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세 번에 걸쳐 즐길 수 있다. 코스에 도착하기까지, 플레이 중에, 플레이를 마치고 나서다. 그 내용은 기대, 실망, 후회의 순서다” 이것은 ‘아서 발포아’의 어록에서 발췌한 글귀다. 그야말로 무릎을 탁 치며 동의할만한 참으로 훌륭한 명언이다. 공교롭게도 내 경우에 딱 들어맞는다. 코스에 도착하기까지 품었던 기대는, 플레이 중에 어긋나고 우려했던 일은 어김없이 적중해서 실망하게 되고, 플레이를 마치고 나서는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후회한다. 이 명언을 곱씹다가 글귀에서 골프라는 단어를 야구와 탁구, 스쿼시, 스쿠버다이빙, 댄스 등의 다른 스포츠나 소풍과 맞선, 카드놀이 따위로 대체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야구나 댄스 등으로 대체를 하니 내용이 제법 잘 들어맞는다. 맞선이란 단어는 어떨까. 중이 제 머리 못 깎고 중신애비에게 중매를 부탁하면, 참 희한하게도 성별만 바꾼 자기 자신을 대면한다고 한다. 서로의 스펙을 저울로 달아보면 균형이 잡혀서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자신이 60점짜리 신랑감이라면 똑같은 60점짜리 신붓감을 만난다. 이럴 때 나라면 기대하고 실망하고 후회하리라. 더 좋은 대학을 나왔더라면, 연봉이 높은 직장을 얻었더라면, 운동으로 근사한 근육이라도 갖추었더라면 좀 더 나은 상대를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후회하면서, 심지어는 부자 부모 밑에서 태어나지 못한 신세를 한탄하고, 짧은 팔다리를 내려다보며 조상을 탓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시 깊은 사색에 잠긴다. 진정 골프란 ‘기대와 실망과 후회’만을 주는 스포츠인가. 연습을 게을리 했다면 코스에 도착하기 전까지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든다. ‘친지의 경조사나 제사에 참석해야 했다’는 등의 연습에 몰두할 수 없었던 이유와 공이 안 맞는 핑계를 200가지쯤 미리 준비하고 플레이에 임한다.
그런데 연습을 못했기 때문에 기록에 연연해하지 말자며 마음을 비우면 의외로 플레이 중에 가끔 환희가 찾아오기도 한다. 마치 내가 모태에서부터 골프천재였던 것처럼 공이 내 의지대로 날아가고, 뛰어 다니며 구멍을 찾아들어갔던 적도 있다. 또한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진 결과이겠지만 겸허하게 플레이에 임했더니 70대의 베스트 스코어를 기록한 감격의 순간도 있었고, 전혀 꿈도 안 꾸었는데 이글이나 홀인원의 행운이 덥석 품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어록은 수정되어야 한다. ‘초조, 번뇌, 반성’ 이라든지 ‘겸허, 환희, 감사’의 경우도 있다고. 적어도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사라면 긴 시간의 숙고를 거쳐서 철학적 결론에 도달한, 즉 타인에게 감동이나 깨달음을 주는 글귀를 어록에 남기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내가 관찰한 바로는 배움과 경험과 독서와 사색으로 무르익은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기억의 곳간에 질서정연하게 저장되어 있다가, 어느 순간 현장의 상황에 맞게 홀연히 떠올라 빛나는 명언으로 탄생하는 것 같다. 나도 골퍼들에게 육체의 피와 살이 되고, 영혼의 양식이 되는 명언을 남기려 한다. “열심히 연습하면 할수록 당신은 행운아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김 영두-” 이크! 이제야 정신이 번쩍 든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 말은, 사실은 그 유명한 골퍼 ‘게리 플레이어’가 먼저 한 것이다. “인간의 지혜로 만들어진 게임 중에서 골프만큼 건강에 좋고 끊임없는 지적 흥분으로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는 게임은 없다” 이 역시 ‘아서 발포아’의 명언이다. - 김영두 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