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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 변호사의 만화 법률]서로 싸울 때 정당방위 인정되나?

우리나라의 경우 정당방위 요건 지나치게 좁게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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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63-364호 박현준 기자⁄ 2014.01.27 16:43:08

형사사건의 변호를 하다보면, 의뢰인들이 ‘정당방위’를 강력하게 주장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쌍방 폭행이 있었던 사건에서 많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정당방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자세히 설명을 해드리고, 정당방위에 대한 주장을 법정에서 하지 않는 것으로 설득합니다.

그런데 의뢰인의 주장이 너무 강경하거나, 아주 예외적으로 애매한 상황이 있어 정당방위를 주장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법원에서 정당방위 판결을 받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2012년 미국의 학교에서 또래 학생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피해학생이 가해학생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학교폭력의 문제는 심각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재판을 담당했던 플로리다 주 칼리어 카운티 법원은 “피해 학생은 자신이 육체적 상처를 입거나 죽을 수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며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피해학생은 가해학생으로부터 1년 이상 괴롭힘을 당해 왔었는데, 이 점이 참작됐습니다.


법원 판결 대부분 정당방위 요건 충족 미흡

이 판결은 미국 내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국내의 언론에도 상세하게 보도가 됐습니다. 이런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도 정당방위가 인정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당방위가 크게 문제가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1992년의 ‘의붓아버지 살인사건’입니다. 어머니와 결혼한 의붓아버지로부터 9살 때부터 12년 동안 성폭행을 당했던 여대생이 있었습니다. 의붓아버지는 당시 검찰청의 고위 간부였는데, 엄마와 어린 딸을 동시에 성폭행 하는 등 사람으로서는 입에 담기 힘든 행동을 장기간 계속해 왔습니다.

피해자 여대생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신의 남자친구와 의붓아버지를 살해하게 됩니다. 살인 사건 이후에 공동대책위원회가 결성되고 22명의 무료 변호인단이 구성됐습니다.

변호인단은 법정에서 “막강한 권력자인 검찰 간부 가해자에게 항거할 수 없고 경찰 등 외부의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피해자는 계속되는 성폭행과 살해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다. 따라서 피해자와 피해자를 도운 그녀의 남자친구의 행동은 스스로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방위에 해당해 무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고 두 사람의 살인죄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고, 두 사람 모두에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은 피해자 여대생에게는 징역 5년에 집행유예 5년, 피해자의 남자친구에게는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이 사건은 결국 1994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제정을 이끌어 내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법원은 정당방위 인정에 상당히 보수적입니다. 형법 제21조는 ‘①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③전항의 경우에 그 행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 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상상 초월한 과격한 행위 있는 경우는 예외

위 규정을 쪼개어 보면, 세부 요건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요건 하나하나 마다 논쟁이 있고 논문이 있으며 여러 법학자들이 자신만의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당방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운 요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들어가면 어려운 법률 이론이 나오기 때문에, 굳이 자세히 쓰지는 않겠습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것은 규정상 매우 어렵다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사실 보통 사람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내용은 ‘싸움에서도 정당방위가 인정될 수 있는가?’ 입니다. 법정에서 변호인이 정당방위 주장을 가장 많이 하는 경우가 서로 싸우다가 재판을 받는 경우입니다.

싸움의 경우 가해행위는 방위행위인 동시에 공격행위의 성질을 가지고, 상호간의 침해를 유발한 것이기 때문에 정당방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입장입니다. 예외적으로 주먹으로 싸우다가 한쪽 당사자가 흉기를 빼 든 경우와 같이,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정도를 초과한 과격한 행위가 있는 경우에는 정당방위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정당방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미국에서는 오히려 정당방위 인정범위를 좁혀야 한다는 논의가 있습니다. 각 나라의 사회 실정과 문화가 다른 만큼 정당방위라고 생각되는 범위가 다른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우리 법원의 판례에 대해서는 정당방위의 요건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 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정리 = 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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