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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큐레이터 다이어리]‘그림 값의 비밀’

끝내 밝혀지지 않을 비밀, 그것이 사랑과 미술의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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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88호 신민 진화랑 실장⁄ 2014.07.24 11:23:18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경매장은 경합을 통해 최고액을 만든다? 갤러리는 할인을 통해 최저액에 작품을 파는 곳이다? 결코 일반화시킬 수 없다.

경매에서 유찰이 되면 그 작품의 시장 재진입이 위태로워진다. 한편 갤러리에서 투자가치가 높은 작품은 최고가를 고객이 제시해서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어도 가격의 운명은 다를 수 있다.

기준이 되면 이로울 만한 경매의 최고액은 공식 기록으로 남겨지고, 갤러리 거래는 죽었다 깨도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 풀리지 않는 의문 사이로 가십은 증폭되지만 정찰제 문화가 형성 될 수는 없다. 작품 가격의 흥정은 감상만큼이나 흥미로운 하나의 놀이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합 끝에 예상가를 뛰어 넘는 높은 가격으로 낙찰 받았다면 그 작품은 더없이 희소한 자부심의 대상으로 여겨질 수 있고,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면 큰 혜택을 받은 느낌일 수 있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할인 없이 구매하기도 한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주요고객 서열 1순위에 등록된다. 고객 자신이 특A급 VVIP 인지 A급 VIP정도에서 만족할 지 직접 위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미술시장이다.

수산시장처럼 인심도 존재한다. 작품에 진심으로 매료되어 행복해하는 모습에 판매자는 감동해서 인심을 쓰고 싶어진다. 수산시장을 왜 가는가.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기계로 바코드를 찍는 대형마트식 계산이 아니라 표정을 보며 말을 나누면서 많이 사면 하나 더 챙겨주기도 하고, 주인이 친절하면 하나 더 사주기도 하는 재미 때문 아닌가.

다른 점이 있다면 작품은 세상에 오직 한 점뿐이고 혼이 담긴 물질이라는 점에서 무조건 파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자세를 지닌다는 것. 갤러리스트가 친절함과 도도함 사이에서 긴장된 줄타기를 항상 잘 해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리 베일에 가려있어도 작가의 명예에 위배가 되는 거래는 거절하고 이윤보다는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어야 한다. 간혹 갤러리에 들어섰을 때 어려운 공기가 감도는 것은 작품을 함부로 값싸게 취급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분위기 조성 탓이다.     


영화 ‘베스트오퍼’, 미술과 사랑의 서사시

또 하나의 큰 차이는 판매자와 구매자라는 일차원적 교류의 차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오징어를 살 때 오징어한테 도움이 될 것 같거나 내가 그 오징어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 듯 한 기분을 느끼지는 않는다. 반면, 미술품은 그 물질과 더불어 구입하는 과정에서 흐르는 특별함을 함께 사는 것이다. 내가 지불하는 돈과 마음이 작가의 삶에 한줄기 희망이 되고, 동시에 작가에게 특별한 존재로 남겨지는 듯 한 뿌듯함은 오징어나 화장품을 살 때와는 차원이 다른 즐거움이다. 

작품의 가격은 어떻게 형성되는지, 과연 합리적인 가격은 무엇인지. 한마디로 제시하기 어려운 것이 특징인 세계. 존재하는 드라마가 다양한 미술세계는 묘하고 자극적인 공기로 자욱하다.

진심과 진실, 허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만큼 매력적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이를 증명하는 예가 바로 미술의 미스터리를 소재로 하는 영화다. 현재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를 점한 영화 ‘베스트오퍼’는 미술과 사랑이 얽힌 서사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서울옥션 미술품 경매현장에 작품 구매를 하고 있는 응찰자들. 사진 = 왕진오 기자


최고의 경매사인 올드먼(주인공 제프리 러쉬)은 작품 감정의 대가이지만 사랑에는 감이 없다. 그는 일생에 처음으로 빠져든 여자에게 모든 것을 걸었고, 한 순간 전부 잃게 된다. 사랑을 빙자한 완벽한 사기극에 평생 수집한 그림들 뿐 아니라 평생 흔들림 없던 꼿꼿한 정신마저 잃어버리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영화를 통해 새삼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사랑과 미술의 교차점이 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 그만큼 사기 치기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한다는 것. 감각, 감성으로 이뤄지는 영역이라 자칫 가장 순수하고 진실 된 것으로 믿어버리기 쉽다는 것. 경계심을 무장해제 시켜 인간의 영혼을 무엇보다 강력히 흔들 수 있다는 것.

언뜻 올드먼에게 연민이 갈 수 있으나 누구를 어디까지 탓하고 누가 더 부조리한지를 정의할 수는 없다. 그가 미술품 감정에 뛰어나더라도 작가사후에는 누구도 진품임을 백퍼센트 확언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진품인지 위작인지 몇 가지 단서로 추정하는 것이 완전한 진실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진실을 은폐할 수 있는 영역을 최대한 이용한 것은 바로 그다. 자신의 은밀한 쾌락을 위해 여성초상화를 허위로 감정한 후 친구를 시켜 헐값에 사들이는 완전범죄를 평생에 걸쳐 해오지 않았는가. 그가 억울하다고만 볼 수 있을까. 사랑 역시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생각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

“모든 위조품에는 진품의 미덕이 숨겨져 있다.”는 올드먼의 대사가 미스터리와 부조리를 대변한다. 사기로 시작한 사랑이어도 한 순간 진심이었을 수 있다. 그것이 어느 순간이었는지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함께 진심을 다한 사랑이어도 진실로 같은 교감이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결국 사랑도 미술도 그 가치는 내가 믿고 싶은 정도에 있는 것이 아닐까. 베스트 오퍼(최고액)는 진품처럼 가치 있는 것이라 믿는 내 마음에 달렸다. 끝내 밝혀지지 않을 비밀. 그것이 사랑과 미술의 원동력이다.

- 신민 진화랑 실장 (정리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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