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수는 '엘리자벳'의 2012년, 2013년 공연에 출연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실존 황후 엘리자벳이 살해당한 게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원했고, 죽음을 사랑했다는 가상의 설정을 다루는 '엘리자벳'에서 그는 판타지적 요소를 지닌 초월적 존재 '죽음'을 연기했었다.
'죽음'은 여주인공 엘리자벳과 더불어 작품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일컬어진다. 특히 '죽음'이 엘리자벳에게 자신을 선택하라며 부르는 '마지막 춤' 노래는 공연의 대표 곡으로 꼽힌다. 위험하지만 자꾸만 빠져드는 치명적인 매력의 이 캐릭터를 김준수는 특유의 미성과 표현력으로 잘 소화했고, 이 작품으로 한국뮤지컬 대상 남우주연상, 인기스타상을 수상했다.
2010년 '모차르트'로 뮤지컬에 데뷔한 그는 '엘리자벳' 수상 뒤 '디셈버' '드라큘라' 등에 출연하며 뮤지컬계에 김준수라는 세 글자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엘리자벳'과 '데스노트'는 화제에선 뒤지지 않는다. 2012년 국내에 초연된 '엘리자벳'은 당시 10주 연속 티켓 예매율 1위, 2012년 1분기 판매 1위, 2012년 인터파크 '골든티켓 어워즈' 티켓 판매 1위를 차지하며 총 120회에 걸쳐 15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1년 만에 가진 앙코르 공연에서는 티켓을 오픈하자마자 예매율 1위에 오르며 4주간 정상 자리를 지켰고, 97%의 객석 점유율을 기록했다.
데스노트 또한 국내 초연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 29일 티켓 오픈과 동시에 전 회차 전석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6월 1일 가빛섬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와 쇼케이스에도 많은 취재진이 몰려 뜨거운 취재 열기를 보였다.
'데스노트'는 2003년부터 일본 '주간소년 점프'에 연재된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이름이 적히면 죽는 사신의 노트를 천재 소년 야가미 라이토가 우연히 손에 넣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김준수는 라이토를 잡기 위해 그와 두뇌 싸움을 펼치는 또 다른 천재 탐정 엘(L) 역을 맡았다.
'엘리자벳'의 죽음 역 못지 않게 엘 또한 강렬한 특징을 지닌 캐릭터다. 항상 구부정하고 특이한 포즈에 단 초콜릿을 미친 듯이 먹으며 예측할 수 없는 돌발 행동을 자주 한다. 눈 아래엔 다크써클이 가득하고 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표정이다. 그런데 그 와중 눈빛이 번뜩이는 추리로 반전 매력을 선사한다. 라이토와 쌍두마차로 불릴 정도로 사랑 받는 캐릭터다.
김준수는 "학창 시절 정말 재밌게 읽었던 작품인데 직접 출연하게 돼 기쁘다. 지금까지 출연한 뮤지컬 수에 비해 다양한 캐릭터를 맡은 편이라 생각하는데 이번 또한 괴기하고 특별한 느낌의 캐릭터다"며 "단순 코스프레로 보이고 싶지 않아 원작과의 중간 접점을 타협해가는 과정이다.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엘리자벳'의 죽음 역과의 비교에 부담감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어떤 역할을 뛰어 넘겠다'를 내가 말하는 건 주제넘은 것 같고, 관객이 판단해줄 문제인 것 같다"고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포부 또한 감추지 않았다. 김준수는 "다만 확실히 그간 다른 뮤지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독특한 모습을 조금 더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나도 기대된다. 항상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이 가장 최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캐릭터의 성격은 확실히 다르다. 죽음이 옴므파탈적인 이미지가 강했다면 엘은 기괴하고 엉뚱하다. 그리고 죽음의 이미지가 검고 어두웠다면, 엘은 입고 있는 옷도 검은색과 대조적인 하얀 옷이며, 원작에 따르면 나름 발랄한(?) 귀여움도 있다. 또 끊임없이 죽음으로 유혹하는 '엘리자벳'에서의 캐릭터와 달리 데스노트의 엘은 죽음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려 하고, 정의감으로 뭉쳐 있다. 이 차별화된 캐릭터를 김준수가 어떻게 제대로 살리느냐가 관건으로 보인다.
최근 '무한도전'에 출연했던 전현무가 프로그램에 대해 "독이 든 성배와도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김준수에게는 지금 '엘리자벳'과 '데스노트'가 그런 존재인 것 같다. '엘리자벳'은 지금의 김준수를 있게 해준 큰 조력자인 동시에 넘어야 할 산이고, '데스노트'는 지금까지 그에게 남아 있는 엘리자벳의 아우라를 벗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판가름할 무대로 기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