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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복지 칼럼]푸드 패디즘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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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97호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2014.09.25 08:43:27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농업의 신으로 알려진 신농(神農)씨는 세상의 모든 식물을 직접 먹어보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간하였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70번 식중독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으나 끝내는 식중독으로 죽고 말았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안심하고 먹고 있는 식품은 이와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쌓아온 지식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사람이 직접 먹어보지 않아도 분석기술과 동물실험으로 식품의 안전성을 쉽고 빠르게 평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가설과 추측이 난무하여 소비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

1970년대 유럽에서 히피운동이 한창일 때 많은 젊은이들이 자연식을 주창하면서 가공식품을 기피하고 곡물을 날것으로 먹고 영양실조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는 등 커다란 사회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다. 어떤 젊은이는 당근즙이 몸에 좋다고 생각하여 매일 1리터 이상의 당금즙을 먹다가 수개월 후 전신이 노랗게 변해 죽은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음식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건강을 해치는 것을 푸드 패디즘(Food Faddism)이라고 한다. 요즘 우리사회에 푸드 패디즘 현상이 점점 심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TV가 다채널화 되고 여러 가지 언론매체가 급증하면서 음식에 관한 정보들이 여과 없이 마구 쏟아지고 있다.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대중적인 관심을 모으는 콘텐츠이기 때문에 언론들은 앞 다퉈 문제를 제기하고 흥미 위주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내용들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한 경우가 너무나 많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우리밀 생산자-소비자 공동기자회견’에서 소비자생활협동조합(iCoop)생협 회원들이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과학계에서 공인되지 않은 한두 번의 실험결과이거나 상식수준에서 만들어내 추측성 발언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언론매체들의 경솔한 보도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식품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건강을 해치고 경제적 손실을 보고 있다. 

우리가 수천 년을 먹어온 밀가루를 못 먹을 것처럼 겁을 주거나, 국민 대다수가 먹고 있는 음식을 농약범벅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고 이용되고 있는 생명공학작물을 괴물GMO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소비자의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친환경농업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유기농식품의 차별화를 위해 관행 농업으로 생산되는 일반 농산물을 폄하하고 불안감을 조장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극소수의 유기농 애호가를 위해 대다수 국민의 먹거리에 대해 불안감을 조성하는 일은 삼가 해야 한다.

필자는 1997년과 2007년에 ‘식품위생사건백서 I, II(고려대학교출판부)’를 저술한바 있다. 그동안 일어난 수많은 식품사건들, 삼양라면 우지사건에서부터 화학간장사건, 화학조미료(MSG)논란, 사카린의 안전성논쟁, 통조림 포르말린사건, 쓰레기만두사건 등 대부분이 식품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잘못된 고발이나 언론보도에 기인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아니면 말구’식의 무책임한 발언이 건강한 기업을 파산시키고 선량한 기업인을 자살로 몰고,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는 사례가 너무 많았다.

이런 일들이 국민의 식품에 대한 불신감을 쌓이게 했다. 어쩌면 우리사회가 이런 무책임한 행동에 면역이 되어 그 사회적 책임을 묻는 일에 둔감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근거 없는 오보를 발표했을 때에는 그 진실여부를 끝까지 파헤쳐 철저하게 책임을 묻고 손해를 배상하게 한다.

우리나라처럼 식품의 안전성에 대해 비전문가들이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나라도 없을 것 같다. 신농씨가 지금의 우리사회를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목숨을 걸고 먹거리의 안전성 여부를 결정하던 그의 숭고한 애민정신이 참으로 부끄럽게 여겨질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보고 음식으로 장난치는 사람들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겠다. 선진국이 되려면 적어도 음식만큼은 필요 없는 의구심으로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해서는 안 된다.

-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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