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장부 스타일’의 여배우 홍지민(37)이 11월 18일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첫 공연을 올린 뮤지컬 ‘넌센세이션’에서 부원장 수녀 허버트 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넌센세이션’은 ‘넌센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으로, 다섯 수녀가 라스베이거스에서 펼치는 좌충우돌을 그린다. 이 작품에는 홍지민 외에 양희경·이태원·이혜경·김현숙 등 국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기센’ 여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홍지민이 맡은 허버트 수녀는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가진 군기반장 역할이다. 다섯 수녀 가운데 가장 점잖은 캐릭터이기 때문에 허버트 수녀 역할은 웃음이 많은 홍지민에게 그 어느 때보다 가혹한 역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웃음을 참는 게 가장 힘들어요. 저의 연기 인생에 난관을 맞았답니다(웃음). 발산하고 표현을 많이 하는 역할을 해오다가 20%만 표현하고 80%를 눌러야 하는 역할을 하려니 무척 힘이 드네요. 허버트 수녀는 뭔가 하지 않으면서도 카리스마를 보여야 하는 역할인데요, 이게 말이 쉽지 표현하기가 만만치 않거든요. 하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거란 믿음이 있기 때문에 설레기도 해요. 이 공연을 마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연기 트레이닝을 받으려고요.” 결승선에 도달했지만 잠시도 쉬지 않고 출발선으로 돌아가 다시 뛸 채비를 하는 홍지민을 서울 용산구청에 있는 ‘넌센세이션’ 연습실에서 만나 공연에 임하는 각오 등에 대해 들어봤다. -올해만 해도 여러 편의 드라마와 뮤지컬에 출연했습니다. 뮤지컬은 연습량이 중요한데요, 정신적·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나요? “저는 연습량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연습량은 거짓말을 안 하거든요. 하지만 체력적으로 타고났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어요. 문제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인데, 제가 보기와 다르게 예민하고 소심한 편이거든요. 소품 같은 건 열 번 정도 확인해야 하고, 연습도 한 소절씩 끊어서 열 번 이상 반복해야 하죠. 연습할 때 하도 ‘다시 시작’이란 말을 많이 해서 제 별명이 ‘다시 시작’일 정도에요(웃음).” -‘넌센스’ ‘넌센스 잼버리’ ‘넌센스 넌크래커’ ‘넌센세이션’까지 넌센스 시리즈를 4편이나 출연하는데요, 이 시리즈에 꾸준히 출연하는 이유는 뭡니까? “배우들은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이를테면 ‘드림걸즈’를 할 때는 우울하고 힘겹기도 했거든요. 극 중 사랑하는 남자에게 버림받고, 멤버들에게 쫓겨나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공연에 들어가기 전에는 독방을 쓰고, 배우들과도 되도록 말을 안 했어요. 그러다 보니 좀 힘들었죠. 하지만 ‘넌센스’ 시리즈를 하면 다른 어떤 작품을 할 때보다 마음이 평온해지곤 해요. ‘넌센스’는 배우 다섯 명의 조화가 중요하기 때문에 항상 유쾌하고 감동이 있거든요. 또한 매 작품마다 제게 힘을 주는 대사가 많아 너무 좋아요. 제작발표회 때 부른 노래는 매번 눈물겹도록 감동적입니다. 이처럼 좋은 에너지가 많은 작품이기 때문에 출연 제의가 올 때마다 흔쾌히 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실제로는 어떤 종교를 믿습니까? “특별히 믿는 종교는 없어요. 하지만 뮤지컬 배우 중에 기독교인이 많기 때문에 뮤지컬을 시작할 때부터 함께 기도하고 공연하는 게 버릇이 됐어요. 교회를 가진 않지만 하나님을 믿고, 절에 가진 않지만 부처를 믿는 등 신(神)이라는 존재를 믿어요. 왜냐하면 절 믿기에는 저 자신이 너무 나약하거든요(웃음).” -‘넌센세이션’이 다른 시리즈에 비해 좋은 점은 뭘까요?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작품이 업그레이드되는데요, 이번 시리즈는 라스베이거스가 무대 배경이기 때문에 앞선 연작보다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습니다. 하지만 배우들은 힘들어요. 전에 율동 수준이었다면 이번엔 지팡이·모자·부채 등 각종 소품을 들고 춤을 추는 장면이 많고, 또 전에는 평평한 무대가 많이 나온 반면에 이번엔 무대가 돌거나 무대 위에서 그네를 타거나 하는 기술적인 장면이 많아서 괴로워요.” -소품에 예민한 홍지민 씨는 더 힘들겠어요. “제작자인 (김)미혜 언니가 (‘넌센스’ 출연) 배우 출신이다 보니 배우로서 아쉬웠던 부분을 이번 작품에서 한풀이한 것 같아요(웃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최고급 퀄리티를 강조했거든요. 부채 하나가 20만 원이 넘는 것도 있어요. 그만큼 제작비도 많이 들고, 여러 가지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제작발표회에서 ‘넌센세이션’ 출연진 중 가장 기가 센 사람을 김현숙 씨라고 폭로했는데요, 발언에 대한 후폭풍은 없었나요? “계속 당하고 있답니다. ‘톡식 히어로’를 할 때는 임기홍 씨가 저의 앙숙이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김현숙 씨가 저의 앙숙입니다. 현숙 씨와는 처음 만날 때부터 싸웠어요. 서로 자기가 더 날씬하다고 우기느라(웃음). 현숙 씨에게 지고 싶지 않지만 당해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현숙 씨의 기 때문에 힘들진 않아요. 오히려 즐겁고 유쾌하죠. 현숙 씨랑 어젯밤엔 한 시간 넘게 통화도 한 걸요. 우린 그런 사이입니다.” -허버트는 수녀들의 군기반장입니다. 실제 홍지민 씨도 군기반장입니까? “실제로는 아니에요. 저는 남에게 약간의 싫은 소리도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기본적으로 배우들은 한 번 깨지면 붙이기 어려운 유리 인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과 행동을 조심한답니다. 겉으로는 대담하지만 속으로는 예민하고 소심한 사람이 배우예요. 촬영이 있는 전날 밤에 잠을 못 자는 배우가 대부분이에요. 양희경 선생님도 평생을 그렇게 사셨다고 하고요.” -그렇게 힘든데도 배우 일을 계속할 생각입니까? “그에 대해 고민하면서 힘들어한 기간은 이미 지났죠. 솔직히 30대 초반엔 배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배우는 제게 천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행복감을 느끼면서 나의 에너지를 관객에게 주자’라는 배우의 가치관을 정한 34세 이후로는 흔들리지 않게 됐어요. 배우로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주위에서 사업이나 장사를 하라는 권유가 굉장히 많은데요, 저는 절대로 안 할 겁니다. 무대에 있는 게 너무 좋고, 콘서트나 행사도 너무너무 행복한데 다른 일을 할 겨를은 없거든요.”
-허버트가 후배들의 고민 상담을 들어주는 캐릭터라는 점은 홍지민 씨와 닮았군요. “피곤해 죽겠어요. 후배들한테 전화도 많이 오고 괴로워요. 하지만 연락이 오면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도 받게 된답니다(웃음).” -최우리·임기홍 등 후배 배우들을 챙기는 모습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선배 배우로서의 책임인가요? “많이 느껴요. 저의 뮤지컬 배우 롤 모델이 최정원 언니인데요, 뮤지컬 배우를 꿈꿀 때부터 언니처럼 되겠다고 결심했거든요. 날이 갈수록 에너지가 넘치고, 노래 실력도 계속 업그레이드되는 정원 언니의 자기 관리는 정말 최고입니다. 배우 연령대가 날이 갈수록 낮아지는 요즘 저는 정원 언니를 비롯해 많은 선배가 60~70세까지 건강하게 버텨주길 원해요. 그래야 그 밑에 우리가 있을 수 있고, 우리 아래 후배들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으니까요.” -자신을 끌어준 고마운 선배를 한 사람 꼽는다면 누군가요? 최정원 씨인가요? “정원 언니가 저를 끌어준 건 아니고요(웃음). 언니는 정신적인 롤 모델이죠. 절 끌어준 선배는 전수경 선배예요. 제가 ‘넌센스 잼버리’ 때 얼터(교대 출연)를 할 때부터 배우 생활을 시작했는데요, 전수경 선배가 절 많이 지도해주고 도와주셨어요. 양희경 선배도 저와 더블(캐스팅으로 연기) 하면서 많이 끌어주셨고요.” -‘넌센스’ 시리즈는 수녀들의 일탈을 다룬 작품입니다. 홍지민 씨가 겪은 최고의 일탈을 꼽는다면? “제가 보기보다 범생이(모범생) 스타일이에요. 겁이 많거든요. 최근에 한 일탈은 없고, 학창시절에 일일 가출을 감행한 적은 있어요. 아침에 큰맘을 먹고 짐을 싼 뒤 학교에 안 갔지만 갈 데가 없어서 결국은 밤늦게 집에 들어왔죠.” -배우로서 지민 씨의 궁극적인 목표가 궁금합니다. “이순재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그때 선생님 연세가 75세 정도 됐던 것 같아요. 정해진 강의 시간인 한 시간 반을 훌쩍 넘기면서 열정적으로 강의하는 선생님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강의 내용은 ‘기본에 충실하라’ ‘시간 약속을 잘 지켜라’와 같이 기본적인 말씀이었는데, 그 안에 정답이 있었어요. 기본만 지켜도 어마어마한 것들을 얻을 수 있거든요. 저도 이순재·나문희 선생님처럼 배역과 더불어 나이를 먹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체력과 목소리를 오랫동안 건강하게 관리해서 사십 대면 사십 대, 노인이면 노인,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는 게 꿈입니다. 그래야 더 진정성이 있는 연기를 할 수 있다고 믿어요.” -홍지민 씨에게 변신이란 어떤 걸까요? “홍지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예를 들어 호탕하고, 성격 좋고, 통통하고 그런 이미지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의외성을 가진 연기가 아닐까요? 그동안 해온 몇 편 안 되는 드라마에서 제가 맡은 역할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문직 여성이고 성격 좋고, 힘이 세고, 의리파고, 남편들은 하나같이 찌질하고 말랐어요(웃음). 그런데 만일 제가 훈남의 남편을 만난다든지, 그동안 계속 직업여성을 연기했으니까 백수건달이 되어본다든지, 섹시한 여인으로 변신한다든지, 의리파인데 완전히 비열하다든지 하는 게 제게 일어날 수 있는 변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끝으로, 관객들과 ‘CNB저널’ 독자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느낀 건데요,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면 감사할 일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반면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면 안 좋은 일이 많이 생기고요. 이 작품을 본 관객들의 삶과 사고가 예전보다 업그레이드되길 바랍니다. 저도 항상 최선을 다하는 배우가 될 테니 많이 사랑하고 응원해 주세요.” 홍지민은 무대나 브라운관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 평상시에도 에너지가 넘치고 유쾌했다. 단순한 농담에도 ‘까르르~’ 목청이 터져나갈 듯이 웃어줄 줄 아는 호탕함이 매력적인 그녀. 배우의 여유로 보이는 그 이면에는 수년 동안 단련해온 정신력과 관객에게 완벽한 공연을 보여주려는 홍지민만의 결벽증이 있었다.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건 연습량이라고 생각해요. 연습량은 거짓말을 안 하거든요. 저는 스케줄 때문에 연습에 참여하지 못할 때는 따로 연습해요. 노래는 녹음해서 듣고요. 연습이 부족하면 불안하니까요.” 지난해 뮤지컬 배우로서 정상의 달콤함을 맛봤지만 홍지민에게서 자만심은 찾을 수 없었다. 겉으론 한없이 넉넉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늘을 찌를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 완벽주의자가 홍지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