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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인터뷰 - 이용수] “진짜와 허상 중 진짜는 허상”이니 마음속 허상을 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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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78호 윤하나 기자⁄ 2016.04.14 09:01:09

▲이용수 작가. 사진 = 윤하나 기자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윤하나 기자) 여기 탐스러운 사과 이미지가 있다. ‘한입 딱 베어 물었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순간, 내가 본 그 이미지가 진짜 내가 탐하는 사과인지, 사과인 채하며 내 욕망을 끌어내는 허상인지 구분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미지 속 실제 모델이었던 원래의 사과가 내가 탐하는 진짜 사과인지, 아니면 그 사과의 굴곡과 표면이 탐스럽게 재현돼 우리의 구미를 당기게 만든 저 2차 복제물이 내가 탐하는 진짜 사과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도대체, 우리가 처음에 먹고 싶었던 사과는 무엇일까? 과연 진짜 사과를 탐했던 걸까!

작가 이용수의 작품은 이미지만 언뜻 봐서는 쉽게 구조를 파악할 수 없다. 작가 이용수의 작업을 실제로 보면, ‘어!’ 하고 유독 선명한 이미지에 이끌려 다가가 ‘아!’ 하며 입체 사진 작업에 놀라게 된다. 유독 선명한 입체적인 사진이라고도 보이는 그의 작품은 사실 사진 위의 특정 부분에 진짜로 입체 부조가 솟아 있다. 그래서 착시가 일어난다. 이 작품을 어떻게 구상하게 됐는지, 또 어떻게 제작됐는지 궁금함은 이어졌고 드디어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서울 삼청동의 가모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전시를 본 뒤 햇살 좋은 테라스에서 대화를 나눴다.

기자가 만난 작가는 미학적 추구보다 이미지 그 자체에 집중하는 작가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시각적 경험은 때로 눈이 해당 이미지에 적응하는 순간부터 그 이미지가 스스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는 진지하게 “시각적 감각은 포착한 이미지를 스스로 발전시키고 전개해나가는 경향을 지녔다”며 “눈으로 생각한다”는 자신의 지론을 이어나갔다. 그러면서도 “말도 안 되는 얘기인 거 같긴 하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젠 채하지 않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그의 태도는, 작품이 주는 ‘정교하고 까다로운 작가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금세 날아가게 만들었다. 

눈으로 생각하기

서울대 서양화과 출신이지만 그의 작품에선 사진 매체가 가장 두드러진다. 사진에 관한 질문에 그는 서양화과 입학 이전부터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고 답했다. 중학교 때 처음 페추리(PETRI) 카메라를 선물 받고 열심히 사진을 찍던 중, 수리를 마친 카메라를 집에서 도둑맞은 사건 이후 한동안 사진과의 인연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이용수, ‘Untitled’. 디아섹 위에 채색한 폴리코트. 사진 = 이용수

대학에 입학하고 1년간의 아르바이트로 니콘의 FM3 카메라를 구입하면서 독학을 이어나갔다. 실험을 거듭하면서 점차 4x5인치, 8x10인치 대형카메라로 이어졌다. 그는 현재까지도 이 스튜디오형 8x10 대형 카메라를 이용한다. 디지털카메라와 필름카메라의 차이점에 관한 이야기는 작품의 제작 과정으로 유연하게 방향을 틀었다.

시각적 경험을 중요시하는 그의 고집은 일상생활에서 이어지는 작업을 위한 오랜 밑 작업에서부터 드러났다. 작가는 평소 시장, 대형마트나 ‘다이소’를 자주 배회하며 가장 알맞은 주인공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을 투자한다. 예를 들어 작업에 사과를 등장시키고자 한다면 마음속에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사과 이미지를 품고 1년 이상 탐색의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오랜 유예기간을 통해 찾은(혹은 결정한) 이상적인 사과는 다음 과정을 통해 다시 ‘어떻게 자를 것인가’하는 고민의 늪에 들어간다. 가장 적합한 단면의 위치를 발견하면 그만큼을 잘라내고 사진을 촬영한다. 작가는 이 과정을 거치기까지 지난한 시간을 보낸다. 

▲이용수, ‘2015-GAW-1’. 디아섹 위에 채색한 폴리코트, 55 x 78cm. 2015. 사진 = 이용수

▲이용수, ‘2015-Pi-Y’. 디아섹 위에 채색한 폴리코트, 55 x 78cm. 2015. 사진 = 이용수

촬영 과정은 또 어떤가. 그림자가 드러날 경우 특정 공간이란 의미가 부여되기 때문에 철저히 그림자와 빛 그리고 반사광 등을 통제한다. 여러 장의 희고 검은 종이를 이어 붙여 원하는 경계선과 반사광을 만드는 등 작가만의 세팅을 한다. 그런가 하면 사과를 공중에 띄우기 위해 사과에 봉을 꽂고 사과 뒤에 단색 배경을 설치하는 등 전통적 사진촬영 기술을 총동원해 머릿속의 이미지를 현실로 끌어낸다.

촬영을 마치고 평면사진을 ‘디아섹 액자’(아크릴 압축 액자)로 제작하고부터 2차 작업이 시작된다. 작가만의 독특한 입체 작업은, 어찌 보면 그가 선택적으로 제거해낸 빈 구석을 다시금 손품과 시간을 들여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노력이다. 사진에 남은 단면의 자리에 폴리코트를 이용해 형태를 조형하고 에어브러시와 세필 붓을 이용해 잃어버린 부분을 복원해나간다. 작업 과정 중 가장 희열이 느껴지는 부분은 언제냐는 질문에 작가는 “작업 말미에 액자 표면에 붙였던 보호 필름을 제거할 때”라고 말했다.

▲이용수, ‘2015-Ch-1’. 디아섹 위에 채색한 폴리코트, 55 x 78cm. 2015. 사진 = 이용수

이렇게 만들어진 평면과 입체의 만남은 어딘가 무척 특별했다. 그의 작품과 유사한 작업 또는 참고할만한 레퍼런스를 쉽게 떠올릴 수 없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점에 주목하는 시선에 대해 그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2D 위에 3D를 접목시킨 시도’라는 규정 혹은 ‘차원을 달리하는 가상공간’이란 해석도 들리지만 사실 그가 작업하는 데 있어 “그런 측면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보이는 그대로, 보는 만큼 느낄 수 있게

어떤 이는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과나 복숭아에 어떤 상징적 의미가 있는지 묻는다. 작품을 ‘읽어내다’라는 말이 널리 통용되는 요즘에 그는 “내 이미지를 읽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밝혔다. 관념이 발달해나가는 데 대한 반발감의 표시였다. 보이는 이미지보다 이미지를 통해 읽는 사유가 어느새 작업의 주인인양 이미지의 자리를 빼앗는 현상이다. 여기저기 끼워 맞출 수 있는 관념적 사유보다 작가는 스스로 “성장하는 이미지에 주목했다”고 말한다.

이야기를 이어나가며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오브제 그 자체’가 되는 그의 사진 작품 이미지는 모두 정면에서 촬영된 것이다. 각도에 따라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는 입체 오브제의 특성을 적극 활용할 줄 아는 그가 정면의, 헷갈릴 수 있는 이미지를 남기는 부분이 궁금했다. 이에 대해 작가도 “오랜 기간 실험과 고민을 거쳤다”며 그래도 “결국엔 정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 외엔 더 좋은 방법이 없었다”고 답했다. “주석을 달수록 오해만 쌓인다. 그러기보다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고 말을 이었다. 그의 너털한 성격이 드러나는 답변이다.

이미지에 관한 그의 가치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위의 ‘진짜 이미지’에 관한 우리의 집착을 다시 언급해야 한다. 그가 가슴속에 품고 있던 원형적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어렵게 촬영한 사과 이미지와, 정말 사과처럼 착시를 일으키도록 재현한 볼록한 입체 사과 이미지 사이에 어떤 것이 진짜 이미지에 가까울까? 아니, 이 둘은 모두 진짜를 모사한 가짜인가? 

▲가모갤러리의 이용수 전시 전경. 사진 = 윤하나 기자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이미지가 진짜”란다. 우리는 이미지가 진짜와 동등하게 취급되고, 어느새 진짜의 자리를 차지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이다. 

이용수는 관념에 반발심을 드러내는 작가지만, 이미지의 중요성을 아는 만큼 이미지가 가진 모순의 관념도 이해하고 있다. 작가는 원하는 사과를 구현하기 위해 대형 뷰(view) 카메라의 무브먼트 기능을 이용해 형태의 수직선과 수평선을 조정하거나, 조명과 반사판을 복잡하게 활용하고, 하이라이트가 되는 부분을 다시 입체로 만들면서 그만의 가장 이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왜냐하면 그가 추구하는 ‘보고 싶은 이상’ 혹은 ‘원형’이란 여기에 실재하지 않고, 그것을 표현해내는 방법에는 왜곡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랜 대화를 마치며 그의 “작업은 관념과 현상 사이에서 하는 줄타기”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전시는 가모갤러리에서 5월 31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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