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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人 - 여성 미술 ①]“희생하지만 거대한 어머니”

이타적 여성을 끈질기게 그리는 윤석남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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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28호 김금영 기자⁄ 2015.04.28 09:11:09

▲윤석남 작 ‘종소리’. 팔을 이매창과 작가 자신이 서로를 향해 팔을 길게 뻗치고 있는 작품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 여성을 현재로 소환하는 작업이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여자가 여자에게 “더 당당해지라”…아트로 만나는 여성·여체 이야기 셋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옛말이 있었다. 과거 사회적 지위가 낮았던 여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세상을 지배하는 건 남자고, 그 남자를 지배하는 건 여자’라는 말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세상이 달라졌다. 크게 달라진 위상과 함께 여성이 여성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여자가 여자의 몸을 바라보는 자세도 크게 달라졌다. “나는 여자”라고 당당히 말하는 여성 화가들, 그리고 ‘몸의 예술’을 추구하는 공연 관계자들을 만나봤다.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요즘 맞벌이가 많고, 사회 활동에 활발한 여성이 많지만, 과거엔 집안의 평안을 위해 앞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가족들 뒷바라지를 하며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여성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윤석남 작가는 이처럼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여성상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윤석남은 30여 년간의 작품 활동을 총망라하는 ‘2015 세마 그린: 윤석남 ♥ 심장’전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6월 28일까지 연다. 40세가 돼서야 작업실, 즉 ‘자기만의 방’을 갖고 미술에 입문한 윤석남은 열정을 오롯이 작품 활동에 쏟아 붓는 작가다.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1996년 이중섭미술상을 받았다.

전시 기획에 참여한 조아라 큐레이터는 “윤석남은 1985년 김진숙, 김인순 작가와 함께 한국 페미니즘 전시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월모임’ 이름의 여성 그룹전을 열었고, 이듬해 1986년 시월모임 2회전 ‘반에서 하나로’에서 가부장적 사회 속 여성이 직면한 현실적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작품들로 주목받았다”며 “같은 해 민족미술협의회 내 여성분과를 세우는 주축이 됐으며, 다른 작가들과 함께 여성 미술가 40명의 작품을 모아 첫 ‘여성과 현실’전을 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윤석남의 작업에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여성이자 자기희생적 존재로 일컬어지는 ‘어머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어머니로 시작해 모성, 여성성, 생태 등 다양한 주제를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시각화해왔다.

‘심장’이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이번 전시는 윤석남의 식지 않는 예술 열정과, 약자를 향한 애통이 담긴 50여 점 작품을 ‘어머니’, ‘자연’, ‘여성사’, ‘문학’ 등 4개 주제로 구성해 심층적으로 조명한다. 역사 속의 여성을 다룬 신작과 윤석남 특유의 서사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드로잉 160여 점 역시 함께 한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작품은 ‘무제’, ‘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 ‘허난설헌’, ‘이매창’ 등이다.

▲‘화이트 룸 - 어머니의 뜰’은 윤석남이 오랜 주제였던 어머니의 죽음을 맞은 뒤 만든 작품이다. 사진 = 김금영 기자

‘무제’는 작가의 어머니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40세에 미술을 시작한 작가가 가장 먼저 화폭에 담은 소재는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작가의 어머니는 39세에 남편과 사별해 자식 6명을 혼자 힘으로 키워냈다. 작가는 어머니의 삶을 위대하다고 여기며, 깊은 존경심과 함께 그녀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아내고자 했다. 시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을 관찰한 뒤 자신의 어머니 형상과 결합해 그려낸 윤석남의 1982년 첫 개인전 출품작이다. 가장 희생적이고 이타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강한 여성인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어머님처럼 역사 속에서 이타적이고 자기희생적인 모습을 보여준 여성들을 전시장에 끌어왔다. 자기 재산을 팔아 굶어 죽어가던 제주도민에게 구휼미를 제공했던 정조시대의 거상 김만덕을 기리는 신작 ‘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는 높이 3m, 지름 2m의 거대한 핑크빛 심장 형상으로, 전시장 한 가운데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허난설헌’과 ‘이매창’은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성이 사회적 인정을 못 받던 시대에 그 재능을 썩힐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을 담았다.

조아라 큐레이터는 “윤석남은 말하고 싶은 것을 끊임없이 작품으로 표현하고, 그 표현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며 살아온, 삶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삶이 된 작가”라며 “그의 뜨거운 손과 따뜻한 심장이 관람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한편, 이타적인 삶에 대한 의지와 그에 완전히 다다를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고민의 궤적에 관객이 공감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인터뷰 - 윤석남 “못다꽃핀 역사속 여자를 작품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글과 그림이 함께 담긴 드로잉 160여 점(1999~2003)과 신작 ‘허난설헌’, ‘이매창’, ‘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를 통해 여성의 이타적 삶을 그린 윤석남 작가에게 작업 세계를 들어봤다.

-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여성 주제의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80년대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궁금했던 주제는 ‘여성으로서의 내 삶이 어떻게 시작되고 끝날까?’였다. 답을 찾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존재가 어머니였다. 내 주변의, 가장 사랑하는 존재였던 어머니를 캔버스에 담으며 답을 찾아가자고 생각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어머니를 오라고 해 앞에 앉혀 놓고 드로잉을 시작했다.”

-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선구자’ 등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닌다.

“솔직히 처음 그림을 그릴 때 여성미술, 여성주의,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도 몰랐다. 처음엔 단지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고 사랑하는 어머니를 그리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여성의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리고 이 그림들로 1982년 개인전을 열었는데, 전시를 보고 김인순 작가가 작업실로 찾아왔고, 김진숙 작가와도 인연이 닿았다. 셋 다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데 뜻이 일치했다.

그때부터 감성만으로서가 아니라 사회분석도 하며 여성 이야기를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여성주의를 가슴에 품고 작업을 시작한 계기였다. 당시 미술계가 남성 작가들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작업세계에 몰두했다.”

▲윤석남 작가. 사진 = 김금영 기자

- 이번 전시에서 김만덕 등 역사 속 여성을 끌어왔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역사 속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특히 관심을 가진 대상은 김만덕이다. 김만덕의 족적은, 이기적으로 살아온 여성인 내게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한 여성의 이타적 삶이 내게 와 닿았다. 자기밖에 모르고, 자신만 존재하는 듯한 의식 속에서 이타적인 삶을 보면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게 된다.

장사꾼이자 기생이었던 김만덕은 제주도에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다 굶어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쌀을 사 나눠줬다. 남성조차 할 수 없던 희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타적이고 감동적인 이런 역사 속 여성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남을 살리고자 하는 여성의 마음 근본이 김만덕에게서 느껴졌다.

허난설헌에 대해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역사 속 여성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탁월한 문학적 재능이 있었지만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해 참 불평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재능이 재평가받기를 바라며 전시장에 끌어왔다.”

- 앞으로 작업 계획은?

“이런 전시를 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쭉 여성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관심 분야가 넓어지면서 어느덧 현재에 이르렀다. 앞으로도 내게 감동을 주는 역사 속 여성의 삶을 작업으로 이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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