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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숙, 공사판 같은 우리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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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67호 왕진오⁄ 2012.03.26 11:28:16

작가에게 작업을 가능하게 해주는 요소는 무엇일까. 그 계기는 순수한 상상력일 수도, 세상에 대한 첨예한 시각일 수도 있다. 김효숙(31) 작가의 경우는 사적인 경험에서 작품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유년 시절에 유난히 이사가 잦았다고 했다. 빈번한 이사는 작가로 하여금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귈 수 없게 만들었고, 이를 통해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즉 자기반성적인 기질을 마음 속에서 키웠다는 말이다. 재개발 건축 현장에 대한 작가의 관심도 남달랐다. 집과 집, 건물과 건물, 도시와 도시를 오가는 보통사람들의 인식 속에 건축 현장은 낯선 공간으로 다가온다. 그런 낯선 공간이 작가의 마음 속에 자리를 잡았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건축 현장은 김 작가의 최종적인 지점 내지는 완결된 형태가 정박하는 자리라기보다는 과정이며 과도기가 움트는 장소로 화면에 자리잡는다. "어릴 적부터 여러 도시개발 지역에 살아오면서 많은 신축공사 현장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공사 현장의 육중한 건축 자재들과 시공 중 소음에 주눅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어지럽게 얽혀진 현장의 모습이 인간의 복잡한 내면의 모습으로 제 마음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김 작가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복잡한 의식이 그대로 표현된 작품들은 완성된 구조물이 아닌 완성되기 전의 원형에 가까운 건축 자재들의 모습으로 다채로운 느낌을 부여한다. 이는 현대인이 겪는 심리적 상실감 속에서 현실에서 벗어나 회귀하고자 하는 기억 속 옛 모습과도 같이 느껴진다.

작가는 이처럼 과도기적 장소이며 불안정한 장소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바라본다. 그의 상상력이 매개가 되어 생경한 재건축 현장이 삶의 은유로 다가오며, 작가에게 삶은 건축 현장처럼 과도기적 장소며 불안정한 현재의 자신의 모습처럼 드러난다. 어떤 완결된 형태나 잘 짜인 형식이 안주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닌 것이다. 어수선한 건축 현장처럼 세계의 전망도 파편화되어 있고, 그 전망이 들어와 있는 시각의 잔상도 파편화돼 놓여 있다. 세상을 통일된 전망 속에서 바라보게 해주는 중심 같은 것은 이제 더 이상 없다. 다만 무중력 상태 속을 부유하는 세계의 파열된 조각들이 있을 뿐이며, 조각난 인식의 파편들이 있을 뿐이다. 도시에는 우리를 지배하는 수많은 통념과 구조, 관계, 규범, 규칙들이 즐비하다. 도시를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신축 현장의 구조물은 이러한 것들의 테두리로 상징된다. 특히 신축 현장의 원형에 가까운 회색 콘크리트 벽면은 그 틀의 진화 과정으로 비춰진다.

또한 진행 과정의 조형물들은 쌓임과 무너짐, 움직임과 멈춤, 변화와 유지, 흐림과 선명함의 경계선상에 머물며 그것에는 긴장감마저 흐른다. 김효숙 작가는 건축 현장에서 집을 보고, 건축을 보고, 도시를 보고,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을 본다. 집은 세상을 이루는 최소 단위의 복합체다. 집은 단순한 구조물 이상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상징은 이중적이다. 그림에 표현된 이미지들에는 축조된 벽면들과 허물어진 벽체들의 무분별한 파편들이 어지럽게 공존하며 세계로부터 물러나고 싶은 주체의 욕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와의 관계망으로부터 퇴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공존하는 이율배반마저 나타난다. 집은 정체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정체성은 아이러니하고 이율배반적이다. 작가의 그림에서 집은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기보다는 마치 태풍에 휩쓸린 것처럼 온통 허물어지고 있고, 해체되고 있고, 해체된 구조물의 무분별한 파편들이 마치 무중력 상태처럼 화면 위를 떠다닌다. 허물어진 집과 파열된 정체성은 일종의 유기적 표현으로 공존하지만, 현대인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앞질러가는 물질적인 풍요와 미처 이를 따라잡지 못한 채 뒤쳐진 정신적 패닉 상태, 권태와 공허, 아노미의 심리적 징후가 현대인에게 내재화돼 있는 것이다. 작가의 그림은 이처럼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의 경계를 넘어 현대인의 보편적인 경험으로 확장되면서 공감을 얻고 설득력을 얻는다. 그런가하면 작가의 그림은 급조된 근대화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적이고 시대적인 은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와우아파트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등 대형사고와 용산 참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최근의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사건 등 예술적 감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은 초현실주의 그림 같은 현실로 다가온다. 그렇게 비현실적인 현실의 파편들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거대한 괴물처럼 화면에 일종의 살풍경을 연출해낸다. 그러한 비현실은 온통 무채색의 잿빛 그림으로 강조되고, 특히 얼굴 전체를 가릴 만큼 모자를 깊숙하게 눌러쓴 익명의 주체로 강화된다. 이런 그림들은 색을 잃어버린, 즉 정체성을 상실한 시대에 바치는 장송곡 같고, 그 상실의 시대를 증언하는 익명적 주체들 즉 얼굴 없는 사람들에 바치는 헌정시 같기도 하다. 김효숙의 그림에서 집은 개별 주체의 정체성을 상징하고, 집과 집은 주체와 타인과의 관계를 상징한다. 그런데 그 집이 건축 현장에서처럼 허물어지거나 만들어지는 중이라면 그 정체성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고, 타인과의 관계 또한 미완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정체성을 상실한 시대의 좌표위에 얼굴 없는 익명적 주체들이 서성거린다. 보기에 따라선 세상을 낯설어하는 이방인 같기도 한 그들은 작가의 자화상이면서 우리 모두의 초상이기도 하다. 그린에 자리잡은 익명적 주체들은 의미 있는 서사를 만들어내는데, 특히 '마지막 소통'에서는 존재론적 의미를, 그리고 '재현된 무대 1'에서는 사회학적 의미를 얻는다.

작가는 '재현된 무대 1'에서 뇌물수수 혐의로 사건을 재현하는 장면을 찍은 보도사진을 모티브로 설정했다. 혐의를 입증하려는 입장과 방어하려는 입장이 서로 대비되는 이 그림에서 작가는 그 사건이 일어난 장소의 테이블을 일종의 무대로 설정한다. 그리고 일종의 안무를 암시하는 사람의 형상을 빌려 그 상황 자체가 우습게 보이도록 연출한다. 여기서 작가는 건축 현장을 정체성 혼란이나 상실의 표상으로 보는 단계를 넘어, 개인적인 경험의 층위를 넘어, 존재론적 발언의 수위를 넘어, 사회학적 층위로까지 그 의미를 확장시킨다. 김 작가는 도시를 살아 있는 유기체 또는 생명체로 인식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인식은 일종의 도시생태학과 일맥상통한다. 특히 해체되는 도시의 이미지는 기왕의 인식 지도를 폐기하고, 자기 식의 인식 지도 그리기에 대한 열망을 암시한다. 작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축 현장을 통해 현대 사회 속 우리의 모습을 투영해보고자 했다. 그 속에 감추어진 현대 사회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특히 개개인의 다양함이 인정되지 않고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과 구조 속에 강요되고 포장돼온 모습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효숙 작가는 2008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011년 OCI미술관에서 '부유하는 나의 도시'라는 타이틀로 개인전을 열었으며 이어 32회 중앙미술대전 선정 작가, 10회 송은미술대전 선정 작가, 1회 송암문화재단 신진작가 선정, OCI미술관 레지던시 프로그램 선정, 2012년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 작가로 선정되며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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