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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아티스트 - 곽한울]해체와 생성의 점이지대(漸移地帶)

육지와 바다의 경계, 습지는 존재를 함축하는 최고의 상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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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85호 이문정 조형예술학 박사,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2014.07.03 08:51:28

▲곽한울 작가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적막이 감도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뭍인지 물(水)인지, 수면인지 하늘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 무채색의 풍경에는 균형 잡힌 긴장감이 흐른다. 적요(寂寥)함의 감정을 흘려보내는 이 풍경은 존재들을 구획 짓는 경계가 사라진, 부유하는 시공간을 창조하기 위해 작가 곽한울이 만들어낸 것이다.

‘공원’ 시리즈(2012)에서 도시의 변두리나 무심하게 방치된 주변부적 공간들을 발견, 관찰, 체험하여 풍경에 대한 시각적 이미지(image)와 지각적 사고(思考)의 결과물을 결합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던 곽한울은 ‘무언가와 아무것도 사이 Between Something and Anything’ 시리즈(2014)에서부터 습지(濕地)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습지에서 직접 채취해온 진흙과 유화를 혼합하여 그려낸 풍경화는 장소적 특수성과 물질적 특수성을 극대화시킨다.    

일반적으로 습지를 재현한다고 하면 환경 운동의 교의(敎義)를 전달하는 작가라 예상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집중하는 것은 계몽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의 문명이 놓치는 존재들에 대한 발견과 그에 대한 근원적 탐구이다.

▲‘무언가와 아무것도 사이’, oil on canvas, 145x112cm, 2014


그것은 자연에 대한 낭만주의적 숭배나 향수와는 거리가 먼 철학적인 사색의 연장이다. 곽한울의 풍경은 명확히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무엇인가를 담아내고 있다.

습지의 재현은 이미지와 생각이 결합된 풍경이라는 작가의 이전 작업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깨뜨리는 이중성을 갖는다. 앞선 연작이 그랬듯 작가가 그려내는 풍경은 이번에도 자신이 직접 관찰한 장소이자 그 안에 머무르며 지각했던 공간이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현실 너머에 위치하는 듯 부유하는 환상적인 이미지를 제공한다.

습지의 풍경화는 이미지의 윤곽을 명확히 구별할 수 없으며 그것에 대한 지각 역시 완전할 수 없다. 관객은 그 모호함 앞에서 완전히 길을 잃는다. 그것은 내부를 파악할 수 없는 블랙홀(black hole), 구획 지을 수 없는 무한대의 공간과도 같다. 그리고 이 공간은 불안과 매혹의 감정을 동시에 불러낸다.

▲‘무언가와 아무것도 사이’, oil on canvas, 130x162cm, 2014


곽한울은 인간을 비롯한 세계 속 모든 존재의 내부에는 명확히 정의되는 정체성과 그것에 대해 이질적인 불명확한 요소가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기대와 달리 인간의 언어는, 그리고 인간의 이성은 모든 존재와 현상들을 설명하고 정의내릴 수 없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영역의 사각지대(死角地帶)가 분명히 존재한다.

오히려 이 세계는 정의될 수 있는 것과 정의될 수 없는 것들이 서로 역동적인 관계를 만들어내는 데에서 존재의 가능성과 에너지를 얻게 된다.

이에 작가는 이 사각지대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미술-예술-의 의무이자 권리이며 미술이 가진 힘이라 믿는다. 그리고 이를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습지이다. 작가는 인간 이성의 힘이 온전히 미치지 못함을 암시하기 위해 습지 풍경에 인간의 흔적을 모두 지워낸다.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이 공간은 작가가 지향하는 자유로운 이동과 부유를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 

▲‘무언가와 아무것도 사이’, oil on canvas, 100x80cm, 2014


일반적으로 습지는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을 함유하는 애매하고 모호한 곳으로 여겨져 왔다. 주체와 대상, 문명과 자연, 육지와 물처럼 명확한 이분법적 구별과 정리를 추구했던 모더니즘(modernism)적 사고 안에서 뭍도 물도 아닌 모호한 형태와 속성을 가진, 그 깊이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끈끈한 진흙과 진액으로 가득 찬 습지는 거부감과 호기심의 양가적 태도를 불러일으키는 난해한 존재 그 자체였다.(중략)


경계를 허물어 새로운 존재로 재생

습지는 실제로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고 분해되는 삶과 죽음,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양가적인 세상인 동시에 진정으로 중립적인 경계지대이다. 이에 작가는 습지가 단절과 연결, 그리고 지워짐과 생성이 함께 하며 절대적 가치가 부재하는 역동하고 재생하는 공간이라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육지와 바다,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그 둘 사이의 경계에 존재하는 점이지대(漸移地帶)인 습지는 어떠한 명확한 위치도 점유하지 못하는, 혹은 점유하지 않는 –작가 자신을 포함하는-경계적 존재들을 함축하는 최고의 상징물로서 존재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습지는 코라(chora)적 공간이라 하겠다.

▲‘무언가와 아무것도 사이’, oil on canvas, 145x112cm, 2014


카오스(chaos)적 공간이자 어디에도 없는 장소이며 해석이 불가능한 공간인 코라는 영원하고 소멸되지 않는 공간이자 비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이해되는 공간이다. 동시에 생명의 발생을 허용하는 터전이자 소멸이 나타나는 기반이기도 하다.(중략)

곽한울은 코라적 지대를 재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습지의 형태를 더욱 모호하게 만들거나 지워나감으로써 모든 명확한 지점을 해체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해체 작업이 단순히 소멸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반드시 재생과 생성을 전제로 한다. 또한 무정형의 공간을 표현다고 하여 화면 구성이 느슨해지거나 즉흥성을 띠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작가의 구성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으며 촘촘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표현 방법은 이성에 근거한 명확한 위계질서의 근본이 되는 이분법적 대립항의 벽을 허무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작용한다.

▲‘무언가와 아무것도 사이’, oil on canvas, 145x112cm, 2014


작가는 정체성이 허물어지는 담론, 특히 정체성 자신의 내부에서 위기를 불러오는 담론에 주목한다. 명명되는 순간 고정된 성격을 갖는 그 무엇이 되기 때문에 곽한울의 풍경은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작가에게 모든 것을 규정하고 한정짓는 세계야말로 불가능한 것이자 무의미한 것이다.

이제 해체된 형상들은 경계가 흐려짐으로써 서로를 향해 흘러 하나가 된다. 그리고 이내 새로운 존재로 재생된다. 스스로 해체와 재생을 반복하는 곽한울의 풍경화는 고착(固着)된 문명의 규범과 규칙들의 작동을 약화시키고 불안정하게 만들어 다양한 의미의 생성을 이끌어내는, 유동적 희열이 작동하는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 이문정 조형예술학 박사,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정리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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