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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 최헌기]“한국과 중국 사이에 끼인 내 자화상이 나의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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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23호 왕진오 기자⁄ 2015.03.23 14:10:53

▲‘위대한 광초’ 설치작품과 함께한 최헌기 작가. 사진 = 왕진오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우리가 보는 그대로가 진실이다. 역사도 그 민족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태극기와 오성홍기, 인공기가 그려진 화면 위에 수많은 사람이 싸인펜으로 저마다의 흔적을 남겨 배경의 국기가 어느 나라를 상징하는지 알 수 없게 만든 작품이 전시장 입구에 걸렸다.

1994년 중국국립미술관에서 첫 전시를 연 재중동포 작가 최헌기(53)의 ‘자화상’이다. 당시 중국 내 검열로 온전히 공개하지 못했던 작품과, 30여 년 넘게 창작의 길을 걸으며 만든 작업을 첫 전시 이후 20여 년만인 올해 3월 20일부터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성곡미술관 전관에 펼쳐놓는다.

이번 전시에 최헌기는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초서(草書)를 근간으로 이어지는 ‘광초(狂草)’ 작업들, 자발적인 붓질과 오일 페인팅의 물질성으로 표현되는 감각적 에너지의 회화와 설치작품 등 40여 점을 내놓았다.

그에게 자화상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주요한 모티브이다. 삶과 예술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와 탐색을 풀어낸 비망록이자 여정이다. 한국 부모가 이주한 중국 길림성에서 태어난 그는 중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경계선상에서 차별을 겪었다.

“과거에는 정체성 문제로 혼란스럽고 슬펐다. 하지만 지금은 예술가로서 부자가 된 근거가 됐다.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사고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다.”

그의 작품들에는 공통적으로 ‘6×9=96 ,?×?=!!!’라는 숫자와 기호가 들어 있어 그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숫자의 내막은 알 필요가 없다. 우리가 보는 그대로가 진실이다. 썼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관람객들이 전시장에 걸린 내 작품을 보지 않고 스쳐지나가지 않도록 만들어 놓은 일종의 함정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전시장의 걸린 대다수 작품들은 글씨 형태를 띤 선 모양의 조형물이 액자 밖으로 이리저리 뻗어나간다. 전통적 의미에서 ‘그림은 액자라는 틀 안에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려는 작가의 의도다.

▲‘위대한 광초’ 설치 전경. 사진 = 왕진오 기자

“회화의 상징적 의미인 ‘액자 안에 갇힌 그림’이라는 당연함을 깨고 싶었죠. 액자가 있고 그림이 있어야 작품이 된다는 회화의 상징성과 한계를 뛰어넘는 방식입니다. 그림만 그린다면 화가는 재미없는 존재입니다. 창조를 하는 특별한 방식을 만들어 보여주는 예술가가 더 중요하죠”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예술가란 관객과 소통하는 사람이다.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남을 배려하는 생각에서 출발해 창조하는 것이 예술가가 가져야 할 숙명이라는 의미다.

“그냥 아무렇게나 그려놓고, 관객들더러 일방적으로 이해하라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며, 그렇게 한다면 그건 붓을 들고 그림 그리는 화가의 한계”라는 주장도 펼친다.

“사회주의적으로 말하면서
자본주의적 욕망 추구하는 기괴함 비꼬고, 
내가 모나리자 배경 되면서 틀 깬다”

천장에 매달린 레닌, 바닥에 뒹구는 마오쩌둥과 마르크스 등 미술관 한 편을 차지하는 대형 설치작업 ‘붉은 태양’을 통해 작가는 사회주의 사상가들의 입바른 말과 자본주의적 욕망이 뒤엉킨 기형적 풍경을 보여준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살던 당시 작가가 경험한 강요된 삶이 아니라, 자신의 심장에 맞춰 독립적으로 살고 싶음을 표현한 작업이다.

미모를 자랑하는 모나리자가 벌거벗은 모양의 대형 조각,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과 밀로의 비너스상이 서로 연애하듯 배치된 작품, 자신의 얼굴이 깔려 있는 모나리자 액자 등이 눈길을 끈다. 이런 작품들은 그가 추구하는 세상은 규정과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을 표현한다.

그는 “명작 앞에서 궁금했던 사항, 즉 아무것도 아닌데 말을 못하는 관객들에게 모나리자가 가진 신비성을 깨기 위해 벌거벗은 대형 모나리자를 4년 동안 만들었다. 내가 추구하는 미의 방식을 한 편의 코미디처럼 만들었다”며 “관객들이 모나리자 조각이 우리가 알던 모나리자라는 사실을 알고, 미술 수업에 사용되는 다비드와 비너스가 만나 연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한다면 내 전시는 성공한 것”이라고 작업 의도를 설명했다.

자화상을 꾸준히 주요 화두로 삼는 최헌기에게 모든 작업은 자화상일 수 있다. 모든 작업에 그의 사유와 욕망, 비판의식이 꼿꼿하게 살아 잠들지 않기 때문이다.

1962년 길림성에서 태어나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에서 수학한 작가는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경계에서 살아온 자신의 삶을 회화와 설치 작품으로 표현한다. 한국에서는 2002년 광주비엔날레 ‘프로젝트 2: 한국 이산에 제기되는 나는 누구인가?’라며 정체성 문제를 다룬 ‘저기: 이산의 땅’으로 소개된 바 있다. 전시는 5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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