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산 천년 절터의 샘물,역사 잇는 수원천 발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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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산 정상 시루봉을 떠나 백운산으로 향한다. 능선길에는 광교산이라는 제목의 시를 적은 판이 서 있는데 광교산 정상에 오르면 어머니 가슴이 느껴진다는 내용의 시(詩)이다. 이 시를 읽으며 지날 때마다 너무도 노숙한 중학생의 시라서 문득 중년의 사나이를 만나는 느낌이 든다. 오늘따라 광교산이 늙어 보인다.
잠시 후 평탄한 능선길에 노루목 고개를 만난다. 좌측으로 내려가는 길은 우리 산행의 출발점 상광교로 내려갈 수 있는 고갯길이다. 예쁜 대피소도 세워 놓았다. 삭풍이 부는 겨울날에는 이곳을 이용하면 따듯이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우리 땅 산길 곳곳에는 노루목이라는 고갯길이 있다. 한자로 지명을 쓸라치면 獐項(장항)이라 쓰고 노루사냥 나와서 몰이꾼들이 노루를 몰던 고개였다는 이야기가 따라 붙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우리말에 ‘느리다’라는 말이 있다. 속도가 느린 것도 느리다(slow)이며 고갯길이 되지(steep) 않은 것도 느린 고개가 된다. 옷감을 성글게 짜도 느리다(loose)이며 음악이 힘없이 쳐져도 느린 소리가 된다. ‘노루목’은 ‘느린 목’에서 왔다고 한다. 고개목이 되지(steep) 않고 나지막이 넘어가면 ‘느린 목’이다. 이 말이 느르목, 느리목처럼 불리다가 어느새 노루목이 되었다 한다. 아마 그럴 것이다. 노루목고개는 한결같이 기세가 약해 편히 넘을 수 있는 고갯길이다. 느린목은 백두대간에서 또 한 번 변해 어느 때는 ‘늘재’가 되기도 했고 만항(晩項: 느린 목)이 되기도 했으니, 말의 변신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노루목 길 안내판에는 억새밭까지 0.7km를 알리고 있다. 인총이 많아져 산길이 많이 패였다. 산길 보호를 위해 마닐라삼으로 짠 매트를 깔았다. 국립공원에 가면 온통 돌바닥으로 깔아 놓아 산길은 보호하지만 사람 무릎을 괴롭게 한다. 그런 길에 비하면 고맙기도 하구나. 다만 경제성은 어떨까 걱정도 되는구나.
맑은 날 북한산 능선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청계산 너머 가장 남쪽 시계(視界) 한계선에 아득한 능선길이 보이고 그 능선길 곳곳에 나무젓가락 세운 듯한 통신철탑들이 보인다. 이 능선길이 지금 걷고 있는 광교산과 백운산을 잇는 능선길이다. 이윽고 통신탑 한 개를 지나 평탄지에 닿는다. 작은 돌탑이 하나 서 있고 주위는 억새밭이다. 길 안내판에는 좌측으로 0.4km 절터약수터가, 2.2km 상광교가 표시되어 있다.
석물과 기와편 가득한 고려시대 미학사지(美鶴寺址)
좌측 절터약수터를 향해 내려간다. 400m 짧은 길이지만 길은 제법 가파르다. 400m 아래 평탄지에는 절터약수터로 이름 붙여진 약수가 있다. 수량도 풍부하고 물맛도 좋은 약수터이다. 약수터 위 넓은 밭에는 심상치 않은 석물(石物)과 기와편이 흩어져 있다. 석등의 연화대이거나 어느 스님의 부도 일부로 보이는 석물들이 버려져 있고 어골문(魚骨紋), 사선문(斜線문)의 기와편도 흙 속에 묻혀 있다. 적어도 고려시대에는 존재했던 절터일 것이다.
한국사지총람에는 미학사지(美鶴寺址: 상광교동 산16)로 기록된 절터이다. 이름도 아름답다. 불행히도 오래 전에 폐사되었는지 기록으로 전해지는 절의 내력은 없다. 단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전설로는, 이 절은 비구니스님 절이었는데 젊은 비구니스님 배가 이유없이 불러 왔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임신을 한 것이었다.
남정네 곁에 간 일도 없는데 애가 배에 들어앉았으니 보통일이 아니었다. 일이 있었다면 꿈속에서 이상한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깜박 낮잠에 빠졌는데 아름다운 학(鶴)이 배 위에 올라앉은 꿈을 꾸고 화들짝 놀라 깨었다는 것이다. 그 후 이 비구니 스님은 옥동자를 낳았다.
안타깝게도 이 애기가 누구인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전해지는 이야기가 없으니 궁금함만 쌓일 뿐이다. 그 후 이 절은 미학사(美鶴寺)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라건 데 상상력 있는 어느 소설가가 나와 소설로 그 뒷이야기를 펼쳐 주었으면 좋겠다.
약수물 한 바가지 마신다. 천년 절터의 물맛은 역시나 시원하다. 근래에 수원시민들이 수원의 물줄기(수원천) 발원지를 찾아 나섰는데 그 중 한 곳으로 이곳을 찾아냈다고 한다. 참 잘 한 일인 것 같다. 이만한 발원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발원지에서 실개천을 이루어 흐르고 이윽고 2km 남짓 계곡을 이룬 상광교에는 이 계곡수를 모으는 사방땜이 근년에 만들어졌다. 광교산의 정수를 모은 듯하다.
이제 약수터 위 절터로 올라가 남쪽을 바라본다. 말굽처럼 에두른 광교산 사이로 길게 물줄기가 흐르고 그 곁에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펼쳐진다.
미학사지는 학의 가슴에 해당하는 한남정맥 산줄기
좌로 펼쳐진 광교산의 본줄기 형제봉~종루봉~ 토끼재~ 시루봉은 학의 왼쪽 날개처럼 이곳을 감싸고, 백운산에서 통신대헬기장 지나 지지대고개로 뻗어 내리는 우측 능선은 학의 오른쪽 날개처럼 이 지역을 감싸고 있다. 이 산줄기를 이은 것이 한남정맥(漢南正脈)의 수원지역을 통과하는 산길이다.
이곳에서 학(鶴)의 가슴에 해당하는 곳이 미학사지이다. 또한 학의 자궁(子宮) 위치에는 현재의 창성사와 상광교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아마도 그 옛날 이 곳에 절을 지은 이는 그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절터 동쪽에는 산장처럼 예쁘게 지은 화장실이 있다. 바닥은 마루인데 완벽하게 깨끗한 마루바닥을 보니 여간 상쾌한 것이 아니다. 우리도 되는구나~. 아쉬운 것은 이곳 샘물의 이름이다. ‘절터약수터’. 너무 무뚝뚝하다. 이렇게 표지를 붙이면 어떨까? ‘수원 물길이 시작된 곳, 미학사 터 샘물’ 정도로.
미학사지에서 내려왔던 길 400m를 숨 가쁘게 올라 다시 억새밭에 도착한다. 예전에는 가을이면 자연산 억새가 가득했던 곳이다. 근년에는 인총이 많아져 억새가 줄었는데 새로 심고 설명판도 세웠다. 억새, 참억새, 무늬억새, 억새도 종류가 많은가 보다.
능선길 600m 지나면 산 정상에 미군통신대가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서 좌측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 한남정맥길이며 이 길은 지지대고개 지나 군포 수리산(修理山)으로 이어진다. 우측 방향으로 길을 잡아 통신대를 에둘러 간다. 10년쯤 전 광교 청계 종주길에 나서면 길도 다듬어져 있지 않은 이곳을 지났는데 사나운 쉐퍼드가 언제나 맹렬하게 짖어대어 산행길 기분을 망치게 했던 구간이다. 이제는 길도 잘 다듬어져 있어 편하게 지날 수 있다.
이윽고 에두른 길이 끝나는 곳에 육각정을 만난다. 오늘도 여러 사람이 육각정에 앉아 도시락을 즐기고 있다. 이어진 평탄한 봉우리에 의왕시에서 세운 백운산(白雲山:567m) 정상석이 서 있다. 지금은 이곳이 의왕시이나 조선시대의 행정구역은 달랐다. 헌종 때 학자 홍경모(洪敬謨) 선생의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에 의하면 ‘백운산은 왕륜면에 있으며 동쪽은 용인과 경계이다(白雲山在旺倫 東龍仁界)’라 하였다. 그 당시에는 경기도 광주군 왕륜면이 이곳의 행정구역이었던 것이다.
전망을 조망할 수 있게 만든 나무 데크에서 바라보면 수원, 의왕, 군포가 보인다. 지나온 광교산과 수리산, 모락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이곳 백운산 정상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어느 길이나 고도를 급격히 떨구는데 북으로 향하는 길은 바라산~ 우담산~ 하오고개~ 청계산으로 이어지는 광교~청계 종주길이다. 한편 좌측길은 백운사로 내려 가는 길이다. 이정표에는 바라산 2.2km, 백운사 1km를 알리고 있다. 백운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내려가는 길이 가파르다. 다행히 나무로 층계를 설치해 놓아 안전하게 내려 갈 수 있다. 500m 하산한 나무층계 끝 지점에 길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메디슨기지 829m를 알리는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하산길을 벗어나 이 화살표가 가리키는 옆길로 들어가자.
50m 전방에는 길이 약간 휘어지면서 기와편이 섞여 있는 돌무더기를 만난다. 돌무더기 지나 고개를 들면 풀꽃이 가득한 평탄지가 나타난다. 평탄지 바닥에는 초석으로 씌였을 자연석들과 기와편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백운산의 숨결을 뛰게 했던 옛 백운사지이다(왕곡동 산1-1).
사라진 백운사, 절터엔 마르지 지금도 않는 샘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에 의하면 ‘백운사는 백운산에 있는데 고려 때의 고찰이다. 올라 바라보는 승경은 경내 제일이다(白雲寺在白雲山 麗時古刹 登眺勝景爲境內第一)’라고 했다. 과연 자그마한 절터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한참을 서 있어도 지루함을 모르게 한다. 그러면 경내제일을 자랑하던 경승지에 있던 백운사는 언제 사라진 것일까?
봉은본말사지 백운사편에 그 답이 있다. 고종 31년 (1894년) 산불로 절이 타버려 그 이듬해 현재의 장소인 아래쪽으로 옮겨지었다는 것이다. 사라진 절터 옆쪽 나무 아래는 또 하나의 작은 평탄지가 있는데 그 곳에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흐르고 있다.
절은 사라진지 100년이 넘었건만 수백 년 사용하던 샘은 마르지 않고 절터를 지키고 있다. 이런 인연이 있는 한 언젠가 자그마한 암자가 들어서 살다가 지친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으면 좋겠다.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 1900년대 초 발행)에 의하면 석탑기단 한 개가 있었다 하는데 석탑의 흔적도 기단도 찾을 수가 없다. 외딴 절터에 석탑 하나 서 있으면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백운사 터에는 저녁 햇빛 속에 풀꽃만 빈 터를 가득 채우고 있다.
하산길 500여m 내려오면 불탄 백운사의 인연을 이은 새 백운사가 있다. 본래 백운사는 400여 년 전에 청풍김씨(淸風金氏) 집안에서 선산의 재실(齋室)로 정하여 수호해 왔다 한다. 그 인연은 조선 중종 때로 올라가는데 연산군에게 미움을 산 무신 김우증(金友曾)은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에 봉해진다. 그리고 받은 사패지(賜牌地)가 바로 백운산과 모락산 사이 넓은 땅이었다. 지금의 의왕 왕곡동 일대인데 김우증은 이 지역으로 들어와 청풍김씨 입향조(入鄕祖)가 되었고 본인도 사후에 이곳 왕림 윗마을에 묻혔다.
청풍김씨 시주로 옮겨지은 백운사, 6·25 때도 살아남아
그러니 이 지역은 자연히 청풍김씨 세거지가 되었고 이곳에 있던 백운사도 청풍김씨의 수호를 받게 된 것이다. 백운사가 불타자 청풍김씨의 시주로 아래로 옮겨지은 것이다. 백운사 안내문에는 이곳으로 옮겨 20평 정도의 암자를 지었다 하는데 지금은 비교적 안정된 규모의 사찰로 성장하였다.
대웅전 좌측 노천공간에는 관세음보살상도 모셨는데 매끈하게 그라인더로 간 모습이 어쩐지 생경하다. 관세음보살상이 서 계시는 곳 뒤로는 작은 계곡이 있다. 약 200m 위에는 또 하나 절터가 있다(왕곡동 산4-1). 이제는 백운사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곳이라 출입이 금지되었다.
지금의 백운사는 그나마 불난 이듬해 지은 1895년 절은 아니고 옛터에 새롭게 지은 절이다. 그래도 대웅전 주련은 예스럽다.
天上天下無如佛 천상천하 어디에도 부처님 같은 분 안 계시고
十方世界亦無比 온 세상에 비교할 이 역시 없네
世間所有我盡見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내가 다 보았으나
一切無有如佛者 일체 부처님같은 분 없네
법당안 신중탱, 칠성탱, 산신탱 같은 탱화는 예스러운데 봉은 본말사지에는 후불탱, 관음탱, 칠성탱 제석탱이 있다고 했으니 이 중 한국전쟁을 겪으며 살아남은 것이 있으면 다행이겠다.
이제 백운사를 떠난다. 앞 계곡수는 시원하게 흐른다. 의왕 자연팔경에 백운산계곡이 포함되어 있다 하니 이 계곡수를 이르는 것이렸다.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내려오는 길은 소나무 우거진 아름다운 길이다. 눈이라도 온 날에는 더욱 분위기 있을 것 같다. 카페 같은 화장실이 자리한 곳 공터가 의왕시내로 나가는 마을버스 정류장이다. 1-1번 마을버스는 매시 정시에 출발이다.
10분 지나면 마을버스는 큰길에 닿는다. 이곳에는 여러 노선의 버스가 지나간다.
- 교통편
수원역 4번 출구 ~ 13번 시내버스 환승 ~ 종점 상광교 하차
다른 지역에서 출발할 경우 수원시내 구간에서 13번 환승
(귀가) 마을버스 1-1번~ 의왕시내에서 목적지 환승
- 걷기 코스
상광교 버스종점 ~ 창성사 ~ 옛창성사지 ~ 종루봉(비로봉) ~ 김준용장관 승전지암각 ~ 광교산(시루봉) ~ 억새밭 ~ 미학사지(절터약수터) ~ 백운산 ~ 옛백운사지 ~ 백운사 ~ 마을버스 정류장
※‘이야기가 있는 길’ 답사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함께 모여 서울 근교의 옛절터 탐방을 합니다. 3, 4시간 정도 등산과 걷기를 하며 선인들의 숨겨진 발자취와 미의식을 찾아가니, 참가할 분은
comtou@hanmail.net(조운조 총무)로 메일 보내 주시면 됩니다.
- 이한성 동국대 교수 (정리 = 정의식 기자)
이한성 동국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