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아 KISTEP 원장이 6월5일 CNB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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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최정숙 기자) “여자가 왜 물리학과를 선택했냐고요? 그냥 재밌고 좋았어요. 우주의 근원이 되는 물질을 연구한다는 건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거든요.”
물리학,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듣기만 해도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단어다. 하지만 박영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에게 물리란 생각만 해도 짜릿한 학문이다. 박 원장은 남들이 어렵다는 물리를 선택한 차원을 넘어 대입예비고사에서 전국 여자수석을 차지한 재원이기도 하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할 때 그는 홍일점이었다. 이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명지대 물리학과 교수를 지내며 제자 양성에 매진했다.
박 원장은 한국물리학회 부회장, 세계물리연맹 여성실무그룹 위원장, 아시아태평양 물리학연합회(AAPPS) 집행위원회 평의원 등도 역임했다. 2008년에는 제3차 세계여성물리대회를 서울에 유치하는 등 그의 인생에서 물리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대표적 여성 과학자인 박 원장은 18대 국회의원(새누리당. 서울 송파갑)에 당선된 이후 자신의 전공을 한껏 살려 다양한 법안을 발의했다. 2013년 10월부터는 KISTEP의 최초 여성 원장에 선임돼 활동 중이다.
박 원장은 6월 5일 가진 CNB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특유의 리더십으로 ‘과학기술계 유리 천정’을 깨온 자신만의 철학을 솔직하게 터놓았다. 또 창조경제 시대에 과학기술 혁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도 들려줬다.
“고등학교 때부터 물리학 좋아… 퀴리 부인 일대기 읽고 감동”
“고등학교 때부터 물리학을 좋아했어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종로에 종로서적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가서 물리학과 과학자들에 대한 책을 사서 읽고는 했지요. 뉴턴, 아인슈타인 등 위인전을 많이 봤어요. 특히 퀴리 부인의 일대기를 감명 깊게 읽으면서 여성 과학자로서의 꿈을 키웠지요. 퀴리 부인은 방사능 물질인 라듐을 발견하고 평생을 연구했어요.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데 공을 세웠죠. 그러나 정작 본인은 방사선에 노출돼 생을 마감했지요.”
▲박영아 원장이 4월28일부터 30일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진행된 ‘Gender Summit 5 Africa’에 참석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 = KISTEP
마리 퀴리는 물리학자이자 화학자다. 1867년 폴란드 출생이지만 1895년 피에르 퀴리와 결혼하면서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남편과 함께 방사능을 연구하면서 최초의 방사성 원소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 1903년 부부가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마리 퀴리는 남편이 사망한 이후에도 연구를 쉬지 않았다. 그 결과 1911년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하고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그는 방사능 연구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자신은 실험 과정에서 방사능에 노출됐고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다. 마리 퀴리는 미래의 과학자들, 특히 여성과학자들이 가장 본받고 싶어하는 위인 중 한 명이다.
박 원장도 이런 마리 퀴리에게 감동을 받았고 본받고 싶어 했다. 그는 마리 퀴리가 그랬듯이 KISTEP의 최초 여성 원장으로서 소통과 협력을 강조했다.
“여성 원장으로서 느끼는 특별한 장단점은 없습니다. 다만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의 얘기를 듣는 자세로 기관을 이끌어 왔어요. 이곳에는 다양한 연령층과 경력을 가진 분들이 골고루 포진돼 있습니다.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로 뭉치는 것이 필요하다 보니 소통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부족하지만 늘 소통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창조경제 견인차 역할, 국가과학기술 경쟁력 강화 위해 노력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1999년에 설립됐다. 이후 우리나라 총 연구개발비가 16조 원을 넘어선 때인 2001년을 기점으로 확대 개편됐다. 국가 연구개발 사업의 효율적 추진을 위한 기획을 세우고 평가 기능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박영아 원장은 취임 이후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는 ‘창조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위해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 중이다.
“각 부처마다 연구비를 집행하고 관리하는 기관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국가 차원의 과학기술 기획·조정·평가 등 전 과정에 모두 관여하는 기관은 KISTEP이 유일합니다. 국가 과학기술 혁신과 선진화를 주도하는 싱크탱크로,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현재를 설계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지요. 지금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영국, 일본, 중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경제 불황을 타개하고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과학기술 중심의 창조경제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시대입니다. KISTEP의 300여 연구 인력은 이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을 한층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KISTEP의 고유 업무 중 하나는 과학기술 기본계획 수립이다. 박 원장은 과학기술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힘쓰고 있다.
“창조경제를 견인하고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 과학기술 정책 및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를 기획·운영하고 있지요.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의 근간이라고 볼 수 있는 과학기술 기본계획 수립은 KISTEP의 고유 업무 중 하나입니다. 2013년 7월 발표한 제3차 과학기술 기본계획은 5년 간 R&D 분야에 총 942조 원을 투입해 일자리 64만 개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최상위의 국가 계획입니다. 연구개발을 통한 경제 성장뿐 아니라 삶의 질 향상, 연구개발 결과의 기술이전·사업화는 물론, 일자리 창출과의 연계를 강화한 것에 의의가 있지요.”
KISTEP의 3대 추진 전략은 창조경제 기반의 국가 성장전략 창출, 국민행복 증진을 위한 선제적 전략 수립, 선도형 과학기술 혁신 패러다임 전환 주도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스케치 오브 사이언스(Sketches of Science)’ 전시회를 기념하기 위해 ‘KISTEP Science Talk’ 강연을 열었다. 2014년 11월 21일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열린 이 강연에는 홈페이지 신청을 통해 선발된 150여명의 고등학생들이 참석했다. 사진제공 = KISTEP
“제가 부임한 2013년 10월은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차로, 창조경제 국정철학에 대한 개념 정립과 실행 전략을 빠르게 수립해 나가는 시기였습니다. 이에 발맞춰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많은 변화가 요구됐지요. 취임하고 두 달 뒤 KISTEP 내 ‘미래기획위원회’를 설치하고, 새로운 전략 발굴에 나서게 됐습니다. 이에 따른 결과물로 도출된 것이 현재 KISTEP의 미래 비전입니다. ‘미래가치를 창출하는 글로벌 과학기술 기획·평가 전문기관’이라는 비전 아래 ‘선도형 과학기술 기획·평가로 창조경제와 국민행복 실현에 기여’라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3대 추진 전략을 세운 것입니다.”
취임 초 미래기획위원회 TF 구성… 여성 인재 발탁 등 추진
KISTEP의 핵심 기반은 모두 네 가지다. 소통과 협력시스템, 세계 수준의 싱크탱크, 지식나눔 및 기여문화, 투명한 창의경영 등이다. 박영아 원장은 이를 기반으로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기관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추진 전략을 만들었다.
“취임 초기에 미래기획위원회 TF를 구성해 기관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추진 전략을 만들었습니다. 뒤이은 조직 개편에서는 능력 있는 여성 인재를 발탁해 여성 보직자의 비율을 대폭 확대했고요. 이는 남성과 여성 인재에 대한 공평성을 넘어 다양성 확보를 통해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함이었습니다. 지난해 3월에는 ‘KISTEP 수요 포럼’을 신설해 다양한 과학기술계 현안과 정책 이슈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이 포럼은 내부인뿐 아니라 외부인에게도 참여의 기회가 열려 있습니다. YTN사이언스를 통해 녹화 방송을 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열린 논의의 장을 제공하는 거지요. 내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과학기술 연구소라 할 수 있는 KIST가 설립된 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과학기술 정책이 수립되고 시행된 지 반세기가 흘렀다는 의미이지요. 현재 진행 중인 사안입니다만, 지난 50년간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성과와 한계를 집어보고 향후 50년을 준비할 수 있는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미래변화 대응 위한 과학기술 혁신시스템 확립
KISTEP는 올해 초 ‘2015 과학기술 정책 10대 이슈 포럼’을 열고 창조경제 시대 과학기술 혁신 시스템 확립을 강조했다. 10대 이슈는 미래 변화 대응, 국가 경쟁력 확충,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 이행이라는 3개 분야 아래 ▲과학기술계 여성 리더십 확산과 젠더 혁신 ▲과학기술 중심의 통일 강국 실현 ▲신 우주경쟁 시대의 발전 전략 수립 ▲21세기 미래 인재 양성 시스템 구축 ▲창조경제 시대 과학기술 혁신 시스템 확립 ▲한국 제조업 신 중흥 시대 개척 ▲과학 외교를 통한 글로벌 리더십 확보 노력 ▲과학기술 기반 일자리 확충 ▲과학기술과 사회의 소통 실현 ▲신 위험사회에서의 과학기술 역할 정립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박영아 원장이 5월25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Convention Centre에서 개최된 국제포럼 ‘Harnessing Women’s Talents in Science, Technology and Innovation‘에서 기조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KISTEP
박 원장은 정책 개발 연구는 물론, 확산이 필요한 이슈의 공론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현재 관련 정책 개발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이에 대한 연구가, 저희 기관 자체적으로 실천이나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부분에서는 관련 프로젝트 구성이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타 기관이나 사회로 확산이 필요한 이슈는 좀 더 적극적인 공론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는 과학기술을 통한 남북통일과 과학 외교에도 관심 갖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미래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통일 이후의 과학기술 통합 시스템 구축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국가혁신 시스템(NIS)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과학기술 인력을 어떻게 큰 갈등 없이 시너지 효과를 거두며 통합할 수 있을지 고민 중입니다. 과학외교 부분에 있어서도 말레이시아 총리실 산하 말레이시아 첨단 민관 공사(MIGHT)와 함께 말레이시아의 국정 과제인 ‘Science to Action(S2A) Initiative’(2020년 이후 지속가능한 성장을 확보하기 위해 과학기술 중심의 국가 건설 및 과학기술 경쟁력 강화를 통한 국가발전을 추진. 이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지수 톱 10, 글로벌 혁신지수 톱 10, 국내 총지출 대비 R&D 투자 2%를 목표로 함)에 대해 정책 구조, 추진 과정 및 성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컨설팅하는 3년 과제를 협의했습니다. 빠르면 연내 착수 예정입니다. 과학기술을 통해 말레이시아가 2020년까지 고소득 국가에 진입하는 방안을 함께 모색할 예정입니다.”
“창조경제 근간은 창의융합, 국가혁신의 핵심은 창의인재 육성”
박영아 원장은 물리학과 교수로 있을 때도, 정치에 입문 했을 때도, KISTEP 원장으로 재임 중인 현재도 한결같이 과학계 발전방안 연구에 주력해왔다.
“의원 시절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활동을 했어요. 제정 법안 8건, 개정 법안 17건 등 총 25건의 법안을 대표발의 했지요. 공동발의 법안까지 합하면 총 167건이네요. 이 중 27건이 교육과학기술 관련 법안입니다. 천문법, 학교체육진흥법, 초중등교육법, 기초과학연구진흥법 일부개정법률, 빛공해방지법 등을 발의했습니다. 그 외에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강화, 여성과학기술인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산업교육 진흥 및 산학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등도 있었고요.”
과학기술 발전은 곧 국력이 된다. 이에 박근혜 정부는 이공계 강화를 내세웠다. 박 원장은 이공계 발전을 위한 ‘창의인재 육성’에 방점을 찍었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노벨과학상을 받을 인재가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2014년 10월13일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열린 노벨상 수상 아이디어 스케치 사진전 ‘스케치 오브 사이언스(Sketches of Science)’ 기념 포럼에서 박영아 원장이 고등학생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 = KISTEP
“창조경제 시대의 근간은 창의와 융합입니다. 국가 혁신의 핵심은 창의성과 끊임없이 도전하는 열정을 갖춘 창의 인재 육성이 관건이지요. 정부에서는 창조경제 시대의 전진 기지로 삼기 위해 공과대학의 역할과 성장을 지원하고 우수 공학 인재의 양성을 도모하고자 ‘공과대학 혁신 방안’을 수립했습니다. 재정 사업 및 교수 평가 개선, 전공과 실무교육 강화, 산학협력과 실용연구 활성화 등 3개 분야에 대해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 대학 재정사업 평가제도 개선, 공대 교수평가 시스템 개선, 공대 재정사업 효율화, 공학전공․융합교육 활성화, 공대생 현장역량 강화, 연구성과 실용화 기반 구축, 공과대학 기술사업화 촉진 등을 세부적인 추진과제로 제시하고 추진 중입니다.
또 인문, 사회, 과학기술에 대한 기초 소양을 함양해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초․중등학교를 대상으로 문․이과 통합형 교육 과정을 마련 중에 있습니다. 초중등 교육에서 필수적으로 과학을 배움으로써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의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현재 추진 중인 교육과정 개정이 과학의 기초 체력을 강하게 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최정숙 기자 most_silen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