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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가 - 한·불 130년 전시들] 뒤집힌 배에서 퍼지는 소리… 서울과 파리의 공포는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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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78호 김연수 기자⁄ 2016.04.15 18:03:40

▲김아영(조현화 작곡), ‘우현으로 키를 돌려라’. 소리 설치와 6인의 보이스 퍼포먼스, 약 5~10분. 2016. 사진 = 김상태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연수 기자) 작년 9월부터 올해 말까지 1년 4개월은 한국과 프랑스의 상호 교류 기간이다. 특히 올해 2016년은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 때문에 교류의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 내 ‘한국의 해’는 작년 9월부터 올해 8월까지며, 한국 내 ‘프랑스의 해’는 올해 3월부터 12월까지다. 

문화, 예술, 체육, 관광, 교육, 미식 등의 전 분야에 걸쳐 교류를 진행하고 있지만, 특히 예술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프랑스와, 최근 주목 받는 한국 미술계의 합이 잘 맞아 떨어져 눈에 띄게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는 듯하다. 한국보다 앞서 진행된 프랑스 내 한국의 해 기간과 맞춰 이미 지난 9월부터 프랑스의 곳곳에서는 한국 관련 행사가 열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3월 프랑스의 해 기간이 시작한 것과 함께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 등이 민·공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눈에 띄는 전시들, 그리고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를 소개한다.

오페라 갤러리, 서울 풍경 그린 프랑스인 장 프랑소와 라리유 개인전

강남 도산대로에 위치한 오페라 갤러리는 한·불 수교 기념전시로 프랑스 중견작가 장 프랑소와 라리유(Jean Françis Larrieu)의 개인전 ‘풍경 여정’을 준비했다. 

▲장 프랑수와 라리유, ‘Seoul City(서울 도시)’. 캔버스에 아크릴, 146 x 114cm. 2016.

세계 11개국에 갤러리 체인을 두고 있는 오페라 갤러리는 프랑스인이자 프랑스 미술시장에서 경력을 쌓은 질 디앙(Gilles Dyan) 대표에 의해 창립됐다. 11개국에 퍼져 있는 네트워크를 잘 이용해 해외에서 공수한 다양한 작품 컬렉션을 한국에 선보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 역시 해외에 널리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질 디앙 대표는 작년 파리 오페라 갤러리에서 선보인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완판됐다고 CNB와의 인터뷰에서 소개한 바 있다.

이번 전시 작가인 라리유는 프랑스 남부지방의 풍경을 고유한 회화기법과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로 표현하는 작가다. ‘풍경 여정’은 라리유의 한국 첫 개인전으로서 2008년부터 현재까지의 작업 32점을 선보인다.

작품의 주요 모티브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피레네 산맥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피레네 산맥과 대지의 형과 색, 유년기의 추억과 여행에서 주로 영감을 얻어 작업한다. 작가는 인공적인 건축물과 자연을 다채로운 색과 곡선을 사용해 화사하게 조화시키며, 바쁜 도시의 풍경을 역동적으로 표현한다. 갤러리 측은 “라리유의 작품은 생명 근원의 상징인 대지와 나무를 소재로 대자연의 경이로움, 상상의 세계, 그리고 음악적 리듬이 공존하는 매혹적인 화폭”이라며, “도시와 도시의 외곽 그리고 전원 풍경을 한 화폭에 병치하는 그의 작업 방식은 그림에 시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작품 속 깊이를 더한다”고 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전시는 남산의 N타워, 명동의 풍경 등을 소재로 도심과 자연이 어우러진 서울의 풍경을 담아낸 최신작을 선보인다. 우리 눈에 익숙한 풍경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전시는 4월 20일부터 5월 30일까지.

파리의 궁전에 한국의 철도침목 세운 조각가 정현

조각가 정현은 3월 30일~6월 12일 파리의 *팔레 루아얄 정원(Jardin des Palais Royal)에서 개인전 ‘서 있는 사람’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팔레 루아얄과 프랑스국립기념비센터(Centre Des Monuments Nationaux)의 승인 아래 성사됐다. 현지 디렉터인 IBU(이부)갤러리의 시릴 에르멜(Cyril Ermel)과 국내의 학고재 갤러리가 공동 진행했다. (*팔레 루아얄(Palais Royal): 루브르 궁전 북쪽에 인접한 건물로서 17세기에 건축되고 루이 14세가 유소년 시절 머무르기도 했던 왕궁. 프랑스의 정치, 건축, 문화, 예술 등의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난 유적지다.)

▲정현 작가의 작품 ‘서 있는 사람’이 설치된 파리의 팔레 루아얄 정원. 사진 = 학고재

정현은 수명을 다한 철도 침목으로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 한 작품 50여 개를 정원의 통로 길에 설치했다. 철도의 무게를 버텨 낸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표면에 남은 폐목재들로 만든 인간의 형상은, 팔 다리 머리가 있는 형태가 아니지만 제목처럼 꼿꼿이 서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는 모습이다. 

세월이 지나며 에너지가 소진된 폐목재의 애잔한 모습이 아니라 작가의 손을 통해 거대하고 강한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그는 철도 침목뿐 아니라, 전봇대, 석탄, 철근 등 산업 사회가 쓰고 버린 폐기물들로 작품을 만든다. 그 재료들이 각각의 물성으로 담아낸 세월과 역사성에 집중함으로서 산업화 시대를 지나, 숨가쁘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속 모습을 표현한다.  

서울시립미술관 ‘보이지 않는 가족’

서울시립미술관은 일우 스페이스와 공동 주최로 2015-2016 한불 상호 교류의 해와 프랑스의 철학가 롤랑바르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 전시 ‘보이지 않는 가족’을 준비했다.

프랑스 국립 조형센터(Cnap)와 아키텐 지역의 현대예술기금(Frac Aquitane)의 사진 컬렉션 중 주요 작품 200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다이안 아버스, 제프 쿤스, 신디 셔먼,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마르셀 브로타에스 등 작가 114명의 기념비적인 사진 및 영상, 설치 작품이 소개된다. 

이번 전시 주제 ‘보이지 않는 가족’의 계기가 된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파리에서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순회전시 ‘인간 가족(The Family of Man, 1955)’을 보고 비판을 했다. 룩셈부르크 출신의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이 기획하고 두 번에 걸친 세계전쟁을 배경으로 한 사진들을 선보였던 이 전시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과 환경의 갈등과 화해였으며, 결국은 “인간은 모두가 한 가족”이라는 메시지였다. 

▲발레리 메르젠, ‘초상 연작’. 젤라틴 실버프린트, 65 x 65cm. 2002-2003. FNAC.

롤랑 바르트는 이 전시에 대해 인류라는 ‘상상적 공동체’를 비판하며, 보이지 않으면서 주변에 있는 존재들에 주목했다. 그가 말하는 ‘신화’의 개념이란 사진과 언어로 표현된 것 뒤쪽의 보이지 않지만, 누구나 당연시하고 자명화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자명돼 보이는 것에 대한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사상이 무의식적으로 함의돼 있는 80년대 할리우드 영화 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를 일컫는 말.)

그는 후대의 예술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저서 ‘카메라 루시다’에서 위인이 아닌 약자에게, 집단보다는 개인에게, 서사적 역사보다는 일화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가족과 성을 이루는 사회적 규범들을 해제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는 그런 롤랑 바르트의 사상에 따라 4개의 섹션(신화를 해체하기, 중립 안으로, 보이지 않는 이들, 자아의 허구)로 구성됐다. 바르트의 영향을 받은 1960~70년대 이후의 현대 사진가와 미술가들의 작품을 위주로 선보인다. 현재 우리가 즐기고 평범하게 생각하고 있는 이미지의 원류가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 느낄 수 있는 전시다.

▲다니카 다치, ‘Safe Frame III(안전한 프레임 III)’. 알루미늄에 C프린트, 100 x 150cm, 2012. FNAC.

한편,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과 가까운 일우 스페이스는 ‘보이지 않는 가족’전의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섹션으로 미술관 본관의 작품들과 강한 대비를 이루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 작품들은 바르트가 비판했던 ‘인간 가족’전을 상기시킨다. 빼놓지 않고 비교하며 보면 바르트의 사상이 현재 우리 문화·예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이해하기 쉬워질 듯하다.

각 나라에서 온 예술가들의 소문 만들기 ‘도시괴담’전

마지막으로 소개할 전시 역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앞서 소개한 전시가 프랑스 현지의 미술 협회들의 제공으로 이뤄졌다면, 이번에 소개할 전시는 규모는 작지만 서울시립미술관과 프랑스의 미술관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의 오랜 기간 협업으로 공력이 들어간 전시다. 

4월 5일~5월 29일 열리는 전시 ‘도시괴담’은 작년 11월부터 진행된 교류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현재 팔레 드 도쿄 산하 레지던시 르 파비옹(Le Pavillon Neuflize OBC Research Lab)에 참여 중인 7명(△한국: 김아영 △필리핀: 루림 △프랑스: 알렉스기예르, 앙주레치아, 오엘뒤레, 장 알랭 코르 △영국: 올리 파머)의 작품을 선보인다.

▲알렉시 기예르, ‘캔디맨’. 책, 종이, 인터뷰 비디오. 2016. 사진 = 서울시립미술관

서로 다른 국가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작가들은 서울과 파리 양 도시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시간적, 물리적, 언어적 제약이 오히려 창작의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들은 서로에게 오해를 하거나 오독을 장려하는 과정을 거쳐 그 역설적인 행위의 결과들로서 허황되지만 현실을 가장 날카롭고 통찰력 있게 반영한다.

알렉시 기예르, “캔디맨의 이름을 다섯 번 부르면, 그가 등 뒤에서 나타나 갈고리로 자신을 부른 사람을 죽인다”

알렉시 기예르(Alexis Guillier)는 도시 괴담의 전형인 미국의 공포물 ‘캔디맨‘의 원작을 중심으로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여러 도시에 등장하는 캔디맨을 연구한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최근 서울에 퍼지기 시작한 캔디맨의 괴담과 출몰 소식을 접하게 됐다고.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지금까지의 연구를 집대성해 도시괴담을 둘러싼 일반적인 믿음-두려움, 허구-현실에 대한 담론을 담은 서적 및 인터뷰 영상을 선보인다.

김아영, “매일 12시 45분, 미술관 정원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르 파비옹의 한국 참여 작가인 김아영은 사소하게 여겨지는 일상생활의 관점에서 근대의 역사를 해석하는 작업을 한다. 작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의 본전시에 초대 작가로 참여했고, 같은 해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미술 부문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가가 이번 전시에 내놓은 작업의 형식은 ‘보이스(voice, 목소리)’ 혹은 보이스 퍼포먼스(voice performance, 목소리 공연)다. 미술관 곳곳에 스피커를 설치하고 때가 되면 음악이 울려 퍼진다. 아름다운 화음이 겹쳐 성가처럼 들리는 음악 소리의 중간 중간 성악가들의 외침 소리가 들린다. “Stay there!(가만히 있으라!)”

김아영은 ‘도시 괴담’이라는 이번 전시의 주제 아래 루머의 생산과 반복의 구조에 비춰 모든 사회가 공통으로 가진 공포심에 주목한다. 그녀는 “각 나라의 전설적인 설화들이 전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루머와 괴담의 생산 역시 어떤 사회든 공통적인 원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반영하는 공포는 사회를 평가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고 설명한다. 

▲‘도시괴담’전에 참여한 김아영 작가. 사진 = 김연수 기자

이번에 선보이는 작업은 6월 파비옹 레지던시에서의 연구를 마무리하며 가지는 개인전의 첫 걸음 격이다. 국립오페라극장(Palais Garnier)에서 파리국립오페라단(Opéra National de Paris)과의 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녀는 현재 사회의 재난을 표현할 수 있는 원형 격인 소문-괴담-설화 등이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탐구하며, 인류 공통의 대홍수 서사와 파리에 있는 국립 오페라극장의 건축 양식에 집중했다. 세상에서 가장 장대하고 화려하게 지어진 건물로 유명한 오페라 극장의 천정이 배가 뒤집어진 형상이며, 대홍수 서사에 등장하는 방주처럼 ‘역청’으로 마무리됐다는 공통점도 발견했다. 이 밖에도 많은 오페라 극장이 방주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단서들은 극장이 가상의 배로서 역할을 실현할 수 있게 했다. (*대홍수 서사: 성경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성경뿐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신화, 그리스 신화, 인도 신화에도 나온다.)

연구의 결과물인 ‘우현으로 키를 돌려라’라는 5분짜리 음악과 퍼포먼스는 작곡가 조현화와의 협업으로 완성됐다. 김아영은 설화 안에서의 배가 살아남길 바라는 기원과 염원을 고대 그리스의 진흙판에 서 있던 주술의 구조를 차용해 작사했다. 파리의 오페라 극장에서 열릴 퍼포먼스처럼 미술관에서 전시 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열리는 퍼포먼스 역시 퍼포머들이 미술관 로비의 계단의 난간에 기대어 마치 갑판에 기댄 것처럼 가상의 배를 연출한다. 그녀는 “인간의 목소리들이 차곡차곡 겹쳐졌을 때 얼마나 강한 에너지가 될 수 있는지 느껴보길 바란다”며, “염원과 체념을 동시에 담은 목소리들이 전설처럼 혹은 공기처럼 무의식중에 스며드는 것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작가가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작품 안에 숨겨놓은 코드가 4월에 열린 전시와 함께 한국 사회가 가진 아픔을 은유한 것 같다고 느끼는 것이 어불성설은 아닐 것이다. 참고로, 그녀가 만들어낸 주술 같은 작사가 전시장 입구에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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