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천시 팔공산 자락 깊은 산중, 1년에 단 2번만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사찰이 있다. 바로 금남(禁男)의 공간이자 금속(禁俗)의 공간, 비구니 스님(여자 스님)들만 수행하는 백홍암이다. 이창재 감독이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며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큰 스님으로부터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불호령을 받았다. 수많은 방문과 설득 끝에 간신히 백홍암의 문이 열렸고, 감독은 수없이 반복하고 때론 스님들의 냉담함과 일반인으로선 감내하기 힘든 시간을 견디며 300일 동안 촬영, 200시간의 촬영분을 104분으로 압축해 영화 ‘길 위에서’를 만들었고, 영화에서는 차마 공개하지 못했던 비구니 스님들의 깊은 속마음과 인터뷰, 그리고 뒷이야기를 고스란히 책에 담았다. 책 ‘길 위에서’는 사람들에게 잔잔한 울림으로 기억되는 영화를 오롯이 담고 있다. ‘수행공간’이라는 특성상 외부인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백홍암의 숨은 이야기부터 한 여인이 출가를 결심하고 스님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때론 말간 웃음과 함께, 때론 가슴 먹먹한 울음과 함께 펼쳐진다. 이 책은 살면서 지금과는 다른 길을 꿈꾸는 사람들, 삶에 의문을 갖고 사는 사람들에게 고요한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쫓기듯 사는 삶에 지쳐 지금 자신의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어디쯤 와 있는지조차 모르겠다면, 자신의 삶을 온전히 감싸 안은 스님들처럼 인생의 ‘길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소박한 행복과 마음의 여유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한양대 법대를 졸업하고 신문사, 광고기획사, 다큐멘터리 방송채널 등에서 근무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예술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현재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중앙대 영상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영화를 가르치는 이창재 감독은 매순간을 마지막처럼 살아가며 치열한 구도의 길을 걷는 비구니들,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책 속에 잔잔히 풀어냈다. △지은이 이창재 △펴낸곳 비즈니스북스·북라이프 △280쪽 △정가 14000원.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