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록그룹 싱어 출신의 여당 원내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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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최정숙 기자) “어서 와요.” 굵직한 파마머리, 다소 상기된 얼굴과 친근한 말투. 옆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인상…. 새누리당 김명연 의원(안산 단원갑)이다. 김 의원이 최근 원내대변인에 임명됐을 때 다소 의외의 인사라는 평이 있었다. 사실 당내에서 눈에 띄는 인사가 아니었다. 특히 그의 감기에 걸린 듯 허스키한 목소리는 과연 대변인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게 만들었다.
#1 [WHY] 그의 목소리는 왜 탁해졌을까
“도라지차 한 잔 마셔요.” 2일 인터뷰를 하기 위해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김명연 의원은 기자에게 도라지차를 권했다. 그간 수많은 인터뷰를 진행하며 차를 마셨지만 도라지차는 처음이었다.
“제가 성대가 약해요. 성대가 마르고 건조하면 목이 더 약해지니까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죠. 도라지차가 목에 좋다고 해서 일 년 전부터 마시고 있어요. 저녁에는 습도 조절을 위해 수건 같은 걸 빨아서 방에다 널어 둬요. 그렇게 하면 가습기보다 깨끗하고 효과도 좋아요.”
처음엔 그의 허스키 목소리의 원인이 ‘잠시 스쳐가는 감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성대결절이란다.
“대학 때 그룹사운드 활동을 했어요. 목을 많이 사용했더니 성대결절에 걸리더라고요. 그 전에는 목소리가 청량했지만 그때 변성이 왔어요.”
▲군 위문공연을 마치고 부대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는 장면.
그룹사운드 활동을 했다니 상상이 가질 않았다. 김 의원은 건국대 82학번이다. 건대는 가수 홍서범 씨 등을 배출한 그룹사운드 ‘옥슨’으로 유명하다.
“학교마다 상징동물이 있어요. 건대는 황소(Ox)입니다. 그래서 그룹사운드 이름이 복수인 옥슨(Oxen)이죠. 홍서범 선배는 옥슨80 리드보컬이고, 저는 옥슨83 리드보컬로 함께 활동했습니다. 1980년대 옥슨은 대학생은 물론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어요.”
당시는 하드 록 장르가 유행을 타던 때였다. 헤비메탈보다는 가볍지만 록 장르는 굉장히 강하고 직설적이다. 김 의원은 레인보우를 좋아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7인조 걸그룹이 아닌 영국 밴드다.
“당시 대학가는 하드락 장르를 좋아했어요. 저는 1975년 결성된 영국의 하드 록 밴드 레인보우를 좋아했어요. 악기는 악기 소리를 쫓아가면 되는데 보컬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따라가게 됩니다. 밴드의 보컬이 로니 제임스 디오(Ronnie James Dio)였어요. 그 사람과 제 성량이 다른데 따라하다 이렇게 됐죠(웃음).”
▲선배 홍서범(위)과 여름방학 강원도 망상해수욕장으로 MT갔던 장면.
1980년 ‘불놀이야’로 스타덤에 오른 홍서범 씨와의 인연도 궁금했다.
“홍 선배와는 추억이 참 많아요. 형제처럼 붙어 다녔거든요. 대학가요제가 대중음악을 이끌었던 80년대 초반 대학에서 그룹사운드 활동을 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에너지 폭발의 시기를 보냈다고 할 수 있죠. 홍 선배와 음악활동에 모든 청춘을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 추억을 얘기하면 홍 선배를 빼놓고 얘기가 안 됩니다. 지금도 정기적으로 만나 그 때의 추억을 곱씹으며 진한 우정을 나누니까요.”
김 의원은 다소 불편해 보이는 성대를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승민 원내대표에 의해 원내대변인에 발탁됐다.
“이종훈·민현주 원내대변인은 정책전문가들입니다. 저는 주로 지역에서 많이 뛴 현장전문가고요. 제 지역인 안산은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골고루 다 와서 사는 곳입니다. 경기, 강원, 충청, 영남, 호남까지 다 있습니다. 정치풍향계를 가늠할 수 있는 지역인 거죠. 또 기초의원부터 시작해서 현안을 많이 파악하고 있다 보니 원내대표께서 민심을 제대로 대변할 것이라고 판단하신 것으로 추측됩니다.”
#2 [WHY] 그는 왜 팽목항에 100일 이상 머물렀을까
2월9일 김명연 의원이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에 임명되고 이틀 뒤인 11일, 새정치민주연합은 김영록 의원을 수석대변인에 임명했다.
김영록 의원은 건대 75학번이다. 82학번인 김명연 의원의 학교 선배다. 김영록 의원의 지역구는 지난해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전남 해남·진도·완도다. 김명연 의원이 사는 안산에는 세월호 사고의 희생자가 가장 많은 단원고가 있다. 두 의원은 학교 다닐 때는 몰랐다가 의정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됐다고 한다.
“김 의원께서는 저보다 7년 선배입니다. 작년 세월호 때 진도는 사고 지역, 안산은 희생자가 많은 지역이었습니다. 안산과 진도는 동시에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습니다. 저는 100일 넘게 진도에 거주하다시피 했고, 선배는 지역에서 사고가 났기 때문에 현장에 자주 왔습니다. 선배는 굉장히 따뜻하고 자상한 분입니다. 진도와 안산을 각각 지역구로 두고 있으면서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오는 4월16일은 세월호 사고 1주기다. 김 의원의 홈페이지에는 노란 리본과 함께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사실 지난 한해는 그에게 있어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해다.
▲2015년 1월 1일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에 방문해 세월호 가족분들에게 애도의 뜻을 전한 김명연 의원. 사진제공 = 의원실
“아픔의 시간이었습니다. 안산을 지역구로 둔 여당 국회의원으로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무한책임을 느꼈습니다. 사고가 터지고 전원구조 오보를 듣고도 곧장 진도로 내려갔다가 그 길로 차 안에서 먹고 자면서 보낸 시간이 100여 일이 넘었어요. 국정조사로 서울과 안산, 진도를 수없이 오가면서 유가족들의 아픔과 절규를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야 했습니다.”
국정운영의 책임을 지고 있는 여당 의원으로서 유가족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초반에 그는 조용히 움직여야 했다. 자신이 국회의원인 것을 모르도록 모자도 푹 눌러쓰고 다녔다고 한다.
“처음엔 현장에서 굉장히 많이들 분노했습니다. 정치인들이 오면 얼굴 내세우러 왔냐고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뒤에서 조용히 일을 봤습니다. 희생자 가족들이 저를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인정할 때까지요. 제가 노출돼서 쫓겨나면 안 되지 않습니까. 공무원들은 절차를 중요시해서 정무적 판단을 빨리 내리지 못합니다. 제가 그때 고생하는 민간잠수부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여기저기에 지원 요청했습니다. 잠수부들은 한 번 들어가면 이틀을 쉬어야 합니다. 잘 먹고 잘 쉬어야 하는데 급한 대로 제가 판단하고 인맥을 동원해 삼계탕 등을 지원받곤 했습니다.”
그때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김 의원은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책임을 통감하고 고개도 들지도 못한 채 유가족들의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힘들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유가족들의 냉소와 때로는 심한 욕설에도 불만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유가족들의 절규가 아직도 귓전을 울립니다. 저 또한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릴 정도로 세월호 참사는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의 역사입니다. 지난해는 세월호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곧 다가오는 세월호 사고 1주기를 코앞에 두고 김 의원이 우려하는 것은 ‘잊혀짐’이다.
“처음에는 국민 대다수가 자신들의 일처럼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대립양상으로 치닫고 진실규명에 모든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생활에서 겪어야 하는 당장의 문제와 심리치료 등은 관심사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런 와중에 유가족들과 누구보다 가깝게 지내면서 그 분들의 세세한 어려움까지 챙기려고 노력했습니다. 세월호특별법 통과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데 이런 것들이 점점 잊히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정말이지 기억에서 지우고 싶다. 하지만 지워서는 안 될 2014년이다.
“현재 세월호 유가족들의 가장 큰 요구사항은 선체의 온전한 인양입니다. 선체인양에 관해서는 대다수 국민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아홉 분의 희생자를 찾지 못했기에 선체인양을 통해 실종자 가족들의 한이라도 풀어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까지 정부가 최선을 다한다면 다시 국민의 신뢰를 얻고 국민통합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유가족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지난해 11월부터 국회 국민안전혁신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 의원은 국민안전처를 비롯해 16개가 넘는 정부부처의 안전 관련 사업들의 허점들을 지적하며 개선촉구에 발 벗고 나섰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고 한 달여 뒤인 5월26일, ‘국립트라우마센터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도 대표발의했다.
#3 [WHY] 그는 왜 투표권도 없는 이들을 위해 헌신할까
김명연 의원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지원과 인권 보호에도 관심이 많다. 지역구인 원곡동에 이주노동자들이 많은 이유도 있다.
“국회에 처음 들어와 발의한 법안이 ‘다문화사회기본법’입니다. 우리나라는 원하든 원치 않든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습니다. 내-외국인이 더불어 살아야 하는 시대로 접어든 거죠. 인간이 살아가는 데 인권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이 보장되지 못한다면 그들은 결코 대한민국 사회의 일원으로 소속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국가발전에 큰 장애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신도시인 단원을과 달리 단원갑은 노후한 구도심이다. 3D(힘들고, 더럽고, 위험한)업종에 종사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다. 각종 사고도 잦아 사람들은 가기를 꺼려하는 동네도 있다. 자칫 ‘소외된 도시’로 전락할 우려도 있었다.
“제가 기초의원을 할 때 원곡동 일대를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이른바 ‘다문화거리’입니다. 간판 디자인을 바꾸고 전신주도 땅에 묻고, 깨끗하고 활기 넘치는 거리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단행했습니다. 지금은 화성, 시흥 등지의 외국인들도 주말에는 이곳을 찾아 문화공연을 즐길 정도가 됐습니다. 다문화의 구성원은 외국인뿐 아니라 한국 사람도 포함됩니다. 이제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2015년 2월 25일 새누리당 원내대변인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하여 임명장을 수여받는 김명연 의원. 사진제공 = 의원실
김 의원은 국회 입성 후 1호 법안으로 ‘다문회사회기본법’을 발의했다. 외국인도 기본적으로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과,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모두 다문화사회 구성원이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외국인에 대한 지원은 다양하게 전개돼 왔지만 일시적인 이벤트 위주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정부 8개 부처가 경쟁적으로 다문화 아젠다를 선점하기 위한 전시행정에 치우쳤는데 이제는 컨트롤타워를 명확히 해 체계적 정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그 정책의 중심은 당연히 외국인을 이웃이자 국민으로 바라보고 내-외국인의 조화로운 생활을 돕는 것입니다.”
지난해는 고려인(까레이스키) 이주 150주년이었다. 구한말에 연해주 등지로 이주한 고려인들은 현재 국내에 3만여 명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선부동 땟골에 2천여 명이 집단거주 하는 등 안산 지역에만 5천여 명이 생활한다. 지난 12월 김 의원은 ‘고려인 문화센터 건립’을 위한 국비 3억 원을 보건복지부 예산으로 확보하는 등 고려인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고려인은 한국어와 한글은 물론 문화와 관습도 모르는 상태에서 단순노동만 하는 처지입니다. 거주 외국인 및 동포 가운데서도 가장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어요. 해외에서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하는 동포들도 많습니다. 특히 중앙아시아 동포들 경우는 갈 때도 쫓겨 가고 다시 들어오지도 못하며, 힘겹게 들어와서도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제가 국회의원인데 안산에만 고려인센터 건립을 하면 되겠습니까? 1년 정도 지켜보면서 보강할 것이 뭔지 생각해 전국의 고려인 다수 거주지역에 센터를 건립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스스로 외국에 이민 간 사람도 재외국민 신분으로 바꿔주는 상황에서 이제는 이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김 의원이 고려인들의 애로사항을 듣기 위해 자주 가는 곳은 미용실이다. 지금 그의 파마머리도 민심 청취를 위해 곳곳을 돌다가 탄생했다. 이들에게는 투표권도 없지만 김 의원이 신경 쓰는 이유는 ‘공동체’라는 테두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 동네에 이발하러 가면 손님 중 90%가 까레이스키입니다. 돌면서 머리도 많이 손질하고 얘기도 합니다. ‘너머’라는 고려인지원센터 사람들과 고려인들의 생활안정을 위한 고민도 하고요.”
고려인의 부모 세대는 구 소련 등 타의에 의해 강제이주 당했다. 돌아보면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대한민국은 이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갖고 있어야 마땅하다는 얘기도 된다. 자녀 세대는 고국이라고 찾아왔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잘 돼야 지역경제도 활성화되는 만큼 김 의원 입장에서는 이들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
“제 지역구에 소외계층이 많습니다. 안전한 도시도 아니고요. 청소년 시설도 부족하고 어르신을 위한 시설도 매우 취약합니다. 앞으로 서민복지를 향상시키는 데 주력할 계획입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교육-사회 지도자인 파커 J. 파머가 저술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정치는 절대로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창조하기 위한 오래되고 고귀한 인간적인 노력’이라는 책 내용에 감동받았습니다. 결국 정치는 승리만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사회에서 강자만이 아니라 약자도 번영해야 하고, 정의와 너그러움이 공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올해에는 작년 우리 국민들이 겪었던 아픔과 갈등을 치유하고 사회가 더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명연 의원의 별명은 ‘안산 비타민’이다.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는 의미다. 소외된 이웃의 삶을 잘 보듬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탁하게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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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숙 기자 most_silen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