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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아티스트 - 최예태]알래스카 설산도, 나부의 흰몸도 붉게 물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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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10호 박명인 미술 평론가⁄ 2014.12.24 08:53:29

▲최예태 작가. 사진 = CNB포토뱅크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아래 글은 최예태 화백에 대한 박명인 미술평론가의 평론 중 주요 부분입니다.(편집자 주)>

현상학적 분석에 의해 미의 정체성을 규정하자면 자연의 미와 예술의 미로 구분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인류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물질 또는 정신의 영역에서 그 형체의 성질을 미적으로 창출해내는 것을 예술의 미라고 한다. 특히 미술품에 있어서 화가의 심미안적 인식이 집약적으로 표출된 결과를 이와 같이 말한다. 그러나 예술의 미는 역시 자연의 미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자연의 미와 예술의 미는 미의 영역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중략)

최예태의 작품은 대체적으로 전기와 후기로 화풍을 구분할 수 있는데, 전기는 1990년대까지의 자연주의적인 사실계열 작품들을 말할 수 있겠고, 후기라고 하면 캐나다에 이주하게 되면서부터 변화한, 즉 강렬한 색과 선으로 점철된 오늘의 작품을 말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후기의 작품들은 자연의 미에서 비롯된 정신의 미와 강렬한 색채로 구성돼 있다.

▲붉은산의 환타지, 60.6x72.7cm, 2007


후기 작품은 캐나다 몬트리올에 이주해 살던 시기가 발단이 됐다. 뉴욕까지 한 시간, 파리까지는 여섯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조건은 화가에게 더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예술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파리와 20세기 들어 새로운 미술도시로 부각된 맨해튼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갈 수 있다는 것은 한국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좋은 조건이었다.

수시로 뉴욕과 파리를 오가며 견문을 넓히고, 선진국의 회화에 대해 깊이 각성하고 체험하면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이제까지 해왔던, 진부하다고 말하기 쉬운 표현방법을 쇄신하려고 결심한 데서 비롯된 시각인지(視覺認知)였다.

▲붉은산의 환타지, 혼합 매체, 53x65cm, 2006


“선진 미술시장을 빈번히 오가면서 번뇌에 얽혀 있을 때, 하루는 알래스카를 경유하면서 태양에 불타오르는 경관을 보고 탄성을 올린 일이 있죠.” 최예태의 눈동자는 작품의 강렬한 색만큼이나 불타올랐다.

붉게 물든 건물, 마치 석탄 덩어리처럼 검은 산이며, 검고 푸른 깊은 산의 능선이 물결처럼 첩첩이 쌓인 먼 산 넘어 고산준령의 흰 모자를 쓴 듯이 눈부시게 번쩍이는 만년설, 사물을 붉게 불들인 노을, 검은 산, 흰 눈 쌓인 준령, 울창한 푸른 숲, 그리고 코발트 빛 하늘이 때로는 붉은 하늘로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변화를 조망하면서 그야말로 자연이 만들어 낸 색의 하모니, 그것은 인간이 연출할 수 없는, 묘사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고 그 때의 감구지회(感舊之懷)를 회상했다.

▲붉은산의 환타지, 캔버스에 오일, 37.9x45.5cm, 2007


알래스카서 발견한 자연의 하모니…최예태 작업에 터닝포인트 돼

알래스카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회화의 변신을 꾀하게 됐다. 엄격한 규율과 조화로 이뤄진 자연의 섭리야말로 구상회화에 있어서 지켜야 할, 그리고 파악되고 탐구돼야 할 과제라는 사실을 체험했다. 그 과제를 성취하기 위해 남다른 학구열로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수채화와 조형미술에 대해 새롭게 공부했다. 그것이 한국적인 구상미술에서 한층 벗어나 새로운 회화로 발돋움하게 된 동기였다.

전환기를 맞았던 이때의 작품은 1991년 압구정동 현대미술관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나부의 연구’는 단색기법으로 회화적 발언을 시도한 작품이었고, ‘알래스카의 산’은 강렬한 색으로 도발적인 풍경화를 시도한 결과였다. 하지만 당시의 작품들은 기존의 자연주의적인 풍경화나 극사실에 이르는 정물, 또는 인상파적인 풍경화를 동시에 발표하고 있어서 새로운 작품에 대해 조심스럽게 시도하고 있던 변화의 조짐을 대중은 간파할 수 없었다.(중략)

▲침상의 나부V, 캔버스에 오일, 37.9x45.5cm, 2000


그러나 최예태의 시도는 고전과 현대성 이미지를 병합한 것으로써, 풍경화나 인물화 또는 정물화라는 구상미술에서 강조되고 있는 폴리크롬(polychrome)에 대비한 모노크롬(monochrome)의 의도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말하자면 강렬한 색채를 다루는 데서 비롯된 심리적 표현방법이었다. 이러한 시도가 본격적으로 완성된 것은 2003년 인사아트센터에서의 전람회였다. 체험과 감성으로 표현된 강렬한 색과 선으로 일괄되게 펼쳐 보였던 작품들은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수차에 걸쳐 시행착오도 거치고 반복되는 시도와 분석적인 탐구의 축적으로 자연에서 맛볼 수 없는 강렬한 색과 선을 과감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자신만의 의상(意象)을 표현함으로써 다양한 색채(폴리크롬)와 단일한 색채(모노크롬)를 대비시킨 ‘나부의 변주곡’(2004) 같은 특징적인 회화양식이 자리 잡게 됐다. 이것이 미적 가치를 높이는 데 성공한 최예태 회화의 정착이다.(중략)

미학에서는 창조적 상상을 차원 높은 심리적 활동이라고 말한다. 예술 활동과 관련된 사유는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그러한 의식의 발단은 직감, 형상, 인상, 감상, 인식세계로부터 전개되는 것이다.

▲실내의 나부, 캔버스에 오일, 130x89.4cm, 2006


그렇기 때문에 예술창작물은 정신만으로도 성립되는 것이 아니고, 기술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어찌 보면 정신적 힘은 기능이 배제됐을 때 상상, 망상, 피상과 같은 비생산적 결과로 나타나게 되고 정신이 결여된 기능은 공산품과 같이 생명력을 찾아 볼 수 없게 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조화를 이뤄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는 화면 구성은 자연의 미에서 발생하는 기(氣)로부터 세(勢)를 수반하는 천연적인 최예태의 의취(意趣)에 의해 완성된 것이다. 화려한 색의 변주곡, ‘나부의 연구’라는 명제에서 보이듯이 인체해부학적 근육의 조율과 숙련된 기술만이 성취할 수 있는 색과 형의 조화는 형상기세가 충천하는 강렬한 힘의 정상(情狀)을 표출한 자연의 미와 자연으로부터 받은 인상으로부터 착상(着想)된 정신의 미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CNB저널 = 박명인 미술 평론가)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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