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로 먼 눈, 골프로 뜬 눈’ 이는 6년 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각장애인 골프시합이 열렸을 때, H신문에서 뽑은 기사의 제목이다. 갑자기 이 멋진 기사 제목이 떠오른 것은 시각장애 프로 골퍼가 PGA의 Wells Fargo 챔피언십 대회에서 우승해 큰 화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골퍼라면 ‘신기하네’라는 반응에 그치겠지만, 나로서는 대단히 관심이 가는 내용이었다. 전 세계 시각장애인들에게 큰 위안을 안겨주는 좋은 뉴스이기도 했지만, 한 눈으로 골프를 하고 우승자가 되기까지에는 너무나 많은 고난이 있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10년 전쯤에 세상을 떠난 국민만화가 故 고우영 화백도 한쪽 눈의 시력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래서 주변 친지들이 ‘한 눈으로 어찌 그리도 골프를 잘 치시오?’라고 묻자, 그는 “한 눈으로 골프를 치니 일목요연해 집니다”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고 화백이 연습을 많이 해서 시력 장애를 극복했다는 에피소드가 생각이 났다.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골프를 쳐요?’라는 질문과 함께 시각장애인이 골프를 한다는 게 참 신기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제대로 보면서도 골프가 쉽지 않은데, 잘 보이지 않거나 아예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들이 비장애인(정안인)과 같은 조건에서 플레이를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7년 전부터 Blind Golf 보급에 앞장서기 전에는, 나 역시 시각장애인 골프는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함께 하는 산행에서 알게 된 시각장애인들이 골프에 입문시켜달라는 부탁을 해왔을 때 나는 상당히 당황하기도 했었다. 당시에 노인복지관에서 봉사자로 노약자들에게 골프를 지도하고 있었는데, Blind Golf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함께 길을 찾아보자고 약속을 하였기에 외국의 사례를 파악하고, 외국 기관과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Blind Golf가 이미 약 90년의 역사가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됐다. 결국 나는 8명의 Blind Golf 생초보들과 함께 연구해가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갔다.
2007년 1월에 본격적으로 연습을 개시하고, 5월에는 일본대회에 2명이 참가를 했다. 같은 해 10월 1일 베어크리크 골프클럽에 세계협회장이 내한해서 시구함으로써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골프대회가 열리게 됐다. 고비용, 사치성 골프 문화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Blind Golf의 보급은 그리 녹녹치 않았다. 연습장도 수차례 옮겼고, 정규 골프장은 물론 파3홀의 간이 골프장 라운드도 타 입장객들이 불만을 제기해 어려움과 서러움도 많았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제1회 대회를 열어준 베어크리크 골프클럽에서 영업시간이 끝난 후에 몇 홀씩 연습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줬고, 크리스천골프 동호회원들이 봉사자 캐디를 자청함으로써 Blind Golf가 정착되기 시작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도 부평의 시각장애인 학교 옥상에 연습장 시설을 설치해줘 많은 시각장애 학생들이 골프에 입문하게 됐다. 골프를 통해서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힐링’이 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큰 기쁨을 느끼고 있다. 신혼 초에 시력을 잃은 데다 10년 이상 두문불출로 기력이 약해져 500m 조차 걷지 못했던 어느 여성 골퍼는 골프를 통해 자신감을 얻고 첫 라운드 8km를 거뜬히 걸어 가족과 친지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그녀가 내게 더듬더듬 찍어서 보내준 철자 틀린 문자는 오랫동안 나를 울리기도 했다. “저를 거듭나게 만들어 주신~~…” 며칠 전 나는 그녀와 반가운 해후를 가졌다. 쓰레기 더미 위에 만든 친환경 대중 골프장인 에콜리안 제천 골프클럽에서 Blind Golfer와 봉사자들이 함께 플레이 하는 포섬 방식의 축제가 있었다. 그녀가 내게 자랑하듯이 “단장님, 정말로 저를 거듭나게 해줘서 고마워요. 저는 지금 무척 건강해져서 볼링 대표로도 뛰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6년이나 된 그 기사 제목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장애로 먼 눈, 골프로 뜬 눈’ - 김덕상 골프칼럼니스트협회 명예이사장 (OCR Inc.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