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상당히 민감한 소재다. 이를 미리 예감했다는 듯 오경택 연출도 입을 열었다. “지난해 이 작품을 처음 보고 주저했습니다. 소재가 매우 민감했기 때문입니다. 잘못 표현되면 굉장히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또 말했다. “그래도 이 이야기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꼭 언젠가는 공유해야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연극 ‘킬 미 나우’가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 캐나다 극작가 브래드 프레이저가 2013년 발표한 이 작품은 선천성 장애를 가진 소년 조이와 아들을 위해 헌신한 아버지 제이크가 겪는 갈등을 다룬다.
작품 초반은 장애인 가족의 고충에 집중한다. 목욕할 때, 장 볼 때의 어려움이라던가 실생활에서 불편한 이야기들이 그려진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이야기는 더 세밀해진다. 아버지가 자신의 몸을 씻겨줄 때 조이는 처음으로 발기를 겪는다. 그리고 점차 성(性)에 눈 뜨며 호기심을 갖는다. 그리고 아들을 돌보는 기둥 같은 존재였던 아버지 제이크에게 신체적인 변화가 생기면서 이후에 안락사 이야기까지, 연극은 쉽지 않은 주제에 솔직하고 대범하게 접근한다.
조이는 걸어 다니지 못하고, 언어 장애까지 있어 사람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극은 장애를 가진 조이에 연민을 가지지도, 아름답게 꾸미지도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조이는 친구 라우디와의 독립을 꿈꾼다. 사춘기 시절의 반항 심리도 보인다. 그리고 아버지이지만 조이를 돌보면서 힘에 부칠 수밖에 없는 제이크의 어려운 상황, 가족이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아낌없는 사랑을 보이는 제이크의 여동생 트와일라가 지쳐가는 상황까지. 모든 상황을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가족이라는 이름만으로 아름답게 극복할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편견, 선입견 없이 바라보라”도 아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보라고 드러낼 뿐이다.
장애인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는 민감하다. 자칫하면 비하 논란에 휘말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안락사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까지 접근한다. 극 중 안락사에 대해 가장 관심을 갖고 필요성을 제시하는 인물도 아들 조이다. 안락사에 대해 한국에선 쉬쉬하는 측면이 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처럼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삶의 의지를 버리지 않고 꿋꿋이 살아야 한다는 인식이다. 삶의 존엄성 측면에서 논의되는 적극적 안락사는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살 권리’뿐 아니라 ‘죽을 권리’도 있다
하지만 극은 ‘살 권리’가 아니라 ‘죽을 권리’에 대해 짚는다. “함부로 입 밖에 꺼내지도 말라”고 다그치는 트와일라에게 조이는 “많이 생각하고 알아보고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인간다울 권리”로서의 안락사를 언급한다. 삶을 포기하는 의미로서가 아니라, 아버지와 자신의 권리를 언급하는 이 부분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와 관련해 오경택 연출은 “삶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 그 이야기를 소통의 측면에서 접근하려 했다. 공론화 되지 못하고, 쉬쉬하며 감추기만 했던 이야기, 그 이야기를 무대 위에 풀어놓으며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길 바랐다”고 말했다. 그래서 극은 안락사를 이야기하는 조이가 옳다 또는 그르다는 식의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관객은 자유롭게 생각할 권리를 가지면 된다.
민감한 소재에 출연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이번 공연에서 유독 빛나는 배우들이 많다. 특히 오종혁은 이번 공연을 통해 다시금 재평가를 받을 것 같다. 아이돌로 데뷔해, 이후 뮤지컬 ‘그날들’ ‘블러드 브라더스’ ‘쓰릴미’ ‘공동경비구역 JSA’ 등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이미 뮤지컬계에서 아이돌 꼬리표를 떼고 뮤지컬 배우로 인정받은 그가 연극 ‘서툰 사람들’ ‘프라이드’에 이어 이번엔 ‘킬 미 나우’까지 선택했다.
특유의 꽃미모는 극 중 찾아볼 수 없다. 언어 장애가 있는 조이로 분해 휠체어 위에서 어그러진 입으로 힘겹게 이야기한다. 오종혁은 이번 작품 출연을 위해 직접 회사를 설득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그는 “연습 내내 어떻게 표현해야 장애인 관객이 볼 때 불편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걷지 못하고,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신체적인 장애의 측면보다는 그들이 느낄 감정에 더 공감하고 충실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오종혁과 호흡을 맞추는 배수빈의 열연도 빛난다. 아버지 제이크로 분해 아들 조이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자신에게 찾아온 척추이상으로 점점 조이에게 의지하게 되는 자신을 보며 내면의 갈등을 겪는 모습까지 열연을 펼친다.
‘킬 미 나우(Kill me now)’는 극 중 조이가 즐겨하는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외치는 말이다. 제이크는 조이가 이 말을 할 때 발음 때문에 ‘힐 미 나우(Heal me now)’로 들린다고 했다. 그래서 이 연극은 죽음과 치유 사이에 위치한 이야기다. 죽음과 치유를 상반된 개념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물음표를 남겨놓은 채 관객과 이야기를 시도하는 공연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7월 3일까지 이어진다.