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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아티스트 - 문형태]그는 화가가 아니다, 자신이 곧 그림이다

원색의 색감과 비문법적 드로잉으로 고백의 사유를 끊임없이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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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73호 김지윤 큐레이터⁄ 2014.04.07 13:38:21

▲문형태 작가


문형태 작가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탐색하며 순간과 기억을 이야기한다. 곳곳에 숨은 이야기가 가득한 작가의 그림은 굴뚝으로 피어오르는 파인트리처럼 곧이어 사라져버릴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함께 묻어나 있다.

원색의 색감과 비문법적 드로잉이 눈을 즐겁게 한다면, 또한 오래 바라보고 난 후 보이는 오브제 장치들과 일그러진 표정이다. 어리석은 선들에서는 그것이 결코 아름다운 순간과 행복한 동화처럼 친절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함께 보여준다.

습관처럼 ‘그리기’에 몰두하는 작가에게 작업이란 삶의 일부가 아닌 버릇이며, 그 하루이며, 시간을 견딜 수 있는 밥이다. 또한 소화시킨 똥이며, 또 다른 그림을 그리기 위한 영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pianist, oil, 45.5x53.0, 2013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고 고백하면서도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있는 작가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자신이 곧 그림이 되는, 딱 맞는, 벌거벗은 옷이다.

일기처럼 쏟아져 나오는 다작의 다큐멘터리가 우상화의 과정처럼 보이는 것은 그가 그 세계의 왕이자 유일한 국민이기를 자청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찍이 동화에서 피노키오를 기다리는 고래 배 속의 제페토가 있었다면, 작가는 작가 자신과 함께 우리가 허상이 실존하는 또 다른 고래의 배 속에 있다는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곧 사고의 방이며 자신의 몸뚱이다. 제페토를 가둔 어둠이 우리에게 던져주었던 철학적 질문처럼, 피노키오는 제페토 그 자신의 욕망이며 분신이자 대변이었다. 작가는 가장 은밀하고 안전한 사고의 방에 들키지 않게 숨어 자신이 만들어낸 수많은 피노키오들을 기다린다. 그 것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그리움이다.

▲너를 생각, 40.9x31.8, 2013


작가가 들어앉은 방에서 보내는 여기 이 많은 연애편지들은 대상이 없거나 혹은 너무나 구체적이라서, 때로는 삶처럼 선명하고 때로는 인생처럼 짧게 읽힌다.

문 작가는 자신의 일상과 경험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재치 있게 표현해왔다. 그의 작품들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소재들이 두텁고, 화려한 색채의 마티에르와 물감의 물성으로 인해 작가만의 감성을 극대화시킨다.

작품은 하루하루 지내는 작가 자신과 주변의 일상을 그려낸다는 의미에서 다큐멘터리와 유사하지만, 한편 왜곡된 형태와 색감은 작가가 경험하는 일상을 넘어 초현실적인 감성을 잘 드러낸다. 작품을 감상할 때, 작품에 대한 정보(Information)나 영(Inspiration)이 필요한 작품이 있다면, 문형태의 작품은 감각(Sense)이 필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pine apple, oil, 45.5x53.0, 2013


이러한 이유로 작가는 구체적인 정보와 표현 양식의 분석 혹은 단정을 원하지 않는다. 일기와 같이 일상의 구체적인 모습을 담아내지만, 오감으로 경험한 현실만 그려내지는 않는다.

또한 작품 속 피사체는 사실과 같지 않지만, 만인이 공감할 수 있는 진실이 있다. 그래서 작품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러한 면이 작가가 가진, 대중과 함께 할 수 있는 접속 지점이자, 소통방식인 것이다.

작가는, 예를 들어 ‘샤워’를 소재로 그린다면, 샤워를 했다는 객관적인 현실과 함께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의 느낌을 어떻게 포착, 표현할 것인가에 중점을 둔다. 살아가면서 일반적인 행위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순간 스치는 감정은 다를 수 있다는 것에 착안한다.

▲think about you, 30F, 2013


기록의 공유와 개인적 정서가 왜곡된 형태에 이입되어 생기는 미묘하고도 매력적인 이질감이 이 지점에서 만들어진다. 작가에게 있어 계획된 작업인가, 즉흥적인 작업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작가적 혹은 미술의 양식적인 측면에서의 접근보다는 유명하고 훌륭한 작가를 꿈꾸는 게 아니라 훌륭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을 꿈꾼다는 작가의 말처럼 자신의 삶을 완성해나가는 한 사람으로써 작업을 한다는 설명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한 번도 신지 않은 채로 더러워진 신발’

근작에서는 이전 작품보다 미래지향적인 성격을 띤다. 작품은 작가의 일기처럼 기록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던 이유로 그의 과거도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최근 작품에서는 단순한 현실의 기록을 넘어 나와 주변의 행복에 대한 고찰, 상황과 상관없이 자신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작가의 심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작가의 개인적인 시선에서 대상과 감각의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작가의 매 전시 타이틀도 일상에서 느끼는 제한된 행위나 단순한 감정뿐 만 아니라 그 감정이 느껴지는 순간의 초현실적인 아우라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제목들이다.

▲red pine, oil, 53.0x65.1, 2013


작가는 작품과 작가노트 어디에서도 타이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어가 주는 작가의 주관적 느낌 사이에서 부유하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한 번도 신지 않은 채로 더러워진 신발’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표현 또한 일종의 반성이다.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캔버스는 무엇이든 그려질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가 말하고자 함이 아니겠는가. 인생이 그렇듯, 출발과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과정을 지나오면서 많은 철학과 생각(그것이 찰나의 생각이라 할지라도)이 존재한다.

작가는 장난감을 노는 어린 아이처럼 인생의 재미를 놓치지 않고, 현실과 이상을 오가며 이야기한다. 전시는 이러한 작가의 현재의 기록 속에 함께 하는 기회가 될 것이며, 작가가 작업을 통해서 스스로의 이야기에 부유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전시를 통해 작가가 느꼈던 감성의 교집합을 찾아, 작품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글·김지윤 큐레이터 (정리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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