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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기 문화 칼럼]뒷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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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28호 박현준⁄ 2013.05.27 11:06:27

일단 사람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물체, 특히 배설물을 부정하게 여기는 것은 전 세계 공통의 문화현상이다. 똥, 오줌 등 배설하는 일은 먹는 것 이상 중요한 생리현상인데, 우리는 유독 ‘먹음새 문화’만을 강조하고 있다. "오뉴월 뒷간과 처가는 멀어야 좋다" 는 속담처럼 전통적 가옥 구조에서 뒷간은 본채와 멀리 떨어져 헛간이나 축사와 나란히 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은 완전히 역전됐다. 뒷간, 화장실은 집안으로 들어와 그것도 안방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 잡았고, 본가 보다 처가 위주로 가정생활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뒷간은 부엌과 멀리 떨어져 있다. 이 현상을 가신 신앙과 처첩간의 갈등을 묶어서 설명한다. 부엌과 뒷간이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위생적으로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제주도의 문전본풀이에는 문전신이 남편이고 부엌의 조왕이 본처, 일곱 아들은 올래(집 입구)지기 주목신들이며 변소 각시는 첩이다. 뒷간신인 변소각시의 간계로 본처인 조왕을 죽였다가 아들들에게 살해된다. 그래서 부엌의 물건을 변소에 가져가거나, 변소의 물체를 부엌으로 가져가면 조왕과 변소각시가 서로 시기하여 집안에 통티가 난다고 한다.

뒷간이 본채와 멀리 떨어져 있고, 또한 그 무서운 뒷간신이 있어 요강 등 이동형 변기가 옛날부터 발달됐다. 부여 군수리에서 발굴된 백제시대 호자와 변기는 그 역사를 대변해 준다. 호랑이가 입을 딱 벌리고 있는 모양의 남성용 변기와 오늘날 좌변기 같이 위부분이 벌어진 여성용 변기는 그 생김새나 선의 흐름이 청자나 백자에 비견해 쓰임새만 다를 뿐이지 전혀 손색이 없다. 서민들의 뒷간은 냄새와 무서움으로 가득 찼고, 양반가에서는 여자들의 안변소와 남자들의 바깥변소가 엄연히 구분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화장실 문화의 전부였다. 여기에 비해 궁중의 뒷간은 사정이 달랐다. 창덕궁 임금님의 뒷간은 별채가 아니고 집구조 안에 위치하며 배설물도 변기로 받아내게 되어있다. 밑에는 문을 달아서 바깥에서 청소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임금님의 배설물은 버리는 것이 아니고 어의(御醫)가 면밀한 검사를 한다. 변의 색깔, 냄새 등을 관찰해 임금의 건강상태를 매일매일 체크하는 것이다.

뒷간은 깊이로 보면 단연 절집이 최고다. 얼마나 깊은지 볼 일을 보고 나오면 비로소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아마 불교신자들이 많이 오고 수도하는 스님이 많기 때문에 자연히 일반 여염집 보다는 절집의 뒷간은 깊어졌을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뒷간이 서구형 주택과 핵가족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서울에 아파트가 처음 건축됐을 때 화장실이 집집마다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변소였다. 아파트 문화가 들어왔지만 그래도 뒷간만큼은 집 밖에 있어야 한다는 관념이 강했다. 얼마 후 뒷간은 집안으로 들어온다. 여기서도 한국의 정서와는 맞지 않아 많은 갈등을 겪게 된다. 며느리가 앉았던 자리에 시아버지가 앉아야 했기에, 아파트의 모든 생활이 편했지만 화장실 이용만은 불편했다. 그러나 이제는 뒷간이 안방에 가장 가까이 자리 잡고 가장 편안하게 이용하는 공간이 됐다. 바깥에 뒷간이 집안의 화장실로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한국적 정서와 많은 갈등을 겪었다. 그렇다! 하나의 외래문화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기존의 가치와 절충을 하면서 정착되는 것이다. 밀려드는 서구문화를 무조건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문화라는 큰 흐름과 조화를 이루면서 서서히 하나가 되는 것이다. -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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