 초반 요트산업이 태동하려다가 2000년대 중반에 침체기를 맞았다. 그리고 그 상태가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해양레저산업이 발전하려면 3가지가 갖춰져야 한다. 요트의 주차장 격인 마리나 등 해양레저 기반시설(SOC), 마리나에 정박할 요트, 그리고 요트를 즐기는 문화라는 3박자다. 미국이나 유럽 등 해양레저 선진국은 요트산업이 레저-관광 → 기반시설 → 장비산업 순으로 발전했다. 후발 주자인 한국은 이렇게 순서를 밟을 시간이 없으므로 이 3대 요소를 동시에 육성시켜야 한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국은 지금 마리나가 전국에 속속 만들어지고 있고, 보트쇼를 통해 요트문화도 형성되고 있어 향후 3~5년 안에 안정화 단계로 접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대로 된 요트를 생산해내는 일도 힘들지만, 더 힘든 것은 마케팅이다. 그래서 신 교수는 이번 경기국제보트쇼에서 두 가지 제안을 했다. 하나는 국내 업체들이 해외 업체와 손잡고 요트 제작과 마케팅에 나서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요트산업을 탄탄하게 할 브레인 그룹을 만들자는 것이다.

신 교수는 요트를 제작할 한국 기술력은 어느 정도 갖춰졌다고 본다. “요트 시장은 기술이 반, 마케팅이 반입니다. 해외에서는 돈 많은 사람들이 기술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기술집약형 최신 요트를 타고 싶어 하지만, 한국은 정반대입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해외 요트업체의 마케팅에 혹해 기술력 있는 한국 업체를 외면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죠.” 이렇기 때문에 “해외 업체와 국내 업체의 기술 협업이 이뤄질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그는 주장한다. 예컨대, 요트 한 대를 제작할 때, 뉴질랜드에서 설계를 맡고 독일 엔진을 사용하면서 한국이 제작을 맡으면 적어도 세 나라에서 모두 팔 수 있다는 말이다. 신 교수는 “해외 메이커는 한국에 배를 팔 생각만 하지 말고, 국내 업체는 무조건 수입하려고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라며 “이제 걸음마 단계인 요트산업을 짧은 시간에 육성하기 위해서는 해외 업체로부터의 기술 이전이 전제된 협업체제가 구축돼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뉴질랜드가 설계 맡고, 독일 엔진 써서, 한국에서 만들면 세 나라에서 판매할 수 있다.” 요트산업을 육성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드는 일도 시급하다. 신 교수는 “요트는 작은 배지만 배와 파도의 미묘한 차이를 이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메리리칸컵에서 쓰는 요트들은 스티브 잡스 같은 천재적인 엔지니어 10명 이상이 참여해 만들어낸 배로, 전문가들은 요트의 표면만 봐도 상품 가치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세계 시장에 요트를 한국 물건으로 내놓으려면 브레인 그룹이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제작해야 하며, 이런 작업을 뒷받침할 유기적인 조직체계가 국가적으로 갖춰져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래야 개인이나 중소 제작사가 요트를 개발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줄어든다는 지적이다. 요트산업은 고용 유발 효과도 크다. 요트산업은 우선 전혀 새로운 산업이다. 대형 상선은 한국에서 건조해 수출하면 끝이지만, 요트는 그렇지 않다. 제작과 생산 뒤에도 계속해서 관련 사업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신 교수는 “자동차와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자동차 유지와 관리를 생각해보세요”라며 “자동차 한 대를 팔면 주유소·주차장·카센터·보험업체 등 여러 관련 사업이 필요한 것처럼 요트 산업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마리나 시설을 비롯해 요트 관리·숙소 등에서 다양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이다. “각 자치단체가 고급 청사를 지을 돈이면 마리나 시설을 지어 보트를 정박시키면서 보트산업을 발전시키고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하면서 투자 비용을 세금으로 환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올해 1월 정부는 국내 마리나 개발 계획을 확정하고, 전국 권역별로 43개 마리나를 만들기로 했다. 이번 코리아매치컵 요트 경기에는 국내 어드밴스드 마린테크가 제작한 요트가 경기정으로 쓰인다. 뉴질랜드에서 디자인하고 국내에서 제작한 이 배를 세계 랭킹 선수들이 타고 출전해 기량을 겨눈다. 요트의 불모지에서 조용한 혁명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의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려댄다. 보트쇼 준비에다 강의까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지만, 보트쇼 이야기를 하는 그에게서 지친 기색은 느낄 수 없다. 그의 ‘바람’이 어떤 요트를 한국의 3면 바다와 세계의 바다로 떠나보낼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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