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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피자와 신정동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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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188-189호 최영태⁄ 2010.09.27 13:20:08

요즘 ‘이마트 피자’가 화제입니다. 크고 값싸다는 군요. “코스트코 피자가 더 맛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 걸 보니, 대형 마트 피자가 인기는 인기인 모양입니다. ‘이마트 피자’가 검색어 1등에 오르더니 이마트를 소유한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트위터에 올린 글 역시 화제가 됐지요. 그는 “서민들이 저렴하게 드실 수 있는 맛있는 피자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한번 드셔 보시고 말씀해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한 ‘대기업이 피자도 파냐’는 핀잔에는 “마트 가시면 떡볶이, 오뎅, 국수, 튀김 등 안 파는 게 없죠. 근데 특히 피자가 문제인가요?”라고 했고, 동네 피자집에 미칠 피해를 걱정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소비를 이념적으로 하시는군요. 님이 걱정하시는 거만큼 재래시장은 님을 걱정할까요?”라고 썼습니다. 정 부회장의 말 중에서 팍 꽂히는 말은 바로 ‘이념적 소비’라는 말입니다. ‘피자란 싸고 맛있으면 됐지, 대기업이 만드는 피자냐, 아니면 동네 피자집이 만드는 피자냐를 이념으로 따질 필요가 있냐’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물건 하나 사는 데도 이념을 개입시키는 대표적 사례는 좌파 지식인 박노자 씨일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나는 대형 마트에 안 간다. 조금 비싸더라도 동네 가게에서 산다. 내가 쓰는 돈이 대기업으로 가면 나에게 돌아오지 않지만, 동네 슈퍼에서 쓰면 동네에서 돈이 돌기 때문”이라고 썼습니다. 이 두 극단 중 어느 쪽을 택할지는 각자의 자유입니다. 그런데 두 선택 뒤에는 각자 자신의 생각이 있죠. 좀 과하게 말하면 이념적 소비지만, 쉽게 말하면 그저 ‘생각하는 소비’이고, 생각 없이 돈을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마트 피자를 둘러싼 논쟁에서 핵심 단어는 ‘동네’일 것입니다. 동네를 생각하고 돈을 쓰느냐 안 쓰느냐에 따라 입장이 갈린다는 것이지요. 사람이 사는 데 없으면 안 되는 요소가 몇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마을-동네일 겁니다. 그리고 마을-동네의 기본은 신뢰입니다. 신뢰란 가령 옆집 남자가 ‘아무 이유 없이’ 나를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이며, 앞에서 달려오는 저 차가 갑자기 내 차선으로 넘어와 역주행을 하지는 않을 것이란 상식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신뢰-상식이 있기에 우리는 집에서 푹 잘 수 있고, ‘나만 조심해 운전하면 사고가 안 나겠지’라며 운전대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 신뢰가 깨지는 사건이 요즘 가끔 일어나죠. ‘가족끼리 웃는 소리가 행복해 보여 죽였다’는 신정동살인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가족끼리 웃는 죄’로 사람이 죽어야 한다면 정말 심각한 사회입니다. 내가 쓰는 돈이 우리 동네의 신뢰 관계를 높히느냐 낮히느냐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경험한 바로는 미국의 대형 할인점 월마트는 아무 동네에나 못 들어갑니다. 월마트가 입점하면 지역 상권에 큰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월마트가 들어가려면 우선 주민공청회를 여러 번 거쳐야 하고, 주민이 반대하면 입점 못합니다. 그런 법률이 있죠. 반면 한국에서는 ‘지역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정치인-공무원들이 그냥 대형마트 입점을 결정하죠. 미국 소비자들을 ‘바보 같다’고 깔볼 수 있습니다. ‘월마트가 들어오면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살 수 있는데 왜 반대하면서 비싼 동네 구멍가게 물건을 사냐?’고. 하지만 그게 풀뿌리 민주주의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자살률은 한국보다 훨씬 낮습니다. 살만한 동네가 있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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