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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화 골프 세상만사] “부담 갖지말라”만 말고 부담 줘야할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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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53호 김재화 한국골프칼럼니스트 협회 이사장⁄ 2015.10.22 08:5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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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재화 한국골프칼럼니스트 협회 이사장) 2015 프레지던츠 컵 골프대회. 우리나라에서 열린 아시아 최초의 골프대회다. 명성만큼이나 규모나 성대함, 최고 스타들의 등장까지…. 그야말로 휘황찬란했고 웅장했으며, 엄숙하기까지 한 행사였다.

골프 하나 끝내주게 잘하는 나라 미국은 전 세계 연합팀의 파상 공격에도 끄떡없다. 역대 전적이 말해준다. 그들은 딱 한 번 졌고(그마저 져줬는지도 모를 일), 딱 한 번 비겼다. 그러니 비기기만 해도 엄청난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비길 수 있는 찬스에서 우리의 배짱 좋은 사나이 배상문이 딱 한 번의 뒤땅치기로 그 희망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인터내셔널 팀 단장 닉 프라이스는 배상문을 이번 대회가 열린 코스에서 두 차례 우승 경험이 있는 한국 선수라는 이유로 추천 선수로 넣어줬다. 거기에 보답하듯 배상문은 당초 계산된 팀 내 비중 이상의 활약을 보여 사람들을 놀랍고 즐겁게 했다. 그런 그가 이 대회 마지막 매치에서 유일한 패전을 기록했다. 그러나 2승1무1패로 인터내셔널 팀에 2.5점의 승점을 선사했음은 물론 팀 내에서 대박이었다.

배상문은 이미 팀에서 적잖이 큰 존재가 돼 있었다. 최경주 수석 부단장은 싱글매치 조 편성 과정을 설명하며 “배상문을 맨 앞 또는 맨 뒤에 배치하는 방안을 두고 닉 프라이스 단장과 심도 깊은 의견을 나눴다”고 했다. 사실 뒤에 나가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이 될 수 있는데, 그들 생각엔 이 겁 없는 배상문이 그 압박감을 견뎌낼 걸로 판단했던 것 같다. 대회 합류 뒤 그만큼 열의를 다했고, 이렇듯 팀 내에서도 빵빵하게 인정을 받은 터였다.

그러면서 닉 프라이스와 최경주, 동료 선수들, 심지어 갤러리까지 배상문에게 “마음을 비우고 부담을 갖지 말라!”고 직접, 무언의 지시를 했다. 

▲10월 11일 열린 2015 프레지던츠 컵 마지막 날 싱글 경기에서 인터내셔널 팀의 배상문이 18번 홀에서 결정적인 세 번째 샷 실수를 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마음을 비우라”는 말들을 한다. 그 말을 하기와 듣기는 쉬운데, 행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나는 이게 문제가 됐다고 본다. 오히려 부담을 갖지 말라니 더욱 머리가 무거웠고, 긴장 말라니 더욱 손이 굳었을 것이다. 차라리 엄청난 압박을 줘버렸으면 어땠을까? “야, 배상문! 너만 잘하면 몇 년 만에 우리가 미국 팀과 비기는 대기록을 세운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잘해!”  

유격 훈련 때 사고 날까봐 초반 일부러 고생시키듯 “슬슬 하라”보다 압박 줄 때 일 더 잘될 수도

남자들은 안다. 군에서 유격 훈련을 시킬 때 조그만 실수로 큰 사고가 날까봐 초반에 엄청 ‘뺑이’를 치게 한다는 걸. 겁을 먹고 모두 살얼음판 걷듯 훈련에 임하다 보면 사고가 잘 나지 않는다. 군에도 아직 못 가본 배상문에게 무슨 그런 방식을 적용하느냐고 하겠지만, 어떤 일에 적당한 긴장은 필요하다 싶어서 해본 말이다. 내 경험상 “슬슬 하라”고 하면 진짜 우습게 임하다가 결과가 좋지 않고, 유격훈련 때 PT체조 하듯 긴장하면 그 압박감이 일을 잘 이끌던 때가 있어서다. 

마지막 날 싱글 매치에서 배상문은 마지막 12번째 경기에 배치됐다. 배상문이 잘해서 이긴다 해도 최종 승리는 할 순 없었지만 무승부로 경기를 끝낼 수 있는 키는 쥐고 있던 셈. 이것이 엄청난 부담이 됐음은 불문가지. 

배상문은 경기에 앞서 군대 문제에 대해 단호한 의지와 사과로 종결지었지만 그로 인한 마음 고생도 컸을 것이다. 그것이 결국 마지막 18번 홀에서 아마추어들이나 종종 하는 뒤땅치기라는 미스 샷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그는 한참을 주저앉아 어쩔 줄 몰라 했지만 그건 배상문의 책임이 아니었다. 프레지던츠 컵에서 세계 연합팀이 졌다. 큰 대회에서 선전한 배상문은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군에 다녀와 더욱 담력 큰 선수로 거듭나길 바란다. 

우리는 운동 경기나 입학시험 때 격려한답시고 “맘 편히 먹어라” “부담 갖지 마라” 등의 말을 하는데, 과연 그렇게 될까? 계속 의문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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