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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폴란드]강대국 사이에 끼어 축복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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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45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08.27 08:53:16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5일차 (크라쿠프 → 바르샤바)

중세 고성 바벨성

새벽에 눈을 떴다. 아침 식사 전 어제 날이 어두워져 못간 바벨(Wawel) 성으로 산책 나간다. 일부러 중앙 시장 광장으로 돌아서 간다. 어젯밤 토요일 밤새도록 술을 마신 젊은이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세계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술 소비가 많은 나라가 폴란드라는 통계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선술집과 식당으로 이어지는 거리를 따라 내려가니 곧 바벨성이다. 비스와(Visla)강 언덕에 건설된 요새다. 1000년 넘은 고성은 이후 16세기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축됐지만 성벽과 망루, 성채는 영락없이 중세의 장엄한 분위기를 풍긴다. 

전 교황 바오로 2세와 크라쿠프

성 입구에는 고딕 양식의 장대한 바벨 대성당이 있다. 대성당 안에는 폴란드 왕의 석관이 있다고 하지만, 너무 이른 아침이라 아직 입장이 안 된다. 대성당 탑에 있는 지그문트 종이 청아한 소리를 울린다. 기마상과 두 개의 첨탑이 더욱 멋진 성당 정문 앞에는 2005년 서거한 교황 바오로 2세의 동상이 있다. 교황이 되기 전 그는 크라쿠프 교구 주교로 10년 동안 이 예배당에서 집전했다.

▲활기가 넘치는 폴란드 크라쿠프의 중앙 광장(마켓 스퀘어). 사진 = 김현주

폴란드의 지정학적 위치

오늘은 바르샤바까지 항공기 이동 스케줄이 있다. 크라쿠프 공항까지는 중앙역에서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30분 간격으로 셔틀 열차가 다녀 편리하다. 바르샤바행 항공기 기내지에 폴란드 혁명가이자 전 폴란드 대통령 바웬사의 칼럼이 실렸다. 자유와 민주주의 성취에 있어서 폴란드의 역할을 강조한다. 러시아와 독일 두 강대국 사이에 낀 폴란드의 위치가 과거에는 재앙이었지만, 이제는 동서남북의 중앙에서 문화가 융합하는 축복된 땅이라는 주장이다.

비스와강을 낀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는 베를린과 모스크바를 연결하는 간선로에 위치한다. 북위 55도, 인구는 약 170만 명이다. 인구로 보나 면적으로 보나 동유럽에서는 큰 도시다. 1596년 크라쿠프 바벨성이 소실되자 지그문트(Zygmund) 3세가 왕궁을 바르샤바로 옮기면서 폴란드의 수도가 됐다.

▲폴란드 아카데미 앞에서 코페르니쿠스 동상을 만났다. 동상에 ‘위대한 애국자’라고 적혀 있다. 사진 = 김현주

내일 새벽 6시에 파리행 항공기가 출발하므로 공항이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한 호텔을 잡았다. 호텔 체크인 후 시내 탐방에 나선다. 175번 버스는 두 칸짜리 장대 차량이지만 매우 빠르다. 꽤 될 것 같은 거리를 20여 분 만에 주파해 시내 중심에 닿는다. 바르샤바는 길이 넓고 반듯해 크라쿠프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유럽 어디라도 그렇듯이 이 도시에도 곳곳에 크고 작은 광장, 그리고 광장에는 어김없이 성당과 동상이 있다.

비를 만나 일단 후퇴

센트룸에서 올드타운(Stare Miasto) 방향으로 걷는다. 폴란드 아카데미 앞에 이르니 코페르니쿠스 동상이 있다. ‘위대한 애국자’라고 적혀 있다. 곧 바르샤바 대학이 나오기에 캠퍼스 안으로 들어가 본다. 방학 중이라 여기 저기 크고 작은 공사가 진행 중인 것은 한국의 대학과 다르지 않다.

갑자기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호텔에서 나올 때는 해가 나기에 우산은커녕 반소매 티셔츠로 나왔는데….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다가 근처 성당 안으로 들어가 아예 기도 반 수면 반 자세로 비가 멎기를 기다리지만 멈출 기세가 아니다. 

▲폴란드 바르샤바 중앙 광장엔 한국 차 광고판이 가득하다.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 잡은 한국 기업들의 옥외 광고판을 흔히 볼 수 있다. 사진 = 김현주

한참 기다리다가 고민 끝에 호텔로 돌아가 우산을 들고 재킷을 걸치고 나오는 것이 현명하겠다고 판단했다. 비가 오더라도 하루 종일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얕은 생각이 중북부 유럽의 우중충한 여름 날씨에 제대로 당한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오늘 비는 저녁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곳곳에 물이 고여 통신이 두절되고 교통이 마비됐다고 한다.

소박한 매력의 바르샤바 구시가지

우산을 들고 다시 시내로 나와 바르샤바 대학 부근에서 버스를 내려 시내 탐방을 다시 시작한다. 조금 걸으니 ‘더 라스트 커튼(The Last Curtain)’이라는 제목으로 거리 사진 전시회가 열린다. 1989년 동구권 혁명 시 각국의 극적인 사진을 모은 것이다. 공산주의는 이 나라에서 아직 가까운 과거에 살아 있음을 말해 준다.

▲바르샤바 구시가지는 크라쿠프 구시가지 광장보다 훨씬 소박하고 서민적인 것이 특징이다. 광장을 에워싼 집들이 소담하다. 사진 = 김현주

바르샤바 왕궁을 지나 조금 더 가니 구시가지(Stare Miasto)다. 붉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 안에는 시장이 있다. 성당마다 음악회 혹은 오르간 연주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다. 바르샤바 구시가지 광장은 크라쿠프 구시가지 광장보다 훨씬 소박하고 서민적이다. 그래도 영락없는 폴란드식 광장이다. 광장을 에워싼 집들이 소담하기만 하다. 꽃으로 단장하고 일요일 저녁 손님을 기다리는 노천카페와 식당들은 오늘 비가 와서 울상이다. 

바르샤바 도심을 도배한 한국 기업 전광판

내일 새벽 항공기 일정이 부담돼 여기서 도시 탐방을 접고 호텔로 돌아온다. 도중에 센트룸에 잠시 내려 사진을 몇 장 남긴다.

▲바르샤바 시내에서 ‘더 라스트 커튼’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거리 사진 전시회. 1989년 동구권 혁명 시 각국의 극적인 사진을 모은 전시회다. 사진 = 김현주

바르샤바 중앙역과 문화 과학 궁전(Palac Kultury i Nauki) 건물이 중앙 광장의 상징이다. 그런데 상징물이 또 있다. 광장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 잡은 한국 기업들의 옥외 광고판이다. 인구 4000만 명이고 장래 발전 가능성이 높은 폴란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일 것이다. 참 대단한 한국인이다. 

▲바르샤바 대학 전경. 캠퍼스 안이 한국의 대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진 = 김현주

1955년 건립한 문화과학궁전은 37층 첨탑까지 높이가 234m나 되는 초대형 건물이다. 공산주의 시절 폴란드와 우정의 표시로 구소련이 선물로 지어줬다고 한다. 규모와 모습이 소련식 사회주의 건물의 전형으로서, 이번 여행 중 모스크바에서 봤던 외무성 건물이나 모스크바 대학 건물과 흡사하다. 현재는 영화관, 극장, 박물관 등이 들어섰고 건물 앞 광장은 군대 퍼레이드 같은 행사가 열리는 바르샤바 최대 광장이다.

갑자기 내린 비로 오늘 스케줄에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도시 탐방을 일찍 마치고 여유롭게 저녁 시간을 보내려던 계획이 어긋나 구 유대인 게토 지역 등 몇 군데 탐방을 포기하고도 저녁 8시가 돼서야 호텔에 돌아왔다.

▲비스와강 언덕에 서 있는 바벨성은 16세기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축된 건물로 장엄한 분위기를 풍긴다. 사진 = 김현주

이렇게 해서 여행 15일째가 끝났다. 이제 내일은 파리행이다. 아직 파리에 가보지 못했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이 늘 갸우뚱한 시선을 보였던 차에, 늦었지만 드디어 유럽의 중심 파리에 입성하는 나로서는 의미 있는 사건을 앞둔 밤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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