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왕진오 기자)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는 경기도 김포에 있는 인조(仁祖, 조선 제16대 임금)를 낳은 부모로서 왕족이 죽은 뒤에 존호를 올린 원종(元宗)과 인헌왕후(仁獻王后)의 능침(陵寢, 임금이나 왕후의 무덤)인 장릉(章陵)에 관련된 고문헌 10건을 조사하고, 역주문·해제(책의 저자, 내용, 발간일 등을 대략적으로 설명한 글) 등을 작성해 ‘역주 장릉지 譯註 章陵誌’를 발간했다.
이번에 역주한 고문헌 10건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9건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관리 1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고문헌 중 ‘장릉지(章陵誌, 1777~1876년)’는 장릉의 조성 과정, 건물의 구조와 변화, 제수(祭需)와 제향(祭享)의 절차, 능을 지키는 인원, 심은 나무 등 경영의 전반적인 사항을 기록한 자료이다.
아울러 ▲능침 운영 지침, 사례·경비의 조달과 쓰임새 등을 기록한 ‘장릉 사례요람(章陵 事例要覽, 1792~1900년)’ ▲제기(祭器)의 종류, 수량, 사용 연한을 기록한 ‘장릉 제기연한책(章陵 祭器年限冊, 1792~1835년) 등 장릉 경영의 구체적 양상을 보여주는 내용이 실려 있다. 또 역대 능참봉과 령(令)의 이름·근무 기간·이력을 기록한 ’구장릉선생안(舊章陵先生案, 1642~1788년), ‘장릉재관선생안(章陵齋官先生案, 1899~1948년)’도 포함됐다.
이번 ‘역주 장릉지’의 발간을 통해 장릉의 경제적 기반인 위전(位田) 33결이 인헌왕후의 고향인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 있었고, 장릉에서 사용할 향나무(香木)와 땔감을 조달하는 곳은 수락산(현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장릉의 조포사(造泡寺, 왕릉을 지키고 필요한 물품을 대던 사찰)인 봉릉암(奉陵菴)이 현재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의 금정사(金井寺)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아울러 장릉의 당직근무 인원은 ▲능관(陵官, 령<令>과 참봉<參奉>) 1명 ▲수복(守僕, 청소 등을 담당하던 잡직) 2명 ▲번군(番軍, 경비 등을 담당하는 군사) 2명으로 편성되었고, 능관은 끼니때 밥, 국, 반찬 3첩, 장, 김치를 먹었다는 것, 1777~1876년(정조 1~고종 13)까지 장릉에 심어져 있던 나무는 소나무·전나무·상수리나무·홰나무·단풍나무였다는 사실 등 능침 경영의 세세한 실상을 알려 주고 있다.
이번 ‘역주 장릉지’의 발간은 장릉에서 300여 년간 진행된 실제 경영 모습을 재구성하고 재현할 수 있는 고증자료를 확보했다는 데 큰 의미가 크다. ‘역주 장릉지’가 아름다운 세계유산인 조선왕릉에 대한 이해의 폭을 더욱 넓히고, 조선왕릉 보존관리 정책의 기초자료로써 활용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