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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섭 문화 칼럼]미술계 뉴 노블레스 오블리주…아라리오 김창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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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94호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2014.09.04 09:13:55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올해 9월 1일은 우리나라 문화계에 매우 상징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건축계의 전설 김수근에 의해 1971년 세워졌던 ‘공간 사옥’이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오픈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경영난으로 힘들었던 공간 사옥을 아라리오그룹 김창일 회장(63)이 150억원에 인수해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창일 회장은 이미 세계적인 현대미술품의 유명한 컬렉터로 이름나 있다. 이번엔 그동안 모은 컬렉션 3700점 중 공간 요소요소에 어울리는 96점을 공개한다. 김 회장은 인터뷰에서 “36년 동안 참고 참았던 일인데 ‘공간’을 통해서 이루게 됐다. 흥분과 두려움에 싸여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지난 세월 무엇을 참았었고, 어떤 면에서 흥분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까? 이번 김창일 회장의 새로운 도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살맛나는 사회상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이다. 우리말로 ‘가진 자의 의무’ 정도겠지만, ‘나눔과 베품’의 상징적인 문화로도 인식된다. 영화 <스파이더맨> 1편에 나오는 대사 중 “힘에는 책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자율경쟁 사회인 자본주의에서도 공존공영을 위해선 ‘더 가진 이의 책임과 실천’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좋은 선례가 있다. 경주 교동 최씨 가문의 실천사례이다. 400년 동안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을 이룬 명가(名家)는 전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과 인재육성을 위한 장학기금으로 기부했다. 육훈(六訓)과 육연(六然)이란 가르침을 바탕으로 후손들은 “재물은 똥거름과 같아서 한 곳에 모아두면 악취가 나서 견딜 수가 없고 골고루 흩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란 점을 몸소 실천했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어떻게 상생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줬다.

예를 들어 육훈 중 ‘재산은 만 석 이상 지니지 마라’는 대목의 실천이다. 최부잣집은 소작료를 만석으로 고정해 땅이 늘수록 소작료는 낮아졌다. 이는 최부잣집이 부유해질수록 소작인 곳간은 반대로 넉넉해지는 ‘기가 막힌 경제구조’였다. 때문에 소작인들은 최부잣집이 되도록 더 많은 땅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되었다고 한다. 극대이윤만을 추구하는 현대사회 기업문화와 크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이런 점에서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의 오픈과 김창일 회장의 결단 역시 새롭게 인식된다. 단순히 폐업 위기의 건물을 큰돈으로 인수해 리모델링했다는 대목은 중요하지 않다. 버림받은 ‘역사적 공간’을 멋지게 변신시켜 고유의 정체성을 희생시키지 않은 채 ‘우리 사회에 되돌려 줬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과연 다른 이들은 150억 원이 없어서 나서지 않았을까? 구입 이후에 공간을 제대로 재활용할 콘텐츠와 용기가 없어 ‘못나선 것’이다.    

▲아라리오 그룹 김창일 회장. 사진 = 왕진오 기자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컬렉터, 현대미술의 특별한 안목가, 미술계의 괴짜이자 괴물…. 그동안 김창일 회장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한낱 ‘지방 갤러리’가 서울의 메이저 갤러리를 단숨에 제친 기동력과 추진력도 질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온갖 루머와 구설수에도 결국 결과로 보여준 셈이 됐다. 김창일 회장의 이번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오픈은 기존의 사립미술관 성격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이 전 재산을 쏟아 부어 민족적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힘썼고, 삼성리움미술관은 기업을 중심으로 한 방대한 컬렉션의 우수한 관리사례를 보여줬다면, ‘김창일 미술관’은 개인 컬렉션이 어떻게 사회공헌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선례가 되었다. 사람은 가도 예술품은 역사와 함께 남는다. 그래서 모든 예술품은 공공자산인 셈이다. 김창일 회장의 이번 행보처럼 보다 많은 후발 사례가 이어지려면, 정부의 의미 있고 지속 가능한 지원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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