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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아티스트 - 오원배]순간의 영속, 그리기의 위대한 노역

오원배의 프레스코 미술계 최초 정통 프레스코화 전시, 소통과 실존적 고민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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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02호 글·정성희 큐레이터⁄ 2014.10.30 08:42:44

▲오원배 작가. 사진 = 왕진오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중견작가 오원배(61) 동국대 교수가 30년 전 파리에서 유학할 때부터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은 이미지로 간직하고 있던 풍경을 프레스코로 표현한 작품들을 가지고 10월 23일부터 11월 19일까지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자리를 마련한다.

그는 파리국립미술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 초반 정통 프레스코 기법을 배웠고 그 후 연구교수로 여러 차례 파리에 체류하면서 기법을 더욱 발전시켰다. 2007년 아트사이드 개인전을 통해 네 점의 작품을 선보인 이후 우리 미술계에서는 처음으로 정통 프레스코화만을 전시하는 의미 있는 자리이다.

파리에 처음 도착해서 몽마르트 언덕의 호텔방 창문을 통해 경이롭게 본 가지각색의 지붕과 굴뚝의 형상을 지금 서울에서 다시 마주하게 된 셈이다. 각인이라는 것. 그것이 어떤 개념이든 이미지이든 간에 한번 각인된 것은 어떤 형태로든 발현되기 마련이다. 어쩌면 그것은 창작의 원동력일 수도 있다.

▲Untitled, Fresco on acoustics panels, 60x120cm, 2014


젊은 날, 처음 접한 파리의 지붕 풍경은 그 후 오랜 작업 기간을 지배하는 특유의 구조적 이미지로서 조용히 그의 옆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자각은 다시 이렇게 30여 점의 작품으로 남았다.

파리에서 그를 사로잡았던 지붕 풍경은 작품의 소재로서 좋은 대상이었다. 1985년 귀국한 이후 세 차례나 다시 돌아가 조형적으로 느껴지는 지붕의 구조를 많은 드로잉과 대형화면으로 다루었다.

▲Untitled, Fresco on acoustics panels, 60x60cm, 2014


한 화면에 보이는 대상은 모두 동일시점의 원근법 아래 그려졌다. 단순하게 벽처럼 그려낸 창문 형태, 중세 분위기의 건축물로 재현하는 표현방식은 부드러우면서도 발색이 강한 색채와 더불어 작품에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이번 아트사이드 전시는 한층 풍요로워진 작품의 조형미와 함께 양식적 변화 및 형태 분석에 대한 사적인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하나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특히 지붕과 굴뚝의 재현방식에서 지난 작업들에 자주 등장하던 배경과 구조물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수 년 동안 작품의 배경으로 사용해온 공간에 대한 해석에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Untitled, Fresco on acoustics panels, 60x60cm, 2014


전시 작품은 모두 정통 프레스코 화법이 그대로 사용됐다. 15, 16 세기 르네상스 시기를 그 황금기로 볼 수 있는 프레스코화는 회반죽을 칠한 벽 위에 직접 작업을 하거나 혹은 목탄 가루로 복사해 예비 드로잉을 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이 후 밑그림이 보이도록 엷은 석회를 바른다.

이 석회가 젖어있는 동안에 색을 입히고 이 색채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저항력 있는 결정 상태가 된다. 석회가 젖어있는 동안 그려야 하므로 빨리 그려야 하는 반면 캔버스나 목판에 비해 마모에 훨씬 강해 보존에 용이한 특징을 지닌다. 석회가 마른 후에 덧바르는 것은 세코(secco, 건식 프레스코)라고 다르게 부른다. 

▲Untitled, Fresco on acoustics panels, 40x60cm, 2014


그는 거친 모래와 석회를 섞어 흡음판에 한번 바르고 고운 모래를 섞은 석회를 그 위에 다시 한번 발라 화면층을 만드는 준비 작업을 거친 후 밑그림을 화면에 전사시켜 준비 작업을 끝낸다.

화면의 거친 재질감을 더하기 위해 표면을 다양한 도구로 문지르고 색칠을 하는데 이 모든 작업이 석회가 마르기 전에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하므로 20여 시간 동안은 꼼짝없이 몰입해야 하는 긴장된 과정이다.

프레스코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한편으로는 프레스코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통 프레스코를 제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교육적인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작업과정의 까다로움에서 느낄 수 있는 장인적 노동의 가치와 소통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Untitled, Fresco on acoustics panels, 60x80cm, 2014


자신을 들어다 봄으로써 작품의 조형적 근원을 깨달았듯, 자신과의 소통은 외부와의 소통에 대한 욕구를 더욱 자극했던 것일까? 그는 2012년 10월 강화도 전등사 무설전에 후불천장벽화를 프레스코 작품으로 제작하여 전통 사찰의 예불 공간에 현대성을 부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소통과 인간에 대한 실존적 고민은 70년대 이후 계속해서 다양한 형태로 치열하게 다루어진 오원배 회화의 주제이다.


작가의 시선이 멈춘 그곳, 파리의 지붕

1970년대 ‘가면을 쓴 인간’, 80년대 ‘짐승 혹은 중성화된 생명체’, 90년대 ‘유령 시리즈’, 그리고 2000년대 들어 분할된 화면과 꽃, 건물과 같은 사물로, 대상은 바뀌었지만 줄곧 이어져온 보편적 인간에 대한 질문과 사색은 그 시대와 사회를 반영해왔다.

▲Untitled, Fresco on acoustics panels, 40x60cm, 2014


그의 일그러지고 뒤틀린 육체는 그 진지함만큼이나 고통스러운 고민의 흔적으로 남아 ‘일상의 발견’, ‘외로운 초상’과 같은 제목이 무색할 만큼 깊고 불안정한 감정으로 이끌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렇게 강렬한 실존적 고독과 생명력으로 표현되던 몸들은 사라지고, 젊은 시절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시내 곳곳을 누비던 오원배의 시선이 멈춘 그 곳. 파리의 지붕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하지만 다양한 화법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그의 회화 이야기는 여전히 날카롭고 그 눈빛은 진지하다. 그가 그리고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다시 질문을 이어갈 시간이다.

(CNB저널 = 글·정성희 큐레이터) (정리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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