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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윤여준 “안철수, 이미 정치에 충분히 기여”

[연중 시리즈 - 보수가 바로서야 산다 ②]‘대통령학’ 펴낸 윤여준 전 장관에게 듣는 한국 정치 40년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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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59-260호 최정숙⁄ 2012.02.06 10:32:29

지난해 9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50세)의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이 90% 이상이라고 말해 ‘안철수 돌풍’에 불을 지핀 인사가 있다. 바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73)이다. 동아일보, 경향신문 기자 출신인 그는 주일대사관 공보관, 청와대 비서관, 국회의원(16대) 등을 지냈다. 최근에는 저서 ‘대통령의 자격’을 출간, 국정 운영 기술(Statecraft)을 논하고, 이명박 현 대통령을 포함한 역대 대통령을 평가해 화제가 됐다. 인터뷰는 1월 18일 마포의 윤 전 장관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며칠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의사가 무리하지 말라고 단단히 경고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생활을 확 바꿔 문화 예술 쪽에 많이 빠져 보려 한다. 이제 내 나이가 현실정치에 참여할 나이도 아니지 않는가. 그럴 생각도 없고.” - 현실정치에 참여할 나이가 아니란 말씀? “난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나보다 훨씬 지식 많고 식견 뛰어나고 사회적 위치도 높고 능력 있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점잖은 걸 중시해 발언을 안 한다. 그래서 나 같이 별로 아는 것 없는 사람이 자꾸 말을 하게 된다. 언론이 자꾸 말하라고 요구한다. 기사는 써야 하는데 말하는 사람은 없고 다른 사람들은 말을 안 하고…. 내가 전직 기자 아닌가. 기자들 고충을 잘 안다. 그러니까 거절을 못한다. 그러다 보니 아는 것에 비해 말을 너무 많이 했다. 반성하고 있다.” - 지난해 12월 ‘대통령의 자격’을 출간했는데 계기는? “이런 말이 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그 말이 절실해 생각해 봤다. 성공한 정치인이 왜 막상 대통령에 취임하면 다 망가질까. 박정희 대통령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다른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그랬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답이 나왔다. 그건 창업과 수성의 차이를 몰라서 그렇다고 본다. 창업에 필요한 자질과 수성에 필요한 자질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창업도 힘들다. 오르기 힘들고 당선되기도 힘들다. 하지만 정치적 성공에 자만한 나머지 ‘이 정도면 내가 대한민국이라는 크지 않은 나라를 다스리는 건 문제도 아니다’라는 식의 잘못된 생각을 갖기 때문에 하나같이 취임 뒤 망가진다는 결론이 났다. 그래도 책을 쓰겠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 취임 1년을 보고 이건 정말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정리했다.” - 책을 보니 자료 내용이 대단하던데? “1970년대부터 자료를 모았다. 신문 스크랩만 수십 개 박스가 있다. 이를 토대로 초대 대통령부터 정리해 봤다. 자료를 꺼내 분류해 필요한 거 보고 책 다시 보고, 그렇게 2010년을 보냈다. 종합해 보니 이 정도면 책으로 엮어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정치학 교수를 찾아가 얘기했다. 왜 수많은 정치학 교수들이 리더십에 관한 얘기를 하면서 스테이트크래프트(statecraft, 국정 운영 기술)에 대한 얘기를 안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그랬더니 그 분 말이, 이론과 현실을 다 알아야 가능할 것 같아서 교수들이 현실 쪽에 자신이 없거나, 현실적으로 국가 운영에 참여한 적이 없고, 실제로 정치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론에 약해서 그렇지 않겠냐고 말하더라. 그러면서 날 보고 하는 얘기가 “윤 장관이 해 봐라. 적임자다”고 하더라. 오랜 세월 가깝게 지냈던 분들은 날 아니까 해 보라고 해서 2011년 초부터 책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엄청난 기대 속에서 힘차게 출발한 역대 대통령들이 실패라는 평가 속에서 임기를 마친 이유는, 국민을 너무 우습게 봤고, 또 창업만큼 수성에 공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 - 집필 하느라 힘들었을 것 같다. “두 달 동안 잠을 못 자다시피 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12월 19일 병원에 입원했다. 의사가 나보고 물을 안 마셨냐고, 탈수 증세가 있다고 하더라. 몸을 어떻게 썼기에 이 지경이 됐냐는 말이었다. 의사 말이 ‘솥에다가 물을 부어도 센 불을 오래 때면 물이 금방 증발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하더라. 탈수 증세 없애는 주사를 하루 동안 맞았더니 몸이 완전히 편해졌다. 초음파에서 CT까지 온갖 검사를 다했다. 2주 가까이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아직 몸이 회복 안 돼서 사회 활동을 거의 안 했다. 쉬면서 음악도 듣고 TV도 많이 보게 됐다. 그런데 채널권을 집사람이 갖고 있어서 팔자에 없는 드라마도 보며 지냈다(웃음).” - 드라마를 보신다면 요즘 ‘빛과 그림자’라는 드라마가 있고, ‘반(反)박정희 드라마’라는 시각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 드라마는 못 봤다. 하지만 방송 작가나 연출가라면 그 시대를 좋게 보지 않을 수도 있다. 빛과 그림자가 극명한 대통령이 박정희 아닌가. 공과 과가 극명히 갈리는 분이다.” - 책 집필은 언제부터? “2011년 들어와 안철수 교수와 ‘청춘콘서트’라는 예상 못했던 일을 했다. 그래서 연초에 쓰다가 4월부터 콘서트에 시간과 정열을 많이 쏟아 넣게 됐다. 도저히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어서 5개월 가까이 책 쓰는 것을 중단한 상태로 이러면 안 된다, 큰일났다 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안 교수가 9월 초에 시장 선거 나간다고 했다가 안 나간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 그러면 이제 일 안 한다 선언하고 완전 빠져 책에 매달렸다. 당초 출판사와의 약속은 10월 달에 내기로 했는데 못 지켰다. 늦게나마 약속을 지키려고 9, 10월 두 달을 매일 밤 새다시피 했다. 약속은 지켜야 하고 시작했으니 끝내야 한다고 생각해 이 악물고 했다. 시간에 쫓기면서 쓰다 보니 뒷부분은 말이 안 되는 부분도 있다.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 표지는 딱딱해 보이는데 책 내용이 의외로 재미있다. 교과서로 사용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대통령의 자격에 대해서만 나와 있더라. 에피소드라던가 회고록 같은 내용은 보이지 않는데…. “재미있었다니 고맙다. 회고록은 세상에 내놓을 만한 성취나 업적이 있어야 쓰지, 아무나 쓰나. 개인적으로 정치인들 회고록은 거의 읽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고 자기 합리화나 미화를 목적으로 쓰는 글이 많다. 서양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아주 없진 않겠지만 정직하고 우리보다 솔직하다. 그런데 우리는 아니다. 나 또한 회고록에 남길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 책에서 대통령의 자격으로 6가지를 언급했다. △공직자로서의 대통령직에 대한 투철한 인식 △민주주의에 대한 폭넓은 이해 △균형 잡힌 국가관 △전문적인 정책 능력과 도덕성 △기품 있고 절제된 언행 △대북한 관리 능력 등이다. “‘공직자로서 대통령직에 대한 투철한 인식’은 지극히 이상적이고 일반적인 얘기다. 평소 내 지론이기도 하다. 국가라는 것을 잘 모르고 대통령 직이라는 것을 잘 모르면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바로 권력의 사유 의식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실패한 이유 중 하나가 이 때문이다. 권력을 남용하고 부정부패해서 그렇다. 권력을 내 것이라고 생각해 맘대로 쓰니까 문제다. 대통령 직이라는 것을 투철히 인식하면 자동적으로 권력의 사유 의식이 안 생긴다. 권력을 오로지 국가와 민족에 온당히 쓰면 왜 국민이 미워하겠나.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런 인식이 없다. 동기는 좋은 동기다. 대통령 됐으니 나라 잘 되게 하려는 마음이 우선이었을 테니 말이다. 자신도 나중에 훌륭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싶지 않겠나. 그런데 이 같은 인식이 없으니 계속 실수하는 것이다.” - 기품 있고 절제된 언행과 관련해서 한 말씀 하신다면? “인간 생활에서 언어는 굉장히 중요하다. 국정은 대통령의 말로 이뤄진다. 안 그런가? 지시도 말로 하고 연설도 말로 하고. 대통령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대통령의 말은 늘 뜻이 명확해야 하고 품위와 절제 있는 표현을 써야 권위와 신뢰가 생긴다. 말을 모호하게 하면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8.15 경축사에서 말한 ‘공정사회’가 대표적으로 애매모호한 사례다. 대통령 자신도 공정사회에 대한 인식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다. 내가 보기엔 그랬다. ‘공정사회’는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 중요한 의제였다. 그런데 대통령이 그 말을 한 뒤 해석이 대통령실장 다르고, 국무총리 다르고, 여당 대표, 원내대표, 특임장관이 다 달랐다. 그건 대통령이 뜻을 명확히 안 해서 그렇다. 국가적 아젠다를 던지기 위해서는 사전에 핵심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공감대를 만들었어야 했다. 국민에게 해석해 줘야 할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뜻을 제각각 해석했다. 좋게 말하면 다양성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중구난방이다. 그러면 국민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어느 말이 맞다고 해석해야 하나. 평소 내가 예로 자주 드는 것이 고 노무현 대통령의 ‘그놈의 헌법’이다. 준수를 선서하고 취임한 헌법 앞에서 대통령이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심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타국에 대한 외교적 표현은 아니었다.” “대통령은 말을 잘해야 한다. 지시도 말로 하고, 연설도 말로 하지 않는가? 대통령이 말에 대한 해석을 정확히 내려주지 않으면 우왕좌왕 혼란이 생기며 중구난방이 된다” -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안철수 서울대 교수 등 현재 거론되는 대선 주자 중 대통령의 자격을 제대로 갖춘 인사는 누구라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그 분들이 대통령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보여줄 계기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대통령 후보로서 말한 게 아닐 테니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나라의 위상이나 국민 역량의 크기를 볼 때 작은 나라가 아니다. 다원화돼 있다. 다원화 돼 있다는 것은 갈등 역시 다원화돼 있다는 소리다. 갈등을 봉합하는 세련된 리더십이 필요한 때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자질을 기르는 게 고시공부 하듯 학원 들어가 1년 노력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 후보 물망에 오른 분들에게 자질을 기르라고 해도 기를 겨를은 없을 것이다. 2012년에만 선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있다. 대통령이 돼 나라를 이끈다는 야망을 갖는 것은 좋다. 야망을 품었으면 자질도 함께 키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쉽지는 않다. 이론적 지식과 경험적 지식이 한데 어우러진 상태를 만들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제대로 대통령의 자격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아직 그게 누가 될지는 모르겠다.” -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는데. 당시 기억나는 사건이 있다면? “전두환 정부 때 청와대에 들어갔다. 당시 근무하면서 늘 속으로 했던 생각이 있다. 전 대통령이 1979년 10월26일 김재규가 박 대통령을 향해 쏜 총알의 역사적 의미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 총성은 유신체제의 종말을 알리는 소리였고 한 시대를 마감하는 소리였다. 자신이 대통령으로 나라를 맡은 시기가 한 체제가 끝나고 새로운 체제로 넘어가서 단계라는 인식을 했어야 하는데 그런 인식이 없었다고 봤다. 어설프게 박정희 대통령을 흉내 내는 것으로 갔다. 4.13 호헌 조치를 발표한 1987년 난 공보비서였다. 다음날인 14일 호헌 조치에 대해 다른 비서관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나만 4.19 이후에 가장 광범위하고 큰 국민적 저항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수석이 삿대질을 하면서 청와대를 나가라고 해서 떠나려고 한 적도 있다. 그런데 결국 두 달이 안 돼서 6.10 민주항쟁이 일어났다. 노태우 정부 때는 정무비서관을 했다. 당시는 모든 기업과 언론에 노조가 많이 생겨서 감당이 안 됐다. 걸어 다닐 수가 없었다. 급하니까 항상 숨 가쁘게 뛰어 다녔다. 노태우 대통령은 민주화 시작의 첫 번째 대통령이다. 군인 출신이지만 본격적으로 민주화를 이행할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준비가 안 된 대통령이라고 봤다. 국민의 강력한 에너지로 사회가 민주화 쪽으로 갔다. 대통령이나 정부가 의지와 계획을 갖고 이 민주화 에너지를 잘 이끌어 가면 바람직한데 그런 준비가 덜 돼 있어 상황에 끌려가는 일이 벌어지고는 했다. 김영삼 정부 때는 공보수석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의 화신이고 상징’이다. 그런데 국가 권력을 잡고 나니 권위주의적이 되더라. 민주화의 상징인 분이 어떻게 그렇게 권위주의적이 됐나 싶어 놀랐다. 고 김대중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왜 그런가 했더니 그 분들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활동한 시기가 민주주의와 반대 시기였다. 정치 활동을 한 시기가 권위주의 시대였던 것이다. 민주화 투쟁은 목숨 걸고 했지만 결국 본인들의 내면은 민주적이지 않았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활동한 시기가 반민주주의적 시기였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그런 특징이 배어 있던 것 같다. 본인들은 상당히 민주적으로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3자가 보기에는 아니었다.” - 신문기자를 했는데 기자 생활 때 바라본 정치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햇수로 12년 중 8년을 정치부 기자로 지냈다. 70년대 초 내가 정치부 기자를 할 때는 여야가 극한대립을 했다. 그때 야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농성을 했다. 지금은 국회사무처에서 이불을 다 준비해주지만 그때는 각자 집에서 갖고 왔다. 본회의장에 취재를 가면 집에서 이부자리 갖다 깔고 마치 피난민 수용소 같았다. 나도 취재하면서 정치인들을 많이 비난했다. 이게 무슨 짓인가. 겉으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한다지만 이게 무슨 국민과 상관있나, 권력투쟁이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뒤 내가 16대 국회의원을 하면서 나도 국회 본회의장 바닥에 요를 깔고 몇 번 잤던 기억이 난다. 새벽 1, 2시에 본회의장에 가만히 누워 천장을 보면서 ‘똑같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정치에서 30년 세월이 무슨 의미가 있나, 안 바뀌었다는 생각이었다. 나라는 30년 사이에 엄청나게 바뀌었는데 정치만 30년 전에 하던 일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정말 창피하고 분하더라. 그 자리 있는 것조차 싫었다. 그런데 지금도 한국 정치는 똑같다. 그래서 국민이 버리는 것이다. 국민이 여러 차례 선거를 통해 옐로 카드를 꺼냈다. 끝내 정치인들이 우습게 아니까 국민이 이제는 레드 카드를 꺼냈다. ‘안철수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안철수라는 한 개인은 대단한 정치인도 아니었다. 정치를 한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잠재력을 갖고 등장하니까 기존의 거대 정당들이 마치 진도 7.5 지진을 만난 것처럼 기둥뿌리가 흔들렸다. 이것이 뭘 의미하나. 기존 정당들이 모양은 멀쩡해도 속은 국민과 유리돼 있다는 것이다. 국민과 상관없이 자기들끼리 있었다. 국민이 레드 카드를 꺼내니까 놀라서 한나라당은 비상체제에 들어갔고 박근혜 대세론도 무너지고. 야당도 마찬가지다. 내가 정치인들한테 원망을 많이 듣는다. 그런 말(안철수 서울시장 출마)을 해서 상황을 엎어 놨다고.” “전두환은 박정희 흉내 내려고 했지만 시대의 흐름에 대한 인식이 없었고, 노태우는 준비 덜 됐으며, 김영삼-김대중은 민주화 주역치고는 너무 권위적이었다. 노무현은 말에서 실수했고, 현 정권은 권력의 사유화 탓에 문제”

- 기자 출신으로 요즘 표현의 자유를 얘기한다면? “1972년 유신체제가 시작된 뒤 기자를 더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취재도 제대로 안 되고 취재해도 기사를 쓸 수 없었다. 신문사에 돌아오면 벌써 윗사람한테 ‘당신네 모모 기자가 왜 이런 걸 파고 다니냐’는 전화가 와 있었고, 윗사람들은 취재하지 말라고 했다. 취재해도 기사가 안 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 생활을 계속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를 그만둔 중요한 계기였다. 기자 그만 두고 공무원이 됐는데 국내 근무라면 안 했겠지만 해외 근무라 했다. 도망가는 의미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 표현의 자유는 비교도 안 된다. 지금 아시아에서 이 정도로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나라가 얼마나 되는가? 일본과 우리나라밖에 없다. 다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어리석게도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어차피 통제할 힘도 없으면서…. 불순한 의도만 늘어나고 효과는 하나도 못 보고, 이런 걸 반복했다. 어떻게 보면 순진하다. 1980년대 중반 미래학자 중에 이런 예언을 한 사람이 있다. 당시만 해도 개인의 의견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려면 정당을 통해 정책화 하거나, 언론을 통해 알리는 방법 이외에는 없었다. 인터넷이 생기면서 개인의 생각이 짧은 시간 안에 공론화 되는 길이 열렸다. 실시간 전파력으로 전 세계에 퍼지니 이제는 정당이 필요없어진다는 게 그 미래학자의 말이었다. 지금 정보기술 발달은 상상을 초월한다. 권력이 무슨 수로 SNS를 제도 또는 법으로 통제하겠나. 북한도, 중국도 통제 못하는데…. 대한민국이 통제하겠다는 그 용기가 참 부럽다. 권력이 서투른 짓을 하면 자꾸 순교자를 만들어낸다. 연예인의 방송 출연을 막는 것은 권위주의 방식이다. 과거 민주화의 화신이라는 대통령들도 권위주의 방식을 썼다. 못마땅한 연예인들을 출연 안 시키기 예사였다. 현 정부만 한 것이 아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과거 자신들이 권력 잡았을 때는 똑같이 했다. 기록이 있다. 자신들의 행동은 생각 안 하면서 현 정부만 욕하는 걸 보면 정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방법이 조금 더 교묘했나 덜 교묘했나의 차이지, 본질은 뭐가 다른가.” - 우리 사회의 세대 갈등도 문제인데,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The Living Years(Mike & The Mechanics, 1988년)’라는 노래가 있다. 아들이 아버지와의 세대차이 때문에 다른 언어로 얘기하는 것처럼 소통이 안 됐고,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잘해 드리지 못한 걸 후회하는 내용이다. 노래의 첫 구절은 ‘모든 세대는 앞 세대를 원망한다’로 시작한다. 세대차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있어 왔고 어느 나라에나 있다. 지금은 예전보다 시대가 빠른 속도로 진행돼 격차가 더 빨리 벌어질 뿐이다. 갈등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모든 세대는 앞 세대를 비난하지만은 말아야 한다는 점을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하다. 아들이 고3 때였다. 저녁에 올 때 늘 학교 교문 앞에 마중을 나갔다. 걸어서 10분 거리를 오면서 얘기를 많이 했다. 자정 지나서 집에 들어오니 얼마나 스트레스였겠나. 한 번은 오락실에 함께 갔다. 난 3분 앉아 있으니 공기도 나쁘고 전자음에 두통이 왔는데 아들은 마음이 안정된다고 하더라. 나는 두통이 나고 아들은 안정된다니 이해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냥 수용해야 한다. 세대 차이는 이해하려고 들면 안 된다. 그냥 수용 해야지. 나이 든 사람들은 말세다,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반대로 젊은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는데 연륜이 주는 지혜가 있으니 무조건 배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평화재단 산하 평화교육원에서 ‘청춘콘서트’를 기획해 젊은층으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에피소드를 소개해 주신다면? “정치 얘기를 하고 싶다고 해서 무대에 올랐다. 이미 그런 형식과 분위기에 익숙해 한 번 해 보자고 들어갔다. 안철수 교수와 박경철 원장은 내가 나이가 많으니 분위기가 어색해지지 않을까 걱정한 것 같더라. 그런데 의외로 그런 것 없이 잘 하니까 굉장히 좋아하더라.” - 누리꾼 후기를 보니 재미있었다고 하던데. “농담을 많이 했다. 청춘콘서트 시작 때는 안 교수가 폭발적 인기를 끌 줄 몰랐다. 본인도 생각 못 했다. 30개 도시를 돌았는데 후반에 안 교수의 마음이 무거운 것 같았다. 열광적 호응과 지지는 자신의 책임이 그만큼 무거워졌다는 의미니까 압박을 느끼더라. 어쩌나 하는 고민이다. 그래서 나도 ‘책임을 무겁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스트레스 많이 받는다’고 했다. 안 교수가 정치를 할지 안 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정치를 안 한다고 해도 현재 시점까지만 봐도 그는 한국 정치에 어마어마한 기여를 했다. 한국 정치를 바꾸는 계기를 만들지 않았나. 철옹성 같은 기득권 구조를 흔들었고…. 한국은 정치가 안 바뀌면 나라가 안 바뀐다. 안 교수가 얼마나 큰 변화를 가지고 왔나. 지금 벌어지는 사건은 일종의 혁명이다. 그걸 일으킨 사람이 안 교수다. 개인적인 지지 여부를 떠나 이미 안 교수가 한국 정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을 평가해 줘야 한다.” -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국민생각’이라는 신당을 창당했다. 보수분열이라는 시각이 있는데? “지금은 다른 당을 만들려고 하니까 그렇게 볼 수 있지만 분열될지는 아직 더 두고 봐야 한다.” - 자유선진당 이회창 전 대표는 4월 총선 전에는 어렵겠지만 대선 전에는 보수대연합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대연합’을 내거는 순간 한나라당은 몰락할 것으로 본다. 40대 이하 유권자들의 비율이 63~4%를 차지한다. 그들의 성향은 말 안 해도 알 테고…. 보수대연합을 하자고 나선다면 ‘수구의 회귀’라는 소리를 이들로부터 들을 수 있다.” - 한나라당 당명 개정에 대한 의견은?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있으니 보수통합당(보통당)이 나올 가능성은? “당명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지 않은 이미지가 박혀 있기 때문이다. 고정 지지자에게는 안 바꾸는 게 유리한 면도 있지만 젊은 사람들은 한나라당이라면 고개를 돌리지 않나.”(한나라당의 새 당명은 2월 2일 ‘새누리당'으로 정해졌다. 새 당명은 2월13일 전국위원회 의결 절차를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대보수연합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랬다가는 ‘수구의 컴백’으로 거부당할 수도. 박근혜와 한명숙의 대결을 ‘박정희 대 노무현’으로 개념 잡으면 누가 유리하겠는가?” -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선출되면서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과 ‘노무현 대 박정희’ 대결구도가 됐다는 시각도 있는데? “야권 입장에서 보면 그런 구도가 유리하니까 그렇다고 본다. 여러 가지로 극명하게 대비되니까.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를 박정희와 노무현 중 누가 대변한다고 보나? 뻔한 결론 아닌가? 야권 쪽에서 그런 프레임을 짜면 대선에서 이기기 쉬워진다. 한나라당이 자칫하면 밀린다.” - 고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를 했지만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반대로 박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는 더 발전했을 거라는 평가도 있는데? “그렇게 가정법으로 역사를 얘기하면 안 된다. 이런 논쟁은 있다. 박정희 정부는 권위주의적 발전 체제를 택했는데 한국 경제가 계속 발전하려면 권위주의 체제로는 안 되고 민주주의가 더 효과적이라는 이론이다. 그 논쟁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권위주의 발전 체제를 채택해 산업화에 성공했다면 그것대로 효과적이었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지, 민주화를 먼저 추진했으면 더 잘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말할 수 있지만, 현실적인 의미는 없다고 본다.” - 책 출간도 하고 작년 한 해 바쁘게 보내셨는데 앞으로 계획은? “책 집필에 6개월 정도를 투입할 생각이었는데 4개월을 다른 데(청춘콘서트) 바치느라 더 오래 걸렸다. 몸이 상하고. 마지막 열정을 불태운 결과가 병원 입원이라 다시는 안 하려고 한다. 아직도 통원 치료 받으며 약을 먹어야 한다. 몸 상태가 회복이 안 됐다. 전에는 며칠 앓으면 금방 회복됐는데, 지금은 무리한 기간이 길어 회복 기간도 길어질 거라고 의사들이 말하더라. 젊은 사람은 회복이 빠르지만 70이 넘은 나이라 회복이 늦을 테니 몸과 마음을 극도로 이완시키라는 지시다. 올해 초는 몸 회복에 주력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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